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I MUA I KA NOA-1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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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27일

고등학교 후배 동석과 정대를 끌여 들여 시작한 의류 무역회사.

보기좋게 딱 구개월만에 오늘 사무실 정리에 들어 갔다.

이게 벌써 내 생의 몇번째 실패인지 이번엔 눈물조차 나질 않았다.

동석과 정대가 끝끝내 나타나질 않아 종휘가 사무실 정리를 도와 주었다.

녀석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더욱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2003년 3월1일

설상가상,사면초가.

삼월의 첫날부터 합의를 봐야 했다.

어젯 밤 만취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내가 미친놈이다.

다행히 그 할아버지가 경미한 찰과상이였기에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파란불의 횡단보도,그것도 경찰서 바로 앞.

그냥 면허취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래.그러자.

이제 더이상 무슨 나쁜 일이 남아 있으랴?!

 

2003년 3월3일

어머님이 우셨다.

전화기 너머로 내 어머님이 우셨다.

당신도 이제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더이상은 어머니께서도 지쳤다고.

 

2003년 3월9일

이제 더이상은 보지 말자고 한다.

볼 수 없다라고 했지만 그게 그거다.

지랄같지만..그래 이해한다.

그래,씨발 이해한다.

이제 떠나가라.

5년동안 고생많았다.

꿈도 미래도 아무런 희망 한조각 남아 있지 않은 나란 놈.

그래,그래.

이제는 너를 놓아 주마.

보내주마.

 

3평남짓한 여관방,늘어진 소주병들에 빈 공간이 없다.

 

사랑하고 사랑했다,주희아!

 

2003년 3월13일

이렇게 끝이 없고 치욕스런 빚잔치는 정말 처음이다.

차도 팔고 시계도 팔고 입고 있던 옷까지 다 팔았다.

그래도 끝임없는 청구서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 가랑이 찢어 졌다.

그래도 원망은 없다.

사랑했다고,한주희!

 

슬며시 '자살'이란 두 글자가 떠오른다.

 

그렇게 다시 점점 소주병이 쌓여 간다.

얼만큼을 마셔야 도대체 내일 눈을 뜨지 않을 수 있는 건가?

도대체 몇병이나 더 마셔야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건가.

 

죽을 용기도 없는 못나고 못난 놈.

눈물,콧물이 범벅이다.

 

2003년 3월20일

첫조카가 생겼다.

볼 용기가 없다.

누나야 미안...!

 

2003년 3월21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형,대순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호스트하러 간단다.

생각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란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미국이라.

미국이라..!

너무 멀어 아련한 느낌이다.

마치 어렸을 적 꿈 한자락같다.

 

2003년 3월26일

그래,결심했다.

몇날 밤을 끙끙 앓았다.

가자 미국!

그래,해보자 호스트! 

 

2003년 3월27일
매분매초가 참 바쁘다.
대순형 말만 듣고 황급히 결정한 미국행.
마음을 결정하니 오히려 불안함이 더 커졌다.
오늘은 브로커가 준비하라는 서류일체를 띄러 다녔다.
수천마일을 날라 가서 또 한번의 새로운 인생이다.
훗..이것도 소위 American dream이려나?

 

 

2003년 4월1일
인터뷰에서 보기 좋게 떨어 졌다.
정말 되는 일 없다.
철썩같이 자기만 믿으라던 브로커를 앞에 앉혀 놓고 낮술을 마셨다.
나랑 같이 들어 가기 위해 내 인터뷰 결과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정대,동석.
두동생에게 또 무어라 이야기 해야 할까?
브로커는 사정이 급하면 차라리 점프가 낮다며 멕시코행을 부추긴다.
몇일 뒤 바로 출발 가능하다고 한다.

대순형은 이미 마음을 결정한 표정이다.

그리고 이건 100% 확실한 상륙작전이라며 술취한 나에게 또다시 헛된 희망을 쑤셔 넣고 있다.

 

2003년 4월5일

처음으로 조카를 안아 보았다.

