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 태그의 글 목록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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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심다/서봉교

  

정월부터 이불 밑에서 촉을틔워

애지중지하던 고추모 정식은

수십 년 해 먹던 논바닥을

하리수 수술하듯 객토로 지목 정정한 살찐 밭이다

아부지 왈

모를 심으면

트렉타비 30만원

농약비 50만원

벼 베는데 30만원

내 품값은 빼고

가을에 벼 서른 몇 가마 수확하구 나면

개뿔도 아녀

일단 고추를 심어봐

한근에 5천원씩 3천근이면 1500만원이야

논바닥에 마사토로 객토한 흙을

포경 수술하고 녹는 실밥 풀듯 만져보는데

고추 모들이 꽂꽂하다

이 땡볕에

서야 할 때를 알고 서는 고추모는

얼마나 대견한 놈들인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작물이든

중요한 것이 고추여

 

그 고추를 어린이날 심는데

 

 

고추밭 뒷편

다래골의 화산바위가 엽초를 태우다 말고 

 부르지도 않은 증인을 서고 있다

 

출처 2011년영월문학11집에서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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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법칙/서봉교

 

*산에 가면

고함지르지 마라

 

나무들도

스트레스 받는다

 

*인제군 숲 해설가 방철수씨 말에서 인용

 

『형상21제15집』2013년 조선문학사에서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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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樣年華(화양연화)/ 이선영

 

 

가장 불행한 얼굴로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이노라고

리첸 부인은 말했다

 

"정말 많이 보고 싶지만, 먼 후일을 기약하기로 해요"

편지를 써야만 했던 날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고

 

게임은 거의 끝나가는데

남은 판은 더욱 절박한

 

사십세

 

행복은

불행이라는 돌틈에 숨은 작은 샘구멍

불행은

행복의 부서지기 쉬운 살을 감싼 갑각

 

알겠구나,

평생이

이 뗄 수 없는 연인들과의

부질없는 삼각관계임을!

 

불행의 적요한 한낮을

화(花)-아-양(樣)-연(年)-ㄴ-화(華) 라디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올 때

 

불행은 자기가 빠져나갈 틈을 알고 있다

 

- 시집『일찍 늦으매 꽃꿈』(창작과비평사,2003)

...........................................................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왕가위의 영화 제목이다. 영화는 상해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 두 가구가 이사를 오면서 시작되는데, 이러한 설정만으로 이미 지루함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신문 편집장 차우(양조위)부부와 작은 무역회사 비서로 일하는 리첸(장만옥)부부다. 남편이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은 리첸과 아내가 호텔 근무로 자주 집을 비우는 차우는 아파트 주위에서 자주 얼굴을 부딪치면서 꽤 친한 이웃으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우는 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의 것과 같음을 발견하고, 리첸 역시 차우의 넥타이가 남편의 것과 같음을 확인하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배우자가 서로 사귀고 있는 사이임을 눈치 챈다. 배신감에 흐느끼는 리첸을 위로하면서 차우는 어느새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자라고 있음을 깨닫고, 리첸 역시 자신의 마음이 점점 차우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쯤 되면 스토리는 빤한 노름인 듯싶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느릿한 전개로 별다른 정점에 이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뒤쳐지는 지친 마라토너의 시간과도 같다.

 

 이 작품은 왕가위 감독이 과거 '중경삼림'이나 '해피 투게더'에서 보여준 고속촬영 방식이 아닌 슬로모션과 스톱모션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데 또 다른 느림의 영상미학을 보는 듯하다. 또 주위의 모든 곁가지들은 걷어내고 오로지 두 인물에만 초점을 맞춘 거라든지, 배경이나 심리묘사 그리고 영상미학 쪽에서 프랑스적인 분위기가 읽혀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2000년에 프랑스와 합작하여 그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기술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영화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바로 '치파오'라는 몸에 딱 달라붙는 스타일의 중국 전통원피스를 입은 리첸의 모습이다. 이 의상은 1920년대 중국의 변혁기에 고대의 전통 복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곡선미를 살려낸 개량 의상으로서 중국 기생의 옷에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싱가포르 항공 여승무원의 제복으로도 유명한데 한때 '싱가포르는 잊어도 싱가포르에어라인은 잊지 못한다'는 광고 카피는 이 옷을 입은 여승무원이 통로를 지날 때 슥 비벼대며 승객들에게 베푸는 스킨십 서비스가 유명한데서 나온 말이다.

