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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명산 30選
아찔한 암릉길, 맘 졸이며 오르니 세상이 발아래...
(30) 북한산 비봉능선<시리즈 끝>

 

 

▲  북한산 비봉능선은 불광동 족두리봉에서 시작해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문수봉에 서면 비봉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12월26일 문수봉 정상에서 비봉능선을 지나온 등반객들이 땀을 식히고 있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북한산은 세계적으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나온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에 보면 지난해 북한산은 850만명이 넘게 찾아 전국 국립공원 중 1위였다. 뒤를 잇는 설악산과 지리산은 300만명에 못 미친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 이어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그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환경 훼손이 심해져 최근엔 ‘입장료 부활설’이 나돈다.

며칠 전 환경부가 북한산을 비롯해 설악산 등의 일부 구간을 탐방예약제로 묶고, 이들 구간에 대해 선택적으로 입장료를 받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시행한다는데, 논란이 될 것 같다. 과거에도 막아 놓으면 샛길이 생겨 결과적으로 더 훼손을 가져왔다. 근교 산은 더 그렇다.

북한산 50여개의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던 시절 통계로 보면 북한산에서 가장 선호되는 코스는 도봉-북한산성-구기-정릉-백운대(도선사) 매표소 등의 순이었다. 이 중 구기동 매표소 이용객의 상당수는 비봉능선을 탔을 것이다. 도봉은 빼고 삼각산만 놓고 보면, 정상인 백운대 구간 다음으로 비봉능선이 선호된다고 볼 수 있다.

백운대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삼각산 주능선(산성능선)은 정릉 칼바위쯤에서 서남쪽으로 틀어 내려오다가 문수봉에서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갈라진다. 비봉능선은 문수봉을 시작으로 족두리봉까지 이어지다 불광동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에는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이 있다. 능선상의 기묘한 바위들과 좌우로 탁 터진 조망으로 치면 비봉능선만 한 데도 없다. 서울 서쪽과 인천 등지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봉능선을 통해 북한산과 첫인사를 나눴음 직하다. 기자도 20대 때 매표소를 피해(?) 족두리봉으로 해서 비봉능선을 처음 탔는데 그 첫인상은 오래간다. 지난해 12월26일 모처럼 찾아보니 족두리봉에서 향로봉 쪽으로 내려서는 아슬아슬한 암릉길은 아쉽게도 위험 구간으로 막아 놓았다. 우회해야 한다.

비봉능선의 이름은 비봉(碑峰·527m)에서 왔다. 비봉은 1962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된 진흥왕순수비가 있던 자리다. 조선시대만 해도 이곳의 비(碑)는 조선 개국 당시 국사(國師)였던 무학대사비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인 1816년 금석문의 대가이자 희대의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글자를 판독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568년(진흥왕 29)쯤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밝혀냈다. 실로 1200년이 지나 비로소 비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 비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기도 했지만 6·25전란 때 20여발의 총탄을 맞아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등 결정적으로 훼손됐다. 보존을 위해 1972년 8월 1400년 만에 ‘하산’을 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보관됐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비신(碑身)을 분리할 때 연인원 500명 가까이가 동원돼 하루가 꼬박 걸렸다고 하는데, 당시 신문을 보면 ‘경솔한 이전’이라는 여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세워진 비는 ‘모조품’(왼쪽 사진)이다.

대개 북한산의 위험한 암릉길은 요즘 막아 놓았지만 비봉은 지금도 오를 수 있다. 사모바위 쪽 가파른 암반으로 오를 수 있는데, 초보자라면 먼발치에서 보는 게 좋다. 예전에는 비봉을 향로봉 쪽 직벽으로 오르는 것이 산 좀 탄다는 이들에게 ‘과시용’으로 유행했는데 지금은 막아 놓았다.

