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2일
모두들 나를 보면 오늘밤 같이 있을 수 없냐라고 한다.
꼬마 기집애들부터 할머니들까지 다 똑같다.
여자는 그냥 여자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 그 자체이다.
모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호스트는 이 마지막 상품을 제일 나중에 팔기 위해 끊임없이 끼를 부린다.
그리고 손님들은 어쨋거나 최단시간에 승부를 보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즐거이 이 모든 유혹들을 찬찬히 음미해주신다.
이 메인 게임이 끝나면 드디어 라스트 카드가 나온다.
메인 게임에서 없었던 것, 바로 섹스이다.
이것을 둘러싼 남과 여의 복잡한 흥정은 끝이 없다.
호스트들은 미래의 '한탕'의 가능성과 오늘의 '현찰'의 달콤함, 후일을 위한 '서비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손님들은 자신의 '지갑'과 상대의 '상품가치'와 장래의 '우환' 가능성이 연계된 복잡한 다원 방정식의 해법에 고민한다.
2004년 5월15일
오늘 제프리가 달라스로 떠났다.
변호사도 만나고 법정에도 출두해야 하고 부모님 얼굴도 오랫만에 보고 싶단다.
한달일정이라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지 거의 일년만에 처음 떨어 지는 거다.
갑자기 제프리가 돌아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온 몸이 얼어 버리며 심장 한켠이 극심히 시려 왔다.
2004년 5월17일
작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지금껏 섹스없이 좋은 관계로 잘 지내는 섹시한 누나 한명이 있다.
항상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의 이 누나,오늘 이혼을 했다며 예전 없던 시무룩한 표정으로 가게를 찾았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 하나와 연년생 초등학생 아들 둘을 가진 다복하고 유복한 집안이다.
바깥양반은 정말 성실한 분으로 하와이 교민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유통회사 사장님이셨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누이의 대답은 이랬다.
"그 사람은 너무도 성실했어.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들어 오고,어디 딴데 한눈 파는 일도 절대 없었지."
"그럼 왜?누나를 사랑하지 않았어?남자구실을 못해?"
"아니,나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15년동안 결혼 기념일 한번 안 챙긴적 없어.
그리고 밤일도 나쁘지 않았어."
"그럼,애들에게 못된 아빠였어?
"아니,그 사람처럼 완벽한 아빠도 없을 거야.정말 자상한 사람이거든."
"그럼 도대체 왜,이유가 뭐야?"
"15년째 그런 똑같은 틀에 박혀 행복한 척 살고 있는 내 위선이 너무 싫었어.
난 자유롭고 싶어.
이제부터는 여행도 내 마음대로 다니고 예전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해볼거야.
그리고 내가 더이상 그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그 사람의 성실함이 지긋지긋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솔직히 살고 싶어.
난 더이상은 내 자신에게 거짓말하며 살지 않을거야."
나는 황급히 비워진 누나의 글라스에 다시금 가득히 술을 채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오늘은 그 어느날보다 몇배로 더 어지럽고 머리가 띵하다.
뭔가 예전에 쌓아 왔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였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2004년 5월23일
酌婦의 恨 (작부의 한)..`술집년 팔자`
상당한 멸시의 말이다.
그럼..酌夫의 恨은 술집놈,호스트들의 한쯤으로 해석될려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카피올라니 테라스.
한인 마켓인 팔라마 수퍼 뒷편으로 작은 코리안 타운 안에 위치한 곳이다.
이 아파트의 우리층의 열다섯 가구 중 열 가구 정도가 한국인 가정인데 민기네가 바로 우리집 옆집에 살고 있다.
낯가림이 많은 나지만 옆집에 살며 세탁실을 같이 쓰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민기네.
민기는 내 또래의 건장한 청년으로 아버님과 두살짜리 아이와 함께 사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가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매일밤 싸움(?)소리가 들리는 게다.
`이 개새끼, X새끼!`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의자 내던지는 소리가 쿵쿵하고 나고 그릇이 깨어지는 소리.
