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태그의 글 목록 (2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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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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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힐링필드, 장성치유의 숲

 

글/사진:이종원

 

세상이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마음은 피폐해졌다. 자신 만이 이를 이겨낼 수 있다. 탁트인 경관과 맑은 공기 그리고 조용한 숲을 산책한다면 그것이 바로 힐링이다. 제주도 사려니 숲길, 가평 축령산 잣나무 치유의 숲과 더불어 장성의 편백나무 숲은 도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숲으로 손꼽을 수 있다. 

 

문수사에서는 청량산이라 불리는 축령산은 비록 625m에 불과하지만 여의도 1/4에 해당하는 숲에 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 주목나무 등을  빼곡하게 심어 놓았다.

더구나 숲내움 숲길(2.2km 1시간 10분), 산소숲길(1.9km 1시간), 건강 숲길(2.9km 1시간 30분),하늘 숲길(2.7km 1시간 20분) 주제에 맞는 다양한 숲길이 있어 간식과 도시락을 준비한다면 거대한 산소통을 하루종일 마시게 된다.  사색할 수 있도록 평상까지 조성해 바닥에 등을 대고 쑥 뻗은 나무를 바라보라.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금곡 영화마을이 반긴다. 영화 태백산맥, 내마음의 풍금, 만남의 광장 그리고 드라마 왕초 등 60~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아 그 감동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고창IC에서 고창읍내를 지나 석정온천에서 우회전하면 장성으로 넘어가는 솔재가 나온다. 전북과 전남을 연결하는 고개로 단풍 가로수가 일품이다. 굽잇길에 활활 타오르는 듯한 단풍 가로수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직진하다가 문암리에서 우회전하면 금곡영화마을이 나온다.

 

70년대 마을을 배경.

 

영화 만남의 광장 세트장

  

금곡 영화마을에서 임도 따라 3km쯤 가면 장성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고개 하나 넘어야 햐는데 제법 경사어 길이 스프링처럼 접혀 있다.  고개마루에 탐방센터가 자리잡고 있어 지도 한 장 얻는 것이 좋다.

 

이 숲에서 가장 큰 삼나무를 놓치지 마라.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번갈아 나타난다. 편백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로 회목, 히노끼, 노송이라 불리며 높이 30~40m, 둘레가 1~2m 가량이며 껍질은 적갈색은 띄고 있다. 피톤치드는 편백나무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해충과 곰팡이균을 맞서기 위해 내품는 물질로 강한 살륜력을 지니고 있는데  아토피같은 피부 질환에 특효다. 

 

곳곳에 평상이 있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천식 아토피 환자들을 위한 무료치유프로그램을 있으며 암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도 있다.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필드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단풍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이렇게 붉은 카핏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상에 앉아 한참을 머물렀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단풍

 

얼마나 많은 잎이 떨어졌으면 이렇게 푹신하게 쌓일까

 

오메 이젠 땅에도 불 붙었네

 

 

숲의 명예의 전당. 만약 춘원 임종국 선생이 없다면 우린 이 숲을 만날 수 있을까

 

 

독립운동가 출신인 임종국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기를 거치면서 황량해진 산에 사제을 털어 1976년까지 20년간 253만 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그것도 모자라 큰 빚까지 지면서 편백나무를 사다 심었고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산길로 올라 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노고로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웰빙숲을 만나게 된 것이다.

 

 

행장을 꾸리고 다시 숲길을 들어간다.

 

단풍과 편백나무가 잘 어우러졌다.

 

 

 

길이 예쁘장하게 꺾여 있다. 

 

 

 

차곡차곡~~이 예쁜 잎이 썩어 부엽토가 되겠지

 

다시 한 컷 더~~

 

장성치유의 숲 각종 나무를 두드리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안네센터를 찍고 다시 돌아나왔다. 차를 금곡에 세웠으니 말이다.

 

다양한 숲길~~다 걸으려면 하루종일 잡아야한다.

눈이 쌓여 있을때는 얼마나 예쁠까

 

 

여러 길중에서 난 산소 숲길을 선택했다.  편백나무를 어루만지며 걸을 수 있었다.

허파를 정화할 수 있는 길

 

사부작사부작 걸어본다.

