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사랑·자유/책 BookS' 카테고리의 글 목록 (15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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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에서/ 이상국

 

 

아끼던 골덴 재킷의 소매가 너무 닳았다

털이 빠지고 오래되긴 했으나

사실은 내가 왼손잡이어서 그렇다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하며

세탁소 여자는 뜨악하게

수선한들 별로 돈이 안된다는 표정이다

왼손이 불편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왼손잡이여서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을 때

불쌍해서 눈이 붓도록 울거나

언젠가 평양 만경대 갔다가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안내원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누가 봤을까봐

아직도 꺼림칙해하는 정도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이 취직을 하거나

군대에 가게 되면 그 애비가

어느 손을 주로 쓰는지도 알아본다고 해서

나는 할 수 없이 좌우를 다 잘라달라고 했다

소매사 불구처럼 댕공했지만

아무도 눈여겨볼 것 같지는 않았다

 

-시집『뿔을 적시며』(창비, 2012)

.................................................

 

 왼손잡이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고난 것이거늘 예전엔 이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았다. 억지 훈련을 통해 자식을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했던 부모들도 꽤 있었다. 물론 왼손잡이라 해서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여럿이 밥 먹을 때 왼 편에 있는 사람과 부딪힐 수 있고, 글씨 쓸 때 조금 불안정해 뵈는 정도다. 오른손잡이도 습관 한 두 개쯤은 왼손 사용이 자연스럽고 편할 경우가 있다. 왼손잡이도 마찬가지다. 나도 다른 건 다 오른 손인데 돈을 셀 때와 화투를 섞을 때 꼭 왼손을 사용한다. 그래서 돈이 안 붙는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왼손과 오른 손을 함께 사용한다. 야구에서도 한 손에 글로버를 끼고 공을 받으며 다른 한 손으로 공을 던진다. 한쪽에 포크를 쥐면 다른 쪽은 나이프를 쥔다. 지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데 양손을 다 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양손잡이다. 작고한 이영희 선생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리고 왼손잡이라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다. 그런데 왼손 왼편 좌측 좌파 등을 싸잡아 한통속으로 착시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측보행’ 법제화만 해도 사유가 없지 않다고는 하나 그런 착시현상에 의한 레드컴플렉스의 발로라는 지적이 많다.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려는 소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파시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좌측통행이고 복잡한 곳에서나 좁은 산길에서는 시민의식을 발휘해 양보하며 자연스럽게 걸으면 될 것을 같잖은 이유로 국세낭비와 혼란을 초래할 일은 무언가. 좋은 규범은 자율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편하게 걸을 권리마저 빼앗긴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을 때 불쌍해서 눈이 붓도록 운’ 것 갖고도 ‘좌빨’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고, ‘평양 만경대 갔다가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안내원에게 악수를 청한’ 일도 들키면 ‘종북’이 되는 세상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보수는 그러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꼭 보면 그런 식의 매도를 일삼는 이들은 정녕 지켜야할 가치는 지키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하거나 양보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이 정부수립을 앞둔 해방공간의 군정시절도 아니고 이념대립과 갈등이 다 무엇이냐. 내 오른손은 왼손을 관용하면서 이렇게 공존하는데...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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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 것이 있던가요?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 보면서

이 몸뚱이를 '나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시간..열정..

정성을 쏟아 붇습니다.  

이뻐져라..멋져라..섹시해져라..

    

날씬해져라..병들지마라..늙지마라..제발 제발 죽지마라.

 

 

 

그렇다고 이 몸이 내 바램대로 이루어 지던가요?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내 간절한 바램과는

전혀 다르게 살찌고..야위고..병이 들락거리고..

노쇠화되고암에 노출되고기억이 점점 상실되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가 내 것인가.. 자녀가 내 것인가.. 친구들이 내 것인가..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닐진대.. 누구를 내 것이라 하고, 어느것을 내 것이라 하련가.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나고 흩어지는 구름인 것을.
미워도 내 인연.. 고와도 내 인연.. 이 세상에는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여덟가지의 큰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과

 

애별리고(愛別離苦)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 등과 헤어지는 아픔
원증회고(怨憎會苦) 내가 싫어하는 것들.. 원수같은 사람 등과 만나지는 아픔
구불득고(求不得苦) 내가 원하거나 갖고자 하는 것 등이 채워지지 않는 아픔

