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태그의 글 목록 (3 Page) :: 록키의 나만의 세상
728x90
 

 

신비한 사랑

공도식

 

 

 

목차
내용
1. 역마살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랑

무엇으로 끄나요 사랑의 불길

밥을 안고 떠도는 외로운 날개

한많은 세월속에 멍들은가슴

아 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

(김상국 노래)

가위와 대나무 바구니만 어깨에 매면 전국 어디든지 유람이 가능한 김삿갓의 후예들이 바로 엿장사들이였다.

김삿갓은 재주가 많아서 갓과 지팡이만 있어도 전국 일주 유람이 가능하였지만 넉마살이 있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가위와 대바구니만 있으면 어디든지 엿방으로 가면 숙식이 해결되었다.

재활용 시대엿다.



골치 아픈 아들이 열이다.

잘 다니던 여수중학교를 싸움만 하다가 학교를 또 때려치우고 여천 고등공민학교도 3학년까지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무더운 6월의 여름날 보리 타작을 하다가 그 길로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열이 아버지 정규는 속이 터졌다.

열이 어머니 갑예도 마찬가지다.

엿방으로 간 열이는"나도 엿장사 할라고 왔소 나는 영만이 동무요." 라고 당돌하게 말하였다.

주인은 영만이 고향 동무라는 말에 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며 "영만이는 장사 나갔으니 이따가 올거다."라고 친절하게 말 하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40대로서 섹시하였다.
치마를 입고 파란 쉐타를 걸치고 있었다.
파란 쉐타는 단추가 위로 두개는 풀려 있었다.
그 풀린 단추속으로 빨간 내복이 보였다.

주인 아줌마는 열을 영만이가 자는 방으로 안내해주며 " 여기서 기달려라 곧 영만이가 올때 되엇다."라고 말하였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여서 백열등이 환하게 켜지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장사 나간 엿장사들이 돌와 왓다.

2년전 열이가 15살때다. 여수중학교 1학년 말에 중퇴하고 영만이와 함게 엿장사를 따라서 가보앗던 여수 연등동 엿집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커다란 기와집에는 넓은 마당이 있어서 엿장사들이 엿을 주고 바꾸어 온 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엿 장사중에 대빵 엿장사는 엿장사들의 고물들을 책상 저울로 달아보며 금액을 매겨나갔다.

영만이는 그때부터 계속 엿장사를 해왔고, 열은 엿방에서 다음날 주인으로부터 엿을 선물 받고 차표를 끊어서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주어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를 다녔다.

열이가 쓰고 간 여수중학교 모자때문이였다.

엿방 주인 아저씨는 비록 엿방을 해도 점잖게 보였다.

"영만이는 고아이니 엿장사를 해도 되지만 열이 너는 부자집 아이들이나 다니는 여수중학교를 다닐 정도인 것을 보면 공부하기 싫고 엿이 먹고 싶어서 왓다고 본다. 나도 너의 마을 옆 현천 마을 출신인데 너의 아버지를 잘 알 것 같다. 내가 엿을 쫌 싸줄테니 이 엿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 부모님이 걱정 하시겠구나! "

열은 그날 밤 엿을 찾으려고 몇번이나 방에서 나온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곳에도 엿은 보이지 안았다.

주인은 그것을 알고 잇었던 것이다.

열이가 다음날 엿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올때에 열이 아버지 어머니는 반가와하면서 그 엿방 주인 아저씨에게 고마워 하셨다.

그런데 또 가출을 한 것이다.

영만이가 도착하였다.
열과 영만은 부등켜 안고 반가와 하였다.
영만이도 고물을 달아서 계산을 마치고 마당 가에 있는 펌프 우물가에서 물을 퍼올려 몸을 씻은후 수건으로 닦으며 또 다시 열이를 반가와 해주었다.

영만이는 바로 그 연등동 엿방으로 함께 엿장수 어저씨를 따라갔던 고아 동무이다.


영만이는 10여명 되는 엿장사 아저씨들 하고 같은 방을 썼는데 열이도 함께 쓰기로 하였다.
저녁 식사도 제공해 주었는데 매우 진수성찬이다.
하얀 쌀밥은 물론 고기국과 많은 반찬이 푸짐하였다.

고물상에서는 엿을 팔아 남기고
고물을 팔아서 남기고
밥을 팔아서 남기는 수지맞는 장사다.

다음날 열은 병만과 함께 엿을 받아 장사를 나갔다.
열에게도 엿판과 대바구니 그리고 엿가위와 엿을 주었다.
영만이는 경험이 많으니 엿을 많이 받고 열은 조금만 받았다.
첫날에는 사곡으로 해서 마산 달천등을 돌아왔다.
첫날의 손익 계산을 해보았는데 병만은 밥값을 하고도 좀 남았지만 열은 밥값이 안되었다.