비봉은 불광역에서 족두리봉, 독바위역에서 향로봉 쪽, 구기동에서 대남문이나 승가사 쪽 등 여러 코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비봉능선을 온전히 타려면 족두리봉이나 향로봉 쪽으로 해서 오르는 게 좋다. 향로봉도 예전에는 직접 가파른 바윗길로 위태롭게 올랐는데 요즘은 막아 놓아 돌아가야 한다. 비봉에서 문수봉 방면을 보면 아기자기한 비봉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이 비봉능선의 명물인 사모바위다. 사모바위 옆에는 너른 공터가 있어 어느 때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휴일에는 단체 등반객들이 도시락을 푸는 장소다. 사모바위를 지나면 나지막한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 직전 높고 가파른 암릉길을 만나게 된다. 문수봉을 바로 타는 암릉길은 위험 구간이다. 요즘에는 로프와 쇠 난간 등으로 안전 설비를 해 놓았는데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북한산에서는 지난해만 등반객 9명이 사망하고 90명이 부상을 당했다. 등반 사망자 수로는 전국 산 중 1위고 부상자는 설악산에 이어 두 번째다. 항상 ‘남들도 가는데…’라고 생각하다 사고를 당한다. 우회로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다. 이곳에서 우회로는 왼쪽으로 해 청수동암문으로 올라 문수봉으로 가면 된다.

청수동암문으로 오르는 길은 일명 ‘깔딱고개’로 땀 좀 흘려야 하지만 꼭대기 암문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은 겨울에도 좋다. 문수봉을 거친 뒤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으로 애용되는 코스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등산코스>

▲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깔딱고개-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동

▲ 독바위역-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깔딱고개-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동

 

 

 

<사모바위>

 


비봉능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위가 사모바위(사진)다.
능선의 중앙쯤에 있는 사모바위는 모양이 사모(紗帽·옛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처럼 생긴 데서 유래됐다고 서울지명사전에 나와 있다.

‘김신조 바위’로도 불리는데, 1968년 1·21사태 때 공비들이 이곳을 1차 목표 지점으로 삼아 바위 옆 동굴에 은거했었다.
최근에 당시 상황을 소개하는 푯말들과, 동굴 안에는 공비의 밀랍인형까지 만들어 놓았다. 몹시 흉물스럽다.

사모바위에는 조선시대 남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쟁터로 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사랑했던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전쟁이 끝나도 여인의 소식은 없고, 남자는 당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여 살았다는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여인을 찾았지만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여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구기동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바위도 홀쭉해 보이면서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전설의 출처는 찾지 못했으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아픈 역사의 한 대목인 소위 ‘환향녀(還鄕女)’에 관한 얘기로, 북한산 자락의 홍제천은 그녀들과 관련이 있다.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로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조선 땅에서 더 비참한 상황을 맞았다.

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지만, 사족(士族)들은 이들 부녀자에 대해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며 조정에서 이혼을 허락하도록 상소를 올렸고 논란을 빚었다.
‘화냥년’이란 치욕적인 욕설이 당시 만들어졌으니, 대부분의 사족 환향녀들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도 딱한 이들 부녀자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올 때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며 그 잘못을 따지지 않도록’ 정했다.

홍제천은 바로 북한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지금은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걸쳐 흐른다.
그렇다면 사모바위 전설대로, 당시 남편에게 돌아가지 못한 환향녀들이 북한산 자락에서 모여 살았다는 게 전설이 아니고, 그 여인들을 안쓰러워했던 민초들의 마음이 ‘사모바위’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사모바위가 왠지 애틋하지 않는가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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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하산법] '유인원'<類人猿>처럼 무릎 굽히고 보폭 좁혀 걸어야

 

 

 

등산은 누구나 손쉽게 즐기는 국민 스포츠. 전국 무수한 산들은 주말·평일을 가리지 않고 등산객들로 미어 터진다.

살을 빼고, 심폐 지구력을 기르며, 스트레스까지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최상의 운동이라는 게

등산 예찬론자들의 ‘변(辯)’이다.


