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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32)OB-삼성 집단 난투극 서막, 제1과 제1장..조종규와 김일융의 빈볼 충돌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30823102304265

출처 :  [미디어다음] 스포츠 
글쓴이 : OSEN 원글보기
메모 : 승부세계의 지도자나 선수들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게 마련이다.


여느 세상살이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좋은 관계가 어느 순간 악연으로 꼬이는 경우가 있다.


악연은 현장에서 반감으로 작용, 승부처에서 날선 응징과 되치기로 드러나는 수가 없지 않다.


1984년에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스는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영덕, 김성근 두 감독이


첫 지휘봉을 잡고 시즌 내내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아 유난히 마찰이 잦았던 해였다.


김영덕 감독은 당시 한국 프로야구 감독들 가운데 최고의 지략가로 꼽혔다.


일본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 출신인 김영덕 감독은 탁월한 이론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이끌었고,


코치들이나 선수들로부터 '아버지'라는 별칭을 들었다.


김성근 감독 역시 초대 김영덕 감독의 뒤를 이어 OB 구단 지휘봉을 잡고 프로야구 판 지도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해였다.


삼성은 1984시즌 재일교포 거물투수 김일융을 스카우트, 기존의 김시진, 황규봉, 권영호와 더불어


막강한 마운드를 구축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됐다. 예상대로 삼성은 전기리그에서 32승 18패로 1위를 차지했다.


OB 는 삼성의 유력한 견제세력으로 팽팽한 경쟁을 벌였다.


신인 김진욱, 윤석환과 재일교포 최일언, 빠른 공을 던지는 계형철과 기교파 장호연 등이 마운드의 주축이었다.


OB는 4월17일부터 28일까지 9연승을 달리며 삼성을 뒤로 밀어내고 1위를 질주했다.


1982년 초대 한국시리즈(당시 명칭은 코리안시리즈) 맞상대였던 두 팀은 김영덕, 김성근 두 감독의


세밀한 팀 운영과 맞물려 늘 상대하기가 서로 거북한 관계였다.


한 달 남짓 1, 2위 평행선을 달렸던 OB와 삼성은 5월 12일과 14일 삼성이 대구 2연전에서 김시진, 김일융


쌍두마차를 투입, 1-0, 2-0완봉승을 거두며 OB의 뒷덜미 낚아채고 선두로 나섰다.


그 에 앞선 5월 1일부터 4일까지 사흘 동안 삼성과 OB는 대전구장에서 전기리그 우승 향방을 가르는


전초전격인 3연전을 치렀다.


3연전 첫날인 5월 1일에 삼성은 6-2로 이겨 시즌 상대전적 2승2패로 균형을 맞춘데 이어 2일에는 11-4로 대승,


3승2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 다음날인 3일에는 OB 가 6-0으로 영봉승, '장군 멍군'을 부르긴 했지만.


1984년 5월 2일, OB는 홈구장인 대전에서 삼성을 맞아 전기리그 5차전을 치렀다.


경 기는 초반 OB 선발 계형철이 난조, 1회 초에만 삼성 이만수에게 선제 3점홈런을 얻어맞는 등


타자 일순을 당하며 10타자를 상대해 3피안타 4사사구로 4실점, 대세를 그르쳤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6번, 3루수로 출장했던 김근석과 9번, 1루수 김한근이 계형철의 공을 몸에 맞자 일촉즉발의 험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계형철은 2회에도 볼넷 한 개와 2안타를 내주고 2실점, 바통을 최일언에게 넘겼다.


최일언 마저 3회에 3실점, 삼성은 3회까지 9-2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승 부가 11-4로 삼성으로 기운 8회 말 2사 후 그 경기에서 완투했던 김일융이 김경문, 조범현에 이어


OB 포수 마스크를 썼던 조종규를 맞아 초구를 왼쪽무릎에 맞혔다.


화를 참지 못한 조종규가 마운드로 달려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양 팀 덕 아웃에서 선수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그라운드에서 서로 뒤엉켜 집단 난투장이 펼쳐졌다.


그 와중에 삼성 김근석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부상을 입고 동료들에게 들려나가기도 했다.


밤 9시 49분께부터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은 10시 5분에야 진정됐다.


그 소동으로 경기가 16분간이나 중단됐다.


사태는 바로 수습됐지만, 조종규가 공을 얻어맞자 OB 벤치가 출장자 명단에서 빠져 있던


김명구를 대주자로 출전시키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해서 경기가 더 지연됐던 것이다.


이 경기는 판정시비와 난투극으로 모두 4차례나 경기가 중단됐고,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 경기가 밤 10시 19분에야 끝났다.


집 단 난투극의 직접적인 계기는 있었다.


그날 5타석 4안타 1볼넷 3타점의 맹위를 떨쳤던 이만수(현 SK 와비번스 감독)가 8회 초 마지막 5번째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당할 때


공을 놓쳐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태로 됐을 때 조종규가 공을 집어 이만수의 어깨를 좀 세게 내려친 것이다.


조종규는 다음 자신의 타석에서 보복이 들어올 것으로 예감했다.


다음은 조종규(현 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위원장)의 당시 상황에 대한 회고담이다.

" 난투극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만수가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이 됐을 때 내가 공을 잡고


어깨 쪽인가에 태그를 좀 강하게 했다. 이만수가 '왜 세게 하느냐'며 얼굴이 벌개졌고 삼성 쪽에서도 어필이 들어왔다.


그 순간 김일융이 보복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타석에서 초구에 얻어맞자 화가 나서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맞는 순간, 빈볼임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일부러 때리는구나 하고 생각해 그냥 쫓아올라간 것이다.


그 다음엔 선수들이 달려 나간 것이다. 그 것 뿐, 나는 몸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삼성과 OB가 라이벌 관계이다 보니 문제가 많이 생겼다."


KBO는 그 이튿날 상벌위원회를 열고 조종규에게 '몸에 맞는 공에 흥분하여 마운드 쪽으로 가 사건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경고',


김영덕, 김성근 감독은 나란히 '선수통제 불충분으로 구장질서를 문란케 했음'을 들어 역시 '경고'하는 선에서 징계를 마무리했다.


그 무렵 OB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한 야구인은 "그해 삼성과 유난히 많이 부딪혔던 기억이 난다.


OB가주로 삼성한테 많이 당했다. 김영덕 감독이 약을 올리는 경기를 자주 해 감정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보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 사진 > 일간스포츠 제공
< 1984년 5월 2일 경기 기록지=KBO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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