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태그의 글 목록 (3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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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할 때
                                      오세영 (낭송 : 유현서)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남는건 허무뿐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남는 건 그리움 뿐이다,

진실을 믿기 위하여
진실을 말하라지만
당신은 아름다운 에고이스트

사랑은 언제나 있고
사랑은 언제나 없다,

내가 믿는 것은 하나의 아픔,
하나의 허무, 하나의 그리움,
그리고 빗 속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한다고 말할 때
사랑은 외로워진다.

          

 

.

출처 : 유진의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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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 박라연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 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나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무늬가 보일락말락한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
아직은 낯이 설어
수십 번 손바닥을 오므리고 펴는 사이
수십 번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
그 집의 뒤켠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꽃이 있네
절망이 사철 내내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 하나 빚겠네
그 건너편에 물론 강물이 흐르네.
그 강물 속 깊고 깊은 곳에 내 말 한마디
이 집에 세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나… 처음… 사랑할… 때… 처럼… 그렇게…
내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면
내가 내 몸을 폭풍처럼 흔들면서
내가 나를 가루처럼 흩어지게 하면서
나,
그 한마디 말이 되어보겠네

 

 

 

가을 편지/박라연 

 

어떤 주인은
장미, 그가 가장 눈부실 때에
쓰윽 목을 벤다
제 눈부신 시절을
제 손으로 쓰윽, 찰나에 베어낼 수 있는
그렇게 날카로운 슬픔을 구할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품어보고 싶던 향기
꼭 한 번 일렁이고 싶던 무늬
왜 있잖아 연초록 목소리 같은 거
기가 막히게 어우러질 때
저 山 저 너무 훌쩍 넘어가고 싶다
아주 오래된 빈집이 있고
날카로운 슬픔의 주인이 있고
희미한 前生의 그림자가 있지만
이 모든 것 제 갈 길 가기 시작하면
나는……야 거북이처럼 느리게 골방으로 가서
습작 시절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삼라만상 무한천공을 엿보리라
눈이 짓물도록 귀가 멍멍해지도록 머물다가
내 주인이 쓰윽, 목을 베면
한 세상 다시 피어 볼 붉히는 장미
장미 한 송이가 되리라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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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둘

 

                                                                                  서봉교

 

 

 

 

 

이젠


민방위 소집도 면제가 되는 나이


잠시 잇몸에서 피도 나고


과음을 해도


다음날 불쾌한 나이


애들 키보다 작아지고


마누라한테는 당연히 져야 하는 나이


직장에서는 베풀어도


자기 마음 쉴 곳을 따로 찾는 나이


그래도 이십대를 보면


나랑 별차이 없네 하고


착각을 하는 나이


지고 있는 축구경기의 후반전처럼


역전골도 노려 보는 나이


아직은


새벽에 일찍 기상하는 나이

 

 

 

 

그런 나를


인정 할 수 없는 나이.

 

                                                                                                                   2010년 7월호 <월간창조문예>발표작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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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

 

                                                                              서안나

 

 


 

거실문을 열고 닫을 때
열림과 닫힘의 관계를 생각한다

 

 

나는 문, 그는 베란다
나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나의 밖에 있다
나를 열면 그는 반쯤 내가 된다
나를 닫으면 그는 마술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내 두 눈이 그를 밀어낸 것뿐이다

 

 

나를 떼어내면
그는 바람 잘 통하는 훌륭한 거실이 된다
그와 나는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바람만 남는다
내가 사라진 것도 세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랑의 밖이며 안이다

 

 

문을 열고 닫는 일
어쩌지 못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향해 뻗어가는
퇴화식물 뿌리 같은 캄캄한 눈동자
사랑아,
문에 접질려 피멍 든 손가락으로 어디서 울고 있는가?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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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에 너를 적시다  

                                                         최승헌

 

 

 

내가 너의 몸에 초경처럼 비밀스럽게 찾아가서

그 몸을 붉게 물들이는 꽃으로 피어나거나

혹은 네 몸속을 떠도는 바람으로 산다면

너는 나의 어디쯤에서 머물러 줄 수 있을까

너에게 스며들고 싶어 수없이 내 몸을 적셨지만

불어터진 인연의 껍데기로는 어림도 없어

반송우편함에 틀어박힌 편지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네

네가 꽃일 때 나는 꽃이 되었다가

네가 바람일 때 나는 바람이 되었지

꽃도 바람도 네 몸속에 잠들지 못해

입질만 하는 붕어처럼 실없이 네 이름만 불렀지

물수제비뜨듯 너에게 나를 조금씩 던지는 밤

파르르 떨며 지나가는 내 민망한 얼굴을

어둠의 꼬리가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네

하필, 이 눈치 빠른 계절에 걸려든 내 몸은

누가 끌어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숨통이 턱턱 막히는데

봄밤이 너무 길어 자꾸만 너를 덮치려 하네

봄밤이 나를 자빠지게 하네

 

 

- <현대시> (2010년 3월호) -

출처 : 외로운 여자의 수다방
글쓴이 : 장혜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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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처 : ironcow6200
글쓴이 : ironco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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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 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그 사람 내게로 오네(시로 읽은 황진이)/우리 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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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김영한(1915∼1999)
기명(技名)은 진향(眞香)이고 筆名은 자야(子夜)이다. 그녀는 시인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던 기녀이며,

백석 또한 그녀를 위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전한다. 백석이 북으로 떠난 후, 38선 때문에 그와 생이별한 그녀는

‘김영한은 백석을 잊기 위해 혼자서 대원각을 냈다.’는 소문이 있고, 우리나라 제일의 요정을 일구어 낸 여걸이었지만,

백석이 죽도록 보고 싶으면 그녀는 줄 담배를 피워댔다고 한다.
그 담배 연기가 이 가련한 여인을 그냥 두겠는가? 기어이 폐암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이 임박해지자 김영한은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은 절에, 자신이 만지던 2억 원의 현금은 백석문학상 기금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내 사랑 백석'(1995년 문학동네),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은 이름'(창작과비평)을 출간했다.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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