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Vertigo비행감각/ 최문자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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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tigo비행감각/ 최문자

 

 

계기판보다 단 한 번의 느낌을 믿었다가 바다에 빠져죽은 조종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착시 현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한 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수평 비행으로 알았다가 뒤집히는 비행기처럼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였다 궤를 벗어나 한 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였다 까무룩하게 거꾸로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과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이었다.

 

- 시집『사과 사이사이 새』(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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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티고’는 착시로 인한 대표적인 비행착각을 말하며, 의학용어로는 ‘현훈(眩暈)’이라고 한다. 바다 위를 비행할 때 자신과 비행기의 자세가 뒤집어진지도 모르고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고 거꾸로 날아가는 현상이다. 해상비행은 육상비행과는 달리 항공기의 위치를 참고할 수 있는 지형지물의 참조점이 없는데다, 야간 비행 땐 밤하늘의 별빛과 해상의 선박 불빛을 혼동하는 비행착각이 일어나기 쉽다. 여객기의 경우는 저속비행에 계기 의존도가 높고 부조종사가 있어 착시현상을 쉽게 회복하지만, 전투기는 혼자 고속시계비행을 하므로 종종 사고가 발생한다. 높은 중력 상태에서 수평감각을 잃은 조종사가 바다를 향해 뛰어들기도 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비행 상태를 수평비행으로 착각하여 중력가속도에 따라 떨어지기도 한다.

 

 전투기 조종사라면 누구나 다 비행착각을 겪는다. 대부분 정확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만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할 경우도 있다. 전투기 조종이란 처음부터 본질적인 위험을 수반하고 있고, 조종간을 잡는 그 순간부터 목숨 담보의 모드로 전환되는 것이다. 만약 ‘버티고’로 인해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일단은 과실이 아닌 인체 감각기관의 한계 탓으로 봐야한다. 계기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감각만을 믿고 의지해 사고를 유발하는 자발적 버티고의 경우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고를 무조건 일방적인 과실로 몰아가는 것은 순직한 조종사에 대한 대단한 무례라 하겠다.

 

 지상에서의 사랑도 ‘버티고’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라니 어떤 상황을 의미할까. ‘궤를 벗어나 한 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과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 ...이거 아무래도 자발적 '버티고'의 혐의가 짙다. 이미 다 예상하고 인지한 사실인데, 불가피한 상황에 의한 ‘버티고’라 하기엔 무리일 것 같다. 이거야말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니고 무언가. 하긴 현혹과 착시 현상은 사랑의 본질적인 위험이기도 하다. 어쩌랴, 그 조종간을 잡는 순간 계기판과 매뉴얼 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믿는 게 참사가 날지언정 사랑의 속성인 것을. 골프(G) 오스카(O), 골프(G) 오스카(O).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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