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태그의 글 목록 (2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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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설악의 폭포

 아름다운 설악의 해넘이...일몰 ^^


 설악님과 록키의 일용할 양식들


 졸리운 인민군을 위한 연희님의 배려 CASS 카스 바쥬카포 ㅋㅋㅋ


 심각한 표정의 록키...웃어라 록키야 ㅎㅎㅎ


 설악산일출 연속사진 1

 

설악산일출 연속사진 2

 

 설악산일출 연속사진 3

 

 설악산일출 연속사진 4

 

 

지난번 명지산 번개로 몸을 만들고 팀웍을 다진 우리들

작년부터 계획만 세웠던 설악산 1박2일 비박 산행 감행

여기에 맛보기 사진 몇장을 간단히 모바일로 올려본다.


-록키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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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일기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인지

산행에 참석한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임원들과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골수 회원분들은 모두

빠짐없이 나와 주셨다. 일부 집안일과 겹쳐서

못오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오붓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산행을 다녀 올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아침 7시에 성북역에 모두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이천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10시반쯤 1박2일에 나왔었던 회룡포 삼강주막

뿅뿅다리앞에서 우회전해서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장안사 입구 모습

 꺠달음에 대한 좋은 글

 장안사 전경

8명씩 짜여진 1조에서 15명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 미션을

수행한 제1전망대 회룡대 모습이다.

 

현위치는 어디쯤 ?

 

 다시 다음지점으로 이동하고

 공릉동 예쁜이 두자매님

 회룡포 관광 안내도

봉수대를 가리키는 안내 표지판

 

 무제봉

 

 회룡대 제2전망대

 

 예쁘게 찍어주삼

 

 제2전망대에서 본 회룡포 전경

 

 봉수대

 봉수대 표지판

 

 비에젖은 소나무

 

 용포대

 

 간식타임

 비갠후의 회룡포전망

 예쁜이 세자매

 

 산악대장 두분

 한만동총무

 박이수고문님과 공릉동 씨스터즈

 

 다시 돌아가라는 안내 표지판

멀리서 본 용포대 전망

 

 멋진 소나무

 비에 젖은 나리꽃

 회룡포 안내문

세찬비에도 얼굴만 안 젖은 부처상

 

 기도도 하고 사진도 찍는 부회장님과 고문님

 

 

 

 하산길

 

 예천군 관광안내도

 삼강주막 처마밑의 제비 꼬리

 예천문화원 예술행사에 한 몫 끼어든 고운 산악회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권민희 가수

 신명난 한총무님과 박성자 회원님

 

 버스 맨뒤에서 왕벌님과 공작님...그리고 허경희님

 

 한곡조 뽑으시는 회장 사모님

 

 전날 상갓집에서 밤을 세우고 와서 푹 주무시는 김성관 산악대장

 

 이형남 교수님

 

충주휴게소에서 건배 제의하시는 이병훈 산악대장님

 

충주휴게소에서 김정주 고문님과 한 컷

 

하산길에 본 타 산악회의 리본들

 비에 젖어서 쓸쓸히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래도 남아서

다른 이들의 길 안내를

한다고 생각하니

영 쓸모없는 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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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일시 : 2011. 5. 17(화) 09:00 ~ 18(수) 17:00 1박 2일 (총 산행 시간 18시간)

※ 코       스 : 한계령휴게소 - 끝청 - 대청봉 - 중청휴게소 - 소청봉 - 희운각대피소(1박) - 공룡능선 - 마등령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 한계령을 들머리로 해서 끝청까지 가는 길에 담은 내외설악의 모습

 

 

나무터널

 

 

 

※ 끝청 : 1610고지

 

※ 끝청에서 중청가는 길에 담은 설악의 모습

 

 

봉정암

※ 중청대피소 & 대청봉

※ 대청봉과 중청에서 바라본 설악의 모습

- 1708고지 정상 대청봉

내설악

속초시내 & 동해바다

울산바위

 

 

소청에서 희운각 가는 길에 담은 설악의 모습

 

