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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Halekauwila Street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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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 (Ko) 010-9929-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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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LUB OSHALE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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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nair.com

 

※ 참고로 저는 대한항공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제 메일로 온 내용을 제 블러그에 올려서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실까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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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27일 숙명과도 같이 다시 호놀룰루로 돌아 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여행사로 출근.

한달 열흘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일본 손님들을 싣고 다이아몬드 헤드 하이킹을 했고,

낮에 다이빙이 없는 날이면 섬을 돌며 가이드가 되었다.

낮투어가 끝나면 또다시 와이키키 전 호텔을 돌며 사람들을 싣고 탄타라스 야경을 보기 위해

구비구비 산길을 매일 밤 달렸다.

숨이 막히는 나날,내 몸과 정신이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어제.

카우아이에서 존의 여자친구 벡키가 오아후로 왔다.

이곳에서 동물 구호 일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나에게 꼭 이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단다.

 

Rob과 Ambasa.

Rob은 키가 2m10cm 넘었는데 화가이자 서퍼이고,까만 Ambasa는 이번에 캐리비언 해적 4에 출연한 배우.

정말 오랫만에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한달여만에 처음으로 실컷 웃었다.

이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Lion in HNL

 

 

 

 

출처 : CLUB OSHALE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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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7일

주희에게서 메일이 왔다.
나를 보러 다음달 초에 하와이에 오겠단다.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내 행방을 수소문했나 보다.

난감했다.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 주 저 주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숨죽여 살아 가는 나.
밤이면 온갖 여자들에게 술을 따르며 내 영혼과 젊음을 팔고 있는 나.
그리고 나는 지금 세상에서 버려진 한 여자와 동거중이다.
나는 더이상 예전에 그녀가 기억하던 그 남자가 아니다.
내 육체도 내 영혼도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반면 그녀는 모든 것이 나와 정반대의 입장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아무 걱정없이 살아 온 그녀.

유학까지 온단다.

그녀와 나사이에는 이제 건널 수 없는 너무도 큰 강이 하나 생겨 버렸다.

예전부터 사실 난 그녀에게 알 수 없이 많은 자격지심이 있었다.

가끔씩 너무도 판이한 환경에 일말의 가당치 않은 분노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들이 마치 낡은 영화필름처럼 주루루룩 내 우뇌를 거쳐 좌뇌까지 흘러가자 많은 감정들이 일순간 교차했다.

본심중의 본심은 보고싶다,만나고 싶다,그녀를 다시 한번 안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도현이는?

그렇게 사랑한다고 울부 짖었던 도현이와 보냈던 그 세월은 정녕 다 거짓이였나?
나는 정말 악마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평생 이런 문제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업을 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이런 말도 안되는 갈등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주희에게 또 원망이 생겼다.
왜 날 다시 이런 지경으로 몰아 넣는 건지.
그동안 그만큼 힘들게 했으면 됐지,지금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왜 또 이런 힘든 시간을 던져 주는 거야.

 

2004년 6월10일
불면의 나날들이다.
어제는 아버님 생신이셨는데 전화도 드리질 않았다.
오는 전화도 하나도 받질 않았다.
그저 숨고 또 숨어 있고 싶다.
내 모든 상황들이 그리고 너무도 추악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구역질이 난다,나라는 인간.

모두에게 거짓말이다.

어머니께 드리는 거짓말,도현이에게 하는 거짓말,주희에게 하는 거짓말,모든 손님들에게 하는 거짓말.

나는 십중 인격자인가?

자아분열이 너무도 심하다.


2004년 6월11일
도현이가 거의 한달만에 집엘 들어 왔다.
지난 삼월에 가게를 오픈한 이후 계속 이런 사이클이다.
그런데 꼭 생리기간에만 집엘 온다.

 

미쳐 버리겠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자꾸만 자꾸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진실을 호도하려 눈을 감아 버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 버리는 나란 인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썩어 문들어져 버린 건가.

 

왜 나는 도현이와 함께 사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이게 같이 사는 것인가?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녀 얼굴을 보는데 자꾸만 주희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2004년 6월12일
오랫만에 그녀가 차려 준 밥을 함께 먹다가 도현이에게 물었다.
날 사랑하느냐고.
그녀는 그저 나를 바라 보며 한번 빙긋 웃어 주었을 뿐이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물었다.
정말 나를 사랑하긴 사랑하는 거냐고.
또 대답이 없이 수저를 놓고 의아한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는 그녀.
나는 그순간 상을 엎어 버리고 온 집안 물건들을 다 때려 부셔 버렸다.

