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태그의 글 목록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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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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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세계적인 대스타 성룡과
등교 거부를 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히키코모리, 오타쿠인 일본 여자의 이야기다

 

 

 

나카가와 쇼코 (1985년 5월 5일 생)
 
그녀는 일본의 아이돌인데 그냥 아이돌은 아니고 오타쿠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니면서 방송활동을 하면서 성우, 만화가, 가수 등등 스펙트럼이 넓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유명해진 계기가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그린 일러스트나 만화를 올리면서
코스프레 사진도 올리고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특수촬영물의 준말 가면라이더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됨)에
관련된 심도 깊은 게시물을 올려놔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하루 방문자 수만 80만히트를 기록할 정도로
블로그가 알려짐에 따라 방송계에 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냥 아이돌이었으면
그다지 빛을 못봤을테지만 쇼코를 지금처럼 유명해지게 만든 건 오타쿠 문화 버프를 받아서라고 생각한다.
 
유명해 지기 위해 일부러 오타쿠 코스프레를 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는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쇼코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쇼코의 아버지는 나카가와 카츠히코, 영화배우겸 가수였다.
 
아버지 카츠히코 또한 상당한 오타쿠라서 아직 어렸던 딸에게 이것저것 애니메이션,
전대물(파워레인져 같은 거)의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만화도 보여주며 딸을 오타쿠로 키웠다고.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그런 취미가 있었다는)

아버지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타쿠 문화를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서로 공감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딸도 사랑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사랑은 안타깝게도 딸의 미래에 있어서 고통을 주게 된다.
 
쇼코의 불행이 시작된것은 그녀가 초등학생 일 때 아버지가 30대의 이른 시기에
백혈병으로 죽고 난 뒤부터 시작 된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도 아버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쇼코는 오타쿠 문화에 상당히 심취하게 된다.
쉬는 시간 교실 뒷편에서 사람들이 다 보는데도 가면라이더, 파워레인져 같은 특촬물의 흉내를
열정적으로 하고, 애니메이션, 만화같은것도 다 섭렵..
 
그런 쇼코의 별난 행동과 취미 때문에 당연히 쇼코는 반에서 튀게 된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오타쿠'라는 존재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렇게 좋게 보이는 존재는 아닐것.
아직까지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지만, 한창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쓸 중학생들은
쇼코와 친하게 지내길 거부하며 무시 하기 시작한다.
 
그런 쇼코에게는 한가지 꿈이 있었다.... 바로 만화가.

 

 

 

그녀는 어느 만화가의 만화에 굉장히 심취하며 그 만화가의 그림체를 모방해 자신의 노트에 학교의
반 친구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쇼코가 롤 모델로 삼은 만화가는 상당히 코믹한 그림체를 가진 만화가로서,
쇼코가 그린 반 친구들은 당연스럽게 코믹하게 그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림체가 굉장히 코믹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악의를 가지고 그렸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었고,
주변 아이들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 지는 뻔했기 때문에 당연히 비밀. 
 
 
하지만 어느날 쇼코의 비밀은 반아이들에게 들통나고 만다.
 
어느날 집으로 가던 중 한 남학생과 부딪히게 되고 거기서 친구들을 그린 노트를 떨어뜨린 채 집에 가게 되었고
다음날, 떨어진 쇼코의 노트를 주워본 그녀의 반 친구들은 분노한다.
 
'이런 짓을 할 녀석은 그 녀석 뿐이다!'
 
평소의 행실에서도 볼 수 있듯 쇼코는 유명한 오타쿠, 노트에 코믹하게 그려진 것은 자신들....
(그림을 상당히 잘그린 듯)
예민한 중학생들은 당연히 쇼코가 그림을 그리며 자신들을 놀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고,
그 뒤로 이어진것은 왕따와 괴롭힘..
 

