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1일
두번째 뉴욕여행을 마치고 내가 깨달은 것은 아주 거대한 숙명적 절망이였다.
이런 종류의 것은 처음이라 몹시 당황했으나 진짜 현실은 순식간에 나를 삼켜 버렸다.
한두명이 아니다.서너명,네다섯명이 아니다.
공룡같은 그들은 하나였고,어디에나 존재했다.
아주 거대하지만 날카롭기 그지없던,그리고 재고의 여지가 없는 끊임없던 집단 이지메.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방어점을 예측할 수 없는 일방적 공격.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어이 없게도 죽음은 겁나지 않았으나 핏빛 현실을 처음 받아 들인 것이 너무도 충격이였다.
벌레취급.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 보았다.
동양인 남자.
국적이 어딘지는 개의치도 않는다.
그들에겐 난 그저 벌레였다.
내가 보기 싫다고 고갤 돌리면 사라지는 세상이 아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This is REAL LIFE.
2006년 2월2일
스튜디오에서 혼자 살고 있는 유신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와이는 오늘 비가 내렸다.
이곳의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창문 밖으로 연신 코를 킁킁 거리는 나에게 유신이가 뭐하냐고 묻는다.
그런 그에게 내가 물었다.
"달콤한 비의 냄새를 맡아 봤니?"
1초도 안 쉬고 미친거냐고 되묻길래 그냥 웃어 주었다.
2006년 2월4일
유신이에게 쿡이형의 데모CD를 들려 주었다.
아주 좋아 했다.
그도 팬이였다고 한다.
조숙한 꼬마였나 보다.
2006년 2월5일
미니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니 유신이가 나에게 연출은 내가 직접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자기는 조연출로 나를 도와 주겠단다.
너무도 원했던 마음과 아직 자신없다는 마음이 함께 뒤엉켰다.
하지만 종내는 뭔가 큰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제작비가 걱정이다.
2006년 2월8일
진평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뉴욕은 너무 춥다며 하와이에 오고 싶단다.
하와이 날씨는 여전히 네 상상초월이라고 놀려 주었다.
2006년 2월12일
취직을 했다.
KALIHI라는 Getto지구에 있는 PELE라는 바이다.
몇일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내 신분에 겨우 구한 일자리라 감회가 참 새롭다.
Yes,I'm illegal alien.
7시간동안의 노동.
쉬지않고 맥주를 채워 넣고,박스를 나르고 설겆이를 하며 서브를 했다.
조금이라도 앉아 있기가 괜시리 민망해 조금 더 조금 더 바삐 손발을 놀려 댔다.
미국에 와서 이렇게 땀 흘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참 안일하게 살았다.
그렇게 오늘 열심히 일한 댓가로 이리저리 영세민 손님들의 주머니에서도 Tip이 나왔다.
다들 1~2불의 작은 돈이지만 바텐더 말로는 한달사이 처음 나온 Tip이란다.
땀으로 젖기를 그렇게 7시간후.
시간당 8불씩의 수당과 팁을 포함,내 손엔 거금 71불이 쥐어 졌다.
나도 몰래 글썽이는 눈물이 자꾸만 후두둑 떨어 지려 하길래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억지로 참아 내었다.
그리고 첫 출근에 예상치 못한 기쁜 소식을 획득해 내었다.
원래 일주일에 세번.
수,목,금..이렇게 Part-Time 바텐더 보조일이였는데 토요일,일요일,월요일에는 카라오케 DJ를 봐달라고 한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 오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유신이 말로는 자는 동안 내도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심한 잠꼬대로 온 밤을 가득 채웠댄다.
그냥 지금의 기분은 이제 `시작'인것 같다.
그래,지금부터가 진짜다.
이곳에서의 나의 이름은 LION이다.
이렇게 다시 시작한다.
2006년 2월13일
어제는 7불 팁을 벌었고 오늘은 2불을 벌었다.
끝내 준다,이동네.
알고 보니 완전 거지중에도 상거지 동네였다.
바로 한블럭 위에 홈리스 피플 무료 급식소가 있고,
멀리 않은 곳에 민기네 아버지가 아직도 복역중인 형무소가 있다.
그래서 우리 바에 오는 손님중 90%이상이 최저 임금 생활자들이다.
바 근처에는 항상 거지들이 누워 있고,난 오늘 이 동네 거지 대장하고도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이 사람은 정부에서 받은 식료품 티켓을 가지고 우리 바에 와서 항상 맥주로 바꿔 먹는다.
빨리 제작비 마련해야 하는데.
한국에 얼마간의 돈도 부쳐야 하고.
호스트를 너무 성급히 그만 둔 것도 같다.
슬그머니 야릇한 후회가 밀려 온다.
하지만 재미있는 곳에 취직한 것 같아 기쁘다.
'기쁘다,기쁘다.'
Mind Control
2006년 2월14일
도현이 소식이 너무 궁금하다.
참고 참아 왔는데 결국 전화를 하고 말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그저 안부만 물어 보았는데 그녀는 요즘 만나는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는 아니였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 정리된 줄 알았는데 심장이 너무도 저려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2006년 2월19일
진평이가 오늘 하와이에 도착했다.
날씨 너무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하는 녀석에게 레이를 걸어 주자 녀석 감동의 눈길로 나를 와락 껴 안는다.
많이 외로웠나 보다.
착한 유신이가 고맙게 허락해 줘서 우리는 오늘부터 세명이서 함께 살게 되었다.
고맙게도 둘은 금방 친해져 서로의 카메라를 꺼내 놓고 한참을 이야기 중이다.
사랑스런 내 동생들.
모두모두 고맙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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