 

2004년 6월13일
또 혼자가 되었다.
견딜 수가 없이 외롭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근원도 행방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자꾸만 자꾸만 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홧김에 주희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고 싶다고,언제 오냐고,내가 마중을 나가 겠다고 말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 모르겠다.
뭔가 큰 나쁜 짓을 한건 아닌지 자꾸만 심장박동이 빨라 진다.
눈을 감아 버리면 더 잘 외면할 수 있을까.
난 그 자리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2004년 6월14일

그게 잘사는 거라고 배웠다.

내 양손에는 최대한 많이 움켜 쥐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니 내 마음은 꽁꽁 닫아 두어야 한다.

겉으로는 넉넉히 웃어 주고,속으로는 언제나 철저히 계산을 하여 한방울도 손해보지 않아야 된다고 배웠다.

늘 남의 것을 탐하면서도 표시내지 말고 성인군자인척 하라고 배웠다.

그리고 대열을 넘어 가면 이단아이니 철저히 비난하라고 배웠다.

우리와 다르게 생겼으면 철저히 무시하고 침을 뱉으라고 배웠단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태어나서 자란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곳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이렇다. 

 

2004년 6월19일
제프리가 드디어 돌아 왔다.

너무너무 반가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뭔가 모르게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

이 녀석도 큰 강 하나를 건너 온 것 같다.

 

2004년 6월22일

도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2주일 정도 샌프란시스코 언니네 집에 다녀 온다고 한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주희는 7월2일경에 온다고 했다.

 

2004년 6월30일

이 집에서 모든 도현이의 흔적을 지웠다.

그녀의 모든 물건을 박스에다 차곡차곡 정리해 옷장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완벽하다!

 

2004년 7월2일

공항에서 난 주희를 한 삼십분동안 꼭 끌어 안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그녀도 나도 자꾸만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려 서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나를 떠나간 이유를 울먹이며 계속 설명하려 했고,나는 괜찮다며 괜찮다며 내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어 버렸다. 

 

금방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찝찝한 재회다.

 

 

 

 

 

to be continue...

 

 

 

 

 

 

 

 

 

출처 : CLUB OSHALE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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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2일

모두들 나를 보면 오늘밤 같이 있을 수 없냐라고 한다.

꼬마 기집애들부터 할머니들까지 다 똑같다.

여자는 그냥 여자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 그 자체이다.

모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호스트는 이 마지막 상품을 제일 나중에 팔기 위해 끊임없이 끼를 부린다.

그리고 손님들은 어쨋거나 최단시간에 승부를 보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즐거이 이 모든 유혹들을 찬찬히 음미해주신다.

이 메인 게임이 끝나면 드디어 라스트 카드가 나온다.

메인 게임에서 없었던 것, 바로 섹스이다.

이것을 둘러싼 남과 여의 복잡한 흥정은 끝이 없다.

호스트들은 미래의 '한탕'의 가능성과 오늘의 '현찰'의 달콤함, 후일을 위한 '서비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손님들은 자신의 '지갑'과 상대의 '상품가치'와 장래의 '우환' 가능성이 연계된 복잡한 다원 방정식의 해법에 고민한다.

 

2004년 5월15일

오늘 제프리가 달라스로 떠났다.

변호사도 만나고 법정에도 출두해야 하고 부모님 얼굴도 오랫만에 보고 싶단다.

한달일정이라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지 거의 일년만에 처음 떨어 지는 거다.

갑자기 제프리가 돌아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온 몸이 얼어 버리며 심장 한켠이 극심히 시려 왔다.

  

2004년 5월17일

작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지금껏 섹스없이 좋은 관계로 잘 지내는 섹시한 누나 한명이 있다.

항상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의 이 누나,오늘 이혼을 했다며 예전 없던 시무룩한 표정으로 가게를 찾았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 하나와 연년생 초등학생 아들 둘을 가진 다복하고 유복한 집안이다.

바깥양반은 정말 성실한 분으로 하와이 교민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유통회사 사장님이셨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누이의 대답은 이랬다.

 

"그 사람은 너무도 성실했어.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들어 오고,어디 딴데 한눈 파는 일도 절대 없었지."

 

"그럼 왜?누나를 사랑하지 않았어?남자구실을 못해?"

 

"아니,나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15년동안 결혼 기념일 한번 안 챙긴적 없어.

그리고 밤일도 나쁘지 않았어."

