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8일
인천공항에 내리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하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꾹 참아 내었다.
오늘부로 눈물은 끊기로 했다.
부산에 가기 위해 KTX라는 것을 처음 타보았다.
무지하게 빨랐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내 소중한 불알친구 종휘가 마중나와 있었다.
종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
녀석은 얼마전 둘째를 보았다고 했다.
충격이였다.
이런저런 그간의 소식을 들으며 이윽고 우리 동네로 들어 오니 너무도 그 모습이 변해 있어 깜짝 놀랬다.
겨우 삼년 남짓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백화점이 있던 곳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있고 모든 풍경들이 예전 내 기억과는 너무도 틀려져 있었다.
드디어 설레이는 가슴을 애써 부여 잡고 집에 도착.
버선발로 동구밖까지 마중을 나오신 내 어머니.
얼마전까지의 맹세는 까마득히 잊은채 난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어머니.
내 어머니께선 이젠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내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잠도 못 주무시고 고생하셨을 당신의 그 격한 나날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다.
가슴이 찢겨짐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내 어머니와 부둥켜 안고 울고선 서둘러 아버지를 찾았다.
안방에서 초조히 이 못난 아들을 기다리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칠순 중반의 노인이 되어 다리까지 불편하시다 한다.
또다시 눈물이 나려는 걸 허벅지를 꼬집고 또 꼬집어 끝끝내 참아 내었다.
이윽고 누나네 식구들이 도착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조카 은결이는 어느새 미운 네살이 되어 이 집의 대장이 되어 있었는데 나는 녀석의 마지막 핏덩이 모습만 기억이나 도저히 매치가 쉽지 않아서 한동안 어색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빈자리를 너무도 훌륭히 메꿔주신 누나 내외에게 어찌나 고마웁던지.
하여간 정말 놀랄 일들이 너무 많았던 오늘이다.
이 충격들이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아,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6년 7월9일
우빈형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거보면 형한테 바로 전화해라.
안좋은 소식이다.
너 맘아플거 같아.
도현이,태현이랑 둘이.이틀 전에 사망했다.
이거보면 형한테 바로 전화해.
2006년 8월3일
오늘까지 한 백병의 소주를 비워 냈을까?
오늘까지 내가 알아 낸 사실은 하와이 현지 날짜로 7월7일 그들이 함께 사망했다는 사실.
그리고 장소는 내가 그녀랑 같이 살던 그집 2211 alawaii.
베란다가 없어 위험천만했던 그 14층.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는 그곳에서 그저 사고 추락사였다는 것뿐.
더이상 그 무엇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녀 나이 서른 세살.
너무 짧은 생이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래,이기적인 마음으로 무장했다.
내일은 몸을 추스려 서울행 KTX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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