그 대신 열은 엿을 싫컨 먹었다.

"먹는것이 남는 장사여" 열이가 영만이 안테 해준 말이다.

영만이는 씨익 웃으면서 "야 쌕가 너 부잣집 아들이면서 엿을 먹고 싶어서 왔지야"한다.

부모가없는 고아의 입장에서는 대지 300평이 넘는 5칸 접집 양철 지붕 집 아들 열이가 부잣집 아들로 보이고 부러웠던 것이다.


이러한 엿장사를 7일 정도 하다가 열이는 영만이를 두고 결국 집으로 돌아 왔었다.
무단 가출후 터덜 터덜 빈손으로 돌아온 열이를 열이 어머니 갑례는 눈물을 흘리며 반가와 해 주었지만 열이 아버지 정규는 반가우면서도 "집을 나갔으면 오래 있다가 무슨 기술이라도 좀 배워서 올것이지..."하면서도 내색은 하시지 않으셨다.

열이는 잠시 집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어 주다가 또 집을 나갔다.

본격적인 모내기 철이여서 강아지도 일을 도와주는 때이다.

농촌에는 모내기 철이면서 보리 타작도 해야한다.

보리타작을 하다가 뒷겨를 쳐내면서 오촌 당숙하고 싸웠다.

오촌 당숙은 부지런히 뒷겨를 가져다가 재는데도 빨리 빨리 하라고 호통을 쳐떄었다.

열은 참을대로 참다가 욕을 해댸었다." 개조카치 나 못해 썅 -"

갈쿠리를 내 패대기 친채로 대밭으로 해서 덕양으로 나온 것이다.

부모님들은 일하느라 열이를 잡으러 올려고 생각도 못하였다.

"사내 자식이니까 어디를 가든지 괞찮다."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래도 열이 부모님은 속이터지고 또 터진다.

말 그대로 무단 가출이다.

덕양 역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향하여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완행 열차여서 역마다 다 섰다.

그래도 기차는 예의바르게 역마다 칙칙푹푹 칙칙푹푹 ...꽤액- 꽤액 하면서 역이 가까우면 꼭 신호를 보냈다.

꼭 설이올때 잡는 돼지 맥 따는 소리를 질러 대었다.

창문을 열어두고 게신 할아버지는 "아유-귀청 떨어진다." 열차안 열이 앞 자리에 앉아계시는 하얀 한복을 입으신 수염 난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석탄차다.

석탄을 화부가 삽으로 퍼 넣어서 불을 살리면서 달리는 기차다.

오르막 길을 올라갈때는 기차는 숨이 차는 지 헥헥헥 한다.

열이는 지금 무단 승차를 하였다.

파출소 순경 복장의 차장이 저 쪽 칸에서 차표를 조사하고 온다.

차표가 없는 열은 차장을 피하여 도망을 다니는데 눈치 백단인 차장이 열이에게로 온다.

열이는 재빨리 다른칸으로 피하였다.

차장에게 잡힐 순간에 마침 차가 내구 역에서 정차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구 역은 간이역으로서 정식 역사가 없고 수퍼 영감이 차표를 거둔다.

다른 역은 철조망으로 쳐져서 빠져나갈 수가 없는데, 내구역은 철조망이 아직 쳐져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열은 차장을 피하여 기차가 정차 하기도 전에 기차에서 훨훨 날아버렸다.

열이가 떨어진 곳은 물을 가두어둔 논이였다.

열이 몸은 다치지 않았으나 옷이 엉망이 되었다.

차장은 더 이상 쫒아오지 않았다.

차표가 없는 열에게는 무서운 순경 같은 차장은 기차와 함께 기차의 함성과 함께 서울로 달려가고 있었다.

2. 정

1967년 봄 (5 월)

내구 간이역 근처에서 기차에서 날아버린 열이 몰골은 모심기 하다가 논에 넘어져서 온통 뻘 투성이가 된것처럼 되었다.

보리타작하다가 오촌 당숙에게 욕설을 퍼붙고 도망쳐 온 열이는 지금쯤 집에서는 한참 바쁠것을 생각 하면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돌아갈 차비도 없는 형편이다.

무임승차로 차장에게 도망쳐 오다가 기차에서 날아버린 무모함을 저질렀지만 다행이 물이 있는 논이여서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당장에 갈아 입을 옷이 없었다.

옷 한벌도 여분으로 가지고 오지않았다.

맨 몸뚱아리만 달랑 챙겨서 나온 것이다.

김삿갓처럼 바람기가 들어온 것이다.

무엇을 진득히 못하는 열이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다.

새처럼 훨훨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다.

복숭아 꽃이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비단 치마 같은 색갈로 온 몸을 감쌌다.

