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1일
오늘 미국 들어 와서 처음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어 보았지만 자꾸만 자꾸만 흘러 내리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감정에 북받쳐 나즈막히 그 말을 태어나 처음으로 뱉어 버렸다.
"아버지 사랑해요,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 하셨다.
"사랑한다,아들아!"
내 평생 당신께 처음 들어 본 말이다.
목이 메여와 숨이 막혀 올 지경이였다.
전화를 끊고도 얼마나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온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다.
그때 어디선가 불어 오는 한줄기 시원한 하와이의 밤바람이 멈추지 않는 내 해묵은 눈물들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그래..나는 이제 이곳 사람이다.
2005년 1월2일
아버지께서는 명절 증후군이 있었다.
이북에 부모형제를 다 놔두고 서울서 당신의 바로 윗 누이와 함께 외톨이가 되었던 6.25이후 당신께 생긴 극심한 외로움에 관한 증후군이다.
많이 외로우셨다.
많이 많이 외로우셨다.
매일매일 치가 떨리게 부모품이 그리웠고 동생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누르고 눌렀던 그런 감정들이 꼭 무슨 명절만 되면 극에 달했다.
그렇게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울부 짖었고 확인할 수 없는 그들의 생사에 당신께서도 함께 뭍히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나마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행복마저 다 버리려 했다.
당신께서는 남한에서 생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항상 혼자라고,외톨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자신의 너무도 너무도 축복받은 생의 본능인 에로스(eros)를 인정못하셨던 것 같다.
항상 당신을 지켜 주었던 원천적인 힘.
당신의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사랑을 하게 하는 이 뛰어난 본능을 과거의 잊지못할 비극적 경험이 발목을 자꾸 붙잡는다.
그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결국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가 당신을 지배하는 일이 잦아졌다.
생물체가 무생물체로 환원하려는 본능 타나토스.
이것 때문에 생명은 결국 사멸되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자신을 파괴하거나 처벌하며, 타인이나 환경을 파괴시키는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술에 취해 당신의 의지가 소멸되는 순간 항상 타나토스는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고 원하는 소중한 가족들의 마음에 지울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곤 했다.
요즘의 나를 바라 보면 내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아 있다.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이 여러번이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평생 외항선을 타시며 그 거친 바다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신 나의 아버지.
당신의 그 수많은 재능은 그 검푸른 대양 속으로 삭히고 삭히셔야만 했을 게다.
지금 이순간 평생 모진 바다 노동으로 두툼해지신 거칠고 거친 내 아버지손이 떠 오른다.
많이 그립다.
참 많이도 그립다,그 손이.
2005년 1월12일
몇일동안 가게를 쉬고 있다.
오늘 역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시간이 남아 돌면서도 모든 할 일 제쳐 두고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깨어 있기가 싫었다.
나의 의식속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모든 물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사진이며 편지등을 정리해 옷장 밑으로 밀어 버렸다.
눈물도 흘렸다.
누구를 위한 무엇 때문에 나는 눈물일까?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결국은 나를 위한 눈물이라는 것을.
그 사람을 잡으려는 욕심, 동시에 내 생활을 번 듯이 지키려는 욕심.
물론 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욕심 둘다 너무 강해서 거기에 충족하지 못하는 내 자신과 상황이 너무나 서럽고 억울했던 것이다.
그래,나는 아직도 나를 호스트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나는 아직도 그녀가 맛사지 팔러에 일하는 여자인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힘들면 힘든대로 놔두자.
이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더이상 최악의 상황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므로 내 생활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밉진 않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듯 그 사람도 정말 각별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나와 지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연이 없음이 용기가 없음이 안타깝고 초라할 뿐이다.
이제는 정말 놓아야지..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소유에 대한, 애착을 버리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나는 이때까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오래 그 인연을 잡아 왔을까.
결국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는 나인데.
그 사람에게 쏟았던 많은 에너지를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 쏟아 보고 싶다.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터질 것 같은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혼자만의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과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의 끝까지 가보니 그 고통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결국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나 없이는 그 사람도 없고 내 생활도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을 놓으려는 마음에 그 사람과 좋았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다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잡으려 한다.
그래 인정하자.
좋았던 때는 좋았던 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동안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때까지 쏟았다.
거기서 솟아나는 많은 감정들도 느껴 보았다.
이제 버리자.
버려야 모든 것을 갖는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2005년 1월15일
아니다!
'그런 나' 도 정말 '소중한 나' 이고 '그 인연으로 놓는 나' 도 '정말 소중한 나' 이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데로 바로 보고 파고 들자.
이젠 그래보자.
2005년 1월23일
지오와 함께 빌려온 비디오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쇼프로도 다보고 더이상 볼 것이 없어 넣은 시사수첩 SOS.
2000년도에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전만종게이트라는 빅뉴스를 만들어 내어 대한민국을 떠들석 하게 했던 희대의 검은 손 전만종.
그의 요즘 수감 실태 보고였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무슨 게이트 사건이 아니였나 싶다.
열심히 시청중 갑자기 전만종이 우빈형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오에게 농을 던지니 지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때 마침 조깅을 마치고 들어 오는 우빈형을 보며 내가 농담을 던졌다.
"형 전만종 알지?형이랑 똑같이 생겼어.형제아니야?"
그 소리를 듣자 마자 형은 잠시 몇초 우물쭈물 하더니 도로 나가 버리는게 아닌가.
뭐야 이게?
뭔가 수상하다.
미스테리 우빈!
2005년 1월28일
마담 태현형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예전부터 같이 움직이는 자기네 식구가 네명이 있다.
근데 신규 손님이고 뭐고 모두 자기네 독식이다.
마담인 자기도 선수처럼 손님옆에 앉아 술을 빨고 있다.
카하카이 우리 식구들과 나머지 두군데 숙소의 다섯명의 오합지졸들은 정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나날들.
그나마 우빈형의 선전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2005년 1월29일
속으로 몇 겹의 응어리를 즈려 밟듯 쌓아 두게 된다.
그 응어리를 벽돌 한장에 비유하자면 속에 한 백 장 정도의 벽돌까지는 힘겹게 받아 내지만
백 한 번째 벽돌이 쌓이는 순간 한꺼번에 백 한장 모두가 터져 버리는 경우다.
백 한 번째 벽돌을 선물(?)한 사람은 다만 한 장을 주고도 그 백배의 응답을 받게 된다.
대개 주체를 못한다.
재밌는 사례는, 한 사람에게 열 장 정도를 받았는데 열 한번째 벽돌을 선물한 전혀 다른 사람에게,
그때까지 쌓였든 열 장 중 일부가 그 새로운 사람에게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분노의 전이" 이다.
그런데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을 잘 못 골랐다.
요즘 나의 유일한 지명.
두달여간 나를 먹여 살리던 거유 수희.
오늘 가게에서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뭔가 오늘 후끈 달아 오른 수희.
자꾸 몸을 더듬는다.
짜증이 밀려 온다.
참을 수가 없다,오늘은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
이제껏 이곳저곳에서 쌓여 온 나의 모든 스트레스들을 응축시켜 시원하게 육두문자들을 퍼붓고 말았다.
결과는 이미 예상가능했다.
나의 뺨을 풀스윙으로 힘껏 후려 치고 계산도 하지 않은 채 돌아 가버린 수희.
이 힘든 시기에 참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한동안은 배가 좀 많이 고플 것 같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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