변신
고전의 어느 숲을 지나온 강물 위에
지금은 무섭도록 헤진 얼굴이 일렁이는데
이것이 글쎄 누구의 얼굴인지
이 강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보았는지 몰라.
죽은 사람과 죽지않은 사람
담담한 얼굴을 하고 흘러서는
그렇게 쉽사리 돌아 오지는 않을 것
어느 후광을 따라 나섰을까 조용히
등에 칠성판을 깔고 별이나 헤고 있는지
내성의 깊이로 꺼져들어간 강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서
우리를 붙잡는 무슨 힘이라도 있는가
내가 왜 빠지고 싶은지 나도 몰라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워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침착한 시간의 녹슨 고기를 낚아
빛나는 면경처럼 들여다 볼라치면 몰라
낯설어진 우리의 얼굴을 우리가 몰라
가르쳐 준 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부대낀 언덕 저 편에서 누군가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진주남강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보리알 같이 소박한 내 거문고 소리여
이 어지러운 강변의 오오 산 죽음
그대 여인이여,
잘리운 손목과 굳은 혀를 들어
지금은 돌아와 노래할 때라
이렇게 불러보는 나의 노래로
너를 파묻고 돌아선 밤 물결은 뒤채고
삶은 또 왜 이다지 잔혹하게
나를 휘어잡는 것이냐
광명은 다시 어듬 속에서
신지핀 누이마냥 난무하던 적과
이방인의 자취를 흡수해 가버렸지만
빛은 언제나 음영을 거느리고 찾아들 듯
기껏 우리가 찾은 적은 우리의 벗
어둠은 항상
새로운 형태로 인식되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속에서 죽었을까
신화와 현실의 어중간에서 우리는 실신한다.
빛이 외면한 땅속 깊이 욕먕의 불을 넣어
그 무던한 밤과 어둠을 지킨
우리가 미련한 짐승의 자식인 탓일까
마늘과 쑥 대신 풀뿌리 나무껍질을 씹으며
너무도 오랫동안 강인(강인)한 여력으로
우리는 우리속에서 우리들과 싸워왔다.
우리?
눈물이 나도록 슬픈 상징이여
한 번 싱싱하게 핀적이 없는 잎들의 내부엔
여름같은 이 겨울은 깨칠 수액이 진한채
온갖 시새움에 서슬이 시퍼런 신경의 가지끝
무고했던 내 백성의 머리,
피로에 겨운 스스로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저렇게 숱한 나뭇잎으로
잊고 싶은, 잊고싶은 기억드러이 나부낀다.
흡사 성 밑의 가등, 미열이 이는 기류속으로
몇마리의 나방이가 어듬을 털며 날아들 듯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무기력하게 먼들었는가
죄많은 왕의 거대한 무덤처럼
하늘 가상이로 들어난 능선 그 밑에
살아남은 주검들의 형상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또 향나무 제기를 닦고 있다.
망우리 주목나무 숲에서 슬픔이 살아 오른다.
시름 시름 시름이 살아 오른다.
그리고 사월이여, 내 자식은 거리에서 죽었다.
죽은 이방시인의 싯귀가
한국에서 더 절실해지는
사월에, 라일락나무숲 독한 향기속에.
뒤척이는 물결속에선 총탄이 박힌 머리가
조국이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떠오르고
목선의 짐대가 바람결에 부딪치며
그 옛날 의로운 죽음을 말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조국의 참된 얼글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죽은 혼령들이 속돌에 스민 듯
시가에는 해마다 투석전이 벌어지고
최루타이 없더라도 사월이여,
스스로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을 아는데도
혁명, 오 너의 엇갈린 문맥.
금 빛 게으른 소가 알 수 없는 음절을 반추하고
사미 짐대예 올아서 해금(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데모가 나면 어머니 학교에 안 가도 된대요
눈이 아픈 걸요 다시 곰이나 될까봐
눈을 뺀다, 빌어라, 빌어라, 눈을 뺀다
어쩌면 종말같ㄷ고 어쩌면 시작같은 아침
오늘도 혁명, 얄리얄리 출근을 안해도 되는 날
오늘의 매뉴는 마늘과 쑥
또 한번 당신은 변신할 필요가 있읍니다
시창 창사 위 비둘기 집은 위태로운 아이러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안에서 목잘린
사슴의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밤새 우리는 숨을 족이고 기다렸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다만 그것을 모르는 채
일상의 구획된 거리를 빠져나가며
나날이 개편되는 우리들,
석간의, 늘 위태한 입구에서
집적의 우울한 낱말을 손에 쥔다.
신라의 한 조각 불투명한 기왓장으로
사가는 매양 역사를 들여다 보지만
곱게 미칠 수 없던 시대의
그 갈증나는 아이들은 지금
소리없는 전쟁의 기류를 타고
하연 껍데기처럼 흐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밤이 기슭에 닿도록 석굴 술집에서
마신 술을 퇴게로에서 토하고 나서
십자가에 허수아비 얼굴을 걸어놓은 사람들.
탄흔이 가신 피부 속으로 황달이 스민듯
잎진 나무들 새로 먼 해원을 바라보며
영혼의 죽은 나무 이파리를 들춘다.
이것이 주구의 얼굴인가.
누구의 얼굴이어야 하는가.
글쎄, 이것이 정말 거짓말인가 몰라
어항 속에서는 물고기가 익사했다는데
어느 날 우리가 우리속에서 돌연히 죽을지
우리들의 시대에 아이들이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가르쳐 준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노래는 즐겁다, 노래는 끝났다 그런다지
그대 오른 손이 다시금 수금을 쥐더라도
여인이여,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마디를 풀고 흐를 수 없는 우리,
웃기는 웃어도
웃으라면 내가 그렇게 웃기는 하여도
시시로 파고드는 시름의 주둥이를
종이 접듯 안으로 사릴 줄 아는 슬기로
슬픔을 접어 하늘에다 날릴 날이
다시 노래한 날이 있을까 몰라.
詩/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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