천불동계곡(천개의 불상 모습을 담았다)

소청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소청봉 이정표

 

 

희운각대피소(37명 숙박이 가능하다)

희운각 주변 모습

 

 ※ 공룡능선

 

 

 

 

 

 

 

 

 

마등령

 마등령삼거리 표지판

마등령에서 백담사까지 거리 : 7.4키로미터(마등령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가급적 회피하시길 ^^) 

 

오세암

 

 

 

오세암에서 영시암 가는 길

 

 

오세암, 백담사, 봉정암 갈림길

 

영시암

 

 

영시암에서 백담사 가는길

 

백담사 다람쥐

※ 백담사계곡

 

※ 백담사

 

 


The Prayer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

 

공룡능선을 넘는데 4시간이 걸렸다(대략 4-6시간 소요 코스 임, 디카사진 담으며 4시간 .. )

 

출처 : 흐르는 자연의 향기 속으로
글쓴이 : 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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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과 가을동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아바이마을..

 

가을에 찾아간 동해와 강원도 여행은 여름에 떠나는 여행하고는

비교가 되지않을정도로 고독감이 밀려드는데 계절에 따른 햇빛부족(?) ^^

과 함께 약간의 스산해진 날씨탓도 있을거라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여럿이 간다해도 혼자서 온것처럼

외롭다거나 고독정도는 충분히 느낄만했었고 그런 가을이

어쩔때는 싫어서 가을에는 여행을 거의 안하고 지낸적도 있었다

그만큼 가을여행은 빨빨대고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 내마음을

집에만 가만히 있게 눌러앉히는 묘한 매력이 있음에 틀림없다..

여름에 북적대고 정신없는 바다보다는 조금 쓸쓸하지만

녹녹함이 베어있는 가을바다는  감싸줄수있기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마저 드니 가을바다를 찾아갈때는 필히 짝꿍을 데리고 가야할지도..^^

 

갯배... 아바이마을에 찾아간 이유중에 한가지가 갯배를 타기 위해서였다고하면

이해를 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지..^^  가을동화에서 나왔떤 은서가

노란색 우산을 받쳐든채로 갯배를 타고 건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고

마침 내가 간날도 비가왔었고 우산도 노란색이였는데 아쉽게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분위기를 잡기는 커녕 사람들한테 치여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않았다

음.. 내가 송혜교보다는 비쥬얼이 한참 떨어지지만... 모 어때..

기분하면 내 보겠다는데....^^ 하지만 노란우산을 받쳐들지도 못할정도로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갯배를 타기위해 줄서있는 사람들도 만만치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은 얼마전에 촬영했던 1박2일의 여행지 중에 한곳이였으니

식당 그리고 갯배를 타기위해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있었다

그리고 너도나도 다 붙혀놓은 1박2일 촬영지... 1박2일 맴버가 찾아가

진짜로 먹었다던 순대집이 어디인지 알수가없을정도로 똑같은 사진에

모두 1박2일 촬영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으니 어디가 진짜인지 궁금하다

지역관광을 위해서 같이 협조하에 걸었다고 하면 할만은 없지만..

여행자의 소심한 생각에 그냥 그렇다는거다...ㅡㅡ ^^

 

아바이라는 말이 아버지라는 뜻인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라는걸

아바이 마을에서 첨 알았으니 이런 무식한 바라미.... ㅡㅡ

1.4후퇴때 북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곳의 주민 60% 정도가 이북사람들이라고 하니

고향을 못가는 사람들도 이북사투리의 정겨움도 느끼고 간다고하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를 먹으면 더 그립고 가고싶은가보다..

 

 

 

 

 

 

 

 

 

 

아들 얼마면되.. 얼마면 살수있어..말해바.. 하고 계속 원빈 흉내를 냈더니

첨에는 재미있어 하더니 나중에는 시끄럽다고 그만좀 하란다..ㅡㅡ

아들이 아주 어렸을때 방송되었던 가을동화보다는 요즘에 하는 1박2일때문에

이곳에 오고싶었다는 녀석이 가을동화하면 뭐가 유명한데.. 하고 물어보길래

난 그냥 알려주기위해서 얼마면되... 하고 이야기한건데..

