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속세에 찌든 마음 씻어내는 해인사 소리길 :: 록키의 나만의 세상
728x90

 예로부터 전란을 피해서 은거할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인 합천 가야산(1,430m)에는 법보사찰인 해인사(海印寺)가 있고, 대학자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노년을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 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리며 신라 골품제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고운(孤雲) 최치원은 홍류동(紅流洞) 계곡물에 속세의 때를 씻어버리며 바위벽에 칠언절구를 남겼다.“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옳으니 그르니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온통 둘러버렸다네.” 최치원이 삶의 마지막을 가야산 품에 안겨 보낸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해인사 소리길은 총 7.3㎞ 구간으로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합천군은 초조대장경 간행 1천 년을 맞은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을 개최하면서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에서 홍류문까지 4.2㎞에 1구간인 홍류동여행, 홍류문에서 명진교까지 1.5㎞에 2구간인 발자취를 찾아서, 명진교에서 치인교까지 1.6㎞에 3구간인 비경을 찾아서, 영산교에서 해인사까지 1.2㎞에 4구간인 천년의 길을 조성했다. 소리길의 ‘소리’는 ‘사운드’(Sound)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蘇利) 즉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불가에서는‘극락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도 있다. 소리길은 이름만큼 풍경도 멋지다. 물소리, 산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터벅터벅 걷다 보면 시나브로 세상 시름이 덜어진다.

◇ 고운 최치원의 숨결이 오롯이 느껴지는 길

소리길 시발점은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 주차장이다. 각사교를 건너 오른편 소리길 입구로 들어선다. 입구 화강암 표지석에는 “소리길이란 우주만물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 우리가 추구하는 완성된 세계를 향하여 가는 깨달음의 길이며,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세월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석탑, 가야산의 정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조각가 이병준의 작품 ‘비상, 그리고 염원’을 지나면 ‘가야산 19경’의 ‘갱멱원’(更覓源)이다. 멱도원으로도 불리는 갱멱원은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곳’이다.

소리길에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암봉과 장엄하고 우렁찬 물소리가 가히 선계를 연상케 한다. 이곳을 찾은 옛 선인은 “호젓이 더딘 걸음으로 숲언덕을 찾아드니/ 돌무더기 어지러운 구비마다 물결이 부딪히네/ 꽃은 지고 새 우는데 인적은 드물고/ 구름까지 깊어 예 놀던 곳 알 수 없어라”고 읊었다.

갱멱원을 지나 20m쯤 더 가면‘계곡에서 흘러온 꽃잎을 따라 올라간다’는 축화천(逐花川)에 이른다. 축화천에서 나무계단과 덱을 지나 흙길로 내려서면 낟알이 황금빛으로 여물어 가는 논과 사과밭이 가을의 서정을 듬뿍 느끼게 한다.

소리길 오토캠프장을 지나면 ‘주차장 1.7㎞, 해인사 5.4㎞, 청량사 2.1㎞’란 안내판이 있는 무릉동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청량사 방향이고 오른쪽은 근원교를 건너구원리 마을이다. 해인사 방향으로 직진하면 곧바로 소리길 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는 구불구불 이어진 좁다란 숲길과 맑고 장엄한 계곡길이 숨바꼭질을 한다.

계곡 위에 몸을 걸치고 있는 무릉교와 자연생태학습장을 지나면 북두칠성에 기도하는 칠성대(七星臺)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에 가끔 정지비행을 할 수 있는 맹금류인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가 나타나고, 울음소리는 ‘킷, 킷, 킷’ 또는 ‘켓, 켓, 켓’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목교를 건너면 해인아트프로젝트인 100개의 판석에 글자를 새겨놓은 ‘쉴파 굽타’, 박성희의 작품 ‘바위에 갇힌 부처를 보다’, 연못에 자연석 징검다리 40개를 놓은 ‘꽃길’이 이어진다.