 

"그럼,애들에게 못된 아빠였어?

 

"아니,그 사람처럼 완벽한 아빠도 없을 거야.정말 자상한 사람이거든."

 

"그럼 도대체 왜,이유가 뭐야?"

 

"15년째 그런 똑같은 틀에 박혀 행복한 척 살고 있는 내 위선이 너무 싫었어.

난 자유롭고 싶어.

이제부터는 여행도 내 마음대로 다니고 예전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해볼거야.

그리고 내가 더이상 그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그 사람의 성실함이 지긋지긋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솔직히 살고 싶어.

난 더이상은 내 자신에게 거짓말하며 살지 않을거야."

 

나는 황급히 비워진 누나의 글라스에 다시금 가득히 술을 채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오늘은 그 어느날보다 몇배로 더 어지럽고 머리가 띵하다.

뭔가 예전에 쌓아 왔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였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2004년 5월23일

酌婦의 恨 (작부의 한)..`술집년 팔자`
상당한 멸시의 말이다.
그럼..酌夫의 恨은 술집놈,호스트들의 한쯤으로 해석될려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카피올라니 테라스. 
한인 마켓인 팔라마 수퍼  뒷편으로 작은 코리안 타운 안에 위치한 곳이다. 
이  아파트의 우리층의 열다섯 가구 중 열 가구 정도가 한국인 가정인데 민기네가 바로 우리집 옆집에 살고 있다.

낯가림이 많은 나지만 옆집에 살며 세탁실을 같이 쓰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민기네.
민기는 내 또래의 건장한 청년으로 아버님과 두살짜리 아이와 함께 사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가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매일밤 싸움(?)소리가 들리는 게다.
`이 개새끼, X새끼!`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의자 내던지는 소리가 쿵쿵하고 나고 그릇이 깨어지는 소리.

