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사랑·자유/사랑 LOVE' 카테고리의 글 목록 (15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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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파란아자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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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허헝헣헐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G-스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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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십계명/ 최일도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말라 - 던지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던지면 받을 손이 없다.

 

2.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지르지 말라. - 당신이 소프라노로 나오면 나는 베이스로 화음을 내고, 당신이 테너로 나오면 나는 낮은 알토로 하모니를 이룬다.

 

3. 눈이 있어도 흠은 보지 말며, 입은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말라. - 장점만을 바라보고 결혼한 사람보다 서로의 단점까지 모두 알고 결혼한 부부라야 지혜롭다. 사랑의 안경으로 보면 상대의 흠은 매력이고 실수는 구수하다.

 

4.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 아내를 어머니와 비교한다든지 남편을 친정아버지나 오빠와 비교하지 않는다. 결혼 전 이성친구와 비교하는 것은 유령을 끌어들이는 푸닥거리일 뿐이다. 김연수가 최고의 아내이고, 최일도가 최상의 남편이라는 기쁨과 긍지로 살아간다.

 

5. 아픈 곳을 긁지 말라. - 기왕 긁으려면 가려운 곳을 긁어라. 상처는 긁을수록 더 심해지는 법. 함께 산다는 것은 등 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는 관계다.

 

6. 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말라. - 모든 분노는 솔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야기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푼다. 하루를 넘기면 이틀 가고 이틀을 넘기면 나흘간 지속되는 것이니 그날 그날 잠들기 전에 모든 원망을 풀어버린다.

 

7. 처음 사랑을 잊지 말라. - 결혼식을 마친다는 것은 이제부터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쁘든 슬프든 영원히 함께 하기를 비는 기원이다. 고통을 이겨낸 지난 시절의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고 달콤한 일들을 자주 회상하자.

 

8. 결코 단념하지 말라. -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산다. 복잡하게 얽힌 것마저도 쉽게 풀 수 있는 사이가 바로 부부다. 기다리는 것은 금물. 서로가 먼저 웃으며 손을 내민다.

 

9. 숨기지 말라. - 우리 사이엔 어떤 비밀도 없다. 숨기다 보면 버릇된다. 별 것 아니라고 비밀로 하였다가는 불씨가 된다. 서로에게 진실하자.

 

10. 본래의 중매자를 따돌리지 말자. - 우리 부부를 짝지어준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 사이에서 그분을 따돌릴 때 애정의 반석엔 금이 간다. 우리 부부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손을 잡고 그분께 기도하는 믿음의 가정이다.

 

- 「밥 짓는 시인 퍼 주는 사랑」(동아일보, 1995)

................................................................

 

 ‘밥퍼’목사로 널리 알려진 최일도 목사는 그 명성 탓에 자주 주례를 서는데, 결혼 십계명은 그의 단골 주례사 내용이다. 이는 사실 최일도 목사 자신이 결혼할 때 주례를 서준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해둔 것이다.「밥 짓는 시인 퍼 주는 사랑」은 섬김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역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으로 120만부 넘게 팔려나가면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신학생 시절, 결혼생활, 다일공동체를 설립하여 소외된 사람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연들과 그들을 대변해온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도 특히 부인과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주님께 평생을 바치겠노라 서원한 가톨릭 수녀와 하나님께 바칠 평생의 삶을 고민하던 개신교 신학생 간의 사랑은 시대의 불문과 금기를 깨는 일대 사건이었다. 편견과 따가운 시선 속에 그들의 사랑은 시작됐다. 목사와 수녀라는 이름표를 떼고 두 무릎 맞대어 꿇어앉아 참사랑을 위해 동행하겠노라고 신께 기도했다. 신학대학을 다니며 참다운 믿음을 찾아 헤매던 최일도 앞에 나타난 구원의 여인은 그보다 다섯 살이 많은 김연수였다. ‘운명처럼 다가온 수녀’를 처음 본 순간 그는 평생의 반려자임을 직감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장점들이 이상적으로 융합된 다일공동체처럼 그들의 성공적인 결합에는 이 십계명의 실천이 있었고, 또 시가 있었다. 대학 국문과를 나온 김연수는 1978년 일찌감치「시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최일도도 서정주, 함동선 시인의 추천으로「한국시」를 통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둘은 여러 권의 시집 외에도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걸어온 구도의 세월을 노래한 부부시집도 내었고, 재작년엔 '밥心', '꽃心'이란 제목의 시집을 나란히 펴내기도 하였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꽃의 마음만으로도 살 수 없다. 밥심과 꽃심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밥의 마음과 꽃의 마음으로 그들 부부는 동행해왔다. 그리고 시적 교감이 그들 사이를 더욱 결속시켰다.