소리길이 안내하는 대로 걷다 보면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현판이 걸린 홍류문에 이른다. 입장료(어른 3천 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1천 원)를 내고,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최치원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농산정(籠山亭)이다. 농산정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자 앞 계곡에는 그의 칠언시가 새겨져 있는 암벽 치원대(致遠臺)가 있고, 크고 작은 바위에는 누군가 새긴 글이 가득하다. 농산정이란 명칭은 치원대에 새긴 시에서 비롯됐는데, 최치원 선생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농산정을 지나면 숲은 짙어지고, ‘풍월을 읊는 여울’이란 뜻의 음풍뢰, 붓을 씻었다는 체필암, 시를 읊었다는 완재암, ‘빛을 머금은 바람이 춤추는 여울목’이란 뜻의 광풍뢰, ‘선인이 내려와 피리를 불었다’는 취적봉, ‘옥을 뿜듯이 폭포수가 쏟아진다’는 분옥폭, ‘비 갠 뒤 밝은 달 그림자를 담는다’는 제월담 등 절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생전 성철 스님은 가야산 백련암에서‘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발표했다.

길상암을 지나 명진교를 건너면 촉지판, 황토포장, 나무 덱을 설치해 휠체어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탐방 구간이다. 나무 덱 입구에서 고개를 숙여 하심(下心,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나무를 지나면 소리길의 백미로 손꼽히는 낙화담(落花潭)에 닿는다. 숨이 멎을 듯 웅장한 바위벼랑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장쾌하고, 짙푸른 못은 흰 물거품을 흩날린다. 힘찬 물소리에 맞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1950년대 치인리 주민들이 계곡수를 끌어들여 전기를 생산했던 간이발전시설, 돌이 층층이 쌓여 있는 첩석대, ‘신선이 모여 논다’는 회선대를 지나면 영산교다. 이곳에서 도로변 덱 길로 1㎞가량 더 걸으면 해인사 상가단지와 버스 매표소다.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4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시발점인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 주차장으로 되돌아가거나, 성보박물관과 해인사를 둘러보고 난 뒤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 버스를 타면 된다. 법보사찰인 해인사는 불보사찰인 통도사,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로 세계 기록문화유산인 대장경판과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 등 70여 점의 국보·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걷는 내내 계곡물 소리가 따라나서는 해인사 소리길은 단풍 비경이 펼쳐지는 가을뿐만 아니라 하얀 눈이 뒤덮인 겨울,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봄, 노송이 푸름을 더하는 여름에도 걷기 좋은 길이다.

◇ 소리길 베이스캠프, 오도산 자연휴양림

오도산 자연휴양림은 오도산(1,134m) 서쪽 산자락 아래 깊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숲이 울창하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마르지 않는 등 골짜기 풍경이 뛰어나고, 계곡을 따라 숲속의 집, 청소년 수련관, 취사장, 야영장, 물놀이장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왼쪽 산 사면에 숲속의 집 18동이 2개 지구로 나뉘어 들어서 있고, 숲속의 집 2지구에서 더 오르면 3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청소년 수련관이 마련돼 있다. 계곡 주변에는 야영 덱 81개가 조성돼 있어 자연 속 캠핑이 가능하다. 텐트에 누워 맑은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무릉도원이라 할 만하다. 특히 야영 덱 1∼3번은 자연휴양림 최상단에 있어 숲도 깊고 아늑하다. 1번 덱과 2·3번 덱의 간격은 5m가량 떨어졌지만 2번과 3번 덱 간격은 1m 정도다. 따라서 이곳은 2∼3팀이 함께 즐기고 싶은 캠퍼들에게 좋은 장소다.

자연휴양림 내 취사장은 산행길의 시발점으로, 산행에는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 30분 소요된다. 휴양림∼오도재∼오도산∼오도재∼휴양림 구간이 3시간 정도 걸리고,휴양림∼말목재∼유방봉∼미녀봉∼오도재∼휴양림 구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휴양림∼말목재∼유방봉∼미녀봉∼오도재∼오도산∼오도재∼휴양림 구간은 5시간 30분 소요된다.

 


. 

출처 : 행복한 중년들
글쓴이 : 들풀 사랑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