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같은 마누라' 태그의 글 목록 (2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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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 가는 길 / 이상국


1


물은 산을 내려가기 싫어서
못마다 들러 쉬고
쉬었다가 가는데
나는 낫살이나 먹고
이미 깎을 머리도 없는데
어디서 본 듯한 면상(面相)을 자꾸 물에 비춰보며
산으로 들어가네

어디 짓다 만 절이 없을까

아버지처럼 한번 산에 들어가면 나오지 말자
다시는 오지 말자
나무들처럼
중처럼
슬퍼도 나오지 말자

 

2


만해(萬海)도 이 길을 갔겠지
어린 님을 보내고 울면서 갔겠지
인제 원통쯤의 노래방에서
땡초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조선의 노래란 노래는 다 불러버리고
이 길 갔겠지

그렇게 님은 언제나 간다
그러나 이 좋은 시절에
누가 그깟 님 때문에 몸을 망치겠는가
내 오늘 세상이 같잖다며
누더기 같은 마음을 감추고 백담(百潭) 들어서는데
늙은 고로쇠나무가 속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는다
나도 님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3


백담을 다 돌아 한 절이 있다 하나
개울바닥에서 성불한 듯 이미
몸이 흰 돌멩이들아
물이 절이겠네
그러나 이 추운 날
종아리 높게 걷고
그 물 건너는 나무들,
평생 땅에 등 한번 못 대보고
마음을 세웠으면서도
흐르는 물살로 몸을 망친 다음에야
겨우 저를 비춰보는데
나 그 나무의 몸에 슬쩍 기대 서니
물 아래 웬 등신 하나 보이네

 

4


그러나 산은 산끼리 서로 측은하고
물은 제 몸을 씻고 또 씻을 뿐이니
저 산 저 물 밖
누명이 아름다운 나의 세속
살아 못 지고 일어날 부채(負債)와
치정 같은 사랑으로 눈물나는 그곳

나는 누군가가 벌써 그립구나

절집도 짐승처럼 엎드려 먼산 바라보고 선
서기 이천년 첫 정월 설악
눈이 오려나
나무들이 어둠처럼 산의 품을 파고드는데
여기서 더 들어간들
물은 이미 더할 것도 낼 것도 없으니
기왕 왔으면 마음이나 비춰보고 가라고
백담은 가다가 멈추고 멈추었다 또 가네

 

- 이상국 시집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2005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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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周 別曲 1/서봉교
-송골에서-

 

*송골(松)에 봄이 오면
산 철쭉은 절로 피고

 

 

응달 밑 도랑 가에
찔레꽃 필 때

 

 

짝을 찾는 산 꿩이
보리밭 머리에서
마른기침으로 울다 가는 곳


*톡실 보또랑에 물꼬 터지면
 못자리 할 볍씨 담그고

버드나무 가지마다 물이 올라
밤이 그리워 강물을 부르면

 

 

여울 살에 *청꼬네 잡아서
*퉁바구 *보쌈을 놓으리라.

 

 

자료 출처: 서 봉교 시인의 시집 <계모같은 마누라>2007년 조선문학사에서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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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점을 치다 / 서안나

 

 

새 꿈을 꾸었다는 당신

 

당신에게

흰 새가 날아들어

심장소리까지 들었다 했다

 

백동전 두 닢을 주고

새  꿈을 안아들던 밤

나는 새 점치는 노인처럼 발목이 가늘어졌다

새벽이면 어깨가 무거워졌다

 

내소사 솟을빗꽃살문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면

당신 꿈에서 내 꿈으로 건너온

새 한 마리

단단하게 접은 종이를 물어왔다

두 개의 해가 뜨면

동쪽으로 귀가 긴 귀인을 만난다 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읽을 수 없는

상서로운 귀신의 화법이었다

 

새 점을 칠 때

가끔 당신 심장소리가 들렸다

날아오르지 못하는

대웅보전 수월관음의 내리뜬 눈동자

인연을 밀쳐둔 손끝이 깊고 아늑했다

내소사는 다시 오고 싶은 절집

 

창을 열면

능가산의 서쪽은 적멸이다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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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홀아비들의 저녁식사

 

                                서 봉교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물이 내리듯

새해를 맞기 위해 달려온 12월

 

모친 출타중인 본가에

사랑방 누룩 뜨는 냄새의 아부지가

10년 전 끊은 담배의 마른기침으로

기다리시는 곳

*우무실

 

꽁치 통조림을 콘크리트 반죽 비비듯

김치와 섞어 버리고

여름 낮

가마솥에 삶다 식은

바가지의 속 같은 찬밥을 떠 넣으면

 

먼저 드시고 내내 기다리던 아부지는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다 빨고 난후

어미개가 밥그릇을 당기듯

식은 꽁치찌게에 김 나간 소주를 쏟으신다

 

한 잔 거들고 싶은 욕망이

발정난 황소처럼 들지만

그래도 꾹 참고 침묵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들은 불혹을 넘었을 거고

언제 또 다시

모친 출타하고 둘이 오붓하게 식사를 해 볼까

 

오늘 밤 각자의 방에서 비름박을 긁으면서

또 다른 꿈을 꾸리라

“아부지 한 잔 하시죠”

“아들아 한 잔 할까”

 

낼 아침 *설귀산의 겨울안개가

마른 메아리로 녹을 때까지.

 

2008.12.16.오후 20시

*우무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3리지명 우물이 난다고 유래됨

*설귀산(雪龜山) :영월군 수주면에 위치 

중방동 위에 있는 산이다. 주천 구누터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산 전체가 푸른 소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는데 불정사(佛精寺)쪽은 꼬리 부분이 된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마치 흰거북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다.

 

 자료출처 :월간 조선문학 2009년4월호 통권 216호에서

 

 

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글쓴이 : 만주사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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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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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무주

허영둘

 

 

지우개 같은 눈 내려

가뭇한 젊은 날은

지워지고 없었네

 

눈을 감기는 눈발에

잉크 바랜 기억들마저

연신 흩어져

 

지독한 무화無化, 숨죽인 침묵의

대평원에서 나는

흐린 생각을 닦으며

옛날의 그것을 더듬어 보네

 

어디쯤일까

청보석 하늘

마당에 빨갛게 가을이

머물던 그곳은

 

 

출처 :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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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지지 않고 살려는 이에게

 

 권정우

 

다람쥐는 참나무에게

빚진 것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빚지지 않으려 도토리를

식단에서 빼지도 않는다

빚을 도토리로 갚지도 않는다

참나무에게 갚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빚은 사는 이유가 된다

갚을수록 느는 빚

자식이란 이름의 사랑스런 빚처럼

 

다람쥐는

이 나무 저 나무에 빚지고도 잘 산다

 

빚지지 않고 살려는 것만큼

큰 빚을 지는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권정우<허공에지은집>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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