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태그의 글 목록 (3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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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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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심다/서봉교

  

정월부터 이불 밑에서 촉을틔워

애지중지하던 고추모 정식은

수십 년 해 먹던 논바닥을

하리수 수술하듯 객토로 지목 정정한 살찐 밭이다

아부지 왈

모를 심으면

트렉타비 30만원

농약비 50만원

벼 베는데 30만원

내 품값은 빼고

가을에 벼 서른 몇 가마 수확하구 나면

개뿔도 아녀

일단 고추를 심어봐

한근에 5천원씩 3천근이면 1500만원이야

논바닥에 마사토로 객토한 흙을

포경 수술하고 녹는 실밥 풀듯 만져보는데

고추 모들이 꽂꽂하다

이 땡볕에

서야 할 때를 알고 서는 고추모는

얼마나 대견한 놈들인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작물이든

중요한 것이 고추여

 

그 고추를 어린이날 심는데

 

 

고추밭 뒷편

다래골의 화산바위가 엽초를 태우다 말고 

 부르지도 않은 증인을 서고 있다

 

출처 2011년영월문학11집에서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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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란 거북이는 연어처럼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해변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알에서 부화한 거북새끼는 고향의 냄새를 맡으면서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서 갑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니 바다로 가는 동안
천적들에게 잡아먹히지는 않겠네요

 

 

 

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찬이고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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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연아는건들지마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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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텀블러 & 구글링

 

 

 

 

 

Lady GaGa - Do What U Want

 

 

 

 

 

 

 

 

 

 

 

 

 

 

 

 

 

 

 

 

 

 

 

 

 

 

 

 

 

 

 

 

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롤러코스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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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범죄경력으로 임관무효 처분이 내려진 권동철(46) 예비역 상사에 대한 구제 조치가 취해졌다.

육군은 지난 5일 인사소청심사위원회를 열고 권 예비역 상사에 대한 임관무효 처분을 취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군은 26년간 복무하고 전역한 권 예비역 상사의 정부 포상을 신청하기 위해 전과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군 입대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확인되자 관련 법령에 따라 임관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권 예비역 상사는 군 복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퇴직금과 연금도 받을 수 없게 될 처지에 놓였다.

권 예비역 상사는 이에 "입대 당시 임관 결격 사유인지 몰랐고 복무 중 전과가 알려졌으나 조치하지 않은 군에 잘못이 있다"며 반발, 육군본부에 인사 소청을 청구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인사소청위의 구제 결정에 대해 "법적으로는 임관을 취소하는 것이 원칙이나 권 예비역 상사가 군 복무를 성실히 한 점을 인정해 임관무효 처분을 취소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권 예비역 상사는 퇴직금과 연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야음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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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리키월드
글쓴이 : 포도봉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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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속초에서 / 최영미  

       
 

바다,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살이 있었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드문드문 건져올린 기억으로 가까운 모래밭을 두어번
공격하다보면 어느새 날 저물어, 소문대로 갈매기는
철없이 어깨춤을 추었다.
지루한 飛行 끝에 젖은 자리가 마를 만하면
다시 일어나 하얀 거품 쏟으며 그는 떠났다.
기다릴 듯 그 밑에 몸져주운 이마여ㅡ
자고 나면 한 부대씩 구름 몰려오고
귀밑털에 걸린 마지막 파도소리는
꼭 폭탄 터지는 듯 크게 울렸다.


바다, 밀면서 밀리는 게 파도하고 배운 서른두살이
있었다


더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어디 누우나
비 오는 밤이면 커튼처럼 끌리는 비린내, 비릿한
한움큼조차 쫒아내지 못한 세월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밤이 깊어가고 처벅처벅 해안선 따라 낯익은 이름들이
빠진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아무리 곱씹어도 이제는 고스란히 떠오르지도 못하는
세월인데, 산 오징어의 단추 같은 눈으로 횟집 수족관을
보면 아, 어느새 환하게 불켜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죽음이여ㅡ 네가 내게 기울기 전에 내가 먼저
네게로 기울어가리.     