녀석 내마음도 몰라준다...ㅡㅡ ㅎㅎㅎ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 파는곳마다 1박2일 촬영지라고 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는걸 보더니 어디가 진짜 촬영지냐고 물어보는 아들한테

음~~ 이곳이 전체 촬영지고 스탭들이랑 감독이랑 모두 나눠서

골고루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믿는 눈치다..^^

오징어순대와 아바이순대를 조금씩 포장해서 이동하면서 먹는 순대맛은

아주 꿀맛이였지만 따뜻하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해야할까..

 

 

 

 

 

 

 

아주 작은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난 아이들에게 여행이 우리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한테 얼마큼 큰 영향을 주는지를 이야기를 해줬고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바다를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들어준다..^^

 

 

출처 : 난 바람될래
글쓴이 : 바람될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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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관 - 텐트 7동이나 가지고 있는 야영산행 마니아

 

“힘든 산행으로 담금질하면서 미흡한 점 위안 얻으려 하죠”
             2년 5개월 간 총 38회에 걸쳐 백두대간 종주도 마쳐
▲ 양승태 대법관이 화악산에서 1박을 한 뒤 응봉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환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산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하며, 이를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유명한 철학자나 수필가의 말이 아니라 냉철한 법을 집행하는 양승태(梁承泰·62)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수십 년간 산에 다니면서 체득한 삶의 진리이며 교훈이다.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자연에서 배우는 겸허한 자세, 즉 인간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35년 동안 법관으로 지내오는 동안 항상 나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고 자신을 채찍질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내가 험한 산행을 좋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몸이 부서지는 듯한 힘든 산행으로 자신을 시험하고 담금질함으로써 다소간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산행으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에 양 대법관은 후배 법관들의 귀감이 되고, 또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가 등산, 특히 험한 산행을 좋아한다기에 한번 동행하기로 했다. 2월 27~28일 1박2일간 화악지맥 야영산행이었다.

27일 오전 9시쯤 일찌감치 도마치고개에 도착, 산행에 나섰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이기도 한 곳이다. 그가 화악지맥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2004년 2월부터 2년 5개월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부터 남한의 9정맥을 하나씩 답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행은 그의 경남고교 동기인 ‘영원한 산꾼’과 고교 후배, 부장 판사로 있는 후배 법관 2명, 비서 등 모두 7명.

2월 말이었지만 예년보다 유달리 눈이 많아 날씨는 꽤 추웠다. 도마치고개에서 화악산으로 오르는 능선 초입부터 짙은 안개가 내려 시야는 불과 몇 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길 양옆 나뭇가지엔 상고대가 살포시 내려앉아 멀리 보지 않아도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쌓인 상고대는 그 두께만 1㎝가 넘었다. 두꺼운 상고대를 가끔 맛보며 올라갔다.

대법관은 영락없는 산악인의 모습이었다. 3인용 텐트가 든 배낭은 무게가 20㎏는 안 됐지만 10㎏는 훌쩍 넘어 보였다. 앞에는 지도를 묶은 줄을 달고 방향이 애매할 때는 언제든지 나침반으로 지도와 대조하며 확인했다. 그런 노하우를 언제 터득했고, 언제부터 산에 다녔는지 궁금했다.

▲ (좌)화악산으로 향하던 중 여러 등산로가 나오자 지도를 보면서 어느 방향이 정확한지 판단하고 있다. (우)양 대법관이 가져온 텐트를 직접 걷고 있다.

       고교 시절 산악부 활동으로 산 접해

▲ 야영하면서 텐트 안에서 가져온 쇠고기를 능숙한 솜씨로 직접 구우면서 자르고 있다.
“경남고교 시절 누가 나를 특별히 산에 이끈 것도 아니고,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마치 산에 홀린 듯 저절로 산에 갔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마도 성격 자체가 산에 파묻히는 데 맞는 것 같습니다. 백담사 회주로 계시는 오현 큰스님이 ‘저 사람은 법관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비구승이 되었을 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면 내가 산에 오르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 결국 타고난 성격 때문이겠지요.”

