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 이기와
그의 속은 공갈처럼 비어 있었다
스프링도 스펀지도 안락을 제공할 그 어떤
소재도 내장돼 있지 않았다
바로크 문양의 유혹으로 겉치장을 했을 뿐
속을 들춰보면 널빤지 하나뿐인 부실한 골격이
내내 그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잘 깎인 무르팍에 앉아봐도
그의 가슴에 내 가슴을 합체해봐도
밤마다 몇 시간씩 부둥켜안고 서로를 탐색해봐도
느껴지는 건 킹 사이즈의 허탈함뿐
내 생의 삼분의 일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내 고절한 알몸을 통째로 상납하고도
단 한 번도 푹신한 꿈을 대접받지 못했다
날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졸음의 세계가 갈망한 건
서로의 시장기를 보충시킬 육체였을 뿐
탄력 있는 정신도 영구적 파트너도 아닌, 오직
깨어날 수 없게 서로를 마취하는 몽상의 침구였을 뿐
그의 관절 하나가 삐걱이기 시작한 것도
그의 몸 중앙이 맥없이 꺼져들고
내 욕망의 척추가 휘어져 고통이 시작된 것도
수면을 위한 단순한 용도가 아닌
그 외에 탁월한 용도로 서로를 탐미하려 했던 것
그렇게 오용하지 않으면 순순히 잠들 수 없는
워낙 속 재질이 부실한 싸구려 마네킹들이었던 것
*********************************************
이기와 시인의 인생살이는 37세라는 나이에 비해 고통과
질곡으로 점철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서울 서대문구 굴레방 다리 밑 거적때기 움막에서 해녀
출신인 한 여인의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는 식모살이 가고 오빠는 양자로 갔다. 어머니는
새 아버지를 세번 얻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죽었다.
“나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어머니가 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상복을 입고 상 치르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기와 시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리어카에 텐트를 싣고 다닌 떠돌이 삶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봉제인형·가발공장 등에서 일했고 식모살이와
중국집 서빙 등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엔 포장마차를
거쳐 술 파는 카페와 1급 유흥업소 마담직도 경험했다.
카페에서 책 보며 시를 쓰기 시작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24세에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포장마차에서 꽁치 굽고 곰장어 무치면서 새벽 4시까지
시를 썼다”는 그는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는데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못 배운 한을 풀었다.
2001년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냈는데 “고통스런
삶의 기억을 치열한 언어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한 이기와 시인이 농협에서 집을
담보로 800만원을 빌려 150만원짜리 카메라 텐디(10-D)
캐논을 사들고 1년 6개월동안 詩를 따라 전국을 다녔다.
신경림 시인의 ‘산동네에 오는 눈’을 따라 울며 헤맨
서울 홍은동 산 1번지, 그리고 황청포구, 내장산, 마곡사,
제주, 소록도, 구절리 등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터득한 또 다른 삶을 ‘詩가 있는 풍경’
이라는 제목으로 붙여 산문집을 냈다.
물론 사진을 직접 찍었다.
그의 산문엔 익살과 풍자가 넘치는가 하면 깊은 사유(思惟)
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잠언(箴言)이 담겨 있다.
구룡사 등산로를 맨발로 사풋사풋 걷는 여자 등산객으로
부터 그는 ‘아프게 걷지 말고 춤추듯 생의 길을 가라’는
법을 배웠다.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 박수를 받기보다는
자연과 친해져 그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전국 곳곳을 돌아 다니며 새삼 깨닫고 한 말이다.
과거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으며 지금 김포의
한 농촌에서 살고 있다.
*
이기와의 시는 늘 범상치 않아 주목하여 읽어왔다.
시상 포착과 발상부터 남다르고, 짜임새 있는 구조와 재치
있는 언어 구사에다, 아프고 저리고 쓰라린 내용으로
인해 감동을 받았다.
시인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비탈에서도 바로 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 음지식물처럼 그늘진 곳에 앉아
목을 갈아 우는 산비둘기들처럼 어떤 방법도 동정도
도움이 안되는 집창촌의 여자들, 그녀들의 화대와 영업
일지, 사력을 다했던 자살자들, 맹인 안마사들 등이다.
시인의 시선은 위악(僞惡)도 위선(僞善)도 아니다.
화류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들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지만, 남에게 보이기가 여간 부끄러운게 아니라
면서, 자신의 마음같이 읽히기를 바라는 시인은 전사(戰士)
이상이다. 최선을 다하는 씩씩함과 시에 목숨 건 비장함에
눈꼬리가 젖는다.
/ 유안진 시인
이기와 시인은 갯벌같이 질퍽한 눈물을 당당하게 품고
있다. 그 눈물 속에는 “해충이나 병원균처럼 박멸의
대상이 된 목숨/암흑의 벙커나 다락방으로 숨어들어
꽃을”(「그녀들 비탈에 서다」) 파는 ‘영자’같이 비탈에
선 여성들의 한숨과 원망과 절망이 들어 있다.
시인은 학벌도 자격증도 없는 그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피고름 같은 고통을 물질 권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
알리고 있다. 따라서 그녀들이 물의 철근을 씹어 먹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지폐 한 장을
위해 온몸으로 웃음의 파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죽기 전에 한번 살아봐야 겠다고 고봉밥을 먹는 그녀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 맹문재 시인
'책·여행·사랑·자유 > 책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햇빛 속에 호랑이 / 최정례 (0) | 2013.05.10 |
---|---|
[스크랩] 우리가 알아야 할 세가지 (0) | 2013.03.29 |
[스크랩] 터진다/ 김현숙 (0) | 2013.03.14 |
[스크랩] 마지막 섹스의 추억 외 / 최영미 (0) | 2013.02.28 |
[스크랩] 정말 꿈을 찾으려면..... / 금해스님 (0) | 2013.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