여자 아이인데,이름은 은결이라고 했다.

이렇게 작은 갓 태어난 인간은 처음 안아 보는 것이라 너무도 두려웠다.

잘 커다오,사랑하는 내 조카 은결아!

삼촌 돈 많이 벌어 올께.

눈물이 아이 얼굴로 떨어 질까 두려워 얼른 누나에게로 되안겨 주었다.

 

2003년 4월6일
무능력에 기인한 그 숱한 실수들.
그렇게 내 지긋지긋한 불행과 연계 되어진 많은 이들에게 얼룩을 남기고 떠난다.
어떻게 이렇게도 몇몇년동안 힘겹고 힘겨운 사투인지.
이젠 이런 가시밭길쯤에는 이력이 날만도 한데 아직 익숙해지지 않음은 내가 아직도 긴 여정을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일까?
치가 떨리도록 재수없는 내 인생에 그 누구도 끌어 들이고 싶지 않았다만 어쩔 수 없이 연을 맺게 되는 사람들.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들.
말로 내 뱉어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일말의 진심은 날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이였다면 느낄테지.
이것도 아직 교만한 바램이려나?

아아..오늘의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다.

 

2003년 4월7일
대순형네 식구 총 열명 그리고 내 동생 두명과 나를 포함,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13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국가대표 선수단 단체 출국이다.
다들 말은 한마디 없어도 서로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앞으로 우리 모두는 L.A의 오픈 가게 KOBOS라는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된다.

코리안 보이즈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팀의 마담이 될거라는 대순이 형의 인솔로 모두들 이리저리 출국수속에 정신이 없다.

각자 얼마씩 가져 왔는지 다 기입하란다.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100원짜리 동전이 달랑 하나다.

그래서 그냥 0이라고 기입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이쁜 승무원들의 안내로 다들 무사히 제자리에 작은 둥지를 틀었다.

드디어 출발이다,미지의 세계로.

 

꿈조차도 안 꿔봤던 멕시코.

정말 너무 멀고 막막한 느낌뿐이다.

이제 언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갑자기 전신이 찌릿찌릿해지고 극렬한 공포심에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가자 갑자기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렇게 겨우 참고 있는데,어머니 얼굴 위로 -제기랄- 5년을 만나다 헤어진 주희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곧 사방이 어둑해졌다.

그 기회를 틈타 서러운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흘러 내리길래 그냥 모른척 흐르도록 놔두었다.

  

2003년 4월8일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때쯤 우리는 드디어 멕시코란 낯선 땅에 도착했다.

너무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극심한 환경변화.

나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말도 제대로 안나온다.

놀러 온 곳이 아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미국을 들어 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국경에서 잡히면 죽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공황상태가 올 지경이였다.

 

그리고 14시간의 어마어마한 비행시간은 실로 나를 엄청난 곳에 데려다 놓았다.

멕시코 시티 공항.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층층이 알록달록한 큰 챙의 모자를 쓴 붉은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공항내 여기저기서 비둘기들이 날라 다닌다.

게다가 너무 덥다,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가슴팍과 겨드랑이가 흠뻑 젖은 경찰들이 이곳 저곳에 개머리판이 나무인 구식 총을 메고 돌아 다닌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질 않았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공항내 모든 사람들이 땅거미가 지는 시각 도착한 패셔너블한 새하얀 동양인 남자 13명에게서 노골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너무도 난감했다.
기내에서 단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아랫배가 요동을 치며 알려 준다.

순간 나는 과감히 모든 시선들을 뿌리치고 부랴부랴 화장실을 찾아 뛰어 갔다.

들어 서며 깜짝 놀랬다.

서로 초면인듯한 사람들이 서로의 볼일 보는 모습을 보며 대화중이다.

화장실에는 문이 없다.

이곳만 그런건지 오늘만 그런건지 하여간 문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 접해 보는 너무도 충격적인 생소한 환경.