그의 고교 시절은 1960년대 초반이다. 무려 50년 전부터 산에 다녔다는 얘기다.  모두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산에 다니면서 자연을 배우고 인생의 호연지기를 기르며 삶의 방향을 세웠다. 지도를 읽고, 야영을 하고, 산행을 하는 건 그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여유였다. 산의 큰 가르침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취미생활은 항상 재미있었다. 

그는 산에 다니면서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  산과 공부에 균형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균형감각은 어떻게 보면 그의 법관 생활에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대 법대 시절엔 별로 산악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학 때가 되면 고시공부 핑계로 깊은 산사에 들어가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산이나 헤매고 다녔지요. 특히 재약산 표충사의 말사인 내원암과 강화도 고려산의 백련사에 머물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램프로 불을 밝혔고, 겨울에는 직접 장작을 때서 온돌방을 따뜻하게 했던 4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은 단지 젊었을 때의 추억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생활에 산이 주는 의미가 녹아 있다는 말같이 들렸다. 197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의 법관생활은 순탄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잘 놀고 잠시라도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1982년 법원의 장기연수로 런던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법의 깊이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로의 도전은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통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혼자 떨어져 몸으로 부딪힌 유학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산행을 통해 쌓은 다양한 도전과 경험들로 이겨나갈 수 있었다.

그는 1986년 제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199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 법원장 등을 거쳐 지난 2005년 2월 대법관에 올랐다.  사실 대법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이 그렇듯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고,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법관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다.

“법관의 제1차적 임무는 법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분쟁의 해결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 분쟁의 당사자들로부터 과연 분쟁해결의 주재자가 될 만하다는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분쟁의 당사자 어느 쪽에도 기울어짐이 없이 양쪽의 이야기를 진솔한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충분한 경험과 법 이론에 의해 분쟁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길이 힘들고 외로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질을 구비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한강기맥 종주 중”
▲ 1박2일간의 화악지맥 종주에 동행한 일행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양 대법관.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분쟁을 판단해야 하는 법관은 항상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누구를 미워할 수 없는 정의의 판단을 해야 한다. 그 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법관 자신의 몫이다. 그가 산에서 얻는 균형감각은 결국 법관으로서의 자질을 알게 모르게 키워놓았던 셈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로 어느 덧 날은 어두워졌다. 눈 덮인 화악산의 밤은 칠흑 같았다.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세찬 눈보라가 날리기 시작했다. 일제히 헤드랜턴을 켜고 각자 텐트를 치며 밥 지을 눈을 모으는 등 저녁준비를 했다.

대법관은 열심히 텐트를 쳤다. 그는 갖가지 규격의 텐트를 7개나 가지고 있다. 이번엔 겨울철인지라 약간 무거운 동계용 텐트를 가져왔다. 눈 위에 자리를 깔고 친 텐트 속에 세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다. 비닐포대 속에 가득 확보한 눈은 밥 짓고 마시는 물 만드느라 절반 가량을 소비했다. 대법관은 옆에서 밥 짓는 동안 익숙한 솜씨로 열심히 쇠고기를 구웠다. 고기 굽는 석쇠까지 가져와 맛을 더했다. 바로 옆에 앉은 후배 법관은 대법관이 고기 굽고 자르는 모습이 부담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아랑곳 않고 계속 했다. 주위의 성화로 물려받은 후배 법관은 대법관의 솜씨와 확실히 차이가 났다. “산에 조금 더 따라다녀야 되겠습니다”라며 한바탕 웃었다.