창그렁~!
`아버지, 또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개새끼야 무슨 말!`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지 `철썩`소리가 나고 또 다시 뭔가를 집어던지는 소리.
드디어 잠에서 깨서 우는 애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
이런 것의 연속이 거의 한달이 되어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잠잠해 졌다.
그제야 비로서 같은 아파트의 사람들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저 `민기 아버지가 철들었나보다` 하곤 넘어가 버렸다.
그리곤 다시 몇 주가 지났나 보다.
어느 날 옆집의 민기가 우리집엘 불쑥 찾아온 것이다.
손에는 작은 김치통을 하나 들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말았다.
몇 번인가 복도나 아파트 차고에서 마주 칠 때 보아온 건장한 그 민기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이 거의 딴사람인줄 알았다.
실테안경에 곱살한 얼굴.
통통한 몸매에 전형적인 부잣집 맏아들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은 없어지고 얼굴이 까맣게 반쪽이 되어 하마트면 못 알아 볼뻔 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으려니 민기가 나를 보고하는 말.
`저기요, 우리 김치 하나 팔아주세요`
`김치요?`
`이것 잡숴 보시고 맛이 있으면 주문해 주세요.제가 배달도 해드려요.저 좀 도와주세요.`
수줍음과 창피함으로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민기를 나도 힘겹게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오렌지쥬스도 한잔씩 마셔가며 내가 어색히 말문을 열었다.
`어디 김치 한번 맛을 볼까요?`
김치는 그냥 보통 김치였다.
우리가 흔히 팔라마 마켓에서 사다 먹는 그런 김치였다.
`이게 얼마예요?`하자
작은 것은 십불이고 큰 것은 십오불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김치값보다 약간씩 더 비싼 것 같았으나 배달을 해준다니 그렇겠구나 생각했고, 그렇게 말문을 열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민기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고 소문이 난 그 민기의 아버지는 사실은 호놀룰루 일원의 Liquor 스토아에 음란잡지를 공급하는 공급책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약에 까지 손을 대었는데,몇 주전 무슨 죄인지 급히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는 지금은 Kalihi의 모처에 있는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민기는 눈물이 흐르는지 두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는데 그 손등을 보고 난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손이 사람의 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욱이 20대 청년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헐고 부르터 있었던 게다. 
그 손이 그간의 그의 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그 손을 보니 내 가슴이 찡~
살며시 하늘을 보며 코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랬더니 민기가 눈물을 흘리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양념에 손이 부르터서 장갑을 껴도 위생상 예전부터 다니던 김치공장을 더 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할수없이 김치를 몇 동이씩 들고 다니며 아는 집마다 팔고 있는데 이것 먹어보고 맛이 있다면 우리 가게에 김치는 자기가 대겠단다.
답답했다.
내가 어떻게 연결을 시켜준대도 우리 가게 김치사용량이 많아야 일주일에 두통.
이걸 팔아주더라도 민기와 애기에게 무슨 도움이 될것인가?
그리고 우리 가게 식구들에게 떠 맡긴다 해도 제 밥도 안해 먹는 놈들이 김치는?
그것보다는 민기를 우리가게 웨이타 자리에 취직시켜 주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마침 지금 웨이타 중 한명이 한국에 돌아 간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는 중이였다. 
`그러지 말구 민기씨 저희 가게 웨이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처음부터 보수는 많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손님이 항상 있으니 민기씨가 뛰는 만큼 벌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이 손으로는 김치 같은 거 만지지 마세요 네?`
`예, 고마워요` 하고 나간지가 일주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샘플이라고 놓고간 김치 값조차도 받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김치값 10불을 들고 옆집을 찾아가니 마침 민기가 집에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 방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글쎄.....!
그 방은 사람사는데라고 할 수가 없었다.
부서져버린 탁자가 을씨년스럽게 한쪽 벽에 쌓여있고 쿠션은 어디로 가버리고 대신 이불보따리를 주섬주섬 올려놓은 소파하며 그 중에서도 정말 나를 울게 만든 것은 부셔져버린 애들 플라스틱 장난감 몇 개하고 그 옆에 그냥 쓰러져 자고 있는 사내아이의 모습이였다.
잠들어있는 두 살짜리 사내애.
그 잠든 얼굴에서 부챗살처럼 펴져 나오는 `삶의 피곤`이 내 가슴을 정말 아프게 찌르더구만.
확! 하고 숨이 끊어지는 것도 같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느 가정 같으면 지금 이 시간, 일요일 오후.
챙달린 운동모자를 거꾸로 쓴 채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하다 못해 허접한 호놀룰루 동물원에서라도
`저게 코끼리다, 이게 호랑이다` 하면서 신나게 뛰어 놀아야만 하는 이 아기.
어째서 이 골방에서 세상피곤에 지친 채, 잠으로 잊어야 하는가?
흔히 보는 예쁜 아기 침대.
그 위에는 오색무늬의 딸랑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머리맡에는 예쁜 동화책이 한두권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그냥 더러워진 카펫에 얼굴을 묻고 억지로 잠을 자며 세상번뇌를 잊어야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이 애기.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아기를 일으켜 내품에 앉았더니 그제야 새록새록 편안히 잠들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
민기에 대해서 말로서 할 수 없는 어떤 분노 같은 것이 끓어 올랐다.
`어째 사람이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민기의 기나긴 과거사를 듣고 있노라니 나의 분노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였다.
민기가 여섯 살이던 82년.
당시 전대통령의 새마을운동실패로 피폐되기 시작하던 우리의 농촌.
충북 어디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
그런 대로 농촌에서 양돈을 하며 중류생활은 이어갔지만 그해 속칭 `돼지파동`을 겪으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가고 빚더미에 놓이게 되자 어머니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여섯 살난 민기의 손을 잡고 멕시코 이민 길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 농부로 일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였지만 그 지긋지긋한 농사를 포기하고 교포가 운영하는 쉐타공장이나 박스공장을 전전했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셨단다.
술로 세월만 죽이시며..그리고 민기가 열둘이던 시절.
그러니까 팔팔 올림픽으로 들떠 있을 때,서울의 무슨 브로커를 통해 미국,L.A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그나마 몇푼있던 돈도 미국 오는데 다 써버리고 무일푼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재기를 노리고 D-싸우나에 욕탕청소부로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하셨다 한다.
그때 민기 역시 이곳에서 하이스쿨에 다니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그렇다고 남미 서반아어나 제대로 하나?
영어는 더욱 그렇지.
그러니 학교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다시금 마지막이다 건너 온 이곳 하와이.

이곳에서도 외로움의 나날은 바뀌질 않았다고.
학교근처의 야산을 오르 내리며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엎친 데 겹친다고,하나뿐인 아버지마저 마약에 쩔어 매일밤 지긋지긋한 구타의 연속.
그나마 그런 아버지마저 구속이 되셨으니 그야말로 이제는 혈혈단신이 되어 버린 게다.
얼굴이 갸름한 미남형에다가 성격도 서글했던 민기에겐 여자들이 상당히 많이 따라다녔는데 지금의 애기 엄마는 결혼한지 일년이 채 안되어 애기와 민기만 덩그라니 남겨두고 도망을 쳤다 했다.
민기의 그 긴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난 차츰 민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취직하려 애써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민기.
마지막 자존심을 애기를 생각하며 싸그리 짓밟은채 여자들이나 일하는 김치공장에 취직한 민기.
이젠 손까지 부르터 그 어느 것도 할수없는 민기.
민기의 무능함이란 민기만의 것이 아니였다.
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로 향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슴은 분노로 요동치고 있었다.

