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커피는 담배나 알코올을 능가하는 중독성 물질이면서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거나 먹는 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문명사회는 거의 커피를 마시는데요, 왜일까요.
"1723년 바흐의 '커피 칸타타', 이런 대목이 있소. '오 커피여, 1000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캣 와인보다 달콤한 그것.'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 80잔을 마셨지. 1657년의 영국의 한 커피 광고는 심장병·감기·폐결핵·두통을 치료하는 만병 통치약으로 묘사했지.
인류가 커피의 부작용에 눈뜬 건 20세기에 들어서야. 월경전증후군 악화, 단기 기억 손상, 진통제 효과 경감, 불면증 등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인류의 혀는 이미 그 검은 유혹에 깊이 빠졌는데.
1674년 영국 여자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하고, 정력이 약해진다며 남자들의 커피문화를
금지해 달라는 '커피 반대 청원'을 냈었지. 2년 후에는 정부가 커피하우스를 금지하려 했었어. 당시 커피집은 '1전 대학(penny university)'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정부 씹는 법을 가르쳤으니까. 마누라들과 권력의 압력에도 살아남은 게 커피네.
중독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렵지 않겠나. 하지만 조심하게. 칼 융이 말하지 않았나. 모든 중독은 위험하다고 말이야. 그게 술이건 모르핀이건 이상(理想)이건 말이네." (100127)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앗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 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질문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출간 계간 <시와 생명> 편집위원 웹진 <詩鄕> 편집주간
4일 오후, 서울 암사동 한국점자도서관에서 만난 육근해(48) 관장은 직원 6명과 함께 손수 점자인쇄기를
돌리고 있었다. 오돌토돌한 동판과 흰 종이를 압축기에 밀어 넣어 수작업으로 책과 잡지를 찍어내는 기계다. 지하 1층 관장실(33㎡?10평)은 전체의 3분의 2를 점자 동판이 차지하고 있었다. 육 관장은 "40년 동안 만든
책이 늘면서 앉을 자리가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
이 도서관을 세운 사람은 육 관장의 부친 고(故) 육병일(陸炳一?1929~97)씨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3살 때 홍역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40세 되던 해 사재를 털어 종로5가에 12㎡(4평)짜리 도서관을 열었다. 직원 둘 여력이 없어 부인 장순이(74)씨와 5남매가 도서관 일을 거들었다.
육 관장은 10대 때부터 도서관 일을 거들다가, 9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 일을 맡게 됐다. 97년 부친이 별세한 뒤 어머니가 관장을 맡고, 육 관장이 거들었다. 육 관장은 2001년 정부 지원금이 줄어 자택을 담보로 도서관 운영자금을 대출받았다가 제때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육 관장은 어머니를 붙잡고 울었다. "엄마, 이제 우리 문 닫자. 개인이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점자책 70여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726㎡(220평)에 6만6000여권을 보유한 공간이 됐다. 올해 이용자만 13만명이 넘는다. 1년 예산 5억원 중 1억5000만원은 정부 지원금으로, 나머지는 개인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육 관장은 "아직 우리나라엔 국립점자도서관이 없다"며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점자도서관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국립도서관이 생기면 대를 이어 지켜 온 도서관을 기부하겠다는 게 육 관장의 생각이다. 10일 열릴 기념식에서 육 관장은 39주년 때와 똑같은 기념사를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