 

 

 

사실 무시하는것 자체가 왕따상태지만..
쇼코가 당한 여러가지 처사들은 상당히 지독했다고.
실내화를 없애서 하루종일 맨발로 학교에 있게 하고, 교실 책상이나 의자에 낙서를 하고
쓰레기를 가득 집어넣고, 어떤 때는 책상 위에다가 하얀색 꽃을 올려놓기도 한다. 
(책상위에 하얀색 꽃을 올리는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에서 연약했던 쇼코는 괴로움에 치를 떨었다.
당시 어리고 연약했던 쇼코는 이지메를 당하는게 너무 부끄러워서 어머니에게도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날, 쇼코는 수업중 급격한 구토감에 교실을 뛰쳐나갔고, 구토를 한게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걷기조차
힘들었던 쇼코는 결국 휠체어를 타고 양동이 하나를 안은채 양호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하교를 한다.
쇼코가 휠체어에 탄 채 하교하는 모습을 본 동급생들은 그녀를 보고 이렇게 외친다.
 
'야! 저기 구토마신(ゲロ魔人)이 지나간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위장염에 걸려 먹은것을 매일 토해내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바로 토를 하고...
쇼코는 점점 야위어가고 어둡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쇼코의 말버릇은 '할아버지 따라가고 싶어" 였다.
죽은 할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죽고 싶다는 것.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것도 모자라서 위장염에 걸려 먹은것을 다 토해내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쇼코는 점점 살 희망을 잃어 가고 말아.
 
학교에 가는것을 거부한 채 집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 가 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등학교도 어찌어찌해서 올라갔지만 소문은 여전해서 이지메의 대상으로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쇼코의 등교 거부는 이어진다.
 
그래도 쇼코는 자신의 오타쿠 취미를 버리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녀를 이어주는 끈이자, 유일하게 쇼코가 좋아 했던 것이었으니까...
쇼코의 아버지는 백혈병 투병중에도 딸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내며 딸을 격려 했었고,
덕분에 쇼코의 기억속에서 아버지는 아주 큰 존재였다.
 
어느날 쇼코는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던 중 한 영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성룡의 '취권'
 
취권을 본 순간, 쇼코는 성룡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성룡의 모습은 굉장히 멋있어서 그때부터 그녀는 성룡의 팬이 되어
오타쿠 근성 답게 애니를 섭렵했던 것처럼 성룡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게 된다.
 
하지만 성룡의 작품을 본 들 그녀의 히키코모리는 낫지 않았다.
그런 쇼코를 안타깝게 보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17살 생일에 그녀와 함께 성룡이 있는 홍콩으로 여행을 간다.
(남편 없이 모녀가 생계를 이어가는데 홍콩으로 여행이라니...ㄷㄷㄷ)
성룡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라고
엄마는 딸을 성룡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도 데려 갔다.

 

 

 

 

위 사진은 그 성룡 식당이긴 하지만.. 서울에 있는거ㅋㅋ
 
쨌든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시키고 밥을 먹으며 쇼코는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우울증 때문에 식사 도중에도 쇼코는 '죽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울게 된다...
 
그런데 그 때...
 
 쇼코가 울고 있을 때 거짓말 처럼 가게에 성룡이 들어 왔고
 쇼코와 그녀의 어머니는 성룡을 발견하게 되자 엄청난 환호성으로 성룡을 반겼다.
 당시 성룡은 캐나다에서 영화를 촬영중이라는 사실을 '오타쿠 네트워크'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쇼코는 
 지금 상황이 믿기 어려울만큼 기뻐했다.
 
 그런 모녀를 본 성룡은 웃는 얼굴로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쇼우코를 향해 정중하게 말을 건다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지?'
 
 '쇼우코요, 나카가와 쇼우코!'
 
 '그래 쇼우코, 음식들은 맛있니? 
많이 먹으렴. 지금 먹은 음식들은 내가 다 사줄테니까^^' 
 
 
천사표 성룡은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한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사인한 한정판 전화카드를
특별 엘범에 꽂아 직접 편지까지 써서 그녀에게 전달해준다.
 
그런 성룡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만인에게 웃음을 주는 연예인으로 진로를 결정을 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성룡과의 만남.
 
쇼코가 연예인이 될수 있었던건 성룡 덕분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 나가게 되었고 연예인이 되었다.
독특한 캐릭터와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가 일을 하러 온 방송국에 성룡이 촬영을 위해 찾아왔어
사실 다른 방송이였지만 쇼코는 성룡의 엄청난 팬이였기 때문에 성룡에게 달려간다.
성룡에게 자기를 기억하냐고 묻자 성룡은 대답 했어
 
 '그럼, 기억하고 있지 쇼우코. 내가 식비도 내주고 카드도 줬는걸.'
 
