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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만 삼천 원

AP593C.JPG

축의금 만 삼천 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곰보빵』중에서


(이철환 지음 
| 꽃삽) (사진 | 전흥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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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 오면
그 사람의 부모님에게도 선물을 함께 해드리세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키스하신적 있다면 그 날을 꼭 기억하세요.
내가 육체적인 즐거움을 찾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소중한 약속이 된다는걸 가슴 깊이 간직할수 있도록



대신 맨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시간이 갈수록 날짜와 함께

서로의 사랑도 계산될까 두려우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할때
항상 함께 있을수 있도록 애써 보세요.
그 사람은 그 순간 그 많은 사람중에
당신을 찾는 것이니까요. 특별한 당신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들에게 잘 대해 주세요.
내가 사랑하기 전에 그 사람을

소중히 아껴주었던 사람들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와 비교하지 마세요.
내가 내 사랑을 비교할 때
내 사랑도 나를 남들과 비교할테니까요.


 

잊지마세요. 서로가 서로에게
지금 이대로가 가장 소중하다는 걸.


지상천국의
출처 : 파랑새의 쉼터
글쓴이 : 파랑새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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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것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집채같은 파도가 앞을 막기도 하여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듯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 삽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비 오듯 슬픈 날이 있고











바람불듯 불안한 날도 있으며
파도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없는 집은 없습니다.
.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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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원]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원

     남편이 잠 못 들고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돈이냐며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기의 비상금이었는데 핼쑥한 모습이 안스럽다며
     내일 몰래 혼자 고기뷔페에 가서
     소고기 실컷 먹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만원짜리 한 장을 펴서 쥐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엔 물기가...
 
     "여보..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어젯밤 남편에게서 만원을 받은 아내는 뷔페에 가지 못했습니다
     못먹고 산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노인정에 다니시는 시아버지께서 며칠째 맘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아내는 앞치마에서 그 만원을 꺼내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아버님 만원이예요 제대로 용돈 한 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신세진 친구분들하고 약주 나누세요"


    


     시아버지는 너무나 며느리가 고마웠습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 힘겹게 끌어 나가는
     며느리가 보기 안스럽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돈 만원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실컷 자랑만 했습니다

     "여보게들! 울며느리가 오늘 용돈 빵빵하게 줬다네"

    

     그리고 그 돈을 장롱 깊숙한 곳에 두었습니다.
     다음 해 설날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습니다 기우뚱거리며 절을 합니다
     주먹만한것이 이제는 훌쩍자라 내년엔 학교에 간답니다

     할아버니는 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오냐" 하고 절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놓은 그 만원을 손녀에게 세배돈으로 줍니다

     " 할아버지.고맙습니다 "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외동딸 지연이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세배돈을 받은 지연이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를 불러냅니다
     "엄마.. 책가방 얼마야??"

    

     엄마는 딸의 속을 알겠다는 듯 빙긋 웃습니다
     왜? 우리 지연이 학교 가고 싶니??"

     지연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에게서 세배돈으로
     받은 만원을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한테 맡길래 내년에 나 예쁜 책가방 사줘여??"

    

     요즘 남편이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하던 잠꼬대까지...
     아침에 싸주는 도시락 반찬이 매일 신김치 쪼가리 뿐이라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 양복 속주머니에
     낮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원을 넣어 둡니다.

     " 여보 내일 좋은 것 사서 드세요 " 라는 쪽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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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연예인의 경우 공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들이 대중에게 주는 영향이 일반인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선행이나 실수가 더 크게

부각되기도 합니다.  저도 부모님과 친지들을 비롯해 학창시절 선생님과 교수님, 많은

선후배들에게서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쓴 기사를 보고 ACCD에 진학한 뒤 GM에 입사한 분도 계시고 류청희님과

저를 통해 자동차 저널리스트의 꿈을 꾸고 있다는 고등학생과의 교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과 직접적인 교류를 갖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할 때도 있지요.  

소설 속 어느 대사가 좌우명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거나, 어느 영화를 통해 크나큰

감동을 받은 사람이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일생을 결정할 만큼의 큰 영향은 아닐지 몰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영향을 준

업계의 대부(?)가 누구나 하나쯤은 있겠죠.  