 

 

권순진

 


Love Is All Around -- Wet Wet Wet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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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판도라 tv



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비비원숭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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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밥을 못 먹은 노숙자 아저씨에게 


들고 있던 술 대신 커피를 드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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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빌려주시겠어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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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저에게 주는 겁니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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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동안 살았지만 이런 기적은 처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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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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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술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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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훈훈 하다...







출처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조던 헨더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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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강연 중 얘기 (펌글)

저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한 환자가 있죠.

4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위암이었죠.
하지만 이게 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CT가 그때만 해도 3cm 단위로 잘라져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암이 작으면 잘 보이지 않죠. 일단 보고를 드려야 했죠.
...
아침에 주임과장에게 이런 환자가 있었고
전이가 확인이 안됩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배를 먼저 열어보고 전이가 되어있으면 닫고,
안 되어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근데 환자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걸 환자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보호자를 이야기해봤더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식구들은 연락이 끊어졌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본인에게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고등학교 아들과 중학교 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어떡합니까.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합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 날짜를 잡았죠.

헌데 배를 열고 보니까 저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가슴부터 배까지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되어있더군요.

작은 암세포로 전체가 퍼져있었어요. 너무 심각했던 거죠.
바로 닫고 수술실을 나왔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하고 다시 환자에게 가려고 하는데
저는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창 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가습기에서 희뿌옇게 수증기가 나왔고
침대 옆에서 아이 둘이서 검정색 교복을 입고선
엄마 손 하나를 둘이서 잡고 서 있더군요.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느낌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눈이 마주치자 환자가 저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환자는 알고 있었던 거죠.

수술을 했더라면 중환자실에 있었을 텐데 일반 병실이니까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옆에는 지금 애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얘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수술 후 급속도로 나빠져서
퇴원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셨죠.
사망을 앞두고 며칠 동안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고
병원을 왔는데 항상 그 자세였어요.
손을 잡고 아이와 함께 셋이서 서서 있었죠.

우리 외과 의사들은 보통 회진을 하면
아침 식사를 몰래 숨어서 하고 그랬거든요.
아침 먹었으면 아주 선배들에게 혼났어요.
신참 의사를 3신이라고 하거든요.

잠자는 덴 잠신, 먹는 데는 걸신,
일 못하는 데는 병신. 어쨌든 하는 것도 없다고
먹는 거 보이면 혼나고 그랬어요.
그래서 회진 돌고는 수업 들어가기 전에 컵라면 먹고 그랬죠.

그때 외과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었죠.
그랬던 우리들 중 하나가 돌아가면서
그 병실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라면을 먹고는 했었어요.

하지만 이건 사실 특별한 선의는 아니었어요.
특별한 선의였다면
제 시간에 제 돈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걸 사주었겠죠.
하지만 제약회사에서 가져온 라면을,
인턴이 만들어 놓은 라면을 같이 먹었었죠.
후륵 후르륵 먹으면서
아이들한테 이런 저런 대화를 했었을 거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도 힘들었다’ 뭐 이런 얘기를 했었나 봅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했었나 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제가 사실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엄마인 환자는 거의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의사가 할 일은 사망 실시간이 임박하면 사망확인하고
시간 기록하고 진단서 쓰는 게 다입니다.

간호사한테 정말로 연락이 왔어요.