벌과 나비들은 아름다운 복숭아 여인들의 치마폭을 드나들면서 복숭아 여인의 속치마 속으로 깊은 혀를 늘이고 꿀을 빨아대고 있었다.

열은 차라리 벌과 나비가 되고 싶었다.

마음대로 미인의 은밀한 치마 속을 드나들수 있는 벌과 나비가 부러웠다.

일하기도 싫고 아버지의 간섭도 명령도 싫었다.

이제 17세인데 언제 어른이 되나?

키도 크지 않았다.

매일처럼 눈만 뜨면 "열아- 열아-얼른 일어나거라 "하면서 문을 확 열어 재끼어 열이를 깨워서 일본 도수 체조를 먼저 시작하면서 열이와 동생들을 다 따라 하라고 하였다.

도수체조를 한후에는 새벽부터 거름짐을 져날르게 하였다.

거름짐을 져날른후에 아침밥을 먺꼬 학교를 갔다.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일본 군대를 다녀 오셨다.

치열한 필리핀 남양군도 전투에서도 살아 돌아오신 분이다.

해방후 6.25 사변시에도 또 불려갔다가 오셨다.

모든것이 군대식이였다.

열은 군대식이 싫었다.

아버지가 싫었다.

고향 마을도 싫었다.

자유가 그리웠다.

열은 틈만나면 가출을 감행 하였다.

그러나 몇일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지금도 얼마나 견딜지 아무도 모른다.

서울을 향하여 가다가 무임 승차로 차장에게 쫒겨서 여기 간이역 내구에서 뛰어내려 뻘투성이로 앉아서 상념에 젖어 있다.

열이 눈에는 10미터 전방에 커다란 개천이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서 옷을 훌훌 벗었다.

팬티도 벗었다.

아직 다 크지않은 은밀한 부위가 이제 조금씩 보송보송 나고 있다.

소년에서 총각으로 바뀔 자세를 하는듯 하였다.

좀 늦은 편이였다.

먼저 목욕부터 했다.

하얀 거품을 내면서 시냇물은 좔좔 졸졸 하면서 바다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인생이란 시냇물이다.

바다를 향하여 졸졸 졸졸 하르는 시냇물이다.

열은 목욕을 하고 나서 옷을 빨아서 자갈밭에 널어두었다.

오뉴월 햍볕은 따스하다.

자갈밭에 누우니 따스하다.

등도 따스하고 배도 따스하고 얼굴도 따사하였다.

에덴동산은 봄과 같은 온도로 변함이 없을거다고 생각 하였다.

도원경과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열이가 있는 곳과 같은 곳일거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이브가없고 먹을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을뿐이다.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아서 아직은 좋았다.

열이 어머니는 몇 일 지나면 열이 생각에 집에서 울고 지낼 것이다.

큰 아들 열이가 간데 온데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버지 정규는 "사내놈이 어디를 간들 어쩌랴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어디가서 기술이나 배워서 오면 싶다."라고 생각하니 태연하다.

두시간 쯤 지나니 옷이 다 말랐다.

열이는 옷을 입고서 어슬렁 어슬렁 정처없이 산길을 향하여 걷는다.

해는 자물어가는데, 일가친척 없는 소년 김삿갓 열이는 어디로 간단 말이던가?

3. 감성

열은 내구 간이역을 지나서 부지런히 백운산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백운산 줄기는 깊고 높았다.

5월의 산은 온갖 꽃들이 피어서 사치스러웠으나 단백하였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수록 새 소리 짐승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10미터 전방에서 산 노루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낮선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도망 갈 줄을 몰랐다.

열에게는 낮선 곳이였다.

일가 친척도 아무도 없었다.

점심도 굶고 배속에서 조르륵 소리가 났다.

"밥을 안고 떠 도는 외로운 날개" 김상국의 노래와 같았다.

어디로 가서 밥을 좀 얻어 먹고 싶었다.

해는 산을 넘어가고 산 그림자가 드리워 서서히 밤이 오고 있었다.

"사람이 먹는 문제만 아니면 더 자유로 울텐데, 왜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지못하나?"

열은 중얼 중얼 거리며 걸었다.

가도 가도 인가는 없었다.

3시간이나 걸어서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 갔다.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것은 계절이 5월이여서 얼어서 죽지는 않는다는 뱃장이 생겼다.

한참을 산길을 헤매는데 멀리서 불빛이 비쳤다.

도깨비 불인가?

도깨비 불은 흔들거리며 왔다갔다 하는데,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것이 사람이 사는 집 불빛 같았다.

열은 기뻐하며 그 불빛을 향하여서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코 그 집앞에 열은 도착하고 싸리문을 열고 마당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을 불렀다.

"여보시요. 여보시요. 주인장 계시요?"

뜻밖에 방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건장한 남자가 아니라 고운 소복을 차려 입은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였다.

