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자/민구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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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민 구

 

 

 

나는 종종

부엌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그곳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가 있고

굶주린 사자가 출몰하는 아궁이가 있다

우리는 잿더미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려다

그만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건드려

손을 데기도 했다

 

여자는 부뚜막 앞에 앉아

사자의 몸에 불을 지르곤 하였다

그러면 식구들은 쥐죽은 듯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썰매를 타도 사자가

달궈놓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밀렵을 하던 이웃마을 사내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며칠 뒤 우리 아궁이에서 발견되었다

여자는 사내의 뼈를 곱게 빻아 호박이 나지 않는

밭에 뿌리고 그의 머리에서 가죽모자를 벗겨

내게 씌워주었다

 

다음날 눈이 왔다

 

우리는 올해 수확한 감자를

사자의 겨드랑이에 찔러 넣고 불을 질렀다

사자가 미친 듯이 몸부림쳤지만

여자와 나는 그냥 웃었다

 

그건 벼룩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문장웹진》 2011년 2월호

 

민구 / 1983년 인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오늘은 달이 다 닳고」로 당선.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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