 난 그냥 아픈 배를 조금 더 세게 움켜 잡을 수 밖에 없었다.
30분정도 늦게 나온 현지 브로커의 안내로 MANANA라는  이름을 가진 한 허름한 모텔에 도착했다.

멕시코 시티가 수도가 아니였던가?

오는 길에 차로 달려 들어 돈을 달라는 거지 꼬마들을 정말 한 50~60명은 만난 것 같다. 

내가 무슨 영화의 한 장면으로 쑥 들어 온 느낌이였다.

화장실을 들락이고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자 우리 모두는 겨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한국에서 준비해 온 소중한 소주팩을 딸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의 첫날밤.

이렇게 내 조국의 모든 것들이 절실히 그리웠던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어릴적 TV만화,'이상한 나라의 폴'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어머니,어머니..!

 

2003년 4월9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샌디에고와 국경 접점 지역인 티와나로 또다시 이동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국내에서 사전 공수된 비자가 있는 여권에 우리의 사진을 오려 붙여 위조된 여권으로 국경을 통과하게 된다고 했다.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모든건 복걸복이라고 한다.
매분매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극도의 불안감에 입술이 타들어 간다.
도대체 내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걸까?
또한번 적셔진 눈시울을 아무도 몰래 연신 훔쳐 냈다.

 

 

2003년 4월10일
티와나에 도착하니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hummer가 길가에 선인장 가득한 일반 도로를 돌아 다닌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몇일 전 국경을 넘다 멕시칸 몇명이 죽었고,한국 여자 두명이 현지 브로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된 사건도 얼마전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참 인생막장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한국이란 그 나라..왜 나는 그곳에서 살 수가 없었을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003년 4월11일

동석이와 정대가 운전을 했던 브로커와 함께 국경에서 붙잡혔다.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동생 둘이다.

참 끝내준다,끝내줘.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윽고 넘어간 후발주자 중 제일 나이가 많았던 한 형의 검거소식이 연달아 우리의 뒷통수를 후려 갈긴다.
그래도 꾸역꾸역 8명을 넘겨 보낸 우리의 장한(?) 브로커.
해가 어둑해질 무렵,마지막까지 남은 대순형과 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오늘 붙잡힌 세명때문에 샌디에고 국경이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자,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독한 두려움에 입안이 빠짝 말라 버렸다.

 

 

2003년 4월17일
모텔을 세번이나 옮기며 첩보작전을 펼친 지난 일주일.
오늘에서야 얼굴을 비친 브로커는 나는 비슷한 사진이 없다며,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대순형까지 넘어 가고,나는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남은 돈도 없다,실낱같은 희망은 점점 옅어 진다.
국제미아가 되어서 이곳에서 까맣게 죽어 가는 내 자신을 화장실에 하나 있는 금이 간 작은 거울을 통해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자꾸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짐을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사실 L.A가게에서 놓아 버리면 난 그냥 여기서 끝나는 거다.

저 브로커가 내려와서 최소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난 그냥 여기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거다. 

 

 

2003년 4월24일
생일이다.
스물하고도 여덟번째 생일이다.
생일을 기념해 89cent짜리 마루찬 컵라면을 두개나 샀다.
마지막 호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목구멍에서 라면이 도통 넘어 가질 않았다.

 

 

2003년 4월30일

새벽 세네시부터 짖어 대는 미친 멕시코 새들때문에 억지로 눈을 떠 TV를 켰다.

전 채널이 스패니쉬다.

 

"우노,도스,뜨레스,꽈뜨로~

무이 보니타,세뇨리타~

아스피란도 아미고~"

 

이젠 정말 골이 깨지는 것같다.

울퉁불퉁 높은 회벽 끝에 달린 작은 창.

그나마 굵은 창살에 덮여 또 반은 가렸다.

 -저 창은 무슨 형무소나 정신병원을 연상시킨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 정말 안간힘을 쓴다.

 

 

 

to be continue..

 

 

 

 

출처 : CLUB OSHALE LION
글쓴이 : OSHALE LI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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