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사랑·자유/책 BookS' 카테고리의 글 목록 (14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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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강의/ 임영조

 


대학에 출강한 지 세 학기째다
강의라니! 내가 무얼 안다고?
'시창작기초' 두 시간
'시전공연습' 두 시간
나의 주업은 돈 안 되는 시업(詩業)이지만
강사는 호사스런 부업이다
매양 혀 짧은 소리로
자식 또래 후학들 앞에 선다는
자책이 수시로 나를 찌른다
―시란 무엇인가?
―생이 무엇인지는 알고?
나도 아직 잘은 모른다, 다만
삼십년 남짓 내가 겪은 황홀한 자학
그 아픈 체험을 솔직히 들려줄 뿐이다
누가 보면 딱하고 어림없는 짝사랑
설명하기 무엇한 상사몽 같은
그 내밀한 시학을 가르쳐줄 뿐이다
―시란 무엇인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그게 정 알고 싶으면 너 혼자
열심히 쓰면서 터득하라!
그게 바로 답이니……
오늘 강의 이만 끝.

 

- 시집『귀로 웃는 집』(창작과 비평사, 1999)

........................................................

 

 문학의 위기니 시의 위기니 하는 담론은 늘 있어왔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눈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거나 시가 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학의 문창과는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 용케 살아있고, 문예대학이나 시 창작 교실도 도처에 부지기수로 개설되어 시인의 배출 창구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외견상으론 아직 건재한 듯 보인다. 시인은 대학에 출강하여 시학 강의를 하는 것이 ‘호사스런 부업’이라고 했지만, 대개는 시인이 대학에서 강의를 할 경우 그게 주업이고 간판이고 명함이라고 여긴다.

 

 ‘돈 안 되는 시업(詩業)’이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라 새로울 것이 없으며, ‘시란 무엇인가?’하는 물음도 ‘생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처럼 언제나 진부하면서도 난감한 질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예술은 이(利)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돈이나 명예나 지위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이 만들거나 쓰고 싶은 것을 사심 없이 만들어 내거나 쓰는 것을 예술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그는 또한 인간을 ‘모방적 동물’로 보면서, 모방을 통해 쾌락을 느끼고 진실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도 했다.

 

 진실을 향한 대책 없는 모방이 어쩌면 ‘황홀한 자학’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면 딱하고 어림없는 짝사랑, 설명하기 무엇한 상사몽 같은 그 내밀한 시학’이라지만 무작정 사랑만으로 시가 쓰지는 것은 아니다. 시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자재가 필요한데, 시에서의 재료는 폭넓은 체험과 관찰, 독서와 사색을 통해 구해진다. 릴케가 ‘시는 체험’이라고 정의했듯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에다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경험하는 정신적인 산물이 망라되며, 그것은 열심히 스스로 체득할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유를 통해 양질의 상상력이 빚어진다. 결국 상상력의 원천은 체험이고 관찰이며 독서이다. 그 상상력의 나래가 활짝 펼쳐질 때 진실에의 접근이 가능하고, 시가 쓰지는 것이며 시 쓰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리라. 시학이나 창작 교실에서의 강의는 이러한 것들을 즐겁고 기꺼이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의 다름 아니리라. 그렇다면 그 강의는 꼭 시를 잘 쓰는 유명 시인이 할 필요는 없다. 노래교실에서의 노래를 나훈아와 조용필이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배우는 사람의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강사가 말아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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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출처 : 스스로더불어답게
글쓴이 : INSOR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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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소년 매거진 편집부 직원이 "사지 않고 서점에 서서 읽어도 좋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만화"라고 트위터에 언급했던 작품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내 호평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애초에 61페이지 단편이었지만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 주간 소년 매거진 트위터를 통해 연재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밝혔고 올 여름에 연재될 것으로 보임.


첨부파일 지금 만나러 갑니다 OST - 03. 雨の予感 (비의 예감).swf































































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0Ki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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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주/ 권선희

 

제수씨요, 내는 말이시더. 대보 저 짝 끄트머리 골짝 팔남매 오골오골 부잡시럽던 집 막내요. 우리 큰 시야가 내캉 스무 살 차이 나는데요. 한 날은 내를 구룡포, 인자 가마보이 거가 장안동쯤 되는 갑디더. 글로 데불고 가가 생전 처음으로 짜장면 안 사줬능교. 내 거그 앉아가 거무티티한 국수 나온 거 보고는 마 바로 오바이트 할라 했니더. 희안티더. 그 마이 촌놈이 뭐시 배 타고 스페인꺼정 안 갔능교. 가가 그 노무 나라 음식 죽지 몬해 묵으면서 내 구룡포 동화루 짜장면 생각 마이 했니더. 생각해 보믄 울행님이 내 보고 샐쭉이 웃던 이유 빤한데 내는 그 촌시럽던 때가 우예 이리 그립겠능교. 마 살믄 살수록 자꾸 그리운기라요. 그기 첫사랑 고 문디가시나 그리운 것에 비할라요. 내 품은 가시나들 암만 이뻐도 울 행님 그 웃음 맨키야 하겠능교. 뭐시 이리도 급히 살았는지 내도 모르요. 참말로 문디 같은 세월이니더. 제수씨요, 무심한 기 마 세월이니더. 우예든동 한 잔 하시더…….