이들의 인연이야 어차피 같은 법관이니 만날 수밖에 없지만, 산에 함께 다니면서 더 돈독히 다져졌다. 양 대법관은 2005년부터 법원산악회 회장을 맡아 산행을 좋아하는 법관들을 산으로 이끌었다. 법원산악회는 1969년 창립된 전통 깊은 산악회로 역대로 산을 좋아하는 대법관이 회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양 대법관이 맡기 직전 얼마동안은 약간 침체상태에 있었다. 이를 과거 활발했던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양 대법관이 2009년 7월까지 만 4년간 회장을 하면서 법원산악회 최초로 일본 다테야마 원행과 백두대간 종주 등을 했고, 많은 법관과 법원직원들이 참여했다. 2년 5개월 간 총 38회에 걸쳐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동안 전 구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사람이 5명이었고, 1구간 평균 참여자는 50명에 달했다. 대법관은 집안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딱 한 번 빠졌다가 그 구간을 따로 보충해서 종주를 마쳤다. 장기간 법원의 단일 행사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경우가 없을 정도로 대성황리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것이다.


힘들어도 산의 정기 몸에 배어 다음날 거뜬

▲ 1. 2007년 12월 15일 법원산악회 계방산 송년산행에서. 2. 2009년 9월 5일 한강기맥 종주하면서 오대산 상왕봉에서. 3. 2010년 1월 18일 한강기맥 종주 중 구목령을 지나 운무산으로 향하고 있다.
또 매월 산행을 하면서 단순히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도 생각하는 ‘자선기금 마일리지’제도를 창안하여, 후원자가 산행 참석 인원 및 산행거리에 비례하여 갹출하는 자선기금을 마련하였다가 연말에 이웃돕기성금에 후원자의 이름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 이용훈 현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전원과 대한변협회장, 대한법무사회장 등 저명한 법조계 명사들이 대거 후원자로 참여하여 매년 1,000만 원 이상을 자선기금으로 기탁한 것도 큰 보람이었다.

당시 함께 산행했던 후배 법관들은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발령받아 나가자, 그곳에서 산악회를 직접 만들어 동료들과 열심히 산에 다니고 있다. 이날 동행한 후배 법관 두 명도 그런 경우였다. 세찬 눈보라와 바람, 칠흑 같은 어둠과 더불어 화악산의 밤은 지나갔다.  아침은 어제 담아놓은 눈으로 물을 만들어 해 먹었다. 다시  목적지인 홍적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산행은 얼마나 자주, 어떻게 하십니까?”

“2006년 백두대간을 완주한 다음부터는 단일한 산행보다는 일정한 구간으로 이어진 산맥의 종주를 목표로 하는 산행으로 취향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오대산에서 양수리까지 이어지는 한강기맥 코스를 가고 있어요.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산행하는 것 같은데요. 나는 원래 평이한 산행보다는 다소 험한 산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바위를 타는 프로급의 산행을 할 실력은 없습니다만, 평탄한 길보다는 암릉코스라든지 산중 야영을 하는 산행을 더 좋아합니다. 시간을 잘 낼 수 없어 마음껏 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자주 야영산행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겨울에도 한강기맥을 하면서 1,000m급 능선상에서 영하 20℃의 추위와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에서 야영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다. 앞으로 체력이 허용하는 한 이런 산행을 계속할 작정이다. 

“골프는 안 치십니까?”

“날씨가 풀리면 이따금 나가죠. 사실 골프는 별로 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몇 번 거절하면 아예 안 치는 줄 알고 연락이 오지 않아  안 나갈 수도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가급적 줄이고 산에 다니려고 하죠.”

산이 도대체 뭐 길래 이 정도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험한 산행으로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다음 날 일어나면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운 것을 모두 느낄 것입니다. 산의 정기가 몸에 배어든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산행이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만 등산을 단지 체력증진이나 생활을 즐기는 한 방법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진정 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일종의 원칙주의자다. 원칙이 없으면 질서도 없고 혼란스럽다. 현재 하나의 현상을 두고 다른 판결이 나오는 현상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다양화됐기 때문에 각 개인의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급 법원에서 나온 서로 다른 결론의 판결을 상소절차를 통해 하나로 귀일시키는 것이 대법원의 임무이지요. 단, 법관이라면 누구나 70% 정도는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법관의 자질이기도 하죠.”