요즘 민기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탬버린을 흔든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춤을 추고 크게 웃는다.
이교대로 돌아가는 베이비시터의 만만찮은 임금을 감당해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민기에게 누가 무슨 권리로 술집 작부(酌夫)란 소릴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누가 호스트질을 하며 부끄럽지도 않냐고 돌을 던질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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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1일

만우절이다.

내가 아는 모든 손님에게 모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한다라고 이야기 해줬다.

 

2004년 4월7일

한국에서 떠난지 딱 일년째 되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미국 오기 전 헤어진 주희에게서 오늘 처음으로 메일이 왔다.

그녀는 오는 겨울에 콜로라도 덴버로 유학을 온다는 말을 전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던 Make-up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이곳에 Shop을 차리고 싶다는 꿈도 한자락 비쳤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씩 내가 사뭇치게 보고프다며 일년동안 묻어 두었던 내 묵은 그리움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녀와 지낸 한국에서의 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갔다.

갑자기 못 견디게 아주 많이 그녀가 그리워진다.

그 모든 사랑스웠던 추억들이 너무도 절절히 그리워 져서 한참동안을 침대 한켠에 웅크리고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 묻고 있어야 했다.

 

'그래 주희야,너도 정말 힘든 강을 건너고 있구나.
네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테고 그저 나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말밖엔.
슬픔을 서둘러 추스릴 필요는 없다.
눈물이 흐른다면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도 좋을 거다.
그리고 추억은 간직할 수 있을 만큼 그대로 남겨 두어도 좋을 거다.

잘 지내렴,내 소중했던 사람아.'

 

나는 결국 그녀에게 이 답신을 하지 못했다.

 

2004년 4월11일

요즘같은 행복한 나날은 내가 태어 나서 처음인것 같다.

매일 평균 두세방은 꼭 보는 것 같다.

술에 쩔어 매일 일어나 헛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돈을 만질 수 있지 않은가?

빚을 갚고 있지 않냔 말이다!

 

이곳 하와이는 여느 호스트바와는 달리 시스템이 독특하다.

물론 팁을 주는 손님도 있지만 규정상 여기는 팁이 없다.

손님이 사주는 술이 곧 돈이다.

기본 샷 한잔에 20불,그리고 샴폐인은 200불부터 기천불까지.

그리고 내가 50%,가게가 50%의 비율로 매일 커미션이 정산된다.

-하지만 매니저 팁을 10%정도 지불해야 하니 실수익은 판매액의 40%이다.-

 

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혐오스럽다.

그리고 그 견딜 수 없이 비참했던 패배자의 나날은 더더욱 소름끼친다.

그래서 오늘밤도 한잔의 샴폐인에 내 영혼을 아낌없이 팔 예정이다.

 

2004년 4월12일

오늘 이 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게이 파트너가 되었다.

겁도 나고 궁금하기도 하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 이 사람만 게이였는데,이곳에서 클럽도 가지고 있고 산꼭대기 집에 헬리콥터까지 가지고 있는 엄청 유명한 부자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감에 내가 생각했던 게이들의 이미지에는 전혀 위배되는 아주 박식하고 점잖은 사람임이 느껴 졌다.

무난한 테이블은 두시간여만에 파장이 났다.

제프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형 저 게이가 100,000불 주면 한번 할거야?"

나는 곧바로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너냐?"

그리고 집에 돌아와,나조차 꽁꽁 숨겨둔 내 깊고 깊은 새하얀 진실을 보았다.

나는 양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창남,몸을 파는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제프리가 말하는 저 돈,누가 저 돈에 나를 사주지도 않겠지만 나는 저 돈이 참 만지고 싶다.

아니 저 금액의 반,반의 반이라도 누가 좀 날 도와 줬으면 좋겠다.

 

이건 마치 불가의 선문답같기도 하다.

이렇듯 나는 겉으로는 교만하고 내 속은 늘 이렇게 추악하다.

