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웃 사내외 1/이기와 :: 록키의 나만의 세상
728x90

이웃 사내/이기와  



어머 아저씨, 왜 이러세요!
이렇게 추악하게
나의 여성성을 증명하고 싶지 않아요

지체부자유 그녀의 생 이웃에 사는 사내는
이 날 밤, 철야기도 가는 것도 잊고
잠금 장치가 허술한 그녀의 몸을 따고 들어가
주린 욕망을 증식시킨다
순간,
창 밖 휘영청 밝은 달은 사내에게 장애물이다

성곽처럼 굳게 하고 저항하는 수억의 세포들

이래 뵈도 물을 주면 꽃이 피는
성감의 뿌리가 살아 있는 성체라고요
나무토막, 쇠붙이 따위의 무성(無性)이 아니란 말이에요.
저리 치워요. 이 불구의 혓바닥

풍선처럼 터지기 위해 팽창한
사내의 힘줄이 압박해오자
복음이자 은총이길 원했던 그녀의 독실한 육체는
소금에 절인 야채처럼 숨이 죽는다

내 입안에 상처가 없다면
아저씨의 독을 빨아들이고 싶어요

신은 어쩌자고
이웃 정원에 독초를 심어 놓고 거짓 전도하시나



길다방 송 양/이기와


길다방 송 양을 아시나요?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모를
끊어졌다 이어지고 다시 돌아나가는 시골길처럼
알다가도 모를 그녀 말이에요
누구든 따뜻한 봄바람을 주문하면
스쿠터를 타고 신속 배달해 주는,
돌멩이보다 잘 굴러다니는 그녀 있잖아요
각설탕처럼 프리마처럼 살살 애간장 녹이는
웃음 헤픈 그녀를 모르세요?
화려한 겉포장보다 내용이 궁금할 때
더러는 티켓을 받고 대여해 주기도 하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철새처럼
산간벽지 이곳저곳 지도 그리며 날아다니는
알고 보면 딱한 여자지요
보온병 보자기를 한 손에 들고
간혹 공장의 담벼락이나 면사무소 앞에
정류장 표지판처럼 우두커니 꽂혀 있는
그러다 덜컥 막차를 타고
야심한 기억 너머로 잠적해 버리는
그래서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락공판 날이 되면
어디서 밥이나 먹고 사는지 불현듯 궁금하게 만드는
꼭 어릴 적 헤어진 누이 같은
길다방 송양을 당신도 아시나요?


시인 이기와
1968년, 서대문 판자촌에서 해녀의 막내딸로 태어남
28살의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를 치러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시작 방송통신대와 중앙대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2001년 첫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출간,
2005년 여행산문집 <시가 있는 풍경>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을 출간
2007년 2시집 <그녀들 비탈에 서다 >서정시학



우리 이웃 삶의 이야기들...
시제로 끌어낸 서술은 시인의 눈으로만이 가능할 것이다
너무 깊은 곳에서 근사한 줄거리라거나
아름다운 언어만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외되고 불운한 사람들을 위해 어쩜 시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최정신)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