직접 사사를 해준 직장의 사수도 있을 수 있고, 전공 교수님의 가르침 등 직접적인 인연도

있겠지만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어도 연구업적이나 작품을 통해 큰 영향이나 감동을

준 분도 있을 테니까요.  제 경우도 당연히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략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카비전에 리처드 정의 디자인 에세이가 연재되었는데

그 중 한편에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의 폰티액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페이지에는 기사 내용에 언급된 그림이 작게 프린트되어 있었습니다.



지면에 작게 실린 그림이었지만 구도, 색채, 분위기 등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죠.

자동차 광고사의 한 획을 그은 이 일러스트레이션들에는 AF/VK 또는 VK/AF 라고 싸인이

되어있는데 한 사람이 자동차를, 다른 한 사람이 배경을 그렸다는 설명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년이 지났습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신기하던 무렵 포모나라는 동네에서 열린 자동차

스왑밋(Swapmeet)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3달에 두번 정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벼룩시장은

중고차, 각종 자동차 부품, 튜닝용품과 애프터마켓 부품, 차량 유지에 관련된 케미컬이나

첨가제는 물론 자동차 관련 서적을 파는 부스까지 다양한 좌판(?)이 펼쳐진 곳이었습니다.  

물론 자동차와 상관없는 잡동사니를 파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관련된 거의

전품목이 거래되는 곳이자 자동차 매니아에게는 상당히 많은 구경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오기 전 우리나라의 대형 서점에 가 보아도 자동차서적 코너는

운전면허나 기사자격증 시험에 대비한 수험서이거나 정비매뉴얼이 대부분이었고 다른 소재라면

전국 지도나 맛집소개서 같이 자동차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경우였고 그 이외의

교양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웬만한 서점에만 가 보아도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관련 서적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벼룩시장에서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지 못하는 절판된 책을 비롯해 오래된

카탈로그들까지 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더군요.   다양한 차종의 예전 카탈로그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중 오래된 폰티액 브로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카비전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라 냉큼 집어 들고 비닐주머니에서 빼서 펼쳐보았죠.

기사에서 보았던 대로 잘 찍은 사진보다 훨씬 호소력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구성된 폰티액

브로셔를 몇 개 열어보고 나서 1970년도 브로셔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물론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도 있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물론 현직에

계신 분들에게도 아주 좋은 참고자료가 될만한 그림이 가득했으니까요.  제 경우는 그림에 대한

고민과 연습에 이 브로셔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AF와 VK에게 직접 그림을 배우거나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에 좌절감 느껴지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동차라는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돌아갈 길 대신 지름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나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년 8월에는 클래식카 세계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라 할 수 있는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립니다.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일요일에만 열리는 이벤트이지만 이 한주간은 다양한

자동차 이벤트가 끊이지 않고 몬테레이 반도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마세라티 카쇼로 시작하여

이태리차 중심의 유럽차들의 카쇼로 발전한 콩코르소 이탈리아노가 금요일에, 라구나 세카에서

열리는 히스토릭 카레이스가 토, 일요일에 열리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자선행사와 클래식카 경매,

자동차 메이커의 파티 등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 중에서도 수퍼카나 클래식카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요.  저도 최근 들어서는 클래식카 위크에 페블 비치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자동차 매니아라면, 특히 클래식카쪽에 관심이 많다면 이때에 맞추어 페블 비치쪽을

둘러보기만 해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입장료가 비싼 콩쿠르 델레강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 풍성한 볼거리들이 있으니까요.  

몬테레이 반도가 원래 풍광이 아름답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을 역임한 카멜(Camel-by-the-Sea

도 분위기 좋은 타운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고 페블 비치는 골프 치시는

분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Classic Car Week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볼 만한 관광지라는 얘기죠.   그냥 가봐도 아름다운 이런 곳에서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등의 최신형 수퍼카들과 함께 클래식 알파로메오, 로터스, 코브라 등

평소에는 보기 힘든 차들이 눈 돌리는 곳마다 시야 한 가득 들어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입니다.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리는 현장 바로 옆에 설치된 AFAS(Automotive Fine Art Society)의 전시장도

페블 비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죠.


2001년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 갔을 때였습니다.  

AFAS의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낯익은 AF/VK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여러 점 걸려있는 부스를

발견했습니다.  원본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이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사에 나온 대로 두 명이 작업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배경 그림 위에 자동차

그림이 오려 붙여진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도무지 두 사람이 따로 그린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만한 일관성과 함께 배경이 차의 표면에 반사되는 모습까지 정확하다는 점에서 새삼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한참 그림에 취해있는데 어느 노신사가 다가와서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말을 건네왔습니다.  