오음성고(五陰盛苦) 육체적인 오욕락(식욕.수면욕.성욕.명예욕)이 지배하는 아픔 등의 네 가지를 합하여 팔고(八苦)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짐수레와 같은 것.. 옛날 성인께서 주신 정답이 생각납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몸이나 생명이나 형체 있는 모든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은 것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를 잘 관찰하여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 살면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껴 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이자.
누가 해도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 스스로 나서서 기쁘게 일하자. 언제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에 하자.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 쏟자.
운다고 모든 일이 풀린다면, 하루종일 울겠습니다. 짜증 부려 일이 해결된다면, 하루종일 얼굴 찌프리겠습니다. 싸워서 모든일 잘 풀린다면, 누구와도 미친듯 싸우겠습니다. 그러나...이 세상 일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배려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덜어논 그 그릇 내가 조금 낮춰논 눈 높이 내가 조금 덜챙긴 그 공간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보다 조금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공간'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70억 명 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우리 인간들의 수 백억배가 넘는 또다른 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으므로 이 공간을 더럽힐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공간을 파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만생명이 함께 살아야 하는 공생(共生)의 공간이기에.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으니
내 눈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나를 맞아준 아내가 고맙습니다. 나를 아빠로 선택한 아들과 딸에게 고마운 마음이 간절합니다. 부모님과 하나님과 조상님께 감사하고, 직장에 감사하고. 먹거리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고맙고,
나와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이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고맙고, 창공을 나는 날짐승이 고맙고.. 빽빽한 숲들이 고맙고.. 비내림이 고맙고.. 눈내림이 고맙습니다.

 

이 세상은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 일 뿐...
내 것 하나 없어도

 
등 따시게 잘 수 있고... 배 부르게 먹을수 있고.. 여기저기 여행 다닐수 있고, 자연에 안겨 포근함을 느낄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 복받은 사람..

 
은혜와 사랑을 흠뻑 뒤집어 쓴 사람.. 내 머리 조아려 낮게 임하리라 -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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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에 호랑이 / 최정례



나는 지금 두 손 들고 서있는 거라

뜨거운 폭탄을 안고 있는 거라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머리가 지글거리고 돌밭이 지글거리고, 호랑이 눈깔 타들어가다 못해 슬몃 뒤돌아 가버렸던 거라, 그래

전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할머니 눈물 돌밭에 굴러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러다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호랑이를 만난 것이라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이젠 없다 없다 없다는데도

나는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해도


――머리통 염통 콩팥 다 내놓으시지

――내장도 마저 꺼내 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와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 시집『햇빛 속에 호랑이』(세계사, 1998)

..............................................................

 

 사람들은 운전하다가 신호등에 걸리면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할까? 물론 잠깐이다. 아주 잠깐일 수도 있겠고 간극이 더 벌어질 수도 있겠다. 고개를 돌려 옆 차선에 정거한 차 안의 낯선 이성을 훔쳐보기도 하겠으며, 듣고 있던 라디오의 채널을 변경할 수도 있겠다. 대체로 갈 길 바쁜 경우에는 푸른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면서 앞만 응시하게 되는데, 그렇다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시간이고 공간이다. 어떤 이는 곧 만나게 될 사람에게 걸 근사한 말을 궁리하고, 또 어떤 이는 조금 전 만났던 사람에게 했던 말을 복기하며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데’ 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붉은 신호등을 보면서 최근 부쩍 피곤을 자주 느끼는 자신의 몸에 대한 적신호로 읽는 중년이 있는가 하면, 맨드라미 같은 꽃을 연상하는 감성의 여인도 있으리라.

 

 그러나 최정례 시인은 시인 아니랄까봐 그 연상과 공상의 진도가 상당히 나간 것 같다. 우선 신호에 걸린 자신의 처지를 '두 손 들고 서있는 거라'며 벌을 서는 형국인양 표현했으며, 붉은 신호등을 '뜨거운 폭탄'이라 하며 그것을 뜨겁게 안고 있는 중이라 했다가,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호랑이 눈깔'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눈깔'은 찬란한 대낮에 시인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

 

