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바이올린 외 1편
노향림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옥탑 방 지붕은 납작하다.
그는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중절모에 반듯하게 다린 바지를 입고 내려온다.
지팡이로 좁은 철 계단을 콕콕 두드리며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내려오면 오늘도 그가
밥을 위해 출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밥 보다 술을 더 좋아한 시인이 생각난다.
지병인 간 경변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외지 납작 지붕 밑 방에서 살았던 시인
허름한 점퍼차림에 등산모를 삐딱하게 쓰고
삼양동 산동네에서 광화문 '아리스' 다방까지
걸어오는 일이 그의 일과였다.
뒷주머니엔 일용할 양식인 소주 한 병이 늘 꽂혀 있었다.
커피 대신 종이컵에 소주만 마시는 그는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은은히 흐르는 귀에 익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껴 들었다.
다방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하루 해동갑을 했다.
어느 때는 카드 한 장이 손에 쥐어지고.
손으로 만져본 그 카드엔 까칠한 모래가 반짝였다.
한 대 얻어 피운 빈 담배 곽에다 쓴 시는
곡선으로 휘어지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북이 되었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을 치듯 계단을 다 내려온 사내는
이제 지상에서 지팡이를 접고 걷는다.
*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
만 3
명량 대첩지 울둘목 수심 깊은 물속은
바닥으로 갈수록 소용돌이친다.
그 거친 물살은 겨울 숭어 떼의 아늑한 안방이다.
그곳에만 놀다가 눈에 백태가 끼고
눈멀어진 봄날엔 수 천 수 만 마리의 군단으로
몰려서 물이 얕은 쪽으로만 헤엄친다.
이따금 리더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길목을 지킨 낚시꾼에게 그만 들킨다.
잠을 안자며 다음날 새벽까지 한곳만 응시하던
뜰채 낚시꾼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불과 일 이 초의 순간의 포착,
그들이 지나는 물길만 숨죽여 지켜보다가
흰색 몸뚱어리를 보는 순간 휙 낚아채 버린다.
뜰채에 두 세 마리 씩 건져 올려지는 숭어들
이놈덜, 지요 지요 하고 항복하면 놓아 줄턴디,
이 순간 니들 헌텐 바다가 苦海여
뜰채 속에서 발버둥치는 숭어들을 보며
낚시꾼은 미안하다는 듯 한마디 뱉는다.
숭어 떼의 몸부림에 바다가 요동친다.
뜰채 낚시꾼도 바다에 낚일세라 그 뒤에서
잘 꼰 헝겊노끈으로 서로의 허리를 묶었다.
일행이 배낭에서 도마와 칼을 꺼낸 뒤
순식간에 회를 떠 초고추장 찍어 맛을 본다.
싱싱한 봄날 새벽이 토막 난 횟감처럼 희뿌옇게
공간을 넓히고 섰다.
- <현대시학> 2010.6월호
* 노향림 : 1942년 전남 해남 출생. 197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K읍 기행> <눈이 오지 않는 나라> <후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등이 있음. 부군은 홍신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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