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상국 < 아들과 함께 보낸 여름 한 철 > 외 4편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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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아들과 함께 보낸 여름 한 철 > 외 4편

아들과 함께 보낸 여름 한 철/이상국



아들과 천렵을 한다 다리 밑에서 웃통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소주를 마시며

나도 반은 청년 같았다

이제서 말이지만 나는 어려서 면서기가 되고 싶었다
어떤 때는 벌레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시인은 되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아들아 제발 시인에 대하여 신경 좀 써다오

빤쓰 속으로 보이는 아들의 사타구니가 한 사발은 되겠다
아들의 것은 다 내가 힘들여 만들었는데
아직 새것이다
근사하다 내가 저 아름다운 청년을 만들다니…….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전에
어른들이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을 때
나는 슬퍼했다
지금도 외로울 때면 그 생각을 한다
인터넷을 믿는 아들은 그런 슬픔을 모르겠지만

아직 세상에는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가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인데
다행이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천지만물을 거저 물려주었으니
고맙게 여기고 잘 쓸 것이다

세월을 건너가느라 은어들도 엄벙덤벙 튄다
저것들은 물이 집이다
요즘도 누군가 다리 밑에다 애들을 버리긴 버리는 모양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큰 별도 누군가 내다 버린 것이고
긴 여름도 잠깐이다

한 잔 받아라








나는 날린다가 좋다/이상국


여자가 혼자 산다고
무턱대고 보내는 문자메시지 때문에
아내에게 혼이 났다
디지털 우환이다

시집은 내고
새 차는 뽑고
문자는 날린다
뿐인가
카드는 긁고
턱은 쏘고
색은 쓴다고 한다
쓴다는 건 소비한다는 뜻일까
이런 것들은 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환인가

그중 나는 날린다가 제일 좋다

노래하며 춤추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깔깔대며 찔찔 짜며
지리산 골짜기 되새떼처럼
하늘을 휩쓸고 다니는 저 날랜 자음과 모음 속에

나도 같이 날고 있다






참 쓸쓸한 봄 날 /이상국

토요일 오후 진전사 갔습니다.
오랜 폐사지에 절을 지었더니
신라에서 부처님이 오셨대서 일부러 갔습니다.
늘어지게 티브이를 보거나
먼 집안 아이 청첩도 마다하고
아카시아꽃 분수 같은 둔전리
깊어가는 물소리 따라
적광보전에 참배하고
적잖이 시주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문터 막국수 집 모두부 진간장에
소주 한 잔 하고 오다가
음주단속에 걸렸습니다.

참 쓸쓸한 봄 날입니다.



똥이 끓도록 앓다 일어나서 /이상국

어릴 적 내가 고금에 붙들려 열에 시달리며 밤을 팬 아침 어머니는 쟈가 밤새 똥이 끓도록 앓았는데 놔두면 큰일 나겠다고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이르는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가 나를 위해주는 게 좋아서 아픈 것도 제쳐놓고 이불 속에서 소처럼 웃었다.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었고 시인이란 밥만 먹으면 오직 말로 세상을 가지고 놀지 못해 벼라별 말을 다 만드는 족속들인데 얼마 전 심한 감기몸살이 와서 그야말로 죽도록 앓다가 일어나 생각해보니까 인간이 그렇게 아픈 것에 대하여 ‘똥이 끓도록 앓다’라는 표현 이상의 말은 세상에 없는 것 같았다.

그 뭔가가 날 솥처럼 걸어놓고 불을 때서 속에 든 똥을 끓이다니……. 우! 냄새, 어머니가 글을 몰라 어디 적어놓은 건 없고 말은 바람처럼 날아가다 더러 고향 나뭇가지에 걸려 아직 못 떠난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분명 하늘이 낸 시인이라는 생각에 다시 소처럼 웃었다.






버스 타고 가다가 들은 이야기/이상국


그래 야양 무슨 아파트 산다는
그 앉은뱅이 침쟁이한데
가봤어 나도
대가리에다 침을 쓱쓱 문지르며
바른쪽 무릎을 찌르고 왼 다리께로
허리를 타구 휙 넘어가는데
어휴 찌린내가 말도 못해
지 말로 그러는데 자기가 토성불알이래서
오줌 간수를 못한다는 거야
그 자가 침을 잘못 놔설랑 대밭집 메느리
허파에 바람이 빠져 다 죽은 걸
속초 도립병원 의사가 바람을 넣었데
사람이 아프면 그렇게 속게 매련이여
너븐들 성근인 지난 봄 뗏집으로 갔다지
평생 에편네 때문에 고생 했지
암만 남자는 그저 여잘 잘 만나야 해



* 이상국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동해별곡』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뿔을 적시며> 등.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민족예술상 등 수상.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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