 

2004년 4월24일

미국에서 처음 맞이 하는 내 생일이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깨니 그동안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Channel J12 텐포인트가 내 오른쪽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여진 그녀의 생일 카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늘 자기옆에 있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는 그녀의 예쁜 마음들이 그 작은 카드 한장에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너무너무 행복해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순간 작년 멕시코,그 감옥같던 모텔방에서 홀로 보낸 내 스물여덟번째 생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89센트짜리 마루찬 컵라면 두개가 내게 주어진 최대의 호사였던 일년전 오늘.

그렇게 나는 보석 박힌 샤넬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감회에 젖어 있었다.

 

가게에선 내 목에 겹겹의 레이가 걸려 졌다.

그리고 오늘 우리 가게의 모든 손님들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무슨 꿈을 꾸는 것 같은 만화같은 하루였다.

이곳 운명의 섬 하와이에서 나는 이렇게 스물 아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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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2일

텔레 마켓터처럼 눈만 뜨면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태능인처럼 2~3시간씩의 조깅 역시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 곳,아프리카의 폭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언제나 운명에 우선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자신의 강철같은 의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것이다.
나비의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이 사바세계의 소음을 사랑한다.

 

2004년 2월4일

하와이,정말 눈물겹게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이 호스트란 직업.

끊임없이 나를 조련시키고 단련시키며 되돌아 보게 하는 참 감사한 직업이다.

 
2004년 2월6일

드디어 도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하와이로 돌아 온다고 했다.

시리도록 그녀가 그립다.

그런데 이 감정 자체가 참 혼란스럽다.

'나에게 와라,도현아.'

 

2004년 2월7일

그녀는 내게 세상을 움직이는 열쇠,'꿈'이다.
꿈에 지탱하고,꿈에 의지하고,꿈에 고뇌하고,꿈으로 살아가고,꿈때문에 죽어 가고.
도현아,내가 널 위해 몸을 내던지는 건 하나하나 이유가 필요한건 아니지.

넌 그저 내게 꿈같은 여자다.

많이 보고 싶다.

 

2004년 2월8일

그녀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 일을 그만 두길 바래.

내가 무슨 일을 해서든 널 먹여 살릴께."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 너무도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 왔다.

순식간에 내가 구역질나도록 가증스러워 졌다.

역겨워서 몸이 바르르 떨려 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런 내 마음이 들킬까봐 더 크게 소리내어 울어 버렸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도대체 이렇게 살아 가는 것이 맞는 건가?

 

커다란 질문이 하나 생겼다.

 

2004년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

나는 도현이에게 장미꽃 한다발을 안겨 주었고,그녀는 나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 다이아몬드 선물이다.

뛸 듯이 기뻤다.

그녀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져 밤새 몇번이고 그녀를 안아 주었다.

 

2004년 2월16일

어렸을적부터 피해의식이 남달리 컸던 것 같다.

친구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처절히 외로웠기에 더더욱 나는 삐뚤어져 갔다.

사람들을 만날때면 항상 눈치를 보며 내 온 몸을 웅크리고 웅크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지막 진짜 속내는 고질적인 나쁜 습관처럼 늘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두고 살았다.

그게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와버렸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이젠 내 진짜 마음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이란 말이다.

 

2004년 2월18일

나는 과연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내 못난 컴플렉스가 깨 부셔야 할 이 세상의 마지막 타부?

아니면 그녀가 몸을 팔아서 힘겹게 벌어 오는 돈?

나는 과연 그녀를 사랑하긴 사랑하는 걸까?

 

아,솔직히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진짜 나를 발견해버리면 그간 쌓아온 거짓의 성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 버릴 것만 같다.

지금은 그렇게  발가 벗겨 질 수가 없다.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남겨 놓고 도망친 내 엄청난 빚잔치 때문에 노모께서 한달에 한번 쉬지를 못하신다.

24시간 뜬 눈으로 병원에서 환자들 똥오줌을 받아 내는 간병인 일을 하고 계신다 말이다.

정작 당신의 병든 몸은 눕히시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비참히 사신다 이 말이다.

 

그래,이곳은 빚을 갚으러 온 곳이다.
이 곳은 돈을 벌러 온 곳이다!
좀더 마음 독하게 먹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한다.
나한텐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

저따윈 지금 내겐 극심한 사치요 허영이다.
 

2004년 3월4일

도현이가 VIP라는 맛사지 팔러의 사장이 되었다.

그래 여러모로 지금 현실에 딱 맞는 수정노선이다.

서로의 마지막 양심을 서로 존중하고 지킬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수정안이다.