  

 

 

 

 

  

 

 

 

사랑의 힘 / 최영미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촛불을 춤추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밤도 밤이 아니다
술잔은 향기를 모으지 못하고
종소리는 퍼지지 않는다


그림자는 언제나 그림자
나무는 나무
바람은 영원한 바람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면
겨울은 뿌리째 겨울
꽃은 시들 새도 없이 말라죽고
아이들은 옷을 벗지 못한다
 

머리칼이 자라나고
초생달이 부풀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처녀는 창가에 앉지 않고
태양은 솜이불을 말리지 못한다
 

석양이 문턱에 서성이고
베갯머리 노래를 못 잊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미인은 늙지 않으리
여름은 감탄도 없이 시들고
아카시아는 독을 뿜는다


한밤중에 기대앉아
바보도 시를 쓰고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하는
정녕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도 기꺼이 속아주지 않으리


책장의 먼지를 털어내고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사랑이 아니면 계단은 닳지 않고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촛불을 춤추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족보 / 최영미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허무하다 그치?)
어릴 적,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 잠든 적이 있다

 

 

 

 

 

          

  

 

 

 

너를 잃고 / 최영미

 

 

너를 잃고 나는 걸었다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가랑잎들만 발에 채이고
살아있는 싱싱한 풀잎 한장 내 마음 받아주지 않네
바람 한자락 시린 내 뺨 비껴가지 않네

다정했던 그 밤들을 어디에 파묻어야 하나
어긋났던 그 낮들을 마음의 어느 골짜기에 숨겨야 하나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는 저녁,
너를 잃고 나는 썼다 
 

 

 

 

 

 

 

 

 

 

 

 

 

 

 

 

 

 

 

 

 

 

 

 

 

 

 

 

  

 

 

옛날의 불꽃 / 최영미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어떤 사기 / 최영미

 

 

진달래가 이쁘다고 개나리는 안 이쁜가


내가 아는 어떤 부르조아는 연애시를 쓰려고 연애를 꿈꾸는데

행을 가른다고
고통이 분담되나

연을 바꾼다고
사랑이 속아주나

아, 그러나 작은 정열은 큰 정열이 다스려

그리고...그런데...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
몇번 했는지 모른다 
 

 

 

 

 

 

 

  

 

알겠니? / 최영미

 

 

1. 담배 한 개비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나, 그리고 너.

겨우 생존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칼날, 버릇처럼 붙이는

안녕! 뒤에 숨겨진 무관심과 자잘한 계산들

풀리지 않는 생의 방정식. 왜? 또......

 

담배 한 개비가 타는 시간,

절망이 피어오르다 희망과 교대하고

물렁물렁한 것들이 단단해진다

 

가슴을 쥐어뜯다가도

금방 살아갈 구멍을 찾고

꿈을 꾸면서도 포기하는 나.

날마다 조금씩 자기를 파괴하면서

결코 완전히 파괴할 용기는 없었지 

 

 

2. 고인돌 

 

선운사 가는 길에 고인돌을 보았다

시커먼 돌덩이들이 시처럼 반짝였어

그만 멈추고픈 가슴이, 오래된 죽음을 보자 팔팔 뛰었지

 

이천오백 년 묵은 허무 앞에서 일 년밖에 안 된 연애는

허망할 것도 없었어. 티끌도 아니었어

단단한 허무에 엉덩이를 비비고 물을 마셨지

돌덩이들의 무시무시한 침묵,

이끼 낀 역사가 바람에 나부꼈어

사랑하고 싸우던 육체도 영혼도 썩어 증발했으니

여기, 엄청난 비유가 누워 있으니

멈추어라! 생각하며 말하던 것들이여

순간에서 영원으로 비약하는 인간의 서투른 날개짓,

천하를 주무르는 어떤 고매한 사상이

이 무거운 적막을 깨뜨릴 수 있는지

내 속에 고인 침이 돌로 굳기 전에

붙들 무언가가 필요해

살아가려면 어딘가에 목숨을 거는 척이라도

무르팍에 쌓이는 먼지를 견디려면

한밤중에 버튼을 눌러야 해

그래서 네 이름을 부른 거야, 알겠니? 