등산은 그러나 생각만큼 간단한 운동이 아니다.

의욕만 앞세우다 자칫 발목이나 무릎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으며, 심한 경우 관절이나 관절 주변 조직이 찢어져

수술을 받아야 한다.

관절이나 주변 조직의 부상은 만성 관절염으로 연결되기 쉬우며, 만성 관절염은 노후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등산으로 인한 관절 손상은 대부분 산을 내려올 때 발생한다.

서울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 진영수교수는 “하산 시 무릎이나 발목 관절에 전해지는 충격은 체중의

평균 4.9배(경사도에 따라 3~6배)며, 배낭의 무게까지 합치면 그 이상이 된다”며 “관절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 범위보다 과도하게 힘이 가해지면 관절을 보호하는 인대가 손상 받거나 인대가 부착된 뼈의 골절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대전 엄정형 외과의원 엄의용 원장은 “산을 내려올 때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 상태여서 힘없이 터벅터벅

팔자 걸음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충격이 더 커진다”며 “산을 내려올 땐 무릎을 조금 굽혀

무게 중심의 이동 거리를 줄이고, 보폭을 좁혀서 가능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무리한 등산은 근육통, 발목 염좌, 관절염 등의 원인이 된다.>

 

 

내려올때 충격, 경사따라 체중의 3~6배

 

'삼단 폴' 두개 사용하면 관절 부담 줄어


“오늘은 백운대에서 도선사까지 한 시간 만에 내리 달렸네.”


이런 자랑을 하는 사람과는 등산을 함께 하면 안 된다. 건강해지기는 커녕 외려 건강을 망친다.

특히 무릎이 손상 받기 쉬운데, “한창땐 날아 다녔다”고 말하는 베테랑 등산인들 중 상당수가 무릎 통증으로 고생한다.

 

무릎의 손상은 대부분 잘못된 ‘하산법(下山法)’에서 비롯된다.

내려 올 땐 온 몸의 체중이 무릎에 실리기 쉬우므로 무릎이 다치기 쉽다. 비만인 사람은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려와야 등산의 건강효과를 100% 만끽하면서 무릎도 보호할 수 있을까?

 

첫째, ‘유인원(類人猿) 보행법’을 사용해서 가급적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흔히 산에 오를 땐 힘들고 숨이 차서 천천히 오르고, 하산 시엔 뛰다시피 내려오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대개 무릎을 편 상태로 발을 아래쪽으로 내딛기 때문에 무릎에 더 큰 충격이 전해진다.

유인원 보행법은 마치 원숭이가 걷듯 무릎을 살짝 굽히고 등도 약간 앞으로 숙여서 걷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에 힘이 더 많이 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만큼 무릎에 가는 충격은 덜어진다.

초보자는 작은 산을 이와 같은 요령으로 몇 번 오르내리며 허벅지 힘을 키운 다음 높은 산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둘째, 지팡이를 가급적 두 개 사용하는 보행법을 익힌다.

흔히 ‘삼단 폴’이라 부르는 지팡이는 낚싯대처럼 필요할 때만 길게 뽑아 쓸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다소

거추장스럽지만 일단 몸에 익히면 마치 다리가 하나 또는 둘 더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하산 시 무릎 손상을 방지할 뿐 아니라 오를 때도 다리에 힘이 훨씬 덜 들어간다.

 

삼단 폴은 하나를 사용하는 것보다 두 개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다.

하나를 쓸 때의 효과와 두 개를 쓸 때의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손잡이가 기역(ㄱ)자로 휜 것은 불편하며, 일자형보다는 약간 고개를 숙인 듯한 것이 더 좋다.

폴을 내리 디딜 때 손목을 덜 꺾어도 되기 때문이다.

 

폴 손잡이를 넓적 끈을 밑에서 위로 낀 다음 끈과 더불어 손잡이를 잡는 것이 좋다.〈작은 사진〉

이렇게 잡아야 오래 폴을 이용해도 손아귀 힘이 빠지지 않는다.