방 하나 부억 하나뿐인 초가집이였다.

여인은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 저의 집에는 남자가 없이 저 혼자 살아가는데, 외간 남자를

밤중에 들이기가 곤란합니다."한다.

열은 " 저는 아직 17세의 소년 이옵니다. 부억에서라도 밥을 지세울수 있도록 허락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인은 " 그래도, 어찌, 그럴수가 있나요? 이 근방에 인가도 없는데, 그냥 보낼수도 없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러면 일단 방으로 들어오셔요."한다.

방은 비교적 깔끔 하였다.

웃목에 사기 등잔 불이 켜져 있었다.

여인은 " 시장하신데 저녁이라도 지어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열이 소년의 대답은 소용 없다는듯이

곧 바로 부억으로 가서 나무로 불을 때어 밥을 짓는다.

여인이 부억에서 열이를 위해서 부지런히 밥을 짓는 사이에 방안을 자세히 여인을 살펴보며 열은 흥분이 되었다.

방안에서는 여인의 체취 강하게 풍겨 왔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4. 방

깊고 깊은 백운산 산속

방 하나 안에서

한 이불 덮고 자는

소년과 선녀

사랑은 느낌

가슴이 두근 두근

숨결은 사쁜 사쁜

늑대 울음 소리도

자장가로 들려오는

행복한 느낌이였다.

소년과 여인은 한 이불 속에서 지내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었다.

여인은 선녀처럼 아름답게만 소년의 눈에 비추어졌다.

여인은 아침 밥을 지으러 부억으로 조심스럽게 나갔다.

열은 여인을 따라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냇가로 가서 물을 길러 날라주었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폭포수를 이루며 시원스럽게 내려가고 있었다.

도원경이 따로 없었다.

아담과 이브가 따로 없었다.

열이가 아담이 되고 여인이 이브가 되면 되었다.

열은 웃옷을 벗어 재끼고 아랫 도리와 팬티까지 벗어놓고 폭포수 아래로 가서 냉수 마찰을 했다.

이름 모르는 산새들이 벗꽃이 활짝피어난 사이로 날아다니면서 지지배배 지비배배 하며 열이의 벗은 몸을 보고 놀리는듯 했다.

냇가 옆 동산위의 오두막에서는 여인이 아침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백운산에는 고로수 나무 액이 많다.

백운산에는 도라지도 고사리도 지천에 널려 있었다.

약초도 지천이였다.

김삿갓의 후예 열은 비로서 자유를 만끽 하였다.

새벽마다 소리치면서 열이를 깨워 거름 짐을 짊어 지워서 무선산 중턱 골고랑 산에 있는 밭으로 내지 않아도 좋았고, 아버지를 따라서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열은 자유인으로 자연 속에서 사랑스러운 이브와 아담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열은 폭포수 아래 깊게파인 둠벙에서 수영을 즐기며 환호성을 질러 대었다.

"와우- 와우- "

건장한 17세의 소년 열이다.

여수 최고의 미남자 아버지 정규를 꼭 빼닮은 열이다.

그 아버지에그 아들이다.

여인은 너무나 가슴이 설레이었다.

백운산 깊숙이 호랑이 사냥을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지가 벌써 삼년이 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호랑이안테 물려서 호랑이 밥이 된것이 든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든지 한 것 같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날마다 3년이나 백운 산 곳곳을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남자를 아는 여연이라면 혼자서 밤마다 3년이나 보내며 여인의 욕망은 몸을 불태우고 괴롭혔다.

여인은 백운산 오두막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백운산은 여순 반란사건때 아버지가 살면서 어머니를 만나 자신을 낞고 길러준 곳이기 때문이다.

5. 정들다

폭포수 물에서 목욕을 마친 열은 오두막집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아침밥을 밥상에 차려두고 열을 기다리고 있엇다.

여인: 아침부터 폭포수 물에서 목욕을하니 기분이 상쾌하시죠?

깍듯이 존칭어를 써주었다.

목소리가 은방울이 은쟁반에 굴러가는 소리와 같았다.

긴머리를 처녀처럼 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분홍빛 홍조가 보였다.

열을 단순히 소년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 보는것이였다.

여인의 나이도 열이와 같은 나이기 때문이였다.

밤에 볼때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아침에 보니 열이와 같은 나이로 보였다.

"이게 웬 떡일가?"

동갑짜리가 3년전부터 남편이 있었다니?

그러면 그녀는 14살에 벌써?

여인에게는 비밀이 많았다.

아버지가 여순 반란사건시 여수 14연대 소속으로서 백운산으로 피신하여 왔다.

그 유명한 김지회와 같은 하사관 출신이였다.

아버지가 토벌군에게 쫒기어 여인의 집으로 피신하여 왔던 것이다.