 그러다가 '호랑이 눈깔'이 빌미가 되어 기억의 파편 하나를 끄집어낸다. 증손녀에게 구전될 정도의 증조할머니라면 대단했을 게 분명한 데 아마도 그 할머니는 '비탈밭에서' 만난 호랑이에게 기죽지 않는 담력과 초롱초롱한 정신을 가졌겠다. 그래서 '전 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결국 집안을 일으킨' 여자로 가문에 오래도록 기록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 가문의 증손녀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호랑이 눈깔)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여차하면 급출발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속페달에 올려놓은 발을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한마디에 내려놓고,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팔도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묵직한 저음 한 방에 제압당하고 만다. 이제 더는 내어줄 것도 없다며 통사정 하는데도 '머리통 염통 콩팥 내장' 까지 '마저 꺼내 놓'으라고 협박하는데 아마 시인은 갈 길은 멀리 있고 꽉 막힌 도로에서 애간장이 다 녹아 내렸던 모양이다. 게다가 시내 곳곳에 '우글우글' '햇빛 속에 저 호랑이 새끼들'이라니...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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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혜민스님의 말씀 중ㅡ

나는 삼십대가된 어느날 내마음을 바라보다 문득 세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이세가지를 깨닫는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알게되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만큼 세상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일주일전에 친구가 입었던옷을 나는 잘 기억나지않습니다. 얼굴화장이나 얼굴모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친구에대해 잘기억하지 못하는데, 내친구가 나에대해 잘 기억하고 있을까요?

보통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하기에도 바쁩니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보면 잠시하는것입니다.

하루24시간 가운데 아주 잠깐 남 걱정이나 비판 하다가 다시 자기생각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 에 비친 내모습을 걱정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둘째는, 이세상 모든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 입니다.

내가 이세상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지않는데, 어떻게 이세상 사람들이 나 를 좋아해줄수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나요?

내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듯 모두가 나를 좋아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면 자연의이치가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시면 됩니다.

 

셋째는, 남을위해 한다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한다는 깨달음 입니다.

내가족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 도 아주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 따뜻한 나를 위한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것도 결국 내가 보고싶을때 마음대로 볼수없는 외로운 내처지가 슬퍼서 우는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서 욕심껏 잘해주는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방식대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것입니다.

부처가 아닌이상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거 다른사람에게 크게 피해주지않는 일이라면 남눈치그만 보고 내가정말로 하고 싶은것을 하십시오.

생각만 너무하지말고 그냥 해 버리세요. 왜냐하면, 내가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맙시다.

출처 : 중동고 79회 동문회
글쓴이 : 윤재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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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 이기와   

 

 

그의 속은 공갈처럼 비어 있었다

스프링도 스펀지도 안락을 제공할 그 어떤

소재도 내장돼 있지 않았다

바로크 문양의 유혹으로 겉치장을 했을 뿐

속을 들춰보면 널빤지 하나뿐인 부실한 골격이

내내 그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잘 깎인 무르팍에 앉아봐도

그의 가슴에 내 가슴을 합체해봐도

밤마다 몇 시간씩 부둥켜안고 서로를 탐색해봐도

느껴지는 건 킹 사이즈의 허탈함뿐

내 생의 삼분의 일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내 고절한 알몸을 통째로 상납하고도

단 한 번도 푹신한 꿈을 대접받지 못했다

날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졸음의 세계가 갈망한 건

서로의 시장기를 보충시킬 육체였을 뿐

탄력 있는 정신도 영구적 파트너도 아닌, 오직

깨어날 수 없게 서로를 마취하는 몽상의 침구였을 뿐

그의 관절 하나가 삐걱이기 시작한 것도

그의 몸 중앙이 맥없이 꺼져들고

내 욕망의 척추가 휘어져 고통이 시작된 것도

수면을 위한 단순한 용도가 아닌

그 외에 탁월한 용도로 서로를 탐미하려 했던 것

그렇게 오용하지 않으면 순순히 잠들 수 없는

워낙 속 재질이 부실한 싸구려 마네킹들이었던 것

 

  

 

 

 

*********************************************

 

이기와 시인의 인생살이는 37세라는 나이에 비해 고통과

질곡으로 점철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서울 서대문구 굴레방 다리 밑 거적때기 움막에서 해녀

출신인 한 여인의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는 식모살이 가고 오빠는 양자로 갔다. 어머니는

새 아버지를 세번 얻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죽었다.