그렇게 두사람은 다시 재회 하게 된다.
쇼우코는 성룡에게 자신의 사진집을 선물을 하고 
성룡은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고 그녀에게 부탁한다.
 
 '사인해 주겠니?'
 
 어리둥절해 하는 쇼코에게 성룡은 이어서 말을 한다.
 
'넌 이제 훌륭한 연예인이 되었어. 나랑 같은 무대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을 하고있잖아? 
 난 네가 굉장히 존경스럽단다.'
 
쇼코는 지금까지도 그의 그 따뜻한 말을 잊지 못한다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그녀를 지탱해 준 아버지의 추억과 성룡.
실제 방송에서도 그녀는 성룡의 영화와 아버지의 편지가 없었다면 자살했을지도 몰랐다고 한다.
 

 

 

 

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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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남자들의 SSul 해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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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벗고엔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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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게 원본광고일꺼에요



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그입다물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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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가 스물다섯 살 나이로 요절한 지 꼭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현식이 간경화로 사망했다.
  

그 후로 꼭 20년이 흐른 1일 신승훈(42)은 20주년 기념음반을 냈다.
2장짜리 음반엔 그가 새로 편곡해 녹음한 13곡과 후배들이 부른 7곡이 담겼다.
지난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신승훈이 말했다.
"20년간 연습해 온 노래들을 이제 진짜 녹음한 것 같다.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신승훈은 "가장 신승훈다운 노래" 13곡을 골라 새로 녹음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빠지고 어쿠스틱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 미니멀한 편곡을 택했다.

한때 근육통을 앓는 듯했던 그의 창법이 훨씬 나긋나긋하고 편안해졌다.
그는 "창법이 단순해지고 반주가 미니멀한 건 '담백의 미학'을 담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20년간 부른 노래를 한 달 새 다시 부르니까 그간 몰랐던 제 노래의 변화를 알겠더라고요."
  

클래지콰이, 정엽, 슈프림팀 등이 부른 7곡의 노래는 후배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신승훈은 "후배들이 마음껏 재해석한 내 노래들을 들어보니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유재하 기일을 데뷔일로 고집할 때만 해도 신승훈은 유재하의 팬에 불과했다.
대전 카페촌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통하던 그는 가수가 되려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가리봉동과 방배동 카페를 맴돌다가 1년 만에

 보따리를 쌌다.
  

"남의 노래만 부르다가 지겨워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7곡쯤 쓰니까 앨범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서울에 와야 했어요."
  

잠실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조카들과 한 방을 쓰며 반년을 백수로 지냈다.
그때 막 유행하던 비디오게임 '테트리스'를 온종일 했다고 한다.
가리봉동 생맥줏집 무대에 서게 됐지만, 그 역시 기타를 쳐주거나 코러스를 넣는 수준이었다. 6개월간 받은 돈은 20만원이었다.
결국 그는 양수경의 노래 '사랑은 창 밖의 빗물 같아요'에 코러스로 참여한 뒤 대전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여섯 번 퇴짜를 맞고 깨달았죠. 아, 나는 대전의 신승훈이었구나."
서울에서의 1년은 그에게 혹독한 좌절을 안겨줬다.
  

가슴에 단단한 차돌을 박아넣는 계기이기도 했다.
"차비가 없어서 기타 2대를 들고 종로3가에서 잠실까지 걸어간 적도 있어요.
그때 오기가 나면서 '이젠 어떤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대전에 돌아간 신승훈은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기획사들에 보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가 '물건'임을 처음 알아챈 사람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창환이었다.
그리고 신승훈은 작곡가 하광훈 등의 곡을 제치고 자신의 노래로 데뷔했다.
  