부억에서 밥을 짓는 여인의 어머니 당시 처녀는 그 남자를 부억 나무더미 속에 숨겨두었다.

잠시후 군인들이 와서 물었다.

여인은 분명한 목소리로 "방금 저 위 산으로 도망 가더구만요."

토벌군들은 깜박 속았던 것이다.

"설마 순진한 처녀가 우리를 속이겠느냐? 금방 산위로 올라 갔다는데,어서 가자."하면서 급히 산위로 추격하며 떠나갔다.

14연대 출신 하사관은 너무나 그 처녀가 고마웠다.

처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억에서 사랑을 맺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여인의 아버지가떠난후 10달지나서 여인은 태어난 것이다.

딱 한번의 정을 맺은것인데

그녀는 세상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여인의 어머니는 떠나간 남자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 나물을 뜯어서 구례 시장에 내다 팔아서 살아 가면서도 넓은 마을로 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여인의 아버지는 돌아오지를 않았다.

토벌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든지아니면 월북 하였든지 둘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3년전에 운명하시면서도 유언을 하시기를 "너는 이곳을 떠나지말거라. 너의 아버지가 돌아 오시더라도 너가 이곳을 지켜야만 한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그후 백운산에서 유명한 사냥군 총각이 그 녀를 보호 해주면서 부부로 되었던 것이다.

기구한 운명의 여인의 어머니와 여인이였다.

17세 여인의 기구한 운명이다.

여순 사건의 후유증이였다.

엄마와 아빠가 단 한번의 정을 나누었는데, 이 세상이란곳으로 용감하게 나와버린 여인이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었다.

때는 1949년도 4월이였다.

이 날이 여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정을 나눈 날이다.

여인의 아버지는 공산 사상도 있는 것이 아니였다.

본의 아니게 동료들이 사전에 모의를 하고서 참여를 요구하였다.

이미 신월 14연대를 장악하고서 전 부대원을 연병장에 모아두고 김지회는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였다.

"여러분 ! 이대로 제주도로 가서 개죽음 당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경찰서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위로 쳐들어갑시다. 이미 북에서 지령이 내려왔는데 이미 북한군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라가면 각 시와 읍면과 마을마다 우리의 조직에 우리를 지지하는 인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자는 앞으로 나오기 바란다."

몇 사람의 장교들과 하사관들과 병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즉시 김지회의 지시를 받은 이미 대기한 사수들에 의하여 전 연대원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총살을 시켜버렸다.

김지회는 이어서 살기어린 눈을 빛내며 "또 있으면 나오라."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은 여인의 아버지와 같은 입장으로 김지회의 지시에 어쩔수없이 복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좌 아니면 우였다.

모 아니면 도였다.

중간은 없었다.

중간은 회색분자로 여겨져서 이쪽과 저쪽에서도 처형 시켰다.

원하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공격하고 공격을 당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마을마다 지나오면서 밤에는 좌파를 지지하고 낮에는 우파를 지지하면서 얼마나 죽고 죽였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세상이였다.

어느 한쪽만의 괴오가 아니라 피차간에 죽이고 죽임을 당하였다.

여인의 어머니는 딱 한번뿐인 정을 통하고서 여인을 임신하고서 자나깨나 그 남자를 기다렸다.

일편단심 민들래 사랑이였다.

14년간을 그렇게 여인의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죽었다.

늠늠한 사냥군들이 눈독을 들였으나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서 여인만을 키웠다.

여인의 어머니는 임종하면서 아버지를기다리라고 하면서 "진달래야, 이 어미가 죽거든, 이 집에서 살면서 너의 아버지를 기다리거라. 너의 아버지 모습은 너와 도상이란다. 너와 비슷한 중년의 남자가 이 집에 찾아와서 나를 묻거든 너는 그 사람이 너의 아버지인줄을 알고 큰 절을 올려라."

여인의 사랑은 사내의 사랑과는 다르다.

사내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려고 하지만, 여인은 한 남자만을 섬기려고 한다.

특히 한번 본인이 원해서 정을 준 남자를 일평생 잊지 못해 한다.

백운산 여인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여인이였다.

열과 여인은 아침 밥을 먹고서 여인으로부터 이러한 자세한 비밀을 열에게 들려주었다.

열: 이제부터 저랑 함께 백운산을 샅샅히 뒤지면서 당신의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아 보면 어떨가요?

고사리도 끊고 도라지도 캐면서요?

여인: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 혼자 찾아 보앗으나 짐승들이 두려워서 제대로 못 찾아 보았습니다.