 

“나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어머니가 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상복을 입고 상 치르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기와 시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리어카에 텐트를 싣고 다닌 떠돌이 삶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봉제인형·가발공장 등에서 일했고 식모살이와

중국집 서빙 등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엔 포장마차를

거쳐 술 파는 카페와 1급 유흥업소 마담직도 경험했다.

카페에서 책 보며 시를 쓰기 시작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24세에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포장마차에서 꽁치 굽고 곰장어 무치면서 새벽 4시까지

시를 썼다”그는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는방송통신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못 배운 한을 풀었다.
2001년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냈는데 “고통스런

삶의 기억치열한 언어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한 이기와 시인이 농협에서 집을

담보로 800만원을 빌려 150만원짜리 카메라 텐디(10-D)

캐논을 사들고 1년 6개월동안 詩를 따라 전국을 다녔다.

신경림 시인의 ‘산동네에 오는 눈’을 따라 울며 헤맨

서울 홍은동 산 1번지, 그리고 황청포구, 내장산, 마곡사,

제주, 소록도, 구절리 등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터득한 또 다른 삶을 ‘詩가 있는 풍경’

이라는 제목으로 붙여 산문집을 냈다.

물론 사진을 직접 찍었다.

그의 산문엔 익살과 풍자가 넘치는가 하면 깊은 사유(思惟)

우물에서 길어올린 잠언(箴言)이 담겨 있다.

구룡사 등산로를 맨발로 사풋사풋 걷는 여자 등산객으로

부터 그는 ‘아프게 걷지 말고 춤추듯 생의 길을 가라’는

법을 배웠다.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 박수를 받기보다는

자연과 친해져 그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전국 곳곳을 돌아 다니며 새삼 깨닫고 말이다.

과거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으며 지금 김포의

농촌에서 살고 있다.

 

*

이기와의 시는 늘 범상치 않아 주목하여 읽어왔다.

시상 포착과 발상부터 남다르고, 짜임새 있는 구조와 재치

있는 언어 구사에다, 아프고 저리고 쓰라린 내용으로

인해 감동을 받았다.

시인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비탈에서도 바로 서려고

안간힘쓰는 이들, 음지식물처럼 그늘진 곳에 앉아

목을 갈아 우는 산비둘기들처럼 어떤 방법도 동정도

도움이 안되는 집창촌의 여자들, 그녀들의 화대와 영업

일지, 사력을 다했던 자살자들, 맹인 안마사들 등이다.

시인의 시선은 위악(僞惡)도 위선(僞善)아니다.

화류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들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지만, 남에게 보이기가 여간 부끄러운게 아니

면서, 자신의 마음같이 읽히기바라는 시인은 전사(戰士)

이상이다. 최선을 다하는 씩씩함과 시에 목숨 건 비장함에

눈꼬리가 젖는다.  

 

/ 유안진 시인

이기와 시인은 갯벌같이 질퍽한 눈물을 당당하게 품고

있다. 그 눈물 속에는 “해충이나 병원균처럼 박멸의

대상이 된 목숨/암흑의 벙커나 다락방으로 숨어들어

꽃을”(「그녀들 비탈에 서다」) 파는 ‘영자’같이 비탈에

선 여성들한숨과 원망과 절망이 들어 있다.

시인은 학벌도 자격증도 없는 그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피고름 같은 고통을 물질 권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

알리고 있다. 따라서 그녀들이 물의 철근씹어 먹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지폐 한 장을

위해 온몸으로 웃음의 파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죽기 전에 한번 살아봐야 겠다고 고봉밥을 먹는 그녀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 맹문재 시인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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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다/ 김현숙

 

 

개나리 꽃망울

터진다

감나무에 새잎

터진다

개구리 입

터진다

놀이동산에 팝콘

터진다

아이들 웃음

터진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터진다

 

- 제8회 <푸른문학상>‘새로운 시인상’ 수상작

..............................................

 

 머리터럭 나고 수십 년 이 땅의 계절변화를 지켜본 바로는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덧 봄이고,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낮과 밤의 일교차가 벌어져 두꺼운 옷을 과감하게 훌러덩 내벗어던지진 못해도 낮 기온이 20도를 넘겨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보름 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코끝에서 느껴지는 봄의 풍미도 물씬합니다.

