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탁소에서/ 이상국 :: 록키의 나만의 세상
728x90

 

 

 

세탁소에서/ 이상국

 

 

아끼던 골덴 재킷의 소매가 너무 닳았다

털이 빠지고 오래되긴 했으나

사실은 내가 왼손잡이어서 그렇다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하며

세탁소 여자는 뜨악하게

수선한들 별로 돈이 안된다는 표정이다

왼손이 불편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왼손잡이여서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을 때

불쌍해서 눈이 붓도록 울거나

언젠가 평양 만경대 갔다가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안내원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누가 봤을까봐

아직도 꺼림칙해하는 정도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이 취직을 하거나

군대에 가게 되면 그 애비가

어느 손을 주로 쓰는지도 알아본다고 해서

나는 할 수 없이 좌우를 다 잘라달라고 했다

소매사 불구처럼 댕공했지만

아무도 눈여겨볼 것 같지는 않았다

 

-시집『뿔을 적시며』(창비, 2012)

.................................................

 

 왼손잡이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고난 것이거늘 예전엔 이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았다. 억지 훈련을 통해 자식을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했던 부모들도 꽤 있었다. 물론 왼손잡이라 해서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여럿이 밥 먹을 때 왼 편에 있는 사람과 부딪힐 수 있고, 글씨 쓸 때 조금 불안정해 뵈는 정도다. 오른손잡이도 습관 한 두 개쯤은 왼손 사용이 자연스럽고 편할 경우가 있다. 왼손잡이도 마찬가지다. 나도 다른 건 다 오른 손인데 돈을 셀 때와 화투를 섞을 때 꼭 왼손을 사용한다. 그래서 돈이 안 붙는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왼손과 오른 손을 함께 사용한다. 야구에서도 한 손에 글로버를 끼고 공을 받으며 다른 한 손으로 공을 던진다. 한쪽에 포크를 쥐면 다른 쪽은 나이프를 쥔다. 지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데 양손을 다 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양손잡이다. 작고한 이영희 선생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리고 왼손잡이라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다. 그런데 왼손 왼편 좌측 좌파 등을 싸잡아 한통속으로 착시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측보행’ 법제화만 해도 사유가 없지 않다고는 하나 그런 착시현상에 의한 레드컴플렉스의 발로라는 지적이 많다.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려는 소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파시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좌측통행이고 복잡한 곳에서나 좁은 산길에서는 시민의식을 발휘해 양보하며 자연스럽게 걸으면 될 것을 같잖은 이유로 국세낭비와 혼란을 초래할 일은 무언가. 좋은 규범은 자율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편하게 걸을 권리마저 빼앗긴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을 때 불쌍해서 눈이 붓도록 운’ 것 갖고도 ‘좌빨’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고, ‘평양 만경대 갔다가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안내원에게 악수를 청한’ 일도 들키면 ‘종북’이 되는 세상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보수는 그러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꼭 보면 그런 식의 매도를 일삼는 이들은 정녕 지켜야할 가치는 지키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하거나 양보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이 정부수립을 앞둔 해방공간의 군정시절도 아니고 이념대립과 갈등이 다 무엇이냐. 내 오른손은 왼손을 관용하면서 이렇게 공존하는데...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