이것이 AF/VK중 AF라는 싸인의 주인공인 Arthur M. Fitzpatrick씨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흔히 ‘아트 피츠패트릭’ 이라고 불리며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피츠라고 부릅니다.  

그날의 AFAS 전시장에서는 인사와 한참의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저도 카비전의 외부 필자 중 하나였기에 그의 이야기는 비주얼로나 스토리로나 모두

흥미 있을만한 소재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보다도 제가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린 분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그 해 가을 샌디에고 카운티의 칼스바드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아가 취재를 했고 그 이야기는 카비전 200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1918년생인 피츠패트릭씨는 Society of Arts and Crafts와 Detroit School of Art를 졸업하고

당대의 유명 디자이너 John Tjaarda 가 이끄는 브릭스 바디 컴퍼니(Briggs Body Company)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코치빌더가 많았던 시기였고 브릭스 바디

컴퍼니도 그 중 하나였지요.  브릭스 바디에서 재직 당시 크라이슬러와 링컨 제퍼의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다를린(Darrin)이라는 코치빌더에서

다를린 패커드 세단과 컨버터블의 디자인을 맡았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에 입대하여

비행교본을 비롯한 여러 교육자료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했었답니다.  

해군 복무 시 뉴욕에서 근무하던 그는 제대하기 전부터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광고미술계의

일을 하기 시작했고 머큐리는 1945년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전량을 그에게 맡기기에 이르렀습니다.

1949년에는 VK라는 사인의 주인공인 밴 커프만(Van Kaufman)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밴 커프만은 2차대전시에는 육군항공대의 훈련용 교재영화를 감독하고 그 이후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한 경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피츠패트릭씨는 자동차를, 커프만씨는 배경과 인물을 맡는 분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53년에 이르러서 이들 콤비에게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맡긴 회사는 머큐리, 링컨, 플리머드,

내쉬, 카이저, 그리고 뷰익 등으로 늘어났습니다. 뷰익에서는 이들의 그림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여

더 많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문하려 했으나 AF와 VK는 이미 맡아놓은 다른 광고들 때문에

뷰익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뷰익에서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대신 뷰익에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고 하네요.  피츠패트릭씨는 어느 한 곳에 소속되기보다는 프리랜서로 남기 원했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하리라 예상한 액수의 연봉을 불렀는데 뷰익에서 이를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AF와 VK는 53년부터 뷰익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GM과의 인연은 1959년부터 폰티액으로 옮겨졌습니다.  

폰티액은 당시 와이드 트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제품 홍보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AF와 VK는 구도를 적당히 과장하면서도 사실감을 잃지 않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여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로는 차가 넓고 크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화폭을 벗어나 앞부분이 살짝 잘린 구도를 사용하기도 했고



그림자에 살짝 가려진 차를 표현하기도 했으며



눈 덮인 차를 그리기도 하는 등 일반적인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디어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테크닉으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www.fitz-art.com 에 가시면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보다 더 실감이 느껴지면서도 회화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갖춘 이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은

59년부터 폰티액의 브로셔는 물론 잡지 광고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특히 존 드로리언은 폰티액을 총괄하던 당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존 드로리언은 폰티액 부사장을 거쳐 시보레 총책임자를 역임하고 GM에서 사임이라고 해야

할지 축출당했다고 해야 할지 하는 상황으로 회사를 떠난 뒤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차려

드로리언 DMC-12를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이 차는 영화 백 투더 퓨쳐에 타임머신으로

출연하면서 더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죠.  

드로리언 DMC-12에 대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도 적혀있습니다.
http://blog.dreamwiz.com/beetle69/592807

피츠패트릭씨는 존 드로리언이 타계하기 전날 밤 그와 통화를 하기도 했을 만큼 친한 사이였습니다.

1969년 존 드로리언이 시보레로 발령이 난 뒤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폰티액의 광고 예산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고 AF와 VK는 71년을 마지막으로 폰티액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폰티액을 떠났지만 GM과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GM 유럽을 담당하고 있던 밥 러츠가 AF와 VK에게 오펠의 일러스트레이션을 2년간 맡겼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GMK(GM대우의 뿌리)가 조립생산 한 바 있는 오펠 레코드


그 이후 프리랜서로 돌아간 AF와 VK는 때로는 각자, 또 때로는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깝게 지냈습니다.  AF와 동갑인 VK는 1995년 타계했습니다.  