 

 봄을 마중하다보면 가장 먼저 복수초가 삐죽 올라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쁨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귀를 땅바닥에 붙이고 봄 오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지 않는 한, 복수초가 땅위로 올라오는 조짐을 눈치 채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복수초의 개화를 ‘터진다’라고 표현하기엔 왠지 어색하지요. 다음으로 이른 봄꽃인 동백꽃도 이미 2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해 이즈음 따스한 봄 햇살에 붉은 꽃망울을 활짝 다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동백을 봄의 전령이라 하기엔 좀 뭣합니다. 아무래도 봄의 전령이라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봄꽃들이 올해는 평년보다 조금 늦게 꽃망울을 터뜨릴 전망이라는군요. 개나리는 남쪽에서부터 곧 개화할 것이란 화신이 접수되었고 진달래도 하순이면 톡 터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은 그보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성미 급한 놈은 포근한 햇살을 머금고 이미 상큼한 봄을 내밀었습니다.

 

 감나무에 새잎이 터지기 시작할 때 일괄적으로 조망되는 나무의 풍경도, 나무를 품고 있는 흙빛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작은 생명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뚜렷한 변화입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이미 폴짝폴짝 활동을 개시했고요. 벌 나비 곤충들도 제 일로 분주하고 기타 등등 꽃들과 식물들도 저마다의 색을 드러낼 준비를 이미 마쳤습니다.

 

 지난 주말 나들이에서 보니 목련도 꽃망울을 한껏 머금었더군요. 머지않아 분홍빛 벚꽃도 팝콘처럼 터지겠지요. 동시에 아이들 웃음이 터지고 탄성이 터지고 환호성이 터질 것입니다. 이 동시처럼 리듬감과 생동감 있게 세상의 모든 봄이 차례로 톡톡 터질 것입니다. 하지만 ‘과다노출’로 벌금을 물리는 따위의 분통터지는 경우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없으면 합니다. 또한 그럴 리 없겠지만 대포가 터지고 전쟁이 터지는 일만큼은 절대사절입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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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속초에서 / 최영미  

       
 

바다,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살이 있었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드문드문 건져올린 기억으로 가까운 모래밭을 두어번
공격하다보면 어느새 날 저물어, 소문대로 갈매기는
철없이 어깨춤을 추었다.
지루한 飛行 끝에 젖은 자리가 마를 만하면
다시 일어나 하얀 거품 쏟으며 그는 떠났다.
기다릴 듯 그 밑에 몸져주운 이마여ㅡ
자고 나면 한 부대씩 구름 몰려오고
귀밑털에 걸린 마지막 파도소리는
꼭 폭탄 터지는 듯 크게 울렸다.


바다, 밀면서 밀리는 게 파도하고 배운 서른두살이
있었다


더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어디 누우나
비 오는 밤이면 커튼처럼 끌리는 비린내, 비릿한
한움큼조차 쫒아내지 못한 세월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밤이 깊어가고 처벅처벅 해안선 따라 낯익은 이름들이
빠진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아무리 곱씹어도 이제는 고스란히 떠오르지도 못하는
세월인데, 산 오징어의 단추 같은 눈으로 횟집 수족관을
보면 아, 어느새 환하게 불켜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죽음이여ㅡ 네가 내게 기울기 전에 내가 먼저
네게로 기울어가리.     

  

 

 

 

 

  

 

 

 

사랑의 힘 / 최영미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촛불을 춤추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밤도 밤이 아니다
술잔은 향기를 모으지 못하고
종소리는 퍼지지 않는다


그림자는 언제나 그림자
나무는 나무
바람은 영원한 바람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면
겨울은 뿌리째 겨울
꽃은 시들 새도 없이 말라죽고
아이들은 옷을 벗지 못한다
 

머리칼이 자라나고
초생달이 부풀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처녀는 창가에 앉지 않고
태양은 솜이불을 말리지 못한다
 

석양이 문턱에 서성이고
베갯머리 노래를 못 잊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미인은 늙지 않으리
여름은 감탄도 없이 시들고
아카시아는 독을 뿜는다


한밤중에 기대앉아
바보도 시를 쓰고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하는
정녕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도 기꺼이 속아주지 않으리


책장의 먼지를 털어내고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사랑이 아니면 계단은 닳지 않고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촛불을 춤추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족보 / 최영미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허무하다 그치?)
어릴 적,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 잠든 적이 있다

 

 

 

 

 

          

  