백운산을 샅샅히 뒤지려면 사나운 짐승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여인의 남편이 쓰던 활과 화살을 등에 걺어 지고 여인은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백운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6. 오리

백운산 길을 올라가는 두 남녀

세상에서 젤 행복한 느낌을

자연속에서 새들과 꽃들과

나무들과 산 짐승들과

교감하며 에덴동산 주인으로 된다

서로가 매우 밀접하게 되어진 17세 동갑네기이면서도 한쪽은 사연 깊은 여인이며 한쪽은 역시 시대의 아픔을 지니고 산 속으로 들어오게 된 소년이다.

이미 여인 진달래는 새벽 일찍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였다.

마치 산보라도 가는것처럼 발걸음이 가볍고 날렵하다.

평생을 산 여인으로 살아 온터라 산을 오름이 마치 토끼와 같다.

열이가 진달래를 따라가기가 벅차한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잘 따라간다.

여인이 앞서고 열은 뒤서고

암벽을 만나면 여인이 먼저 올라가서 열을 잡아서 끌어준다.

자연스럽게 여인과 열은 손을 마주 잡게 되었다.

감성이 예민한 나이이다.

손의 촉감을 통해서 전달되어 오는 느낌속에 수많은 언어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해석 되어진다.

여인 진달래는 말이 많지 않았으나 눈빛으로 많은 말을 했다.

열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말이 필요없는 법

사랑은 눈 빛만으로도 되는 법

눈과 눈이 마주치면 별빛이 된다.

별빛과 별빛이 마주치면 사랑이 된다

사랑보다 더 큰 우주는 없다.

사랑속에 우주는 들어 있다.

사랑속에는 미움도 전쟁도 녹아버린다.

진달래 여인은 지금 열이와 함께 남편의 시신을 찾으러 가는것 마저도 잊고 있는것만 같다.

열이도 마찬가지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깊고 깊은 백운산 속에서 혼자 살아오다니?"

산 여인이면서도 산 소녀인 진달래의 홍조 띤 얼굴이 홍도 복숭아 닮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17세의 연인의 잘록한 허리는 개미 허리를 닮은것 같다고 생각한다.

개미 허리 아래로 자꾸만 눈이 간다.

남자라는 증거다.

봄 치마를 입은 진달래 여인의 통통하고 오리 엉덩이를 닮은 히프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여인의 치마가 여인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스치는 소리다.

뒤따라오는 열이가 아무런 소리가 없다.

여인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3년간의 적적한 생활이였다.

사냥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여인에게로 온지 얼마후에 그만 실종이 되었다.

남편이라고 하기는 너무나 억울하였다.

남편보다도 더 잘 생기고 나이도 동갑인 열이가 나타나주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백운산 신령님이 보내준 자신과 인연이 깊은 소년이라고 여겨졌다.

백운산 고뢰수 나무에서 수액이 흐른다.

작은 상처만 내주면 줄줄 흐른다.

백운산 약초를 먹고 자란 고로수 수액은 몸에 좋다.

여인은 수명 100년도 넘을만한 고로수 나무로 가서 날카로운 돌을 들어서 고로수 나무에 작은 상처를 낸다.

거기서부터 수액이 줄줄 흘러내린다.

여인은 재빨리 거기에 입을 대고 수액을 마신다.

수액을 한 모금 마신후에 [열씨 어서 오세요. 참 달콤하고 시원해요.]하며 눈웃음을 친다.

열은 방금 여인이 입을 대고 빨아마신곳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의 입을 대고 죽-죽 고로수 수액을 빨아드린다.

달콤하면서 시원하다.

열이 배가 볼록하여진다.

열은 "더 마시세요."하며 자리를 비껴주며 히죽 웃는다.

진달래 여인도 열의 눈빛을 마주 맞추면서 활짝 웃는다.

그리고 열이가 방금 입을 대고 마신 그 자리에 여인의 붉은 입술을 대고 죽죽 들이킨다.

치마를 입은 여인의 엉덩이가 넘 사랑스럽다고 열은 느낀다.

'여인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얼굴만이 아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 한다.

통통하고 볼록한 오리 엉덩이를가진 진달래 여인이다.

오리 엉덩이위로 가늘게 좁아지는 개미 허리를 지나면 볼록한 가슴이 소년 열이는 황홀하다.

진달래 여인은 고로수를 마신후에 일어서서 " 더 마실래요? 열씨" 하며 묻는다.

열은 "좀 있다가 또 마실게요. 우리 또 올라가바요."라고 대답한다.

5월의 백운산은 벗꽃속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고로수 나무 옷속으로는 달콤한 수액이 흐르며

산속에서는 노루와 토끼가 지천에 널려 논다.

고사리와 도라지는 너무나 흔해서 일부러 캐고 어쩌고 할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백운산 정상을 향하여 소풍이라도 온듯이 두 남녀는 자유로운 낙원속에서 마음의 사랑을 흠뻑 주고 받는다.

그래도 황홀하고 행복하며 세상 어떤 임금도 부럽지도 않다.

