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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애인과 라면 끓이기/김륭
퍼지면 맛이 없다
날계란 같은 설움도 쫄깃쫄깃해야 제 맛이 난다
당신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거야 질質보다 양量을 따지고 살아온 한평생을 부글부글
끓어 넘친 눈물 탓, 나는 잽싸게
밑이 새까맣게 탄 양은냄비 뚜껑을 열고
그녀를 집어넣는다
펄펄 끓는 물에 4-5분 더
라면공장 조리법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목구멍을 조여 놓기 위한
고도의 상술 꼴까닥, 바닥난 성욕까지 우려낼 가능성이 높고
불과 물이 함께 허리 비틀며 뒤엉키는 시간은
십중팔구 불륜이다
면발보다 굵은 그녀의 주름살이 거품을 무는 순간
고물냉장고 문을 연다
훅- 너무 뜨거우면 숨통을 놓치는 법!
찬밥 한 덩이 먼저 마는
칠순 애인의 쭈그렁 이마 위로 식은땀을 내딛는
바로 그때다
강원도 어느 산간지방을 달음박질해온
초록빛 발소리 용두질로 묵힌 홀아비 총각김치 한 조각
덥석, 베어 물고 휘휘 젖는다
울컥
목덜미 근처로 팔다리 감아오는 그녀
식으면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건 라면이 아니라 고래심줄보다 질긴 세월이라고
라면 봉지 속에서 혓바닥이 뛴다
펄쩍펄쩍, 칠순 홀어머니
덩달아 뛴다
출처 : 오늘의 좋은시
글쓴이 : 카두세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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