 

2004년 3월7일

드디어 멕시코에서 잃어 버린 내동생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지난 달 초에 한국에 돌아 왔다고 지금은 아주 건강해 졌다고,나는 아무 걱정 마시라고,형님은 잘 지내시냐고,한국에는 언제 돌아 오시냐고..사랑하는 내동생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동석이는 자기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 갔는데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봐도 지금껏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했다. 

 

정대의 메일을 읽으며 요 몇일 잠잠했던 내 눈물샘에서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흘러 내렸다.

 

한국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이곳, Hawaii.

형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정대야.

 

2004년 3월9일

정대랑 드디어 통화를 했다.

계속 힘차게 웃어 주는 녀석에게 극심히 미안해져 나는 꺽꺽 목이 메여 왔다.

여전히 동석이 소식은 알 수가 없었고 정대는 곧 발리로 떠날 거라고 했다.

아는 선배가 그곳에서 여행사를 하는데 요즘 한국 관광객이 많아져 가이드가 더 필요하다고 했단다.

잘되었다고 잘되었다고 나는 그의 새로운 출발에 내가 기억하는 모든 축하의 말을 동원해 내 기쁨을 표현해 주었다.

그렇게 그와 1시간여의 긴 통화를 마쳤다.

목이 컬컬해 담배를 물자 뭔가 가슴 한켠이 횅해져 오길래 냉장고에서 전에 먹다 남은 소주를 꺼냈다.

오늘은 가게를 쉬어야 겠다.

 

2004년 3월21일

오늘 도현이가 어디서 술이 잔뜩 취해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우리 가게에 놀러 왔다.

연신 이곳저곳 웃음을 흘리며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뭔가 변해가는 듯한 그녀의 모습.

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 저런 여자였나?

저런 여자에게 내가 이때껏 눈물,콧물을 쏟아 부었었나?

가게에서 그녀와 싸울순 없었기에 북받쳐 오르는 화를 가라 앉히려 한참을 나자신과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이런게 진짜 호스트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진짜 호스트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생각이 깊어지자 너무도 혼란스러워 나도 얼른 그녀만큼 취해 버렸다.

 

Good bye to 치기(稚氣)어린 내 지난날의 눈물들이여,내 지난날의 아집(我執)들이여.

 

2004년 3월22일

세상에 힘들지 않은 업(業)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 일(호스트)이야말로 정말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다.

우선 어디 나가 떳떳이 '나 고생했소' 하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 직업이다.

그렇다고 한껏 부풀려 전해지는 것만큼 그런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이 직업으로 돈을 버는 부류는 딱 두 가지이다.

이 악물고 남들 잘 때 안 자고, 입고 싶은 옷 안 사고,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하는 노력파이든가,

아니면 진짜 조각 같은 외모로 앉아만 있어도 여자들이 줄줄 따르는 그런 혜택받은 자.

그러나 이것은 어떤 직업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운이 좋아 술술 잘 풀려 일사천리,만사형통은 누구나의 요원한 꿈이다.

하지만 박복히 태어난 나같은 부류는 언제나 이를 악물고 벌거숭이로 가시덤불을 뚫고 맨발로 자갈밭을 달려야만 한다.

지쳐 쓰러 질 수도 없고 힘들다고 주저 앉을 수도 없다.

철저히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참 눈물겨운 나날이다.

 

2004년 3월24일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발리에 잘 도착했고 요즘은 스킨스쿠바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가 너무 씩씩해 살짝 부러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나는 전세계인이 그렇게 와보고 싶어 하는 이곳 꿈의 섬 하와이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요즘의 나의 일상이란 밤새 술 쳐먹고 그 퍼부은 술이 깨기 까지 그 다음 날 밤이 될때 까지 자고.

이렇게 흡혈귀처럼 살고 있기에,요즘도 하와이에 태양이 뜨는지 모르겠다.

아,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저 전설의 와이키키를 20분 거리,지척에 두고 말이다.

 

내 청춘은 이렇게 매일 밤 술에 찌들어 썩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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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3일
L.A에서 새로운 선수 세명이 왔다.

잘 생겼다.
멋있다.

게다가 어리고 싱싱하다.

모든 테이블에 인사를 들어 갔다.

반응도 죽인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결코 질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ALAMOANA를 지나 부둣가까지 미친듯이 뛰었다.

 

2003년 12월6일
그녀는 집에 들어 오질 않는 날이 더 많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 오면 요즘은 늘 혼자다.