 

 장만옥이 입은 이 옷은 그냥 눈요기로서가 아니라 196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리첸이라는 인물을 형상화하고 왕가위가 의미하는 반어적 화양연화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리첸이 입은 원색 톤의 화려한 치파오는 전부 26벌에 달한다고 한다. 이 원색 치파오를 통해 감독이 의미하고자 했던 화양연화란 결국 껍질뿐인 아름다움 혹은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두운 골목길을 배경으로 국수통을 들고 다가오는 화려하고 부드러운 곡선미의 치파오를 입은 리첸과 아내가 부재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말끔한 정장에 화려한 넥타이 차림인 차우의 스침. '고독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더 큰 고독에 빠져 드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더 나은 화양연화를 위해 두 사람의 화려한 의상은 과연 그들의 외로움과 사랑을 도와줄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의 의상처럼 단정하고 격식을 차리면서 느리게 지속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만나자 못하게 된다. "정말 많이 보고 싶지만, 먼 후일을 기약하기로 해요" 불가에서는 좋은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지 않는데서 오는 고통을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여덟 가지 고통중 하나라고 한다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고통을 아름답게 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는 음악이 기가 막히게 딱 맞아 떨어져 좋았다. 첸과 차우가 친해지기 전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스쳐지나갈 때 나오는 테마음악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성격 짓는 것 같다. 발걸음마다 리듬을 주는 음악이 힘 있고 들썩거리게 하면서도 쓸쓸하고 서럽고 안타까운 느낌을 주었다(우리 영화 ‘접속’에서도 이 분위가 연상되는 대목이 있었다). 첸과 차우가 처음으로 마주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때 흐르는 음악도 '아마도 그럴 수 있겠지'란 뜻인,  냇킹콜의 'Quizas, quizas, quizas'인데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게끔 하였다.

 

 첸의 대사 중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것 같아요"하는 말이 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별연습을 한번 해보는데 그들은 울어버린다.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만다. 세월은 흘러 차우가 첸을 찾아가지만 '애 딸린 여자 하나'가 산다는 말에 그만 돌아선다. 옛날에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땐 산에 가서 나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다 말을 하고 진흙으로 막았다는 전설의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며 산다. 그리고 차우는 이국땅 캄보디아에 첸과의 비밀을 묻어둔다. 첸도 차우를 못 잊어 전화로 찾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수화기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 다였다. 그것으로 아름다웠던 한 시절은 짙은 노을빛 신화가 되었다.

 

 이 시는 영화를 빌미삼은 아마도 시인의 마흔 언저리에서 감응한 ‘신세 한탄’ 쯤으로 들리는데 예슨 즈음의 사람으로는 그저 씩 웃고 말 일이다. 다만 ‘불행은 자기가 빠져나갈 틈을 알고 있다’는 결어는 꽤 솔깃하다. 이 만장한 봄날에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여전히 만져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스침으로 상처가 된 내력들을 다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어찌 시와 영화뿐이고, 차우와 첸과 시인만의 일이겠는가.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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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구글 검색을 하다가 / 이상국

 

 

이 손바닥만 한 땅덩이에서

아버지는 일생을 소와 함께 살았고

나는 월급봉투로 살았다

지금 나의 자식들은 카드로 산다.

카드의 마그네틱 자성은 원래

빅뱅 때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고

하늘에는 아직 반짝이는 별이 많다

언젠가 텍사스에서 카드를 긁고

서울에서 결재하며 금전이

하늘을 어떻게 오가는지

오래 바라보았다

사는 게 도깨비놀음이다

그러나 지피에스로 찍고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사실

이 세계라는 것도

별게 아니긴 하지만

어느 날 구글지도 검색을 하다가

바다로 떨어질까 봐

대륙의 가파른 등짝에

한사코 매달린 내 땅을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는 게 다 용하다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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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시인이 번역한 시집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지취 : 참취나물.

