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사랑·자유/책 BookS' 카테고리의 글 목록 (16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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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시집 - 이 환장할 봄날에(2004년 창비)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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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구글 검색을 하다가 / 이상국

 

 

이 손바닥만 한 땅덩이에서

아버지는 일생을 소와 함께 살았고

나는 월급봉투로 살았다

지금 나의 자식들은 카드로 산다.

카드의 마그네틱 자성은 원래

빅뱅 때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고

하늘에는 아직 반짝이는 별이 많다

언젠가 텍사스에서 카드를 긁고

서울에서 결재하며 금전이

하늘을 어떻게 오가는지

오래 바라보았다

사는 게 도깨비놀음이다

그러나 지피에스로 찍고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사실

이 세계라는 것도

별게 아니긴 하지만

어느 날 구글지도 검색을 하다가

바다로 떨어질까 봐

대륙의 가파른 등짝에

한사코 매달린 내 땅을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는 게 다 용하다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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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시인이 번역한 시집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지취 : 참취나물.

금덤판 :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 또는 그곳에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 울타리 옆에 놓아 친느 벌통에서 꿀을 따 모으려고 분주히 드나드는 재래종 꿀벌.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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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 고운산악회
글쓴이 : 하이마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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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레전드족구단
글쓴이 : 군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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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찐빵에 대하여 / 송찬호



설레는 마음으로 늦은 저녁 당신과 마주 앉았지요
진열장 유리 밖에서 처음 춤추는 당신을 보았을 때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당신의 춤은 참 보기 아름다웠습니다
설탕처럼 반짝이는 불빛 아래 둘러선 사람들은 듬뿍 동전을 던졌구요
난 그런 당신을 사모했습니다 내 발걸음은 늘 당신의
거리를 향했습니다만, 내겐 눈길도 주지 않고 포근한 그릇에
파묻혀 당신은 늘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어요
짐작건대 거리 맞은편 진열장 속 그 행복이란 보석을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오늘 가까이서 당신을 보니
퉁퉁 부어오른 당신의 발, 부어오른 당신의 얼굴,
오오 당신은 부푼 것이 아니라
부르튼 거군요 춤을 추다 지쳐 그대로 주저앉아 빵이 된 거군요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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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과 무쇠 씨/ 문인수

 

장미란은 그만 바벨을 놓치고 말았다.

잠시 망연하게 서 있었으나 곧

꿇어앉아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오른 손을 입술에 대

그 키스를 청춘의 반려, '무쇠 씨'에게 주었다.

그러자 마침내

오랜 무게가 한 잎 미소로 피어났다. 손 흔들며 그렇게

그녀는 런던올림픽 역도경기장을 떠났다.

 

장미란 모두 활짝 마지막 시기를 들어 올리는 것,

마지막 시기가 참 가장 붉고 아름답다.

 

- 중앙일보 2012년 8월 7일자 체육면

...............................................................

 

 시인이 지난해 런던올림픽 고별전 경기를 TV로 지켜본 뒤 ‘장미란의 향기에 취해 있다가 쓴 시다. 시인은 “내가 목격한 가장 아름다운 엔딩 장면”이라면서 “아름다웠다. 가슴이 벅찼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시인은 2009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장미란>을 발표한 바 있어 이 작품은 ‘장미란2’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외국 언론이 장미란 선수를 ‘가장 아름다운 챔피언’으로 꼽은 사실을 보고 미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장미란 뭉툭한 찰나다./ 다시는 불러 모을 수 없는 힘, 이마가 부었다./ 하늘은 이때 징이다. 이 파장을 나는 향기라 부른다. 장미란,/ 가장 깊은 땅심을 악물고,/ 악물고 빨아들인 질긴, 긴 소리다, 소리의 꼭대기에다 울컥, 토한/ 한 뭉텅이 겹겹 파안이다. 그/ 목구멍 넘어가는 궁륭,/ 궁륭 아래 깜깜한 바닥이다.// 장미란!// 어마어마하게 웅크린 아름다운 뿌리가,/ 움트는 몸이 만발,/ 밀어올린 직후가 붉다.”

 

 장미란 선수도 이 시를 읽었다. 그는 “되새길수록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이 벅찼다. 시처럼 뿌리를 잘 내려서 제대로 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런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지만 그 어떤 금메달리스트보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연말 서울메트로가 시민 780명을 대상으로 역대 올림픽대표 중 최고의 선수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혔다. 피겨여왕 김연아, 체조요정 손연재, 마린보이 박태환 등 스타선수들을 모두 제쳤다. 지금 장미란을 빛낸 건 그가 따낸 메달의 빛깔도, 그가 들어 올린 바벨의 무게도 아니다. 그의 몸이 만발하여 내뿜는 찰나의 감동과 그의 몸짓이었다.

 

 그가 패배를 받아들이는 이 절제된 모습에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승부에 몰입해 있는 그 극도의 긴장이 일순 녹아내렸다. 그의 이런 모습이 신기록을 들어 올렸을 때보다 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문인수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보았다”고 했고,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패자의 얼굴”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미 기록과 승패의 경계를 뛰어넘는 충분히 큰 선수였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에게 ‘장미란’은 별도의 수사가 필요치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제 시처럼 아름답게 매순간 절정으로 피어나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런 장미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15년간 함께했던 '청춘의 반려' 무쇠 씨를 텅! 내려놓았다. 아마 그것이 절정을 오래 지속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의 목에 걸어 준 금메달이 더 없이 빛나 보인다. ‘마지막 시기가 참 가장 붉고 아름답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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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갤럭시 노트 / 차영한

 

 

 

카카오톡 역광을 보내는 글로벌 아파트

비주얼 그림자를 밟고 다가가는 내 발끝 만족도를

발끈시키는 조명발을 받으며 백포도주 색깔을 띤

스웨이드 소재'엠포리오 아르마니' 구두끈

앗! 가장 작은 얼굴을 내미는 사마귀

 

 

아주 가볍고 화려한'프라다의 카나파'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펜다'의 시계 속으로 날아가다

아웃도어에 있는 파워윈드브레이커 재킷 거미에

흘려 열을 받는다 나를 사냥할 듯

문을 연다 그 안으로 들어가

유리눈알로 감시하며 내 파토스를 토해내고 있다

 

 

 

 

『캐주얼 빗방울』차영한 시집 2012.11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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