 

삼단 폴 길이는 등행 시와 하산 시 달리 한다.

등행(登行) 시는 평지에서 손잡이를 잡고 섰을 때 손이 팔꿈치보다 약간 아래로 처진 듯한 길이로,

하산 시는 약간 들린 듯한 길이로 조절한다.


 

 

 

한편 완만한 경사면 하산 때는 걸을 때 팔이 자연스레 교차되는 순서 그대로 폴을 내딛는다.

급한 경사면에서는 아래쪽에 두 개를 동시에 내려디딘 다음 발을 하나씩 천천히 내리는 방식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무릎 통증이 있으면 그 다리를 먼저 내린다. 폴을 내딛는 지점은 폴의 끝이 조금 들어가는 단단한 흙이 좋다.

바위 면을 디딜 때 아래쪽으로 경사진 곳은 절대 디디면 안 된다.

 

셋째, 바위와 밀착력이 좋은 등산화를 장만한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불암산, 수락산 등은 바위가 많은 산으로 미끄러져 실족하는 일이 잦다.

이런 산에서는 창의 밀착력이 좋아야 하는데, 일반 운동화의 창은 바위에서 매우 미끄럽고, 비싼 외제 등산화라 해서

밀착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환경보호 문제로 창에 일정 강도 이상을 주도록 한 규정을 지키느라 밀착력은 형편 없는 유명 브랜드 제품도 있다.

등산 장비점에 가서 ‘꾼’들이 사용하는 밀착력 높은 등산화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운동화 같이 목이 짧은 등산화보다는 긴 것이라야 발목 힘도 덜 들고 접질릴 위험도 줄어든다.

또한 하산 시 발이 앞으로 쏠리며 발톱이 닿아 아프게 되는 일도 없게 된다.

 

넷째, 바위 위에 모래가 살짝 덮인 곳을 피해야 한다.

실족위험이 가장 높아, 멋 모르고 내디디면 그대로 뒤로 나뒹굴게 된다.

흙이 묻은 바위면도 조심해야 한다. 때문에 흙 길을 걷다가 바위 지대에 다다르면 신발 창의 흙을 탁탁 털어내야 한다.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빗물만 젖어있는 바위는 흙이나 모래가 묻은 곳보다 훨씬 덜 미끄러진다.(050921)

 

임호준 기자 imhojun@chosun.com
안중국·월간산 기자 tksdkr@chosun.com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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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4시 모닝콜이 요란하게 휴대폰으로 울려온다.

 

"k2산악회 입니다.

오늘은 북한산 산행가시는 날입니다.

어서 준비하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다보니 서울이란곳은 특별한 볼일이 없는한 자주 가는곳이 아니다.

시골촌놈이 서울 간다고 기에 설례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챙겨가지고 집결장소에서 승차하여 서울로 향한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북한산 드디어 나는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로 새벽길을 가르며 서울로 가고있었다.

아침 7시 30분에 불광동에서 하차하여 준비운동을 하고서 용화통제소를 지나서 산행길에 올랐다.

 

 

이날도 역시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시야가 뿌였게 흐려져 있었다.

고개들어 산위를 처다보니 온통산들은 기암괴석으로 울통불퉁 불거져 있었다. 

첫번째 봉우리에 올랐는데,이봉우리가 족두리봉(수리봉)이라하였다. 

 

 

족두리봉을 지나서 사방팔방을 두리번 거리는데 어디를 보아도 모두가 우뚝우뚝 �아있는 기암괴석들 뿐이였다.

두번째 맞이하는 봉우리가 있었으니 여기는 향로봉이다.

 

 

무시무시 높은 향로봉에서 조심조심 급경사를 하산하여 다시금  비봉가는 길에는 험난한 바위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봉의 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공간이 협소하고 인파가 너무많아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내려왔다.