그는 앞에서 말한 법관의 원칙을 상기시키면서 등산에서도 이 원칙을 강조했다. 등산은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고 독도법이나 야영의 원칙에 철저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원칙은 세상의 법칙같이 들렸다. “민주주의의 틀 속에 살자면 권리뿐 아니라 의무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무는 뒷전이고 권리만 챙기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그는 덧붙였다.

산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산, 그 자체다. 어떤 사람은 산을 변화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산, 그 자체는 70% 이상이 항상 똑같다. 나머지가 보고 느끼는 관점과 현상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다. 대법관의 주장대로 70%의 관점만 견지하고 있으면 나머지 30%는 다양한 의견으로 수렴될 수 있다. 이 30%를 가지고 아옹다옹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를 ‘유연한 원칙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인생이 그러하듯 지금 걷고 있는 등산로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힘든 구간이다. 양 대법관 임기도 이제 1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은퇴 후 품위유지 할 수 있는 여유만 된다면 가급적 변호사 개업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후배 법관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전임 대법관 이미지로 그대로 남고 싶은 심정입니다. 남는 시간은 바빠서 못 다한 트레킹이나 원 없이 다녔으면 합니다.”

대법관과의 1박2일 야영산행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그렇게 끝이 났다. 

- 글 박정원 월간 산 차장 -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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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보기] 패밀리가 떴다



- 겨울을 잊게 만드는 예진효과와 덤앤더머.


겨울의 추위가 매서워지면서 <패밀리가 떴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오늘 방송된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그런 우려와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익숙한 예진효과와 덤앤더머가 함께 하면서 만들어낸 변주곡 때문이었습니다. 예진효과와 덤앤더머가 만들어낸 변주곡은 개인적으로 오늘 방송된 내용 중 가장 많은 웃음을 만들어냈던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덤앤더머에게도 호강하는 날이 오다?!


오늘 아침 식사 당번은 박예진과 덤앤더머였습니다. 매번 이효리에게 당하는 모습만 보여줬던 덤앤더머는 박예진을 받아 역공(?)을 펼쳤습니다. 바지락을 캐기 위한 가위바위보에서 잔머리를 써서 이긴 덤앤더머. 이런 덤앤더머의 얄팍한(?) 잔머리에 넘어가는 박예진이 있었기에 덤앤더머에게도 호강의 날이 찾아옵니다.

한편으론 덤앤더머가 얄미워보이기도 했지만, 덤앤더머는 결코 강압적인 구도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이 더 망가지는 모습을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처럼 예진을 구박(?)하는 것 같아보이는 순간에도 예진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 덤앤더머와 예진효과 사사건건 대립하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준비하면서 덤앤더머와 예진효과는 의견에 사사건건 대립이 일어납니다.  4라운드까지 이어지는 대립의 주제는 덤앤더머답게 사소한 내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사사건건 대립하는 덤앤더머와 예진효과가 만들어내는 상황은 많은 웃음을 만들어냈습니다.

효리효과와 덤앤더머가 함께 할때면 덤앤더머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었다면, 예진효과와 덤앤더머의 대립은 좀더 흥미로웠습니다. 박예진은 덤앤더머에게 속아넘어가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 덤앤더머에 물들어버린 예진효과


하지만 덤앤더머가 만들어내는 상황극에 이르러 예진효과와 덤앤더머는 융화되기 시작합니다. 덤앤더머가 반죽을 가지고, 종합병원의 상황을 패러디하기 시작하자 박예진도 이에 호응하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이 상황 속에서 덤앤더머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지쳐 쉬려는 덤앤더머를 다시 상황극 속으로 끌어들여 일을 하게 만들기까지하니 말입니다.

상황극은 종합병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멱살을 잡고 싸우는 상황에서 토끼를 만드는 상황까지 그야말로 '쌩쇼'를 연출하는 덤앤더머. 그 덤앤더머와 예진효과는 완벽하게 융화됩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토끼먹이를 주는 상황을 연출하는 박예진의 모습을 보면, 박예진도 덤앤더머에게 물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종합병원을 패러디하면서 시작한 반죽을 만드는 상황극은 오늘 <패밀리가 떴다>에서 웃음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예진효과와 효리효과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변주곡


예진효과는 효리효과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이효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데, 자기를 중심으로 관계를 재편한다면, 박예진은 상대방을 중심으로 관계를 재편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효리와 박예진이 각각 덤앤더머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차이는 더욱 확실해 집니다.

