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20일
제프리가 오늘부로 완전히 호스트 일을 접었다.
달라스로 돌아가 부모님 일을 돕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멋진 결정이다.
좋은 일이다.
너무너무 잘 된 일이다.
그런데 가슴 한켠이 심하게 시려 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너무너무 극심히 외로워져 코끝까지 찡했다.
2004년 7월24일
공항에서 서로 부둥켜 안으며 눈물로 콧물로 겨우겨우 제프리를 보내고 뒤돌아 서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몇번이고 주저 앉을 뻔 했다.
집으로 돌아 오니 세상에서 완벽히 혼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너무도 가슴이 저려와서 하루종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2004년 7월31일
그녀와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집에서 홀로 남겨진 나의 모든 짐을 뺐다.
또 새로운 시작이다.
두려움 전진.
2004년 8월1일
심기일전.
카하카이에 있는 숙소로 들어 갔다.
아프리카가 보유한 네군데의 숙소중 가장 열악한 환경이다.
Getto 맨션.
이 곳만은 오기 싫었는데 다른 숙소는 스튜디오인데다 포화상태라 더이상 낄 자리가 없다.
한 이년째 이곳에 진을 치고 계시는 제비 형님 두분이 나의 새로운 동거인들이다.
형님들이 방 한칸씩을 점령하고 계셔서 나는 거실에다 둥지를 틀었다.
그래도 앞으론 강이 흐르고 집주변에 나무도 흐드러진 것이 새로운 부활을 준비하기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늘부터 슬슬 조깅도 다시 시작해야 겠다.
너무 오래 쉬었다.
2004년 8월6일
숙소에 새로운 식구가 왔다.
L.A에서 왔다는데 처음에는 웨이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사장이 웨이터하기엔 아까운 얼굴이라며 우빈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조용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처럼 뛰기를 좋아 한다고.
이제부터 나랑 같이 거실을 쓰기로 했다.
74년생,나보다 한살 위라고 하길래 형이라 불러 주기로 했다.
2004년 8월17일
하루하루 너무 힘들다.
출근해서 퇴근할때까지 나홀로 멍하니 창피하고 부끄럽다.
모든 손님이 다 끊겼다.
그간 도현이와의 동거소식이 온 동네에 쫙 퍼졌다.
하와이는 좁은 동네다.
그래서 항상 소문이 빠르다.
조심한다 조심한다 했었는데 꼬리가 길었나 보다.
하와이는 여름장사가 대목이라 새로 오는 선수는 줄을 잇는데 노장중의 노장인 나는 자꾸만 설 자리가 없다.
2004년 8월27일
어머니 생신이다.
전화 대신 집앞 보리수 나무가 흐드러진 작은 공원에서 소주를 마셨다.
2004년 8월28일
숙소에 또 새로운 식구가 들어 오며 전에 있던 제비 형님 두분은 타주로 떠나셨다.
이제 이 카하카이 숙소는 우빈형,오늘 새로 도착한 나보다 한살 아래 동생 지오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서 쓰게 되었다.
하루종일 대청소를 했다.
이제 좀 사람 사는 집같다.
2004년 9월4일
지오도 운동을 좋아 하는 친구라 우리 셋은 매일 같이 알라모아나 공원에서 운동을 한다.
하와이의 햇살이 이렇게 사랑스러웠나 싶다.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2004년 9월7일
L.A 토박이라는 레오형이 오늘 또 우리 숙소로 들어 왔다.
나랑 지오가 한방을 쓰고 우빈형이 레오형과 한방을 쓰기로 했다.
2004년 9월8일
레오형을 예전부터 잘 안다는 Hawaiian 저스틴이라는 거구의 남자가 우리 숙소에 놀러 왔다.
그의 주머니에는 마리화나가 한웅큼 있었다.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조깅 나간 우빈형만 빼고 네명이서 떨을 피웠다.
나는 아직 마리화나 경험이 별로 없다.
멕시코 처음 그때를 포함 열손가락 안짝이다.
어떻게 즐겨야 할지를 잘 모른다.
레오형은 10년 구력의 대선배님이셨다.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더니 밥말리의 음악을 틀어 주신다.
초보 떨꾼 나는 저런 덩치의 하와이안 친구를 가진 뿌연 연기 속 그가 한없이 멋있게 보였다.
2004년 9월9일
저스틴이 또 놀러 왔다.
또 다같이 떨을 피웠다.
저스틴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뭐했니 라고 물어 보니 킬러였다고 했다.
농담인지 뭔지 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2004년 9월13일
초초라는 형이 오늘 우리 숙소에 들어 왔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 건너온 사람이다.
바짝 긴장한 모습이 마치 내가 처음 미국땅을 밟을때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제 제발 누가 그만 들어 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이제 인원초과다.
초초형은 거실을 쓰기로 했다.
2004년 9월25일
초초형과 다같이 떨을 피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알 수 있었다.
-저스틴은 오늘 오지 않았다.-
우빈형은 한국에서 주식회사에 다니던 사람이란다.
몇년전 고객돈까지 쫄딱 말아 먹고 L.A 이모집에 하릴없이 도피중이였다고 한다.
어느날 거실에 뒹굴던 한국 정보지를 보다 웨이타를 구한다고 해서 눈이 번쩍 띄였다고.
더이상 이모댁에 신세지기도 무안하고 하와이도 구경할 겸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지오는 어렸을때 뉴저지로 이민을 왔는데 고등학교때까지 미식축구를 하다가 어깨를 다쳐 운동을 그만두고,
뉴욕에서 호스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하와이에 내가 오기 바로 직전까지 육개월쯤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다 L.A로 떠났다 했다.
그곳에 한 일년쯤 있으니까 L.A의 퇴폐에 너무 찌드는 것 같아서 마지막 여행지로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레오형은 L.A 갱출신인데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달라스에서 페인트 칠을 하고 있을 제프리도 잘 아는 동생이라고 했다.
초초형은 한국에서 영어학원 강사였는데 외국인 강사들과 함께 대마초를 피다 걸려서 구속되었 었다고 했다.
초범 정상참작으로 금방 풀려 나긴 했지만 갑자기 한국생활에 회의가 들어 마누라도 버리고 무작정 하와이로 날라 왔다고 했다.
이곳은 물어 물어 정말 어렵게 취직했다며 엄살을 떨었다.
꼭 심슨을 닮았다.
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다.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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