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봄밤에 너를 적시다
최승헌
내가 너의 몸에 초경처럼 비밀스럽게 찾아가서
그 몸을 붉게 물들이는 꽃으로 피어나거나
혹은 네 몸속을 떠도는 바람으로 산다면
너는 나의 어디쯤에서 머물러 줄 수 있을까
너에게 스며들고 싶어 수없이 내 몸을 적셨지만
불어터진 인연의 껍데기로는 어림도 없어
반송우편함에 틀어박힌 편지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네
네가 꽃일 때 나는 꽃이 되었다가
네가 바람일 때 나는 바람이 되었지
꽃도 바람도 네 몸속에 잠들지 못해
입질만 하는 붕어처럼 실없이 네 이름만 불렀지
물수제비뜨듯 너에게 나를 조금씩 던지는 밤
파르르 떨며 지나가는 내 민망한 얼굴을
어둠의 꼬리가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네
하필, 이 눈치 빠른 계절에 걸려든 내 몸은
누가 끌어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숨통이 턱턱 막히는데
봄밤이 너무 길어 자꾸만 너를 덮치려 하네
봄밤이 나를 자빠지게 하네
- <현대시> (2010년 3월호) -
출처 : 외로운 여자의 수다방
글쓴이 : 장혜성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책·여행·사랑·자유 > 사랑 LO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741]행복한 부부들은 열정과 로맨스보다는 돈독한 우정을 보였고... (0) | 2010.05.19 |
---|---|
♡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 [좋은글/스크랩] (0) | 2010.05.11 |
[스크랩]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들어서는 ‘공간’이 돼주는 거다. (0) | 2010.05.01 |
[스크랩] 내 사랑 그대 외로운가요 (0) | 2010.04.17 |
[스크랩]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0) | 201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