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밤에 너를 적시다 / 최승헌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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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에 너를 적시다  

                                                         최승헌

 

 

 

내가 너의 몸에 초경처럼 비밀스럽게 찾아가서

그 몸을 붉게 물들이는 꽃으로 피어나거나

혹은 네 몸속을 떠도는 바람으로 산다면

너는 나의 어디쯤에서 머물러 줄 수 있을까

너에게 스며들고 싶어 수없이 내 몸을 적셨지만

불어터진 인연의 껍데기로는 어림도 없어

반송우편함에 틀어박힌 편지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네

네가 꽃일 때 나는 꽃이 되었다가

네가 바람일 때 나는 바람이 되었지

꽃도 바람도 네 몸속에 잠들지 못해

입질만 하는 붕어처럼 실없이 네 이름만 불렀지

물수제비뜨듯 너에게 나를 조금씩 던지는 밤

파르르 떨며 지나가는 내 민망한 얼굴을

어둠의 꼬리가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네

하필, 이 눈치 빠른 계절에 걸려든 내 몸은

누가 끌어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숨통이 턱턱 막히는데

봄밤이 너무 길어 자꾸만 너를 덮치려 하네

봄밤이 나를 자빠지게 하네

 

 

- <현대시> (2010년 3월호) -

출처 : 외로운 여자의 수다방
글쓴이 : 장혜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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