이효리와 함께한 덤앤더머는 이효리를 중심으로 하여 '이효리에게 구박당하는 덤앤더머'라는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냅니다. 반면, 박예진과 함께한 덤앤더머는 박예진을 중심으로 하여 '덤앤더머에 물들어버린 박예진'이라는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냅니다.

물론 이효리와 박예진의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정반대인 두명의 여자멤버가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패밀리가 떴따>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외활동을 주로하는 <패밀리가 떴다>에게 겨울은 분명한 위기일 것입니다. 더욱이 과 같이 극기체험과 같은 요소도 없고, 여성멤버들까지 포함되있는 <패밀리가 떴다>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겨울이 걱정된느 프로그램일 것입니다.

하지만 겨울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이효리와 박예진의 존재는 동시에 <패밀리가 떴다>의 인기를 좌우할 수 있는 강점으로 존재합니다. 때문에 효리효과와 예진효과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변주곡들을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겨울을 이겨내고,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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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멤버들의 주 직업은 가수다. 그 가수들 틈에 유일하게
개그맨으로 끼어 있는 이수근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웃기는 것은
덤이지만, 개그맨이 웃기지 못하는 것은 존재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그맨들이야 언제 어디서건 억지로라도 설정을 만들어 웃기려고 노력하는데 적응이 되어있기 마련. 하지만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에서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수근이 '1박2일'에서 웃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일꾼을 자처한 점은, 개그맨으로서의 이수근
보다 시골 생활에서의 맥가이버 같은 이수근 개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초반부 웃기는데 있어서 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이수근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개그맨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이수근이 개그맨으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자신 속에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랑비에
옷 젖듯 보여진 그의 캐릭터는 일꾼 이미지를 바탕에 만들어줬고, 그 위에서 개그는 좀더
생활 밀착형이 되었다.

'1박2일' 백두산 특집편의 첫 번째 방송에서 출연진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은 사실 무언가를 늘 보여줘야 한다는 쇼의 입장에서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정 공간에 도착해 어떤 미션을 수행하거나, 돌발적인 상황을 맞아 새로운 여행의
국면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것이 '1박2일'의 묘미라면, 그 중간 중간 이동시간 같은 빈 공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이 빈 공간은 이수근에게는 단독으로 올려진 개그콘서트 무대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딘가로 떠날 때, 그 지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던 재주 많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1박2일이라 엉덩이에 새겨진 운동복을 보고는 "중국사람들이 보면 꿰맨 자국인 줄 알겠다"고
하거나 다들 엉덩이를 쭉 빼면서 "1박2일!"하고 소리치며 즐거워할 때, 혼자 거꾸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 큰 웃음을 주는 이수근은 그가 역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 안에서
중국인 출신 여승무원들과 벌어진 즉석 짝짓기 게임에서 후춧가루댄스를 추고, 엉터리
중국어로 웃음을 주는 것은 저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는 어쩌면 식상한 개그일지 모르지만, 이렇듯 딱히 할 것 없어 무료해질 수 있는 시간 속에서는 포복절도의 웃음으로 다가온다.

'1박2일'속에서의 개그맨 이수근이 가진 이미지는 지금 세상에서 비범함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을 닮았다. 그들은 늘 어느 한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이 어려운
시국 속에서 평가절하 되었고, 그것을 또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요즘처럼
일보다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진짜
일꾼이면서, 그 어려움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인생길이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길에서의 그 과정을 닮았다면, '1박2일'에서 '생활 속에서의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며
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는 이수근은 그 여행길에서 힘겨울 때마다 얼토당토않은 말로
웃음을 주는 오랜 친구를 닮았다.
출처 : 젊은날의 로드무비
글쓴이 : 담배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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