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만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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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10점
박흥용 지음/바다그림판

'그래픽 노블' 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태동되었을 법한 이 단어는 단순히 '코믹북' 이라고 불리던 당시의 만화가 한단계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단어 그대로 미술과 문학의 조화로운 화합. 그것이 바로 그래픽 노블인 것이다.

알란 무어, 프랭크 밀러 등이 시도한 '만화' 는 말 그대로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었다.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어내며 사랑받았고, 그것은 단지 종이위의 그림이었을 캐릭터가 진정한 생명을 얻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림과 글들은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함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과 흡사한 만화속의 세상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의 예술적 완성도를 획득했다. 소설에 버금갈만큼 완성도 있는 아름다운 문장과, 그에 어울리는 개성적인 그림. 이 세상을 깊이있고 통찰력있게 그려내는 만화속의 세상.

그것들이 만나 '그래픽 노블' 을 탄생시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박흥용 작가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은 온전히 한국형 그래픽 노블로 분류할 수 있을것이다.

이미 유럽시장에서 그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개 견犬 자에 아들 자子. 속칭 개새끼라고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조선시대 청년의 성장 스토리이다.

본명은 '견주' 이지만, 간신히 진사시험에 합격한 촌부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기생에게서 낳았다 하여 스스로를 개새끼라고 부르는 견주는 세상에 대한 뜻을 품고 있지만,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분노 또한 가슴에 담고 망나니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한량이었다. 그랬던 그가 우연히 기연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은 급선회 하게 된다.

그가 우연히 만난 기연은 바로, 장님이자 조선 최고의 칼잡이인 황정학과의 만남이었다.

황정학을 통해 검술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견자는 조선 팔도를 누비며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임진왜란을 겪고,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잃기도 하며 차츰차츰 생에 대한 깨우침을 얻어간다.

 

박흥용작가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작가 중 한명이다.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국내외 유수의 만화상들을 휩쓸기도 한다. 한때 절판되기도 했었지만, 새로 이렇게 복간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참 다행스럽기도 하고, 여전히 바닥을 보이고 있는 한국 만화시장의 생김생김이 안타깝기도 하다.

 

작가주의 작가의 작품이라지만, 만화라는 장르는 언제나 대중성을 담보로 한다.

전 세계 공통 만화의 미덕인 '재미' 또한 출중하다는 뜻이다.

 

박흥용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뛰어난 부분은 유려하고 문학적인 대사와 그에 어울리는 탁월한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묘사에 있다.

특히 1권 초반부에 소경 칼잡이인 황정학이 자객과 대결을 하는 장면이나, 기생집에서 처음 여인을 품는 부분의 묘사는 뛰어난 그의 감성적인 묘사를 볼 수 있다.

한올 한올 세심하게 그려낸 보리밭의 정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황정학과 자객의 검술 대결이 자연스러운 흐름과 호흡으로 펼쳐진다.

영화나 미술은 잡아낼 수 없는 컷과 컷 사이의 흐름과 구도와 구도 사이의 긴장감이 검과 검,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과 함께 절묘한 '만화' 를 만들어낸다.

견자가 첫 여인을 품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거대한 기와집 지붕의 기와가 하나, 둘 씩 떨어져 내리더니, 이내 기왓장들이 일순간에 우루루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져 내리던 기왓장 하나가 돌연 하늘로 솟아 오르더니, 그 기왓장 속에 견자와 여인이 누워있다.

 

스승 황정학을 잃고 삼년상을 치루던 도중,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삶의 자유를 깨닫는 순간에 대한 묘사 역시 문학적이고 만화적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들과 대결하는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뎃셍력과  정과 동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감각적인 연출도 아주 인상적이다.

 

한편의 시같은 나레이션들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화두는 '길' 이다.

 

어떤 비오는 날. 견자는 책을 한 장 한 장 찢어 바닥에 놓고 밟고 간다.

지나가던 어른이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라고 묻자, 어린 견자는

"우리 훈장님이 책 속에 길이 있댔어요. 책으로 길을 내는 중인데 뭐가 어때서요?" 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견자에게 책 속에 있는 길은 죽은 길이다.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견자에게 책속에 있는 길은 쓸모가 없다.

하지만, 죽은 길이라도, 책속의 길은 견자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준다.

 

책장으로 길을 내던 견자는, 어느새 기왓장을 하나씩 밟고 가고 있다.

자신에게 첫 여인이었던 기생과 정을 나눌때 등장했던 바로 그 기왓장이다.

여인으로서 남자의 길을 알려주었으니, 그 길 또한 견자에게 어떠한 방향을 일러준 것이리라.

 

그리고, 그 기왓장 길은 이내 '방짜(놋쇠그릇)' 로 변한다.

견자가 만난 인물들 중 그의 초기 인성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준 노비출신의 방짜쟁이는 견자에게 말한다.

 

"봐라, 이 노비새끼 책으로 못 낸 길 방짜로 냈다. 그래. 네 길은 무엇으로 낸다니?"

 

 

네 길은 무엇으로 낸다니??

 

일단 구름을 벗어난 달을 봐야 한다.

나의 한계이자 자유를 만나야, 알 수 있을터.

 

 

 

 

 

 

많은 공부와 자료를 수집하여 정확한 배경을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박흥용 작가의 장인정신.

 

 

 

 

 

 

 

 

"불길이라구요.

길을 불로 내야 한다구요.

알아요.

알아요.

맹렬한 불꽃이

차마 지옥길 같아서

제가 동행으로 나서는 걸

말리시는 것."

 

견자의 진정한 의미로서의 첫 사랑.

버려야 했던, 잃어야 했던 첫 사랑.

 

 

 

 

 

 

 

"오늘따라 달빛이 차가워 보이네요."

"네 마음이 차가운게 아니고?"

 

http://blog.daum.net/fireflag2010-01-02T03:10:210.31010
출처 : 熱血의 만화세상
글쓴이 : 熱血明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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