 

- 시집『구룡포로 간다』(애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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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사투리라도 지역마다 다 다르고 같은 경북이라도 대구를 기준으로 위아래와 동서의 사투리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떤 말은 경상도 안에서도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까지 있다. ‘대보’라 하면 구룡포 호미곶 일대로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포항시 남구 대보면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구사된 말은 전형적인 경상도 동부지역 포항 사투리인 셈이다. 하지만 ‘~이시더’ ‘~니더’ 따위는 경북 북부지방에서도 쓰는 말이고, ‘~능교’는 대구를 포함해 경상도 거의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언이다.

 

 이 텁텁한 탁주 같은 넋두리들을 들어주고 있는 청자는 아마 권선희 시인 자신으로 짐작되는데, 가만 보면 시인의 주변엔 이런 인적자원(?)들이 꽤나 풍부한 것 같다. ‘덕수씨’를 비롯해 그녀의 시집에는 어디를 펼치더라도 구룡포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 진하게 녹아있고, 그 애환의 신산스러운 곡조들로 빼곡하다. 아무리 둘레에 부존자원이 많이 있어도 아무나 그 이웃들을 생명력 있는 언어로 밀도 있게 그려내지는 못한다. 권선희 시인을 '구룡포 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그림들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원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라 들었다. 그런 그녀가 구룡포에 살면서 르포작가마냥 구석구석 바닥을 훑으며 써내려간 다큐멘터리가 독자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호흡하면서 전해주는 서정적 진술은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듯하여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이 시에서도 한가한 어촌의 팔남매 오글오글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 화자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맏형을 그리워하며, 그 형이 지난 세월에 사준 다 불어터진 ‘동화루 짜장면’의 입맛을 다시며 풀어내는 곡절들을 다 듣자면 필시 눈물이 찔끔 나오지 싶다. 그러니 그걸 급 수습하려면 ‘마카다’ ‘우예든동’ 탁주 한 사발씩 들이키며 울대를 미리 적실 도리밖에...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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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 김남조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 시인수첩2011년 여름호(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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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의 여름은 황금물결이다.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근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는 다 익어 뻐꾸기 울음 정겹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잘 익은 보리 냄새 까칠하고 구수하다. 눈감으면 삼베 덮은 소쿠리에 담긴 삶은 보리가 더 구수히 다가온다.

 

 보리를 소재로 한 유명한 수필로 한흑구의 1955년 작품 보리가 있다. “이마 위에는 땀방울을 흘리면서, 농부는 기쁜 얼굴로 너를 한아름 덥석 안아서, 낫으로 스르릉스르릉 너를 거둔다.“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고진감래, 고난을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보리의 강한 생명력을 예찬한 수필이다. 보리의 일생을 통해서 성실과 끈질김으로 고난을 견뎌내면 환희와 보람이 반드시 따른다는 생의 교훈을 암시하고 있다.

 

 보리는 다른 농작물과는 달리 늦가을에 씨를 뿌려서 초여름에 수확한다. 지금부터 보리 수확철이다. 보리농사는 이미 예전에 비해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밀과 함께 정부수매도 폐지되었다. 수입곡물과 가격 경쟁이 안 된다는 게 주된 이유일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도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망할 것들, 얼매나 뒹굴었시마 이리 자빠뜨려 놓노, 차라리 말을 하지, 내 방이라도 내줄낀데누운 청보리 일으켜 세우며 하시던 할머니의 푸념도 이젠 평화롭게 추억된다.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 만 눈에 차누나박화목 시인의 보리밭이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 귀에 찰랑인다. 노랫소리는 하늘로 퍼지고 초여름의 상념은 그리움의 강을 건너고 있다. 이제 보리와 보리밭은 그저 추억과 그리움을 파는 상품일 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추억이 일렁이고 낭만이 넘실거리는 이 계절에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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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 읽어주는 남자 - mekia 북 칼럼니스트 김성희


무협소설의 3대 매력포인트는 무공, 미인(이건 주인공이 남자니 어쩔 수 없습니다.), 복수입니다. 이 세 요소가 어떤 변주를 하느냐에 따라 소설의 흡인력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무공이라면 얼마나 강하고 새로운 것을 선보이느냐, 이걸 주인공이 어떻게 얻느냐가 관건입니다. 미인은, 솔직히 주인공의 짝이 되는 히로인들이 거의 경국지색, 침어낙안의 절세가인이라서 변화가 어렵지만 캐릭터의 생동감이 승부수가 되지요. 복수는 마구잡이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식상합니다. 복선과 고비가 적절히 배치되어야 읽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 낯선 작가의 작품-두 번째라는데-은 수작입니다. 우선 이색적으로 ‘구궁철각류’라는 다리를 쓰는 무공이 주인공의 큰 장기입니다. 거기다 영약이나 비급 등 기연을 얻어 단번에 천하무적이 되는 경우도 아닙니다. ‘의형전결’이라는 9단계의 심법이 주인공 무공의 ‘밑천’인데요, 이게 거의 사경을 헤맬 정도로 처참하게 당하고 나서야 한 단계씩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사랑도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30대에 상처한 주인공이 히로인들과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이 나름 설득력 있습니다. 마음 착한 하유경, 경호를 하면서 주인공의 인간적 고민에 슬며서 빠져드는 단경화, 처음엔 미워하다 존경이 사랑으로 변하는 처제 목소영은 주인공만 보면 무턱대고 빠져드는 여느 무협소설의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삶의 냄새가 납니다.