 

 

 

너를 잃고 / 최영미

 

 

너를 잃고 나는 걸었다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가랑잎들만 발에 채이고
살아있는 싱싱한 풀잎 한장 내 마음 받아주지 않네
바람 한자락 시린 내 뺨 비껴가지 않네

다정했던 그 밤들을 어디에 파묻어야 하나
어긋났던 그 낮들을 마음의 어느 골짜기에 숨겨야 하나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는 저녁,
너를 잃고 나는 썼다 
 

 

 

 

 

 

 

 

 

 

 

 

 

 

 

 

 

 

 

 

 

 

 

 

 

 

 

 

  

 

 

옛날의 불꽃 / 최영미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어떤 사기 / 최영미

 

 

진달래가 이쁘다고 개나리는 안 이쁜가


내가 아는 어떤 부르조아는 연애시를 쓰려고 연애를 꿈꾸는데

행을 가른다고
고통이 분담되나

연을 바꾼다고
사랑이 속아주나

아, 그러나 작은 정열은 큰 정열이 다스려

그리고...그런데...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
몇번 했는지 모른다 
 

 

 

 

 

 

 

  

 

알겠니? / 최영미

 

 

1. 담배 한 개비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나, 그리고 너.

겨우 생존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칼날, 버릇처럼 붙이는

안녕! 뒤에 숨겨진 무관심과 자잘한 계산들

풀리지 않는 생의 방정식. 왜? 또......

 

담배 한 개비가 타는 시간,

절망이 피어오르다 희망과 교대하고

물렁물렁한 것들이 단단해진다

 

가슴을 쥐어뜯다가도

금방 살아갈 구멍을 찾고

꿈을 꾸면서도 포기하는 나.

날마다 조금씩 자기를 파괴하면서

결코 완전히 파괴할 용기는 없었지 

 

 

2. 고인돌 

 

선운사 가는 길에 고인돌을 보았다

시커먼 돌덩이들이 시처럼 반짝였어

그만 멈추고픈 가슴이, 오래된 죽음을 보자 팔팔 뛰었지

 

이천오백 년 묵은 허무 앞에서 일 년밖에 안 된 연애는

허망할 것도 없었어. 티끌도 아니었어

단단한 허무에 엉덩이를 비비고 물을 마셨지

돌덩이들의 무시무시한 침묵,

이끼 낀 역사가 바람에 나부꼈어

사랑하고 싸우던 육체도 영혼도 썩어 증발했으니

여기, 엄청난 비유가 누워 있으니

멈추어라! 생각하며 말하던 것들이여

순간에서 영원으로 비약하는 인간의 서투른 날개짓,

천하를 주무르는 어떤 고매한 사상이

이 무거운 적막을 깨뜨릴 수 있는지

내 속에 고인 침이 돌로 굳기 전에

붙들 무언가가 필요해

살아가려면 어딘가에 목숨을 거는 척이라도

무르팍에 쌓이는 먼지를 견디려면

한밤중에 버튼을 눌러야 해

그래서 네 이름을 부른 거야, 알겠니? 

 

 

3. 고인돌의 질투 

 

시커먼 돌덩이들 옆에 봉긋 솟은 푸른 봉분 두 개.

늙은 주검에 이웃한 싱싱한 주검이 눈부셔,

마주보던 무덤의

죽어서도 나란한 흙더미들의 통속을 질투했던가 

 

 

4. 다시 선운사에서 

 

옛사랑을 묻은 곳에 새 사랑을 묻으러 왔네

동백은 없고 노래방과 여관들이 나를 맞네

나이트클럽과 식당 사이를 소독차가 누비고

안개처럼 번지는 하얀 가스...... 산의 윤곽이 흐려진다

 

神이 있던 자리에 커피자판기 들어서고

쩔렁거리는 동전소리가 새 울음과 섞인다

 

콘크리크 바닥에 으깨진,

버찌의 검은 피를 밟고 나는 걸었네

산사(山寺)의 주름진 기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시 / 최영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 원권 한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의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

 

최영미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7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1998년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1998년 번역서 <화가의 잔인한 손>
1999년 번역서 <그리스 신화>
2000년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2002년 산문집 <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2005년 소식 <흉터와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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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의 ‘반 고흐전’ 관람기

 

“그도 나처럼 불쌍한 사람…”

 
 

