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1일
도현이가 주섬주섬 여행가방을 꾸리더니 집을 나갔다.
샌프란시스코에 다녀 온다고 했다.
그녀가 몇년전 미국 처음 도착해 둥지를 튼 곳이 그곳이다.
아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그녀에게는 샌프란시스코가 제2의 고향같은 곳이다.
많이 많이 힘들구나,너도.
오늘은 어디서 떡국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낮부터 자꾸만 소주병만 기울이고 있다.
2004년 1월3일
제프리에게 전활 했다.
그리고 그가 몇알의 분홍색 마법 알약들을 구해서 왔다.
L.A를 떠난 후 처음이다.
약을 본 순간 심장이 벌렁거리고 똥이 마려웠다.
젠장,나의 세포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고향동생이라며 제프리가 데려 온 동생 토미가 오늘 DJ를 해주기로 했다.
녀석 가져온 CD가 엄청나다.
어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다.
맨정신으로 이 상실감을 견뎌 내기엔 나는 아직도 물렁하기 그지 없는 의지박약아이다.
2004년 1월10일
지난밤 짙은 스모그의 아쉬움을 뒤로 한채 클럽을 빠져 나왔다.
Party는 끝났다.
갑자기 일출이 보고 싶다.
제프리와 함께 내 비틀 거리는 육신을 차안에 구겨 넣고 토미가 운전을 해 달려간 Sandy Beach.
그 드넓은 태평양의 하늘을 뚫고 막 빠알간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 순간 내 지난 인생,구석구석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신'의 존재가 느껴 졌다.
그리고 나를 잡아 삼킬 듯이 몰아쳐 오는 파노라마같은 파도의 장엄함.
너무 방대해 받아 들일 수 없었던 삶의 섭리가 한순간 내 온몸으로 파도소리와 함께 스며 든다.
연이어 평생 그렇게 갈구했지만 믿을 수 없었던 천국의 실체.
그 또한 저 멀리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태양 근처 진분홍빛 구름뒤로 잠깐이나마 훔쳐 볼 수 있었다.
하여간 끝내 주는 아침이다.
내 영혼까지 녹여 버린 태양의 속삭임.
그리고 그뒤에 숨겨져 있었던 신의 비밀 공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짧은 1시간의 각인.
그렇게 SANDY BEACH 에서의 모든 여흥은 끝났다.
언제나 이 무렵 끝도 없이 풀어지는 TENSION.
이제 다시 감아 올린다.
다시 한번 팽팽히 조으기만 하면 또 다시 이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돌아 오는 길,용암이 흘러 내린 산들을 구비구비 돌아 하와이 카이로 접어 드는데 엄청난 크기의 무지개가 떡하니 우리를 반긴다.
감격해 눈물이 절로 흐른다.
나는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신의 깜짝 이벤트와도 같은 그 거대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가슴에 고이 고이 품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
장장 일주일만에 깊고 깊은 잠에 빠졌다.
2004년 1월12일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 나니 제프리는 아직 쓰러져 자고 있다.
부엌에서 딸그락 딸그락 소리가 나길래,설레이는 마음에 누군가 하고 살금살금 다가가니 된장! 토미다.
녀석이 차려 내온 밥상을 맛있게 비우고 둘이 마주 앉아 담배를 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제프리랑은 어린시절 달라스에서부터 알던 사이인데 여기서 다시 만나 깜짝 놀랬다고 한다.
너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 하고 물어 보니 이 놈의 사연도 참 만만찮았다.
녀석은 80년생,올해 스물넷이다.
달라스로 이민을 온 것은 토미가 열두살이 되던해,지금부터 12년전 일이라고 한다.
한국이름은 도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집을 나온 것은 지금부터 십년전 열네살때였다고 한다.
이민오고 이년만에 집을 나온 것이다.
너무도 외로웠다고 했다.
하루 20시간을 밖에서 노동을 하셨던 아버지,그리고 24시간 교회에 미쳐 버린 어머니.
집에선 늘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함께였다고.
설상가상 학교에선 늘 왕따.
늘 교실에선 맨 구석 뒷자리가 녀석의 아지트였다.