피츠패트릭씨는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건축가 등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왔고 그의

작품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테크닉에 안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80세 무렵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밴 커프만씨가 곁에 없는 만큼 배경까지도 그가 그리고 있는데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라인을 그리고 포토샵에서 채색을 한다고 하네요.  

그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Cars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50년대 미국 스포츠카를 소재로 한 우표 America on the Move: 50’s Sporting Cars

를 발행했고 지난 10월에는 America on the Move: 50’s Fins and Chrome이라는 두번째

시리즈를 냈습니다.  



후문으로 미국 체신청인 USPS(United State Postal Service)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을 하는데 질려 더 이상 우표 후속작품을 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민간인이 공무원과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얼마 전 그는 90세가 되었습니다.  



생일파티에는 저도 초대를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의 작업실입니다.  

그는 9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고 지금도 작품활동과 전시회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타고난 건강과 함께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가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해왔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제가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지, 산다면 그 나이에

그렇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만일 정신줄 놓지 않고 있다면 그 열정의 반이라도 남아있을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과 아티스트에게는 은퇴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그가 계속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Happy 90th Birthday, F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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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는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DHA, EPA와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 방어는 비타민 D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할 수 있다.

 

회를 좋아하는 나는...

회를 먹으러 동문시장에 가곤한다.

 

제주도 동문시장 안에 보면 회센터가 있다.

수족관에 있는 생선을 바로 보는 앞에서 회로 쳐준다.

 

싱싱함에 더해져서 더 맛이 있지 않나 싶다.

 

 

 방어회.

 

침이 꿀꺽.

이건 양식산.

 

양식산과 자연산의 차이란?

 

자연산은 바다에 있는 먹이들을 먹고자라서 등부분의 빨간색과 살의 흰색 대비가 또렷하다.

등부분은 한없이 빨갛고 살부분은 정말 뽀얗다고 해야하나?

 

양식산은 사료를 먹고자라서 등부분과 살부분 색을 대비해보면 차이가 좀 약하다.

그리고 양식산은 더 통통하다.

먹이를 제때주기에 살이 올라 통통할 수 밖에.

 

 

 

회가 나오기전에 먼저 나오는 것들을 살펴보자.

먼저 오이와 당근과 다시마.

 

 그리고 마늘과 청량고추.

 

다진마늘과 된장, 그리고 참기름.

 

 싱싱한 상추와 깻잎.

 

뭐니뭐니해도 회를 싸먹을땐 깻잎이 최고~ +_+

 

 고구마튀김.

 

따끈따끈한 고구마튀김.

 

 전복과 굴~

 

초장에 찍어보고 전복은 기름장에 찍어먹고~

 

 그 다음에 나오는 삶은 소라.

 

이쑤시개로 이녀석을 꺼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난 초록색 소라똥은 안 먹는다.

 

쓰잖아-_-;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소라를 엄청 잡아다가 먹었기에...

 

그때 생긴 나쁜 버릇이라고 할까나.

 

많으니까 똥은 안 먹었거든~

 

 방어회가 나왔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어서드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입은 즐겁다.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방어내장 삶은 것.

 

어떤 맛?

 

먹어본 사람만 안다.

 

 그리고 나오는 전어구이.

굵은 소금 팍팍.

 

 

 젓갈에 고추와 마늘을 넣어서 휘휘 저어주고~~~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찰나 나오는 찌개.

 

맛있어... ㅠ_ㅠ

 

고추 숑숑 양파도 숑숑~

 

얼큰하게 공기밥에 먹고...

 

아~ 배불러 이러고는 일어나질 못한다.

 

회에는 소주가 제격이나...

 

특히 한라산 소주.

친구나 나나 술을 못하기에....

 

술을 시켜도 남길 것이기에 안 시켰다.

 

그냥 사이다로 패스.ㅋㅋㅋㅋㅋㅋ

 

다 먹고나서 계산하는 친구.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일반 횟집보다는 저렴하게 회를 즐길 수 있어서 시장이 좋다.

 

 수족관 사진도 찍어보고...

 

 나와서 시장을 한번 찍어본다.

 

저녁의 시장은 조용하고 한산하다.

회센터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배가 불러서 배는 무겁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처 : 사고뭉치 꼬양 _
글쓴이 : 꼬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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