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책 보러가기
참 희한한 다툼을 보았다.
"내 앞에서 김연아 얘기 그만 하라고. 연아 연아 연아. 듣기 싫다고 했잖아? 이젠 지긋지긋해. 벌써 몇 년
째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연아가 우리 국민들 사기를 얼마나 높여 줬냐고? 하는 짓마다 이쁘잖아? 뭐가 불
만이야?"
"싫어. 싫다고. 난 너 땜에 김연아 안티팬이 됐다고 했잖아? 제발 하지마. 내 앞에서 김연아 얘기 꺼내지
도 말라고."
"너도 추신수 좋아하잖아? 넌 왜 추신수 좋아하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어? 네가 추
신수 좋아하듯 나도 김연아 좋아할 수 있다고."
"난 너처럼 강요하지 안잖아? 내가 언제 추신수 좋아해달라고 한 적 있어? 난 정말로 추신수가 좋지만
누구한테도 추신수 좋아해 달라고 한 적이 없어. 그냥 내가 좋으면 나 혼자 좋아하면 되는 거야. 왜 강
요해? 왜 내가 김연아를 좋아해야 하냐고?"
남의 시선일랑 아예 끊기로 한걸까? 마흔 후반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는 오직 싸우는 일에만 집중하
고 있다. 그들의 싸우는 꼴을 보니 가관이 아니다. 아이들의 싸움 같기도 하고 내용만 다를 뿐 평범한
가정의 부부싸움 같기도 하다.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린 서로 마주보며 키득거렸다. 아마 우리
부부도 저 비슷한 방식으로 다툰 적이 있었으리라.
식당 안에는 그 두 사람 말고는 우리 부부와 주인만 있었는데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그
들의 언쟁은 심각했고 은연 중에 주변 사람들까지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추신수 팬은 오랫동안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것 같았다. 참다참다 그만 폭발한 것이다. 그들은 금방 탁자라
도 둘러 엎을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김연아 열혈 팬인 남자가 목소리를 한 톤 낮
추면서 극한 상황을 피해가기도 했다. 나름대로 '싸움의 묘'를 살린 셈이다.
그들은 친구지간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큰 사람은 김연아 열성 팬이고 다른 이는 추신수 팬이다. 추신
수를 좋아하는 이는 말수가 많지 않고 대체로 수동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그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아채기가 힘든 형이다.
김연아 열혈팬은 추신수 팬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 호불호가 분명하며 자신이 좋으면 크게 떠벌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연아를 자랑하고 침을 튀겨
가며 연아를 광고했다. 세상 모든 이가 김연아를 지지하고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천
하의 김연아일지라도 시큰둥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추신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연아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는 하는 짓이 이쁘고 귀여웠으며 좋은 성적을 내어 국익에 도움이 되었을
때는 한없이 고맙고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가 입만 열면 김연아를 노래하고 자꾸만 김연아를 좋
아해 줄 것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자 급작히 싫어졌다. 말하자면 연아에 대한 친구의 지나친 애착
이 그를 김연아 안티팬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의 언쟁은 부부들의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니 너도 좋아해야 한다, 그렇지 않
은 것은 나쁜 것이거나 틀린 것이다, 라는 식이 아닌가. 나는 두 사람의 언쟁을 통해 부부사랑의 방식
을 다시 세우고 싶어졌다.
1.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을 곡해하지 마라.
부부가' 일심'이 되면 좋겠지만 아닐 수 있다. 왜냐? '부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성향이 다르고 추구하는 게 다른 건 당연하다. 그런데 부부라는 이유로 '일심'을 강요하
는 건 억지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하여 잘못되었다고 치부하거나 '틀린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
다. 서로 의견을 조율하되 영영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누군가 한 사람이 양보하면 된다. 단, 결
론을 도출하기까지 완력이나 강압이 들어가면 곤란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적인 방식으
로 해결해야 한다. 흔히 목소리 큰 사람이나 강자가 원하는 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
말로 약한 자에게 철벽을 쌓게 하는 가장 하등한 방식이다. 가정의 기강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면
서로 조금씩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면 곤란하다. 남편이 한
번 양보했으면 아내도 기꺼이 양보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
2.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압하지 마라.
김연아를 좋아하든 추신수를 좋아하든 그 사람의 자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상대도 반드시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부부가 서로 추구하는 것도 같고 취향이나 성향이 같다면 큰 축복이다.
하지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상대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취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
하는 수밖에. 가정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거나 가정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일, 혹은 가족
간의 화목을 저해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3. '사랑'을 내 방식대로 이해하거나 행하려 하지 마라.
사자와 소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다. 그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야지. 그를 위해서라면 세상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어. 그런 마음으로 결혼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자신
의 방식대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소는 남편을 위해 날마다 신선한 풀을 뜯어다 식탁을 차렸고 사자
는 아내를 위해 선도 높은 고기를 바쳤다. 풀과 고기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최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대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행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직 자신의 사랑이 상대방에게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사랑은 상대가 자신을 사랑
한다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행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사랑은 내 틀에 상대를 맞추려 하지 말
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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