음반 1700만장을 팔아치운 이 대어(大魚)의 치어(稚魚) 시절을 몰라본 사람 중에는 문책을 받아 회사에서 물러난 사람도 있었다.
한 유명 음반제작자는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고 듣지 않았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신승훈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한국 발라드 DNA의 형질을 변경한 노래로 평가된다.
무명 가수의 자작곡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데뷔 직후인 1992년 서태지라는 엄청난 변수와 맞닥뜨렸지만, 신승훈은 발라드 가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저를 '발라드의 황제'라고 하는데, 저 말고 발라드 부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 가운데 유독 처절한 발라드를 다들 좋아하셨죠."
그는 "록 마니아, 힙합 마니아처럼 어쩌면 내가 '발라드 마니아'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신승훈은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제 TV는 신인들의 장"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라이브 무대로 팬들을 만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제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올 초 KBS 열린음악회는 처음으로 단독 무대를 주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일본에 진출했다. 초기에 그의 CD는 음반매장 3층 '월드뮤직' 코너에 우즈베키스탄 노래들 옆에 있었다.
4년이 흐른 재작년 그는 2만석이 넘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일본 전국 투어를 했다.
"일본에서 저는 지금 '시테루(してる·알아요)'에서 '스키데스(すきてす·좋아해요)'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전 노래를 일본에서 신곡으로 발표하는 기쁨도 큽니다."
  

신승훈은 CF를 일절 찍지 않는다.

"슬픈 발라드 부르는 가수가 음식 들고 사 먹으라고 선전하는 게 안 좋아 보여서" 찍지 않은 게 지금까지 계속됐다.
그는 "가수는 보고 싶을 때 봐야 하는데 CF에서 계속 보이면 괴로울 것 같다"고 했다.
  

음악 팬들을 한 번도 괴롭히지 않은 이 뮤지션의 20주년 투어가 오는 27일 경기도 고양에서 시작된다.
그는 내년 3월까지 전국을 돈 뒤, 미국과 일본에서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101102)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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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멤버들의 주 직업은 가수다. 그 가수들 틈에 유일하게
개그맨으로 끼어 있는 이수근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웃기는 것은
덤이지만, 개그맨이 웃기지 못하는 것은 존재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그맨들이야 언제 어디서건 억지로라도 설정을 만들어 웃기려고 노력하는데 적응이 되어있기 마련. 하지만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에서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수근이 '1박2일'에서 웃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일꾼을 자처한 점은, 개그맨으로서의 이수근
보다 시골 생활에서의 맥가이버 같은 이수근 개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초반부 웃기는데 있어서 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이수근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개그맨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이수근이 개그맨으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자신 속에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랑비에
옷 젖듯 보여진 그의 캐릭터는 일꾼 이미지를 바탕에 만들어줬고, 그 위에서 개그는 좀더
생활 밀착형이 되었다.

'1박2일' 백두산 특집편의 첫 번째 방송에서 출연진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은 사실 무언가를 늘 보여줘야 한다는 쇼의 입장에서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정 공간에 도착해 어떤 미션을 수행하거나, 돌발적인 상황을 맞아 새로운 여행의
국면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것이 '1박2일'의 묘미라면, 그 중간 중간 이동시간 같은 빈 공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이 빈 공간은 이수근에게는 단독으로 올려진 개그콘서트 무대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딘가로 떠날 때, 그 지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던 재주 많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1박2일이라 엉덩이에 새겨진 운동복을 보고는 "중국사람들이 보면 꿰맨 자국인 줄 알겠다"고
하거나 다들 엉덩이를 쭉 빼면서 "1박2일!"하고 소리치며 즐거워할 때, 혼자 거꾸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 큰 웃음을 주는 이수근은 그가 역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 안에서
중국인 출신 여승무원들과 벌어진 즉석 짝짓기 게임에서 후춧가루댄스를 추고, 엉터리
중국어로 웃음을 주는 것은 저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는 어쩌면 식상한 개그일지 모르지만, 이렇듯 딱히 할 것 없어 무료해질 수 있는 시간 속에서는 포복절도의 웃음으로 다가온다.

'1박2일'속에서의 개그맨 이수근이 가진 이미지는 지금 세상에서 비범함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을 닮았다. 그들은 늘 어느 한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이 어려운
시국 속에서 평가절하 되었고, 그것을 또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요즘처럼
일보다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진짜
일꾼이면서, 그 어려움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인생길이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길에서의 그 과정을 닮았다면, '1박2일'에서 '생활 속에서의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며
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는 이수근은 그 여행길에서 힘겨울 때마다 얼토당토않은 말로
웃음을 주는 오랜 친구를 닮았다.
출처 : 젊은날의 로드무비
글쓴이 : 담배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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