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 말이지만 나는 어려서 면서기가 되고 싶었다 어떤 때는 벌레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시인은 되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아들아 제발 시인에 대하여 신경 좀 써다오
빤쓰 속으로 보이는 아들의 사타구니가 한 사발은 되겠다 아들의 것은 다 내가 힘들여 만들었는데 아직 새것이다 근사하다 내가 저 아름다운 청년을 만들다니…….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전에 어른들이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을 때 나는 슬퍼했다 지금도 외로울 때면 그 생각을 한다 인터넷을 믿는 아들은 그런 슬픔을 모르겠지만
아직 세상에는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가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인데 다행이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천지만물을 거저 물려주었으니 고맙게 여기고 잘 쓸 것이다
세월을 건너가느라 은어들도 엄벙덤벙 튄다 저것들은 물이 집이다 요즘도 누군가 다리 밑에다 애들을 버리긴 버리는 모양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큰 별도 누군가 내다 버린 것이고 긴 여름도 잠깐이다
한 잔 받아라
나는 날린다가 좋다/이상국
여자가 혼자 산다고 무턱대고 보내는 문자메시지 때문에 아내에게 혼이 났다 디지털 우환이다
시집은 내고 새 차는 뽑고 문자는 날린다 뿐인가 카드는 긁고 턱은 쏘고 색은 쓴다고 한다 쓴다는 건 소비한다는 뜻일까 이런 것들은 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환인가
그중 나는 날린다가 제일 좋다
노래하며 춤추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깔깔대며 찔찔 짜며 지리산 골짜기 되새떼처럼 하늘을 휩쓸고 다니는 저 날랜 자음과 모음 속에
나도 같이 날고 있다
참 쓸쓸한 봄 날 /이상국
토요일 오후 진전사 갔습니다. 오랜 폐사지에 절을 지었더니 신라에서 부처님이 오셨대서 일부러 갔습니다. 늘어지게 티브이를 보거나 먼 집안 아이 청첩도 마다하고 아카시아꽃 분수 같은 둔전리 깊어가는 물소리 따라 적광보전에 참배하고 적잖이 시주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문터 막국수 집 모두부 진간장에 소주 한 잔 하고 오다가 음주단속에 걸렸습니다.
참 쓸쓸한 봄 날입니다.
똥이 끓도록 앓다 일어나서 /이상국
어릴 적 내가 고금에 붙들려 열에 시달리며 밤을 팬 아침 어머니는 쟈가 밤새 똥이 끓도록 앓았는데 놔두면 큰일 나겠다고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이르는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가 나를 위해주는 게 좋아서 아픈 것도 제쳐놓고 이불 속에서 소처럼 웃었다.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었고 시인이란 밥만 먹으면 오직 말로 세상을 가지고 놀지 못해 벼라별 말을 다 만드는 족속들인데 얼마 전 심한 감기몸살이 와서 그야말로 죽도록 앓다가 일어나 생각해보니까 인간이 그렇게 아픈 것에 대하여 ‘똥이 끓도록 앓다’라는 표현 이상의 말은 세상에 없는 것 같았다.
그 뭔가가 날 솥처럼 걸어놓고 불을 때서 속에 든 똥을 끓이다니……. 우! 냄새, 어머니가 글을 몰라 어디 적어놓은 건 없고 말은 바람처럼 날아가다 더러 고향 나뭇가지에 걸려 아직 못 떠난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분명 하늘이 낸 시인이라는 생각에 다시 소처럼 웃었다.
버스 타고 가다가 들은 이야기/이상국
그래 야양 무슨 아파트 산다는 그 앉은뱅이 침쟁이한데 가봤어 나도 대가리에다 침을 쓱쓱 문지르며 바른쪽 무릎을 찌르고 왼 다리께로 허리를 타구 휙 넘어가는데 어휴 찌린내가 말도 못해 지 말로 그러는데 자기가 토성불알이래서 오줌 간수를 못한다는 거야 그 자가 침을 잘못 놔설랑 대밭집 메느리 허파에 바람이 빠져 다 죽은 걸 속초 도립병원 의사가 바람을 넣었데 사람이 아프면 그렇게 속게 매련이여 너븐들 성근인 지난 봄 뗏집으로 갔다지 평생 에편네 때문에 고생 했지 암만 남자는 그저 여잘 잘 만나야 해
* 이상국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동해별곡』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뿔을 적시며> 등.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민족예술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