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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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알게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팔려나가고 있는 책이 있다. 별다른 광고나 홍보도 없었지만 입소문은 입소문을 타고 전해졌고 독자들은 이 책을 꾸준히 찾아 읽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 책은 텍스트만의 힘으로 독자들을 하나둘씩 끌어들였고 읽은 독자들을 드 보통의 추종자로 만들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사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껏 모든 문학이 가장 사랑하고 아껴왔던 가장 대표적인 테마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길거리에서 흐르는 유행가 가사에서 질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 단어. 그렇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 시대와 지역, 사건이 복잡하게 수많은 개성들 속에 섞여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되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이제껏 쓰고 읽어왔던 수많은 문학은 연애를 주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다. 연애는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치 않을 테마이자 우리가 영원히 읽어야 할 텍스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글이되 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시절 지적인 사랑담론에 목말라 했던 지식인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급기야는 절대적인 심정적 지지를 이끌어냈던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에서 그 발상의 단초를 빚지고 있기도 하다. 깊고 섬세한 언어를 통해‘사랑’의 정신과 철학을 정치하게 분석함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의 통절한 깨달음을 이끌어냈던 롤랑 바르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알랭 드 보통이 이를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여 표현한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도 무릎 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이 사랑의 테마를 자신만의 촌철살인적인 관찰력과 고상한 위트, 발랄한 상상력으로 철학적 연애소설이랄 수 있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가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지, 어떻게 다투고 미워하고 다시 화해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의 절정에 다다르는지 그리고 열정이 식고 난 뒤 어떻게 만남을 정리하게 되었는지 평범한 남녀가 거치는 사랑의 전 과정을 다루었다. 연애 당사자가 자신의 마음속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면서 1인칭의 관점에서 썼다. 이 책은 완전한 픽션이었다. 그러나 연애의 핵심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고 묘파해냄으로써 독자들의 뜨거운 동감 100% +자신의 상황에 감정이입하기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으며 급기야는 현대의 청춘남녀들에게 연애의 교과서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전기와 소설을 결합한 새로운 글쓰기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이 책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사랑이 아닌 한 인간, 그것도 젊은 여성에 대한 전기를 써보겠다는 욕구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전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저명하거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쓴 작가와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 대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책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식화해버리는 전통적인 전기 집필의 규범을 과감하게 거부하는 도전적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기와 전기에 대한 문학비평, 연애소설을 골고루 혼합한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독자는 글을 읽어가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이 인물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현실이 허구화하는 또는 허구가 현...실화하는 경계를 뒤집는 데서 오는 묘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글은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팩션의 양식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어느 한 부분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서로를 북돋우는 이상적 글쓰기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가 평범한 한 젊은 여성의 전기를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은 사랑에서 왔다. 글 내용에서 여자친구의 가혹한 비난과 함께 실연을 경험한 주인공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과 만난다. 멀리서 일별하고 나서 그렇고 그런 뻔한 여자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물론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젊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공개하고 그 공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한 독자들은 작가와 주인공들과의 성공적인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는 위트 넘치고 사려 깊은 한 젊은 여인의 전기(傳記)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얻게 되었다.
한 사람을 깊이 읽는다는 것,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인간관계 3부작 가운데 한 편이다. 다른 두 편 『왜 나를 너를 사랑하는가』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도 독특한 사유와 개성적인 관점을 가지고 일상의 연애를 바라본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남녀관계에 대해 다룬다. 보통은 이 책에서 사람들이 낭만적 사랑을 할 때 겪는 어떤 보편적인 순간들을 정의하려고 시도한다. 장르상 '소설'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책들은 이야기의 전개보다 사랑과 교제에 대한 단상들에 중점을 두고 있어 아마도 에세이라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보통은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그 여자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연애의 모든 순간들을 스틸컷으로 잡아두고 메스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이성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글을 풀어나간다. 여자에게 접근하는 저자의 목적이 전기를 쓰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쓰는 자가 글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쓰임을 당하는 자와의 연애이다. 전기는 한 사람을 깊이 있는 장르이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을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읽는다. 이사벨이라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저자는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따지고 분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사벨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완벽히 설명될 수도 없고 온전히 이해되기도 힘든 살아 있는 인간, 젊은 여자다. 결국 저자가 사랑했던 건 이사벨이라는 텍스트였지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살아 있는 인간 이사벨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에 저자가 자신의 이런 ‘읽기’에 대해 겸손하게, 침묵에 빠진 것은 그의 이러한 잘못을 수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이해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이 시도하는 이 연애의 묘파가 우리에게 얼마간은 새롭게 얼마간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감정으로만 여겨졌던 이 연애를 철학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남녀만의 관계를 넘어서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 시도는 이사벨이라는 아이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책은 이사벨의 프라이버시를 공개함으로써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미묘한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이 개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보다 너그럽고 깊이 있는 시선을 담아낸다. 이런 작가의 방식을 전개하기 위해서 이사벨이 출현하는 모든 에피소드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다.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면 ‘나의 이사벨은 당신의 이사벨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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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시작하며 어린 시절 가족 관계 음식과 이사벨 기억 사생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본 세상 남자와 여자 심리 결말을 찾아서 끝내며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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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
비일상적인 것의 가치는 복잡한 과거에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전기 집필 전통의 숨겨진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리라. -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p.23)
일반적인 전기와 전혀 다르게 전기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이사벨의 연대기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을 쓰기에 앞서, 내가 그녀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부터 간략하게나마 쓰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들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가 파악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 이해한 것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편견이 개입됐고, 통찰은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p.46)
다른 사람을 잘 알지 못했을 때, 우리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성급하게 결정해버린다. 누군가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판단-우리의 무지만을 요구하는-을 보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p.55)
우리는 사적으로는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공적으로는 사소하게 치부해버리는 것들 속에서 한 개인의 본질을 찾는 경향이 있다. 연인은 상대방의 종교, 직업 혹은 문학에 관한 취향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 뒤따르는 나머지 자잘한 문제들을 설명하는 능력은 부족할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시끄럽고 게걸스럽게 먹는다거나 나이프나 포크를 제대로 놓지 않는다거나, 빵 조각으로 고기 소스를 닦아 먹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에 대한 견해는 어떨까. 상대방에 대해 잘 파악하기도 전에 관계의 밑바닥에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에 상대의 특성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해버린 것이라면 또 어떨까. (/p.114)
사회는 우리에게 명료함을 강요하고, 우리는 의식 속에 있는 통사법을 벗어난 끈적끈적한 생각의 덩어리를 끄집어낼 수 없게 된다. 소시지 안에 내용물을 채워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말하는 것, 동사와 명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형용사를 곳곳에 배치하는 것, 깔끔하게 문장을 끝맺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전체의 체계를 구성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p.137)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절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 (/p.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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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저] 알랭 드 보통은 1969년에 스위스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런던에 살면서 런던 대학교에서 대학원생 철학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낭만적 운동(The Romantic Movement)>(1994), <입맞추고 말하기(Kiss & Tell)>(1995), <프루스트가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1997),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2002)의 저자이다. 그의 작품은 20여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지난 11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부씩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현재는 런던에 살면서 건축에 관한 책을 집칠하고 있다. |
이강룡 [역] 한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서강대국문과 대학원 재학 중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인터넷한겨레 기자 및 기획자로 일했으며 작가, 번역가로 활동한다. 인터넷 시대의 글 읽기 블로그 시대의 글쓰기』를 썼으며,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과 존 백스터의 『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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