복수 과정도 일방적인 아닌 것이 마음에 듭니다. 백미는 사지에 갇힌 처가 식구들을 구하기 위해 함정인 줄 알면서도 ‘중극마지’를 찾아드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이 투지와 불굴의 의지로 곳곳에 도사린 적수들을 차례차례 격파해 가는 장면은 무협소설의 장쾌한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야기는 거대 세력의 음모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 장두이가 개인적 복수와 악의 처단을 병행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복수를 위해 잔인한 수법을 쓰는 바람에 ‘혈마’라는 오해를 사고, 그러면서도 살인에 회의를 느끼는 주인공을 보면서 독자는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주먹을 쥐면서 이야기에 끌리지요.


한 번 손에 들면 다음 권을 찾아 읽게 되는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단점은 미완이란 점입니다. 적어도 10권은 되어야 끝나지 싶은데 9권까지만 나왔거든요. 책을 읽으면 절로 작가를 재촉하고 싶어질 겁니다.


책 속 한 문장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한 번 쏟으면 잘 통제가 되지 않아. 만약 마음이 방향을 잃을 때는 어느 쪽으로 발길을 잡아야 할지 암담하기도 하지. 기댈 곳이 없는 마음은 허공에 맴돌다 바람에 병들어 가며 삭아가는 것이지

함께 읽으면 좋을 e북      
   

노병귀환 1/8

 

권용찬의 칼 1

 

야왕쟁천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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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論, 입맞춤 / 이화은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 《현대시학》200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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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은 키스에 관한 두 가지 명언을 남겼다. 좀 더 쉽게 ‘상대성 이론’을 설명해줄 것을 요구한 학생에게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를 하면 3분도 3초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난로 위에 손을 얹어 놓으면 3초도 3분처럼 길다”라며 시간의 상대성을 말했다. 또 하나, 키스를 하며 운전하는 연인을 본 아인슈타인이 혀를 차며 “예쁜 여성과 키스를 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은 키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한 말이다.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며 최상의 느낌을 교감하는 짜릿한 순간에 몰입하지 않고 주의를 산만시키는 건 키스에 대한 모독이란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때때로 그런 행동을 하나보다. 눈을 뜨고 키스하면 초점이 잘 맞지 않음에도 여자가 자신의 키스에 만족하는지 굳이 알고 싶어 한다든가, 본 게임에 앞선 예비단계 쯤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키스할 때 눈을 뜨고 껌뻑거린다. 당연히 키스의 질은 여성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키스가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가는 여자의 키스와 어찌 같으랴. 그런데 맥박이 빨라지며 혈압은 오르고,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며 부신은 아드레날린을 배출하는 강열한 화학반응을 실눈 뜨고 확인하는 남자의 치사한 짓거리가 ‘시론’에 비유되다니.

 

 시가 무슨 연구대상이고 실험의 대상이란 말인가. 아니지만 종종 끈질긴 추적에서 시가 생성되기도 하며, 구체적인 곳에서부터 끈질기게 붙드는 흔적이 필요하긴 하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시는 삶의 현장인 동시에 꿈의 현실이고, 예술인 동시에 현실’이라면서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고 했다. 그 에너지를 시각화시키는 것이 시라면, 키스할 때 ‘몰입의 바닥’에 빠지지 않고,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는 ‘불쌍한 시인’에 견줄 만하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듯 황홀경에선 시가 필요치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에 탄복하고 빠져들기 보다는 르포기자처럼 타버린 재까지 들쑤시는 존재가 시인이다. 생활 속의 자아 말고 취장 언저리에 예술적 자아를 하나 더 키우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는 점 명심해 주기를.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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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놈 여우 같은 여인 / 김복수

                       

 

 

언제부터 개 같은 놈이 여자들 입에 올려 졌는지 모른다

우리 민박집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쌍이

사나흘 묵어간다고 찿아들었다

어찌나 다정한지 비둘기도 선배님하며 고개 숙일 정도다

 

삼 일째 되는 날 우연히 사내 전화를 엿듣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 늦게 세미나가 끝날 것 같아

응응 애들은 학교 잘 다니고 아무 탈 없지요

여보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당신과 헤어진 삼일이 삼백년보다 더 긴 것 같구려~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 마누라는 개 같은 놈이 자고 갔다고

자꾸만 걸레질을 한다.

 

그래도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어쩐지 허전하여

나에게도 숨겨놓은 여우같은 여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여본다

그래! 나도 개 같은 놈이 맞는 가 보다

 

 

 

출처 : 두엄자리
글쓴이 : 조각의to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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