 

오메 여기도 불이 붙었네

 

별꽃이 가득

 

낙엽이 이러 예쁠 줄은 몰랐네. 상록수 편백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생태체험을 할 수 있도록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단풍 낙엽을 밟으며

편백나무의 사열을 받고 걸을 수 있다.

 

 

이 숲에서 가장 감동 받은 곳이 바로 이 길이다.

10분정도  산책길 너무 예뻐 눈물이 찔끔 났음

 

다시 임도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연못 산책로를 향하여

 

추워서 그런지 단풍 난로가 나무를 감싸고 있다.

 

낙엽벤치

 

삼나무, 낙엽송 숲길까지~

 

 

빨간색 길이 편백나무 숲길 임도.

 

금곡영화마을-임도-고개-편백나무숲길-산소숲길-임종국기념비-추암마을까지 6km 걷는데 2시간 소요

문의:장성치유의 숲 안내센터 061-393-1777

 


출처 : 모놀과 정수
글쓴이 : 이종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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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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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명산 30選
아찔한 암릉길, 맘 졸이며 오르니 세상이 발아래...
(30) 북한산 비봉능선<시리즈 끝>

 

 

▲  북한산 비봉능선은 불광동 족두리봉에서 시작해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문수봉에 서면 비봉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12월26일 문수봉 정상에서 비봉능선을 지나온 등반객들이 땀을 식히고 있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북한산은 세계적으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나온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에 보면 지난해 북한산은 850만명이 넘게 찾아 전국 국립공원 중 1위였다. 뒤를 잇는 설악산과 지리산은 300만명에 못 미친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 이어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그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환경 훼손이 심해져 최근엔 ‘입장료 부활설’이 나돈다.

며칠 전 환경부가 북한산을 비롯해 설악산 등의 일부 구간을 탐방예약제로 묶고, 이들 구간에 대해 선택적으로 입장료를 받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시행한다는데, 논란이 될 것 같다. 과거에도 막아 놓으면 샛길이 생겨 결과적으로 더 훼손을 가져왔다. 근교 산은 더 그렇다.

북한산 50여개의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던 시절 통계로 보면 북한산에서 가장 선호되는 코스는 도봉-북한산성-구기-정릉-백운대(도선사) 매표소 등의 순이었다. 이 중 구기동 매표소 이용객의 상당수는 비봉능선을 탔을 것이다. 도봉은 빼고 삼각산만 놓고 보면, 정상인 백운대 구간 다음으로 비봉능선이 선호된다고 볼 수 있다.

백운대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삼각산 주능선(산성능선)은 정릉 칼바위쯤에서 서남쪽으로 틀어 내려오다가 문수봉에서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갈라진다. 비봉능선은 문수봉을 시작으로 족두리봉까지 이어지다 불광동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에는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이 있다. 능선상의 기묘한 바위들과 좌우로 탁 터진 조망으로 치면 비봉능선만 한 데도 없다. 서울 서쪽과 인천 등지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봉능선을 통해 북한산과 첫인사를 나눴음 직하다. 기자도 20대 때 매표소를 피해(?) 족두리봉으로 해서 비봉능선을 처음 탔는데 그 첫인상은 오래간다. 지난해 12월26일 모처럼 찾아보니 족두리봉에서 향로봉 쪽으로 내려서는 아슬아슬한 암릉길은 아쉽게도 위험 구간으로 막아 놓았다. 우회해야 한다.

비봉능선의 이름은 비봉(碑峰·527m)에서 왔다. 비봉은 1962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된 진흥왕순수비가 있던 자리다. 조선시대만 해도 이곳의 비(碑)는 조선 개국 당시 국사(國師)였던 무학대사비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인 1816년 금석문의 대가이자 희대의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글자를 판독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568년(진흥왕 29)쯤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밝혀냈다. 실로 1200년이 지나 비로소 비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 비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기도 했지만 6·25전란 때 20여발의 총탄을 맞아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등 결정적으로 훼손됐다. 보존을 위해 1972년 8월 1400년 만에 ‘하산’을 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보관됐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비신(碑身)을 분리할 때 연인원 500명 가까이가 동원돼 하루가 꼬박 걸렸다고 하는데, 당시 신문을 보면 ‘경솔한 이전’이라는 여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세워진 비는 ‘모조품’(왼쪽 사진)이다.