창그렁~!
`아버지, 또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개새끼야 무슨 말!`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지 `철썩`소리가 나고 또 다시 뭔가를 집어던지는 소리.
드디어 잠에서 깨서 우는 애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
이런 것의 연속이 거의 한달이 되어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잠잠해 졌다.
그제야 비로서 같은 아파트의 사람들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저 `민기 아버지가 철들었나보다` 하곤 넘어가 버렸다.
그리곤 다시 몇 주가 지났나 보다.
어느 날 옆집의 민기가 우리집엘 불쑥 찾아온 것이다.
손에는 작은 김치통을 하나 들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말았다.
몇 번인가 복도나 아파트 차고에서 마주 칠 때 보아온 건장한 그 민기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이 거의 딴사람인줄 알았다.
실테안경에 곱살한 얼굴.
통통한 몸매에 전형적인 부잣집 맏아들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은 없어지고 얼굴이 까맣게 반쪽이 되어 하마트면 못 알아 볼뻔 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으려니 민기가 나를 보고하는 말.
`저기요, 우리 김치 하나 팔아주세요`
`김치요?`
`이것 잡숴 보시고 맛이 있으면 주문해 주세요.제가 배달도 해드려요.저 좀 도와주세요.`
수줍음과 창피함으로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민기를 나도 힘겹게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오렌지쥬스도 한잔씩 마셔가며 내가 어색히 말문을 열었다.
`어디 김치 한번 맛을 볼까요?`
김치는 그냥 보통 김치였다.
우리가 흔히 팔라마 마켓에서 사다 먹는 그런 김치였다.
`이게 얼마예요?`하자
작은 것은 십불이고 큰 것은 십오불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김치값보다 약간씩 더 비싼 것 같았으나 배달을 해준다니 그렇겠구나 생각했고, 그렇게 말문을 열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민기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고 소문이 난 그 민기의 아버지는 사실은 호놀룰루 일원의 Liquor 스토아에 음란잡지를 공급하는 공급책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약에 까지 손을 대었는데,몇 주전 무슨 죄인지 급히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는 지금은 Kalihi의 모처에 있는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민기는 눈물이 흐르는지 두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는데 그 손등을 보고 난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손이 사람의 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욱이 20대 청년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헐고 부르터 있었던 게다.
그 손이 그간의 그의 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그 손을 보니 내 가슴이 찡~
살며시 하늘을 보며 코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랬더니 민기가 눈물을 흘리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양념에 손이 부르터서 장갑을 껴도 위생상 예전부터 다니던 김치공장을 더 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할수없이 김치를 몇 동이씩 들고 다니며 아는 집마다 팔고 있는데 이것 먹어보고 맛이 있다면 우리 가게에 김치는 자기가 대겠단다.
답답했다.
내가 어떻게 연결을 시켜준대도 우리 가게 김치사용량이 많아야 일주일에 두통.
이걸 팔아주더라도 민기와 애기에게 무슨 도움이 될것인가?
그리고 우리 가게 식구들에게 떠 맡긴다 해도 제 밥도 안해 먹는 놈들이 김치는?
그것보다는 민기를 우리가게 웨이타 자리에 취직시켜 주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마침 지금 웨이타 중 한명이 한국에 돌아 간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는 중이였다.
`그러지 말구 민기씨 저희 가게 웨이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처음부터 보수는 많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손님이 항상 있으니 민기씨가 뛰는 만큼 벌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이 손으로는 김치 같은 거 만지지 마세요 네?`
`예, 고마워요` 하고 나간지가 일주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샘플이라고 놓고간 김치 값조차도 받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김치값 10불을 들고 옆집을 찾아가니 마침 민기가 집에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 방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글쎄.....!
그 방은 사람사는데라고 할 수가 없었다.
부서져버린 탁자가 을씨년스럽게 한쪽 벽에 쌓여있고 쿠션은 어디로 가버리고 대신 이불보따리를 주섬주섬 올려놓은 소파하며 그 중에서도 정말 나를 울게 만든 것은 부셔져버린 애들 플라스틱 장난감 몇 개하고 그 옆에 그냥 쓰러져 자고 있는 사내아이의 모습이였다.
