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식혜
안도현
경북 북부지방 여자들은 음력 정월이면 가가호호 식혜를 만드는데, 찹쌀을 고들고들하게 쪄서 엿기름물에 담고 생강즙과 고춧가루 물로 맛을 내 삭힌 이 맵고 달고 붉은 음식을 특별히 안동식혜라고 부른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 알도 고명처럼 살짝 뜨는데, 생전 이 음식을 처음 받아본 타지 사람들은 고춧가루에서
우러난 불그죽죽한, 그 뭐라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식혜의 빛깔 앞에서 그만 어이없어 '아니, 이 집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건가?'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뿐이랴, 금방이라도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은, 입 안으로 들어가면 잇몸을 순식간에 화끈 찌르고 말 것 같은 살얼음이 사발 위에 둥둥 떠 있으니 도저히 선뜻 입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동에 사는 굴뚝새들은 잠 아니 오는 겨울밤에 봉창을 부리로 두드리며 "아지매요, 올결에도 식혜했니껴?" 하고 묻고, 이런 밤 마당에는 목마른 항아리가 검은 머리결이 아름다운 눈발을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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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은 점점 더 깊어갑니다.
가로등이 아니었더라면 이 겨울밤에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밤은 길고 시간은 많아서 칸트의 책을 샀어요.
전 칸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다만 그의 책은 무척 어려울 것 같아서 읽다보면 이 겨울밤이 금방 지나갈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산 책은 모두 네 권이에요.
<순수이성비판> 같은 것들. 읽어보니 이 겨울을 다 바쳐도 겨우 읽을까 말까.
2009년 겨울을 모두 바쳐도 말이에요.
그래도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나이 57세를 넘긴 1781년 5월 말경에 <순수이성비판> 제1판이 리가의 하르트크노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 아지매요, 올결에도 식혜했니껴?
이 구절을 읽는데 왜 그런 질문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김연수의 時로 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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