돌아가시는걸 지켜보면서 저와 간호사는 서 있었죠.
두 세 차례 사인곡선을 그리다가 뚜뚜.. 하면서 심전도가 멈췄는데
아이들은 또 예의 그 모습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죠.

이후의 상황은 대충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울부짖고, 간호사들이 떼어내고,
영안실에서 와서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로 데려가고..

저는 속으로 ‘이걸 어떻게 보지?’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모르나 보다.
그래서 한 잠시 일분 기다렸어요.

그러다 아이의 어깨를 눌렀더니 엄마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봤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옷의 절반이 눈물로 젖어 있더라고요.

돌아가신 것을 아는 거였더라고요.

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습니다.

그리고 서 있는데 그제서야 엄마에게 다가서서
왼팔로 목을 잡고 오른팔로 어깨를 안아요.

그리고는 엄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사랑해요.. !’ 하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떠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사랑해요..' 라는 말 안에는 떠나는 엄마에 대한 송별사 일수도 있고
위로일 수도 있고, 남겨진 자의 각오일 수도 있죠.

저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맡았던 환자가 하루에 5명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요.
인간이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직위? 돈? 그가 누구든,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그가 무엇을 가진 사람이든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에 하는 단어가 바로 ‘손’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진짜 내 마지막 순간에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어떻습니까.

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내일이 될지, 다음 주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상처 입히고,
더러는 외면하잖아요.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가장 위로 받을 수 있고
마지막에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집에 있는 가족과 아이들이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도 금배지고,
좀 더 필요한 건 공천이고,
그보다 지금 빨리 필요한 것은 돈다발입니다.

어쨌든 이후 저는 안동 신세계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계속 했지요.

근데 십여 년이 지나서..
간호사가 하루는 신부님이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피 흘리는 신부님이 오셨나 보구나 했습니다.

제가 안동에서는 항문외과의로는 아주 유명해서
사실 경상도 지역 전체에서 거의 손꼽을 정도거든요.

신부님들이 보통 손님으로 위장해서
치료받으러 오시는데 그런 분이신가 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손님의 얼굴에 아우라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얼굴의 빛깔과 때깔은 다르잖아요?

때깔은 돼지처럼 먹고, 색조 화장품을 바르면 좋아 집니다.
하지만 빛깔은 습관, 태도, 사고, 삶의 방식들이
지금까지 내 얼굴에 반영되어 반죽으로 나온 겁니다.

그 사람의 아우라는 사실상 그 사람에게 나쁜 습관,
나쁜 태도, 나쁜 성향이 거의 없었다는 얘깁니다.
놀라서 제가 ‘누구십니까’ 했더니
대뜸 ‘저를 모르십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고등학생이 저랍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혹시나 잘못한 게 있나 뜨끔 하더라고요. (웃음)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여동생은 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두 오누이가 곱게 잘 자랐죠.

그러면서 신부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입장에서는 가혹하고 힘들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남겨진 아이들이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할까
하고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저는 제가 그렇게 멋있는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그 말씀이 두 오누이가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된
가장 중요한 말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에 벼락이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제가 멋있는 말을 했구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무심코 했던 작은 선의가 두 남매의 인생을 바꿨다는
생각을 했더니, 반대로 누군가를 절벽에서 밀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그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급은 위로만 올라가야 하고,
내가 많은 사람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하고,
그 힘은 점점 더 세져야 하죠.
하지만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영향력은 반드시 선한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심코 한 여배우의 기사를 보고,
무심코 그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하필 그 여배우가 그 댓글을 볼 수 있잖아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보편적인 악의는
누군가를 절벽으로 밀어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한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고객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객으로 하여금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웃음이 진심으로 자유에서 나와야 하고,
진실로 기뻐서 나와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에 두근거리십니까?

집에 놓고 온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두근 두근하고
사랑하는 와이프, 남편의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설레십니까?

이러한 모든 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쁨을
삶 속에서 계속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레전드족구단
글쓴이 : 호이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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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강하고 착한아이네요..ㅜ
욕하는사람들 정말 저런 어린아이보다 정신연령이떨어지는 사람인듯...
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잠들었던마음을해방하도록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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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엘렌 페이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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