 

2003년 12월8일
L.A에서 새로운 온 식구들 모두 대순이 형을 잘 안다고 한다.
요즘은 L.A에서도 아주 알아 주는 약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에 있던 가게에 마담으로 그대로 남아 있긴 한데 누구도 형을 마담으로 인정하질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약에 젖어 헛소리를 하며 돈을 빌리러 다니는 형을 다들 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옛생각도 나고 기분이 묘했다.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그냥 계속 기분이 묘했다.

 

2003년 12월14일

나는 도현이를 사랑하는 것일까?

 

예전부터 그들은 내게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약간은 두려움의 존재들이였다.

언제나 무섭고 두렵웠지만 항상 궁금하고 정복하고 싶었던 그 마지막 영역.

 

겪어 보니 똑같은 사람이다.

겪어 왔던 그 어떤 부류보다 훨씬 순수한 사람들이다.

그냥 나랑 너랑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라는 범주에서 난 이미 탈락된 건가?

도대체 나의 뇌는 언제부터 '우리'를 구분짓게 세뇌당해 왔던 것인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참 복잡하게도 얽혀 있는 이해관계의 집합들이다.

부분집합,교집합,합집합.

도대체 어느 그룹이 진짜인가?

 

나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되기를 원했을까?

 

머리가 깨어질 것 같다.

 

2003년 12월19일

이주일이 좀 넘었는데 L.A에서 온 선수들이 모두 떠났다.

Size가 안 나온다는 이유였다.

솔직히 이곳은 내게 참 과분한 곳이다.

그들은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걸까?

 

 

2003년 12월25일

어제도 오늘도 그녀는 집엘 들어 오질 않았다.

제프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질 않았다.

가게나 나가 봐야 겠다.

 

 2003년 12월26일

어제는 정말 가게 나가길 잘했다.

하와이에 사는 외로운 여자들은 모두 다 모인것 같다.

Africa라는 이 가게는 여느 일반 호스트바가 카라오케식 룸으로 되어 있는 것과 달리 넓은 홀에 띄엄띄엄 테이블이 있고 중앙에 작은 무대가 있는 극장식 구조이다.

예전에 무슨 나이트 클럽이였다는데 어느 순간 호스트바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이곳은 손님이 선수들의 노출된 동선을 자연스럽게 관찰한다.

그래서 누가누가 잘 나가고 누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아 버리게 되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게다가 자기가 지명한 선수를 좀더 자기 테이블에 앉혀 놓기 위해 손님들간의 경쟁도 빈번하게 일어 난다.

일본의 호스트바가 이와 똑같은 풍경이라고 한다.

 

어제는 정말 나의 날이였다.

만석 13개의 테이블중 5개가 나를 보러 온 손님들이였다.

그들이 나를 앉혀 놓기 위해 터트린 샴페인 병수가 도합 50병은 족히 넘지 싶다.

한쪽에서 두병을 터트리면 다른쪽에서 또 세병을 더 주문하는 그런 재미있는 장면의 연속이 어젯밤이였다.

가게와 내가 반반씩 먹는 시스템.

병당 기본 200불로만 계산하여도 5000불을 훌쩍 넘긴 스코어가 예상된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이런 큰 돈은 처음 만져 본다.

내일은 꼭 한국에 송금을 하여야 겠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서어서 빚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2003년 12월31일

도현이에게 미친듯이 욕을 퍼부었다.

해서는 안 될 말들까지 모두 동원해 가며 그녀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미친놈같았다.

그만 해도 될텐데 좀더 좀더 악을 쓰고 있는 내자신을 느꼈을때 갑자기 내 중학시절 한장면이 떠올랐다.

중3때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 들면 들수록 그 조그마한 아이를 더욱 심하게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까지 구경꾼에 합세하자 나는 급기야 의자를 들어 그 조그마한 아이의 등을 찍고 또 찍었다.

그저 나 이런 악랄한 놈이라고 나 미친놈이라고 나 가까이 오지 말라고,나 무서운 놈이니까 나 그냥 내버려 두라고.

흡사 덩치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작은 고슴도치가 가시를 돋우고 또 돋우고 있는 그런 모습이였다고 할까.

도현이에게 점점 악랄하게 기를 쓰며 욕을 퍼붓는 내 모습이 중3때 그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

나는 그녀에게도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음을 자인한 날이다.

하지만 그 실체를 모르겠다.

형체가 너무 일그러 져서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이렇게 결국은 또 후회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더티한 2003년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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