“나는 아직도 말도 안 되는 연애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

한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깊이 몰두하게 된

것이지. 그때는 예술도 지금보다 더 성스러

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혼의 편지’(반 고흐 지음·신성림 옮김·

예담출판), 140쪽에서 발췌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뒤적였다. 내가 아직 젊었을 때,

서른일곱에 권총으로 자살한 화가처럼 피가

뜨겁던 시절, 내 옆에 있었던 누군가가 내게

그 책을 선물했다.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지고 언제든 다시 펼쳐보기 쉽게 접힌

페이지가 수두룩한, 그냥 책장에 묻히는 전시용 서적이 아니라 ‘사랑했던’ 흔적이

역력한 예술가의 영혼이 담긴 서한집을 쳐다보며 나는 묘한 이율배반을 느꼈다.

마흔이 넘은 내게 빈센트 반 고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내가

극복하고픈 순수의 표상이다.

 

 

작품 곳곳에 묻어 있는 위대한 인류애

 

그의 끔찍한 고독, 그리고 불행과 동의어인 남다른 재능을 나는 닮고 싶지 않다.

예술이 뭐기에, 예술가가 뭐기에 언제까지나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나. 죽은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시효가 지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미술책이지만,

언젠가 내게도 예술이나 문학을 신성불가침한 무엇으로 알고 숭배하던 때가

있었다. 렘브란트와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먼 길을 떠나던 그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떠오르니, 참으로 무상하며 무서운 게 세월이다.

10년 전인 1997년 유럽을 여행하던 중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 기거한 작은

마을 오베르에 들렀다. 지금은 ‘반 고흐의 집’으로 변해 관광객으로 붐비는 여인숙

의 2층. 두어 발짝 움직이면 끝인, 변변한 가구 하나 없이 좁아터진 화가의 방을

들여다보며, 그리고 그 밑에 번창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나는 절망했던가,

분노했던가. 너무 분개한 탓인지 내가 아끼던 검은 모자를 상점에 두고 나왔다.

 

 

땀 흘리는 소외된 자들에게 깊은 애정

 

파리 근교의 초라한 고미다락방에서 나를 엄습하던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반 고흐처럼 무모하고 사는 데 서툰 나는 일정한 거처 없이 오래 방황했다.

생애 처음 수도권에 장만한 작은 아파트를 대출금 이자가 부담스러워 팔고

멀리 이사하던 바로 그날, 버스 안에서 원고청탁 전화를 받았다.

전시회를 보고 글을 쓰라니…. 예술을 향유할 처지가 아니지만, 짐을 다

풀기도 전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30대를 하릴없는 여행으로 낭비하지

않았다면, 중년의 문턱에서 밤낮으로 집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텐데.

1년이 멀다 하고 이삿짐을 싸고 푸는 내가 한심해, 미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화가만큼이나 불쌍해 이 엉성한 글의 제목을 ‘반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이라고 정했다.

시청역 1번 출구로 나와 서울시립미술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시회 포스터 앞에서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기념사진을

찍는 그들의 얼굴은 구김살 없이 밝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1만

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기꺼이 미술을 관람하려 외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평일에만 하루 평균 4000명에 육박한다니…. 

 

 

 

 

1_ ‘밀짚더미’ 1885,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2_ ‘장미와 모란’ 1886,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텔로.
3_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석판화,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4_ ‘수레국화, 데이지, 양귀비, 카네이션이 담긴 화병’

    1886, 캔버스에 유화, 트리튼 재단, 네덜란드.

 

 

2007년 겨울, 달라진 서울 풍속도를 목격하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축구에 빠져 미술을 외면한 요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은 변했다.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의 저변이 중산층 전반으로 확산된 그만큼 잘

살게 됐다는 증거일 텐데. 평일 오후인데도 추운 날씨를 마다 않고 미술관

을 찾은 기다란 행렬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쪽이 착잡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이른바 ‘뜨는’ 전시, 언론

집중조명을 받는 잔치에만 인파가 몰린다.