 

 

3. 고인돌의 질투 

 

시커먼 돌덩이들 옆에 봉긋 솟은 푸른 봉분 두 개.

늙은 주검에 이웃한 싱싱한 주검이 눈부셔,

마주보던 무덤의

죽어서도 나란한 흙더미들의 통속을 질투했던가 

 

 

4. 다시 선운사에서 

 

옛사랑을 묻은 곳에 새 사랑을 묻으러 왔네

동백은 없고 노래방과 여관들이 나를 맞네

나이트클럽과 식당 사이를 소독차가 누비고

안개처럼 번지는 하얀 가스...... 산의 윤곽이 흐려진다

 

神이 있던 자리에 커피자판기 들어서고

쩔렁거리는 동전소리가 새 울음과 섞인다

 

콘크리크 바닥에 으깨진,

버찌의 검은 피를 밟고 나는 걸었네

산사(山寺)의 주름진 기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시 / 최영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 원권 한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의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

 

최영미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7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1998년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1998년 번역서 <화가의 잔인한 손>
1999년 번역서 <그리스 신화>
2000년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2002년 산문집 <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2005년 소식 <흉터와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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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의 ‘반 고흐전’ 관람기

 

“그도 나처럼 불쌍한 사람…”

 
 

“나는 아직도 말도 안 되는 연애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

한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깊이 몰두하게 된

것이지. 그때는 예술도 지금보다 더 성스러

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혼의 편지’(반 고흐 지음·신성림 옮김·

예담출판), 140쪽에서 발췌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뒤적였다. 내가 아직 젊었을 때,

서른일곱에 권총으로 자살한 화가처럼 피가

뜨겁던 시절, 내 옆에 있었던 누군가가 내게

그 책을 선물했다.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지고 언제든 다시 펼쳐보기 쉽게 접힌

페이지가 수두룩한, 그냥 책장에 묻히는 전시용 서적이 아니라 ‘사랑했던’ 흔적이

역력한 예술가의 영혼이 담긴 서한집을 쳐다보며 나는 묘한 이율배반을 느꼈다.

마흔이 넘은 내게 빈센트 반 고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내가

극복하고픈 순수의 표상이다.

 

 

작품 곳곳에 묻어 있는 위대한 인류애

 

그의 끔찍한 고독, 그리고 불행과 동의어인 남다른 재능을 나는 닮고 싶지 않다.

예술이 뭐기에, 예술가가 뭐기에 언제까지나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나. 죽은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시효가 지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미술책이지만,

언젠가 내게도 예술이나 문학을 신성불가침한 무엇으로 알고 숭배하던 때가

있었다. 렘브란트와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먼 길을 떠나던 그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떠오르니, 참으로 무상하며 무서운 게 세월이다.

10년 전인 1997년 유럽을 여행하던 중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 기거한 작은

마을 오베르에 들렀다. 지금은 ‘반 고흐의 집’으로 변해 관광객으로 붐비는 여인숙

의 2층. 두어 발짝 움직이면 끝인, 변변한 가구 하나 없이 좁아터진 화가의 방을

들여다보며, 그리고 그 밑에 번창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나는 절망했던가,

분노했던가. 너무 분개한 탓인지 내가 아끼던 검은 모자를 상점에 두고 나왔다.

 

 

땀 흘리는 소외된 자들에게 깊은 애정

 

파리 근교의 초라한 고미다락방에서 나를 엄습하던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반 고흐처럼 무모하고 사는 데 서툰 나는 일정한 거처 없이 오래 방황했다.

생애 처음 수도권에 장만한 작은 아파트를 대출금 이자가 부담스러워 팔고

멀리 이사하던 바로 그날, 버스 안에서 원고청탁 전화를 받았다.

전시회를 보고 글을 쓰라니…. 예술을 향유할 처지가 아니지만, 짐을 다

풀기도 전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30대를 하릴없는 여행으로 낭비하지

않았다면, 중년의 문턱에서 밤낮으로 집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텐데.

1년이 멀다 하고 이삿짐을 싸고 푸는 내가 한심해, 미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화가만큼이나 불쌍해 이 엉성한 글의 제목을 ‘반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이라고 정했다.

