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1일
오늘부로 명함 돌리기를 서로 합의하에 잠정 폐업했다.
결과가 너무 없다.
하지만 한층 단단해진 나를 느낀다.
아주 단단해진 내 아킬레스 건을 느낀다.
2005년 2월2일
그동안 누구보다 더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초초형.
어제도 가게에서 돈을 못벌더니 오늘 아침 일용직 시장으로 새벽부터 뛰쳐 나갔다.
한국에 두고 온 와이프에게 생활비를 부쳐 줘야 한단다.
그래,맞다 초초형.
매우 어려운 숙제는 그것을 어렵게 풀 때 어려울 뿐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간단한 숙제가 된다.
이런 경험을 애써 하게 되지는 못하겠지만 닥치지 않으면 쉽게 말해서도 안되고,
더구나 나의 일이 아니면서 위로하는 척 할 수도 없겠다.
늦은 오후,파김치가 되어 온 몸에 페인트를 뒤집어 쓰고 온 초초형에게 나는 조용히 떨 한모금을 건넸다.
2005년 2월4일
오랫만에 내가 아끼는 까만 원버튼 수트을 입고 늦은 출근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때마침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 나오는 초초형과 맞 부딪혀 버렸다.
쟈켓은 라면국물 범벅이 되어 버려 입을 수가 없다.'
순간 비슷한 쟈켓이 우빈형에게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먼저 출근한 우빈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역시 우빈형,알마니다!
핸드폰을 안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손끝에 먼저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무엇이 감지되었다.
그의 여권이다.
1초정도 망설였을까?
나는 이미 첫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본나이와 이름을 본 순간.
나의 기막힌 연상작용에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그는 74년생이 아닌 70년생이였고 본명은 전철종.
철종 VS 철종
-갑자기 보지도 못한 70년대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생각났다.-
나는 터질듯한 심장으로 가게에 출근을 했다.
그리고 알수없는 묘한 감정에 퇴근때까지 형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내 예상대로라면은 오년전 한국에서 사라진 전만종의 친형일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전만종게이트의 또다른 주인공이란 말이다.
설마설마 했었는데 거의 99% 진짜같다.
"I Wanna Believe Something."
모두 허구란 말인가?
무엇이 허구란 말인가?
뜻밖의 여행이다.
2005년 2월5일
눈치빠른 우빈형이 먼저 나를 부른다.
그리고 봤냐고 묻길래 고개를 끄덕 거려 줬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형이 내 눈을 날카롭게 몇초 응시 하더니 말했다.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고 말이다.
무엇을 비밀로 하자는 건지 정확히 물어 볼 수는 없었지만 난 그저 알겠노라 몇번이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서로 본명이 똑같다며 한참을 신기해 했다.
2005년 2월12일
사람을 오랜 기간 얻지 못하게 되면 누구를 만나도 쉬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도 모르는 깊은 패배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다.
하지만 요즘.
새로운 것을 보노라면 무엇이든 좋아지고,넓은 초원의 희미한 빛깔마냥 그저 그렇게 변해 가는 나를 느낀다.
우습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계속 관심가지며,타인의 기쁨에도 박수를 보낼 뜨거움이 아직 남아 있다면 지금 나의 존재가 그리 밉지만은 않을 것이다.
2005년 2월14일
그 어떤 스코어도 올리지 못한 발렌타인 데이.
2005년 2월17일
가게를 마치고 우빈형과 둘이서 소주를 마셨다.
나는 취중에도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가슴을 느꼈다.
비로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질문자체가 웃기긴 하다.-
그가 앞에 놓인 가득 채워진 소주잔을 깔끔하게 비운다.
천천히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문다.
테이블에 깔려 있던 그의 시선이 나의 젖은 촛점없는 눈동자에 맞춰 진다.
그렇게 비로소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정권이 넘어 가던 무렵에 그의 부모님께서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1970년 8월30일 서울에서 우빈형,전철종은 태어 났다.
세기의 결혼식이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안기부 차장 동생이였던 아버지와 당시 대한은행장의 고명딸이였던 그의 부모님들의 정략 결혼.
아버지는 큰 꿈을 가지신 기업인이셨다.
항상 1등이 되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전철종이 태어난 이후 점점 가세는 기울어져 간다.
계속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던 골프장까지 모두 처분해야 했던 벼랑끝에서,
아버지께 담보없는 무모한 대출을 감행하신 그의 할아버지마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원로배우 제갈훈씨의 아들 황종옥등과 함께 했던 이십대 초반 뉴욕에서의 화려한 유학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와 자진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를 하고 나니 아버지께선 경제사범으로 인도로 도피중이시다.
바로 밑 동생 만종은 명동사채 시장에서 조금씩 이름을 날리며 고군분투중이다.
전철종은 지인의 소개로 곧바로 러시아로 날아가 대우에 취업.
하루에 1000대라는 기염을 토하며 러시아 텔레비젼 세일즈 업계의 대부가 된다.
정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한국으로 귀국.
그때 이미 기업 인수합병의 귀재가 되어 버린 만종과 의기투합.
그들만의 삼일천하를 일구어 낸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다.
만종이 구속이 되었다.
정재계가 난리가 났다.
그의 검은돈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점점 사건이 시끄러워 지자 그는 부랴부랴 홍콩으로 피신했다고 했다.
홍콩,태국,필리핀,호주등을 거치면서 그가 가진 돈이 바닥이 났다.
설상가상 한국에서 돈을 송금해 주던 막내 동생 현종마저 잠수에 들어 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예전 약혼녀가 있는 이탈리아로 갔다.
망가진 그를 보며 매일매일 술에 취해 들어 오는 그녀가 너무도 치가 떨리게 싫었다고 했다.
그녀의 술주사가 두려웠단다.
-그런데 지금은 호스트라,이것도 참 극명한 삶의 위트다.-
어디든 그녀를 피해 아무 생각없이 쉴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L.A 이모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하루하루 극심한 무력감에 죽을 지경이였다.
어느날 이모집에 뒹굴고 있던 한국 정보지.
하와이에 있는 '아프리카'라는 나이트 클럽에서 웨이터를 구한단다.
하와이 이런 클럽에 아는 사람이 올까 싶어,무엇에 홀린 듯 이 곳에 전화를 하고 그날 밤 하와이행 비행기에 지체없이 몸을 싣었다고 했다.
어디든 좀더 꽁꽁 숨어 있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와이 도착 다음날 엉겁결에 전철종은 이곳 아프리카에서 '우빈'이라는 호스트가 되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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