7. 사랑

어디선가 뻐꾸기가 구슬피 울었다.

뻐꾹- 뻐꾹-

진달래 여인은 뻐꾸기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얼굴 모습이 침울해졌다.

잠시후 입을 열었다.

"저는 뻐꾸기 울음 소리를 들으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답니다. "

여인의 목소리는 슬펐다.

"저의 엄마가 살아계실때에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답니다."

"뻐꾸기도 전에는 사람이였데요.

이 세상에 와서 소년 소녀 시절에 사랑을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했는데,

서로는 너무나 좋아했는데, 집이 가난한 남자의 집으로 딸을 보내줄수가 없다고 소녀의 부모와 사촌들과 오빠들이 심하게 반대를 했더랍니다.

결국 돈 많고 권력 많은 고을 사또의 아들에게로 강제로 딸을 시집 보내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시집 가기전날 밤에 그 소녀는 백운산 절벽으로 올라가서 떨어져서 죽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소년도 따라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답니다.

죽어서라도 함께 만나서 살자고, 하면서요.

돈과 권력이 갈라놓지 못하는 세상으로 가자고요.

이렇게 죽은 소녀와 소년을 안스럽게 여긴 저승의 옥황상제는 그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면서 뻐꾸기로

환생 시켜주었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바로 뻐꾹 뻐꾹- 하는 소리랍니다."

진달래 여인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슬퍼졌다.

열도 슬퍼졌다.

"왜? 사랑하는 사이에 모래를 넎을까?"

"돈과 권력이 없이도 사랑하면서 잘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를 생각하였다.

진달래 여인은 활작 미소를 품으면서 "열씨 우리 저 백운산 바위로 올라가서 점심 먹어요. 우리"

열도 " 좋아요. 배고파요. 어서 가요 우리"

그들은 이제 우리가 되었다.

"우리""우리"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공동체 "우리"

혼자는 외롭다.

손뼉도 하나만으로는 손뼉을 칠수가 없다.

"우리"가 되어야 한다.

진달래 여인과 열은 이제 "우리"가 되었다.

바위위에는 널직한 작은 마당만큼 자리가 있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이는 경치는 절경이였다.

아직 정상까지는 멀었으나 아래로 바라보이는 작은 산 봉우리들은 겸손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바로 앞 바위 앞으로 노루가 뛰어 간다.

한 마리가 가더니 곧 이어서 또 한 마리가 따라서 달린다.

사랑하는 사이나 보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혼자만으로는 외롭다.

짝이 있어야 한다.

산새들도 소나무 거목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쌍쌍이 노래한다.

다람쥐들도 마찬가지로 쌍쌍이 나무를 타고 주루룩 올라간다.

자연중에서도 5월처럼 좋은 계절은 없다.

여인과 열은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점심을 나누어 먹는다.

"호호, 하하"하면서

점심을 다 먹고서 두 사람은 그릇을 들고 계곡으로 내려가서 밥 그릇을 씻은후 그 그릇으로 흐르는 물을 떠서 서로에게 마시워 준다.

수풀속이지만 햇볕이 잘 드는 계곡은 더웠다.

산을 오르면서 흘린 땀도 씼을겸해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이 마음은 두 사람이 같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뜻을 통했다.

물속으로 들어가기로

두 남녀는 약간 떨어진 곳을 정하고는 옷을 벗어둔후 물속으로 들어간다.

백운산 계곡물은 백옥 같다.

여인도 열이도 즐거워하며 물장구를 친다.

슬쩍 슬쩍 열이는 여인의 백옥 몸매를 훔쳐 본다.

여인은 모른척 하면서 그러한 열이를 느끼면서 즐기는 표정이다.

여인과 열이의 사이에는 이제 장벽이 사라졌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다.

다만 산새들과 노루와 짐승들과 나무들이 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자연을 만드신 조물주도 이들을 사랑스럽게 보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두 남녀가 손 잡지 않아도 황홀하다는 느낌의 선을 통해서 행복감으로 충만하여졌다.

8. 사랑이란 느낌

3년전 여인의 남편은 남편이라고 부르기가 좀 그렇다.

사실은 남편은 아직 아니였다.

사냥군은 소녀를 키워서 장차 아내로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함께 한 방에서 생활은 하였으나 여인으로 만들지는 않앗던 것이다.

사실은 아직은 그 여인은 순수한 처녀인 셈이였다.

아직도 17세의 순수한 처녀였다.

다만 사냥군과 함께 한 방에서 살았고, 장차 아내로 만들려고 마음을 먹은 것때문에 여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 날도 사냥군은 노루와 토끼를 잡으려고 백운산 구비 구비를 돌면서 사냥을 하러 갔다가 그만 발을 잘 못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실족사 한것이다.