하루하루 너무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나날이 악몽처럼 계속되던 어느날,토미의 아지트으로 한 백인 소녀가 다가 왔다.
소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였다며 힘주어 따뜻하게 말한다.
영어를 못해 늘 구석에 혼자 웅크려 있던 토미에게 먼저 다가온 그녀.
사과 한알을 건네며 'Apple'이라는 단어부터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소녀와 꿈만같은 한달.
매일매일 토미는 엘리자베스와 열심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소녀에게 더욱 더욱 잘 보이고 싶어서 밤을 새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소녀는 아무 예고도 없이 옆 도시 오스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토미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고.
그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 앓아 누운지 한달이 되었건만 집에서 어느 누구도 알아 채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토미는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 서자 마자 집안의 모든 돈을 털어 무작정 오스틴으로 떠났 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하루 구걸을 하며 부랑자가 되어 한달이고 두달이고,이곳저곳 소녀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엘리자베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배고픔의 나날은 더욱 심해져 갔다.
그러다 당시 달라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제프리형제가 조직한 갱단 KB(KOREAN BOYS)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지금 이 부랑생활보다는 배가 고프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무작정 달라스로 올라 왔다.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코리안 소년인 도민은 쉽게 그 조직에 가입이 되었다.
-호스트바고 갱단이고 미국은 모두 코리안 보이즈다.-
그런데 어느날 베트남 갱단과 전쟁이 벌어 졌다.
그런데 그때 옆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지켜 보았다고.
그는 그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살짝 눈시울이 촉촉해 졌다.
그래서 그의 나이 열여덟이 되던 해에 무작정 하와이로 넘어 왔다고 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본토에 있기 싫었다고 했다.
어디든 멀리 꽁꽁 숨어 버리려 이곳 하와이로 날라 왔다고 했다.
도착후 처음엔 신문광고를 보고 알로하 셔츠공장에서 박스 포장일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아는 사람들이 생겨 '김치'라는 한국식당 주방보조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사장님이 예전 한국에서 밴드생활을 하셨던 분이라고.
그래서 그분한테 쉬는 시간에 기타도 배우고,드럼도 배우며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이 보유한 CD가 천장이 넘는다며 은근히 가슴을 내민다.
녀석의 눈을 한참 쳐다 보았다.
깊은 외로움에 겁먹은 도민의 에고가 녀석의 깊은 까만동자 뒤로 얼핏 스쳐 간다.
갑자기 와락 눈물이 떨어 지려 하기에 얼른 녀석에게 물 좀 가져 오라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놓고 한참을 한참을 울었다.
울다 보니 더욱 쓰라리게 외로워져서 변기 물까지 내리며 한참을 한참을 울어 버렸다.
2004년 1월15일
가게를 너무 오래 쉬었다.
오늘은 그간 연락을 끊었던 손님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렸다.
나쁘지 않은 반응들이다.
다행이다.
신나는 마음으로 마켓에 들러 장을 봐왔다.
든든히 먹고 뛰러 나가야 겠다.
2004년 1월25일
아직까지도 도현에게서 연락이 없다.
이렇듯 현실과 추억 사이에는 항상 닿을 수 없는 아련함이 있다.
몽상가들이 이를 악물고 감수해 내어야 하는 현실과 추억 사이에서의 처절한 괴리감.
난 오늘 이제껏 애써 외면하려 했던 추억의 옷장을 들추어 보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잊고 있었던 그 추억이란 놈의 오래된 내음에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조심스레 점쳐 보았다.
참 많은 강을 건너 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 부인할 수도 없이 멀게만 멀게만 느껴 졌다.
2004년 1월29일
수선화의 꽃말을 찾아 보았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이였다.
그래..그랬었구나.
내 스스로가 그녀를 수선화라 칭하고 사실은 나 스스로 심각히 삐뚤어진 나르시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녀를 사랑한건가?
아니면 세상이 내게 세뇌시킨 타부를 정복하고 싶었던 것인가?
갑자기 내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던 옥잠화가 떠 올랐다.
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옥잠화의 꽃말은 '추억'을 뜻한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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