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태그의 글 목록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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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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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중에 유일하게 음반저작권협회 탈퇴하고


음저협이랑 소송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수수료 떼고 저작권료 받는데
서태지는 수수료도 없음
저작권료 100프로 혼자 다 먹음

+ 성시경 너에게 리메이크 + 양현석&원미경 곡 준거 + 넬 앨범 프로듀싱에 대한 저작권료 포함

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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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세살땐꽃미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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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늘을 향한 자유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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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자각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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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SeHear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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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가 스물다섯 살 나이로 요절한 지 꼭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현식이 간경화로 사망했다.
  

그 후로 꼭 20년이 흐른 1일 신승훈(42)은 20주년 기념음반을 냈다.
2장짜리 음반엔 그가 새로 편곡해 녹음한 13곡과 후배들이 부른 7곡이 담겼다.
지난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신승훈이 말했다.
"20년간 연습해 온 노래들을 이제 진짜 녹음한 것 같다.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신승훈은 "가장 신승훈다운 노래" 13곡을 골라 새로 녹음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빠지고 어쿠스틱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 미니멀한 편곡을 택했다.

한때 근육통을 앓는 듯했던 그의 창법이 훨씬 나긋나긋하고 편안해졌다.
그는 "창법이 단순해지고 반주가 미니멀한 건 '담백의 미학'을 담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20년간 부른 노래를 한 달 새 다시 부르니까 그간 몰랐던 제 노래의 변화를 알겠더라고요."
  

클래지콰이, 정엽, 슈프림팀 등이 부른 7곡의 노래는 후배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신승훈은 "후배들이 마음껏 재해석한 내 노래들을 들어보니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유재하 기일을 데뷔일로 고집할 때만 해도 신승훈은 유재하의 팬에 불과했다.
대전 카페촌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통하던 그는 가수가 되려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가리봉동과 방배동 카페를 맴돌다가 1년 만에

 보따리를 쌌다.
  

"남의 노래만 부르다가 지겨워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7곡쯤 쓰니까 앨범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서울에 와야 했어요."
  

잠실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조카들과 한 방을 쓰며 반년을 백수로 지냈다.
그때 막 유행하던 비디오게임 '테트리스'를 온종일 했다고 한다.
가리봉동 생맥줏집 무대에 서게 됐지만, 그 역시 기타를 쳐주거나 코러스를 넣는 수준이었다. 6개월간 받은 돈은 20만원이었다.
결국 그는 양수경의 노래 '사랑은 창 밖의 빗물 같아요'에 코러스로 참여한 뒤 대전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여섯 번 퇴짜를 맞고 깨달았죠. 아, 나는 대전의 신승훈이었구나."
서울에서의 1년은 그에게 혹독한 좌절을 안겨줬다.
  

가슴에 단단한 차돌을 박아넣는 계기이기도 했다.
"차비가 없어서 기타 2대를 들고 종로3가에서 잠실까지 걸어간 적도 있어요.
그때 오기가 나면서 '이젠 어떤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대전에 돌아간 신승훈은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기획사들에 보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가 '물건'임을 처음 알아챈 사람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창환이었다.
그리고 신승훈은 작곡가 하광훈 등의 곡을 제치고 자신의 노래로 데뷔했다.
  

음반 1700만장을 팔아치운 이 대어(大魚)의 치어(稚魚) 시절을 몰라본 사람 중에는 문책을 받아 회사에서 물러난 사람도 있었다.
한 유명 음반제작자는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고 듣지 않았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신승훈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한국 발라드 DNA의 형질을 변경한 노래로 평가된다.
무명 가수의 자작곡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데뷔 직후인 1992년 서태지라는 엄청난 변수와 맞닥뜨렸지만, 신승훈은 발라드 가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저를 '발라드의 황제'라고 하는데, 저 말고 발라드 부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 가운데 유독 처절한 발라드를 다들 좋아하셨죠."
그는 "록 마니아, 힙합 마니아처럼 어쩌면 내가 '발라드 마니아'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신승훈은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제 TV는 신인들의 장"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라이브 무대로 팬들을 만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제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올 초 KBS 열린음악회는 처음으로 단독 무대를 주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일본에 진출했다. 초기에 그의 CD는 음반매장 3층 '월드뮤직' 코너에 우즈베키스탄 노래들 옆에 있었다.
4년이 흐른 재작년 그는 2만석이 넘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일본 전국 투어를 했다.
"일본에서 저는 지금 '시테루(してる·알아요)'에서 '스키데스(すきてす·좋아해요)'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전 노래를 일본에서 신곡으로 발표하는 기쁨도 큽니다."
  

신승훈은 CF를 일절 찍지 않는다.

"슬픈 발라드 부르는 가수가 음식 들고 사 먹으라고 선전하는 게 안 좋아 보여서" 찍지 않은 게 지금까지 계속됐다.
그는 "가수는 보고 싶을 때 봐야 하는데 CF에서 계속 보이면 괴로울 것 같다"고 했다.
  

음악 팬들을 한 번도 괴롭히지 않은 이 뮤지션의 20주년 투어가 오는 27일 경기도 고양에서 시작된다.
그는 내년 3월까지 전국을 돈 뒤, 미국과 일본에서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101102)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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