시청역 1번 출구로 나와 서울시립미술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시회 포스터 앞에서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기념사진을

찍는 그들의 얼굴은 구김살 없이 밝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1만

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기꺼이 미술을 관람하려 외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평일에만 하루 평균 4000명에 육박한다니…. 

 

 

 

 

1_ ‘밀짚더미’ 1885,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2_ ‘장미와 모란’ 1886,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3_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석판화,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4_ ‘수레국화, 데이지, 양귀비, 카네이션이 담긴 화병’

    1886, 캔버스에 유화, 트리튼 재단, 네덜란드.

 

 

2007년 겨울, 달라진 서울 풍속도를 목격하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축구에 빠져 미술을 외면한 요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은 변했다.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의 저변이 중산층 전반으로 확산된 그만큼 잘

살게 됐다는 증거일 텐데. 평일 오후인데도 추운 날씨를 마다 않고 미술관

을 찾은 기다란 행렬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쪽이 착잡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이른바 ‘뜨는’ 전시, 언론

집중조명을 받는 잔치에만 인파가 몰린다.

혼자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반 고흐의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보여주겠다고, 예술을 학습

시키겠다고 기를 쓰는 엄마들에게 나는 빈센트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 미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내면을 안다면, 그가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고독과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반 고흐의 어처구니없는(?) 휴머니즘을 자식에게 가르치려는 부모가

얼마나 될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전시실 입구에 적절히 붙은 인용문이 말해주듯 ‘반 고흐의 가치는 그의

표현방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그의 위대하고도 새로운 인류애에 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거리의 가련한 창부를 동정해 자신의 집을 내줬으며, 동료 화가

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지로 여기면서 예술인공동체를 꿈꿨던 그이지만,

반 고흐 자신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의 시대로부터 먼 훗날 우리가

불멸의 화가, 위대한 예술가, 천재 또는 새로운 휴머니스트라고 칭송

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천성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애정결핍증

환자였다. 웬디 수녀가 지적했듯, 테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드러

나듯(예컨대 동생에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일을 부탁하면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는 그를 보라) 그는 나름대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나의 흥미를 끌어 이 글을 쓴다. 내겐 그의 미술보다

생애가 더욱 연구할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그는 정열적인 인간이었다. 소외된 자들에 대한 그의 깊은

(때로는 정상에서 벗어날 정도의) 애정은 네덜란드 시기의 대표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에 잘 나타난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가족의 식사

장면이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비견될 만큼 엄숙한 거룩함으로 빛난다.

거룩하며, 동시에 동물적으로 그려졌다. 지상에서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양식인 구운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시커먼 얼굴은 감자처럼

투박하며, 그들의 이목구비는-자세히 근접하면-때로 동물처럼

일그러져 보인다. ‘밀짚더미’ 앞에서도 나는 발길을 멈추고 오래

음미했다. 추수를 끝낸 들판에 서 있는, 서로 몸을 기댄 밀짚더미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가.

아를이나 오베르 시기에 비해 색채는 단조롭지만, 특유의 꿈틀거리는

터치가 이미 개성을 획득해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노동의 숭고함을 웅변하는 모티프도 새롭다. 가난이나 고통, 노동을

관념이 아니라 생생하게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반 고흐는 위대한

리얼리스트다.

그러나 내가 정말 내 집 거실에 걸고픈 빈센트의 작품은 화사한 꽃

그림이다. 색채의 대비가 눈부신 ‘장미와 모란’ 또는 ‘수레국화, 데이지,

양귀비, 카네이션이 담긴 화병’을 보면서 생활에 지친 눈을 쉬고 싶다.

장황한 설명 없이, 보는 즉시 몸으로 전달되는 그림을 남겨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불멸의 화가가 생전에 그의 동시대인들

에게서 이해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니.

인생과 예술의 아이러니가 기막히다.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한시도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던, 죽도록 떠돌면서 집을 짓지 못한 그는

나처럼 불쌍한 영혼이었다. 그래도 그에겐 친구처럼 가까운 동생 테오

가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던.   

 

/ 주간동아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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