대개 북한산의 위험한 암릉길은 요즘 막아 놓았지만 비봉은 지금도 오를 수 있다. 사모바위 쪽 가파른 암반으로 오를 수 있는데, 초보자라면 먼발치에서 보는 게 좋다. 예전에는 비봉을 향로봉 쪽 직벽으로 오르는 것이 산 좀 탄다는 이들에게 ‘과시용’으로 유행했는데 지금은 막아 놓았다.

비봉은 불광역에서 족두리봉, 독바위역에서 향로봉 쪽, 구기동에서 대남문이나 승가사 쪽 등 여러 코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비봉능선을 온전히 타려면 족두리봉이나 향로봉 쪽으로 해서 오르는 게 좋다. 향로봉도 예전에는 직접 가파른 바윗길로 위태롭게 올랐는데 요즘은 막아 놓아 돌아가야 한다. 비봉에서 문수봉 방면을 보면 아기자기한 비봉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이 비봉능선의 명물인 사모바위다. 사모바위 옆에는 너른 공터가 있어 어느 때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휴일에는 단체 등반객들이 도시락을 푸는 장소다. 사모바위를 지나면 나지막한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 직전 높고 가파른 암릉길을 만나게 된다. 문수봉을 바로 타는 암릉길은 위험 구간이다. 요즘에는 로프와 쇠 난간 등으로 안전 설비를 해 놓았는데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북한산에서는 지난해만 등반객 9명이 사망하고 90명이 부상을 당했다. 등반 사망자 수로는 전국 산 중 1위고 부상자는 설악산에 이어 두 번째다. 항상 ‘남들도 가는데…’라고 생각하다 사고를 당한다. 우회로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다. 이곳에서 우회로는 왼쪽으로 해 청수동암문으로 올라 문수봉으로 가면 된다.

청수동암문으로 오르는 길은 일명 ‘깔딱고개’로 땀 좀 흘려야 하지만 꼭대기 암문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은 겨울에도 좋다. 문수봉을 거친 뒤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으로 애용되는 코스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등산코스>

▲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깔딱고개-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동

▲ 독바위역-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깔딱고개-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동

 

 

 

<사모바위>

 


비봉능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위가 사모바위(사진)다.
능선의 중앙쯤에 있는 사모바위는 모양이 사모(紗帽·옛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처럼 생긴 데서 유래됐다고 서울지명사전에 나와 있다.

‘김신조 바위’로도 불리는데, 1968년 1·21사태 때 공비들이 이곳을 1차 목표 지점으로 삼아 바위 옆 동굴에 은거했었다.
최근에 당시 상황을 소개하는 푯말들과, 동굴 안에는 공비의 밀랍인형까지 만들어 놓았다. 몹시 흉물스럽다.

사모바위에는 조선시대 남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쟁터로 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사랑했던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전쟁이 끝나도 여인의 소식은 없고, 남자는 당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여 살았다는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여인을 찾았지만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여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구기동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바위도 홀쭉해 보이면서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전설의 출처는 찾지 못했으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아픈 역사의 한 대목인 소위 ‘환향녀(還鄕女)’에 관한 얘기로, 북한산 자락의 홍제천은 그녀들과 관련이 있다.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로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조선 땅에서 더 비참한 상황을 맞았다.

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지만, 사족(士族)들은 이들 부녀자에 대해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며 조정에서 이혼을 허락하도록 상소를 올렸고 논란을 빚었다.
‘화냥년’이란 치욕적인 욕설이 당시 만들어졌으니, 대부분의 사족 환향녀들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도 딱한 이들 부녀자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올 때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며 그 잘못을 따지지 않도록’ 정했다.

홍제천은 바로 북한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지금은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걸쳐 흐른다.
그렇다면 사모바위 전설대로, 당시 남편에게 돌아가지 못한 환향녀들이 북한산 자락에서 모여 살았다는 게 전설이 아니고, 그 여인들을 안쓰러워했던 민초들의 마음이 ‘사모바위’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사모바위가 왠지 애틋하지 않는가
 
출처 : ironcow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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