금덤판 :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 또는 그곳에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 울타리 옆에 놓아 친느 벌통에서 꿀을 따 모으려고 분주히 드나드는 재래종 꿀벌.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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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갤럭시 노트 / 차영한

 

 

 

카카오톡 역광을 보내는 글로벌 아파트

비주얼 그림자를 밟고 다가가는 내 발끝 만족도를

발끈시키는 조명발을 받으며 백포도주 색깔을 띤

스웨이드 소재'엠포리오 아르마니' 구두끈

앗! 가장 작은 얼굴을 내미는 사마귀

 

 

아주 가볍고 화려한'프라다의 카나파'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펜다'의 시계 속으로 날아가다

아웃도어에 있는 파워윈드브레이커 재킷 거미에

흘려 열을 받는다 나를 사냥할 듯

문을 연다 그 안으로 들어가

유리눈알로 감시하며 내 파토스를 토해내고 있다

 

 

 

 

『캐주얼 빗방울』차영한 시집 2012.11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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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 가는 길 / 이상국


1


물은 산을 내려가기 싫어서
못마다 들러 쉬고
쉬었다가 가는데
나는 낫살이나 먹고
이미 깎을 머리도 없는데
어디서 본 듯한 면상(面相)을 자꾸 물에 비춰보며
산으로 들어가네

어디 짓다 만 절이 없을까

아버지처럼 한번 산에 들어가면 나오지 말자
다시는 오지 말자
나무들처럼
중처럼
슬퍼도 나오지 말자

 

2


만해(萬海)도 이 길을 갔겠지
어린 님을 보내고 울면서 갔겠지
인제 원통쯤의 노래방에서
땡초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조선의 노래란 노래는 다 불러버리고
이 길 갔겠지

그렇게 님은 언제나 간다
그러나 이 좋은 시절에
누가 그깟 님 때문에 몸을 망치겠는가
내 오늘 세상이 같잖다며
누더기 같은 마음을 감추고 백담(百潭) 들어서는데
늙은 고로쇠나무가 속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는다
나도 님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3


백담을 다 돌아 한 절이 있다 하나
개울바닥에서 성불한 듯 이미
몸이 흰 돌멩이들아
물이 절이겠네
그러나 이 추운 날
종아리 높게 걷고
그 물 건너는 나무들,
평생 땅에 등 한번 못 대보고
마음을 세웠으면서도
흐르는 물살로 몸을 망친 다음에야
겨우 저를 비춰보는데
나 그 나무의 몸에 슬쩍 기대 서니
물 아래 웬 등신 하나 보이네

 

4


그러나 산은 산끼리 서로 측은하고
물은 제 몸을 씻고 또 씻을 뿐이니
저 산 저 물 밖
누명이 아름다운 나의 세속
살아 못 지고 일어날 부채(負債)와
치정 같은 사랑으로 눈물나는 그곳

나는 누군가가 벌써 그립구나

절집도 짐승처럼 엎드려 먼산 바라보고 선
서기 이천년 첫 정월 설악
눈이 오려나
나무들이 어둠처럼 산의 품을 파고드는데
여기서 더 들어간들
물은 이미 더할 것도 낼 것도 없으니
기왕 왔으면 마음이나 비춰보고 가라고
백담은 가다가 멈추고 멈추었다 또 가네

 

- 이상국 시집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2005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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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병/서봉교

 

일주일을 혹사한 몸들이

금요일 저녁 회식을 하는데

사람은 여럿이라도 소주는 꼭

한 병만 시킨다

한 병 돌려봐야 일곱 잔 반인데

추가 할 때도 또 한 병이다

이른 초가을 새벽 샆속의 민물고기들처럼

손님들은 오글오글 하고

홀에서 심부름 하는 사람들도 널 뛰듯 죽겠다는데

너도 나도 한 병, 한 병이다

아니 두병씩 시키면 안되냐고요

 

밤술은 홀수라고

먼 귀신 닭다리 뜯는 소리여.

 

  출처:2012년 시인정신 여름호 발표작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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