 

 

비봉을 내려와서 또하나의 작은암산을 넘고넘으니 사모바위가 보인다.

사랑하는 낭자를 사모하며 그리다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라고 한다

 

 

이리보아도 절경이고 저리보아도 기암괴석이 절경이라 감탄사가 절로난다.

말로만 듣던 북한산이 이렇게 아름다운줄은 예전에 미처몰랐다는 생각을 하면서 승가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승가봉을 지나서 험준한 바위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암벽을 기어올라가니 문수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오늘 산행의 거의 중간쯤되는 지점이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가끔은 뒤돌아 보면서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다보니까 벌써 3시간이 훌쩍지났다.

 

 

 

문수봉에서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 닦아가며 오이하나 우적우적 깨물어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들려서

두리번 거리다 보니까 절벽아래 아득하게 문수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문수봉을 지나서 청수통암문이라고 성문이 보였다.북한산의 열두문 중에 하나인 성문이라고 하는데,

이곳을 조금지나니 성곽위쪽에 넓은 공간에 모두 모여서 오손도손 점심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곳이다.

 

 

 

점심을 마치고 나한봉과 나왕봉을 통과 하기로 되어있는데 여기서 부터는 봉우리 이름이 햇갈리기 시작했다.

워낙에 많은 봉우리들이 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메모준비를 못한데다가 이제는 그놈의 기억력이 영................ㅠㅠ

 

 

몇시간의 산행으로 이제는 시간 개념을 잊혀져 가는듯

얼마를 오르고 내려왔더니 부왕동암문이라는 성문이 보였다.

 

 

 

진행방향은 중취봉인데 사방을 돌아가면서 카메라 샷다를 눌러대다보니까,

진즉에 어떤사진이 증취봉인지 기억이 안나요............ㅠㅠ

 

 

중취봉에서 멀리로 보이는 삼각산이 보이는데 줌으로 당겨보았는데,

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인수봉이라고 한다.

옆에 그리고 앞에 있는 봉우리들은 좌측에 백운대 우측에 만경대 앞쪽으로 노적봉이 아련히 보인다.

 

 

 

 

 증취봉을 지나서 용혈봉 그리고 용출봉을 넘고 넘으면서

하루종일 입이 모두다 벌어져서,다물어 지질 않았다. 왜냐구요? 감탄사가 길어서 겠지요.

 

  

용혈봉 용출봉을 지나니 이제는 고도가 낮아지는 지점이라 아래쪽으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얼마후 가사당암문이라는 성문의 현판이 보였는데 성곽위에 축조된 돌들이 최근에 복원된듯이 깨�하게 보였다.

 

 

 

가사당암문을 지나서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니 의상봉을 맞이할수 있었다.

이번 북한산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하는 길은 숲속으로 계속 경사로를 따라서 1시간 가량은 주변에 특별히 볼거리는 없었다.

 

이번 산행코스는 불광동구기샘터 - 수리봉 -향로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문수봉 - 청수동암문 - 나한봉 - 나월봉 - 부왕동암문 - 중취봉 - 용혈봉 - 용출봉 - 가사당암문 - 의상봉 - 용암사 - 주차장 =약 13km/7시간의 산행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번 산행을 하면서 느낀점은 전국에 명산을 많이 다녀봤지만 북한산은 색다른면을 볼수있어서 좋았다.

자연은 정말로 위대하기만 하다는 감탄과 함께,기암괴석과 암능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끽하며,

절벽을 오르고 내리는 묘미를 느끼고 구슬같은 땀방울 손등으로 훔쳐내며시간 산행으로 때로는 체력과의 싸움도 하지만

또하나의 산을 정복한 성취감을 가슴에 뿌듯하게 안고서 돌아왔다.

이 가을이 가기전에 멀리있는 금강산을 그리워 하지말고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북한산에서 가을비경부터 느껴보자!!

출처 : 즐기면서 세상사는 이야기
글쓴이 : 털보아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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