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궁극의 자유를 향해!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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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10일

안부전화를 빙자해 유끼짱에게 전화를 하였다.

사실 그녀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 회사에 취직을 좀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제발 꼭 좀 부탁한다고 몇번이고 힘주어 말했다.

 

 

2009년 1월12일

재일교포 3세라서 한국말은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

멀쑥하나 꿀먹은 듯한 꽁한 인상이다.

나의 새로운 사장님의 이름은 켄타로상이다.

나보다 한 두세살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기를 은근히 바랬는데 뭔가 머쓱해진 느낌이다.

 

 

2009년 1월13일

첫출근.

하얏트에서 부부와 두 아이를 픽업했다.

너무도 유쾌했던 오시마상의 가족들.

만남내내 너무도 즐거이 웃었다.

예전 코메디언 지망생이였다던 오시마상은 꼭 아톰을 만드신 코주부 박사처럼 생겼다.

딸아이 얼굴이 자기를 닮아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오시마상.

아..그래,이런게 행복일 수도 있겠구나,생각했다.

 

 

2009년 1월18일

 훗카이도에서 왔다는 우타가와 커플.

포니랜치에 가는 손님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Western을 설득,결국 반대편 코스까지 왕복을 시켰다.

돌아 오는 길 요구사항이 하나 없었던 근래 가장 편했던 손님들.

 

 

2009년 1월19일

오늘따라 일본말이 더 버벅거린다.

 

손님들이 물어 본다.

"2세예요,3세예요?"

 

당당히 대답했다.

"한국사람입니다."

 

"아,그래?"

 

갑자기 반말을 하기 시작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룸미러를 통해 빙긋히 웃어 주었다.

 

 

2009년 1월21일

 현 수상이 뭐라고 그랬다구요?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라구요?

그 모든 일을 알고 있냐구요?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지하철에서 대신 죽은 조선인은 당연 해야 할 일을 한거라구요?

 

카메이 할머니.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는 그 무엇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할겁니다.

단지 지금..우리는 힘이 없을 뿐입니다.

 

 

2009년 1월22일

마사미상과 어머니.

오붓한 두 모녀 첫 하와이 여행의 가이드가 되었다.

포니 랜치를 돌아 하나우마 베이를 찍고 돌아 오는 길.

일명 '한국지도 마을'이라고 한국 관광객에게 소개하는 Scenic point에 멈췄다.

-산능선을 타고 비스듬히 모여 있는 집들이 군락을 이루어 한국지도랑 아주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다.-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이 한국지도를 알고 있는지 물어 볼 생각이였다.

 

"어때요?경치 좋지요?"

 

"아,전망이 너무 좋아요."

엄마도 딸도 아이처럼 좋아 한다.

 

"저기 산위에 마을이 보이지요?

저기가 바로 일명 한국지도 마을입니다.

그렇죠?똑같이 생겼지요?"

대답을 기다리며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헌데 그들의 대답을 쇼킹했다.

-내겐 충격이였다.-

그들은 이때까지 단 한번도 한국지도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때까지 단 한번도 궁금했던 적도 없었다고 한다.

나는 장난치는 줄 알고 여러 각도로 재질문을 던졌으나 결론은 숙명적 절망이였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들에게 완전 관심밖의 나라였다.

 

일본에서 피아노 선생이라는 어머니와 스튜어디스 직업을 가진 딸.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희망을 더 걸었었는데 참패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베트남이 어디 붙어 있는 줄 알고 있나?

나는 미얀마의 국기를 본 적이 있던가?

도대체 나는 태국사람을 말레이시아 사람을 인도사람을 나랑 똑같이 생각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나는 오늘 이렇게 완전히 발가 벗겨 졌다.

그리고 거대한 수치심과 함께 지난 날의 내가 살아온 행태가 너무도 혐오스러워 졌다.

 

 

 

출처 : CLUB OSHALE LION
글쓴이 : OSHALE LI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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