혼자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반 고흐의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보여주겠다고, 예술을 학습

시키겠다고 기를 쓰는 엄마들에게 나는 빈센트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 미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내면을 안다면, 그가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고독과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반 고흐의 어처구니없는(?) 휴머니즘을 자식에게 가르치려는 부모가

얼마나 될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전시실 입구에 적절히 붙은 인용문이 말해주듯 ‘반 고흐의 가치는 그의

표현방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그의 위대하고도 새로운 인류애에 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거리의 가련한 창부를 동정해 자신의 집을 내줬으며, 동료 화가

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지로 여기면서 예술인공동체를 꿈꿨던 그이지만,

반 고흐 자신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의 시대로부터 먼 훗날 우리가

불멸의 화가, 위대한 예술가, 천재 또는 새로운 휴머니스트라고 칭송

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천성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애정결핍증

환자였다. 웬디 수녀가 지적했듯, 테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드러

나듯(예컨대 동생에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일을 부탁하면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는 그를 보라) 그는 나름대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나의 흥미를 끌어 이 글을 쓴다. 내겐 그의 미술보다

생애가 더욱 연구할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그는 정열적인 인간이었다. 소외된 자들에 대한 그의 깊은

(때로는 정상에서 벗어날 정도의) 애정은 네덜란드 시기의 대표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에 잘 나타난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가족의 식사

장면이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비견될 만큼 엄숙한 거룩함으로 빛난다.

거룩하며, 동시에 동물적으로 그려졌다. 지상에서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양식인 구운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시커먼 얼굴은 감자처럼

투박하며, 그들의 이목구비는-자세히 근접하면-때로 동물처럼

일그러져 보인다. ‘밀짚더미’ 앞에서도 나는 발길을 멈추고 오래

음미했다. 추수를 끝낸 들판에 서 있는, 서로 몸을 기댄 밀짚더미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가.

아를이나 오베르 시기에 비해 색채는 단조롭지만, 특유의 꿈틀거리는

터치가 이미 개성을 획득해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노동의 숭고함을 웅변하는 모티프도 새롭다. 가난이나 고통, 노동을

관념이 아니라 생생하게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반 고흐는 위대한

리얼리스트다.

그러나 내가 정말 내 집 거실에 걸고픈 빈센트의 작품은 화사한 꽃

그림이다. 색채의 대비가 눈부신 ‘장미와 모란’ 또는 ‘수레국화, 데이지,

양귀비, 카네이션이 담긴 화병’을 보면서 생활에 지친 눈을 쉬고 싶다.

장황한 설명 없이, 보는 즉시 몸으로 전달되는 그림을 남겨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불멸의 화가가 생전에 그의 동시대인들

에게서 이해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니.

인생과 예술의 아이러니가 기막히다.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한시도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던, 죽도록 떠돌면서 집을 짓지 못한 그는

나처럼 불쌍한 영혼이었다. 그래도 그에겐 친구처럼 가까운 동생 테오

가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던.   

 

/ 주간동아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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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을 찾으려면.....  

                                                                /  금해스님

 

 

생각대로 됩니다.

원하는 대로 됩니다.

마음 먹은 대로 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원대한 꿈을 꾸세요!! 

.......................

 

제가 항상 하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꿈만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꿈을 찾아야하는데

못찾아서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고민합니다.

 

꿈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꿈이 생길 수가 없지요.

 

열심히 살아야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은

그런 간절한 마음이, 꿈이 생기지요.

 

 

매일 빈둥거리는 이에게

어떻게 꿈이 생기겠습니까?

 

공부를 죽도록 해 보고 난 뒤에야

공부가 어렵고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도 안하면서 안맞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공부하기 싫은 것일 뿐입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나중에 떡뽂이 장사를 한다해도

음식을 잘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설거지, 청소도 부지런히 해야하고

싫은 사람과도 마음 잘 다스리며 잘 지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매일 놀고 먹는 사람이

 어떻게 장사를 잘 하겠습니까?

 

 

남을 도와주는 것도

스스로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야 남을 도와줄수 있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도와주는 것도 어리석기 때문에

남을 잘못 도와줘서 오히려 더 힘들게 하거든요.

그런데 자신도 게으르면서 어떻게 남을 잘 도와주겠어요?

 

꿈 찾는다고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할 시간을 다 버리고

매일 게으르고 놀면서

꿈 찾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황당하고 허왕된 말입니다.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하다보면

꿈은 그때서야 저절로 찾아올 것입니다.

 

 

 

 

 

 

 

 

 

출처 : 금해스님과 마음 나누는 행복한 도량 관음선원
글쓴이 : 금해 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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