잠들어있는 두 살짜리 사내애.
그 잠든 얼굴에서 부챗살처럼 펴져 나오는 `삶의 피곤`이 내 가슴을 정말 아프게 찌르더구만.
확! 하고 숨이 끊어지는 것도 같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느 가정 같으면 지금 이 시간, 일요일 오후.
챙달린 운동모자를 거꾸로 쓴 채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하다 못해 허접한 호놀룰루 동물원에서라도
`저게 코끼리다, 이게 호랑이다` 하면서 신나게 뛰어 놀아야만 하는 이 아기.
어째서 이 골방에서 세상피곤에 지친 채, 잠으로 잊어야 하는가?
흔히 보는 예쁜 아기 침대.
그 위에는 오색무늬의 딸랑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머리맡에는 예쁜 동화책이 한두권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그냥 더러워진 카펫에 얼굴을 묻고 억지로 잠을 자며 세상번뇌를 잊어야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이 애기.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아기를 일으켜 내품에 앉았더니 그제야 새록새록 편안히 잠들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
민기에 대해서 말로서 할 수 없는 어떤 분노 같은 것이 끓어 올랐다.
`어째 사람이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민기의 기나긴 과거사를 듣고 있노라니 나의 분노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였다.
민기가 여섯 살이던 82년.
당시 전대통령의 새마을운동실패로 피폐되기 시작하던 우리의 농촌.
충북 어디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
그런 대로 농촌에서 양돈을 하며 중류생활은 이어갔지만 그해 속칭 `돼지파동`을 겪으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가고 빚더미에 놓이게 되자 어머니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여섯 살난 민기의 손을 잡고 멕시코 이민 길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 농부로 일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였지만 그 지긋지긋한 농사를 포기하고 교포가 운영하는 쉐타공장이나 박스공장을 전전했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셨단다.
술로 세월만 죽이시며..그리고 민기가 열둘이던 시절.
그러니까 팔팔 올림픽으로 들떠 있을 때,서울의 무슨 브로커를 통해 미국,L.A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그나마 몇푼있던 돈도 미국 오는데 다 써버리고 무일푼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재기를 노리고 D-싸우나에 욕탕청소부로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하셨다 한다.
그때 민기 역시 이곳에서 하이스쿨에 다니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그렇다고 남미 서반아어나 제대로 하나?
영어는 더욱 그렇지.
그러니 학교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다시금 마지막이다 건너 온 이곳 하와이.
이곳에서도 외로움의 나날은 바뀌질 않았다고.
학교근처의 야산을 오르 내리며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엎친 데 겹친다고,하나뿐인 아버지마저 마약에 쩔어 매일밤 지긋지긋한 구타의 연속.
그나마 그런 아버지마저 구속이 되셨으니 그야말로 이제는 혈혈단신이 되어 버린 게다.
얼굴이 갸름한 미남형에다가 성격도 서글했던 민기에겐 여자들이 상당히 많이 따라다녔는데 지금의 애기 엄마는 결혼한지 일년이 채 안되어 애기와 민기만 덩그라니 남겨두고 도망을 쳤다 했다.
민기의 그 긴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난 차츰 민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취직하려 애써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민기.
마지막 자존심을 애기를 생각하며 싸그리 짓밟은채 여자들이나 일하는 김치공장에 취직한 민기.
이젠 손까지 부르터 그 어느 것도 할수없는 민기.
민기의 무능함이란 민기만의 것이 아니였다.
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로 향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슴은 분노로 요동치고 있었다.
요즘 민기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탬버린을 흔든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춤을 추고 크게 웃는다.
이교대로 돌아가는 베이비시터의 만만찮은 임금을 감당해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민기에게 누가 무슨 권리로 술집 작부(酌夫)란 소릴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누가 호스트질을 하며 부끄럽지도 않냐고 돌을 던질수가 있을까?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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