여인과 열이는 그 사냥군의 시신을 찾으려고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나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밤이 되기전에 다시금 오두막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다시 찾아 봅시다." 열이의 말이다.

"네, 그렇게 하죠." 여인의 대답이다.

하루동안 백운산을 해매며 냇가에서 함께 목욕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남녀의 사이란 음양의 관계여서 친해지려면 신속히 친해진다.

오묘한 자연의 이치이다.

산속의 밤은 평지보다도 한시간은 속히 온다.

열이는 냇가로 가서 물을 길어오고 여인은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여인의 몸 몰림이 날렵하다.

열이는 물을 길어와서 물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나서 싸리 빗자루를 들고서 작은 마당을 깨끗이 쓸며 부억에서 밥 짓는 여인을 훔쳐 본다.

너무나 어여쁜 여인이다.

세상에서 저 처럼 어여쁘고 착한 여인은 없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인공이 어여쁘다하면 어여쁜 것이다.

도툼하고 앵두같은 연분홍색 입술

통통한 엉덩이

백옥같은 피부

잘록한 여인의 개미 허리

인생이 가장 아름다움은 18세라고 한다.

17세에서 18세로 올라가는 여인의 자태는 한 마디로 마악 피어나려는 꽃과도 같다.

아직은 피지 않은 꽃

내일 아침이면 피어나려는 꽃

바로 그 여인의 모습이라고 느낀다.

사랑이란 섹스가 아니다.

사랑이란 느낌이다.

사랑이란 좋아하는 마음이다.

사랑이란 보고 보아도 또 보고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상대적이어야 한다.

한쪽만의 사랑은 비정상적이며 비극이다.

동시에 함께 느끼는 사랑으 감정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여인이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여인도 열이가 마음에 흠뻑 들었다.

먼저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먼저 봉사하는 자세를 가진 멋진 남자라고 여겼다.

어쩌다가 이리 깊은 산속으로 왔는지도 궁굼하였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단 한마디면 해결되었다.

"백운산 신령님이 보내주신것이다."라는 말이다.

이윽코 밥이 다 되어 밥상을 차려서 방안으로 들고 들어 온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밥을 먹는다.

숟가락 소리와 밥을 씹는 소리만이 사그락 사그락 들린다.

말이 없다.

사실 말은 유익보다는 손해가 많은지도 므른다.

말을 하면 할 수록 김이 빠진다.

사람은 말로 죄를 너무나 많이 짓고 상처도 많이 준다.

말없이 행동하는 행동과 눈짓과 발짓과 손짓만으로도 얼마든지 의사를 표현 할 수가 있다.

특히 남녀 사이에 말이 무슨 소용일가?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더욱이다.

느낌만으로도 다 통한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한번씩 바라보며 씨익 웃고 부지런히 밥을 먹는다.

여인은 밥을 먹다말고 부억으로 가서 숭늉을 끓여서 들고 온다.

숭늉은 가마솥에서만 가능하다.

가마솥에 눌어붙은 밥위에 물을 붙고 나무를 조금 넣어두면 그대로 누릉지가 된다.

누릉지와 뜨거운 물을 마시는 열이와 여인의 너무나 행복하였다.

아무도 없는 백운산 깊은 산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단 두 남녀만이 밥을 맞이하고 밤을 보내야 한다.

두 사람은 순수한 총각과 처녀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급하지도 않고 비 윤리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교육을 받지 않고 자연속에서만 살아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순수하고 순결하다.

오히려 교육이 인간성을 파괴하는지도 모른다.

두 남녀는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든다.

어제 밤처럼 좀 떨어져서 자리에 눕는다.

자리에 누운 두 사람은 "오늘 백운산 산행은 정말 즐거웟어요." 열이가 하는 말이다.

"네, 저도요." 여인의 대답이다.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보아요."

"네, 그래요."

마치 10년이나 사귄 사이와 같아 보인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다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진다.

9. 마주 잡은 손

새로운 날을 맞이하여서 진달래는 아침밥을 짓고 열이는 마당을 쓸고 냇가로 가서 냉수 마찰을 하고 물을 길러서 부억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걸레를 빨아 방을 쓱고 닦았다.

밥상을 마주 대하고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가볼까요?"

조심스럽게 열이가 묻는다.

"남쪽 방향으로 가보면 합니다."

진달래의 대답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후 도시락을 챙긴후 백운산 남쪽 방향을 잡아서 올라간다.

진달래가 앞장을 서고 진달래를 바짝 붙어서 열이가 따른다.

진달래는 다람쥐처럼 잘 올라간다.

열이를 뒤를 돌아보면서 손을 잡아서 끌어주어가면서 올라간다.

"아마, 절벽 아래쪽으로 한번 가볼까요?"

열이가 진달래가 내미는 손을 잡아주면서 하는 말이다.

"그래요. 우리"

진달래가 대답한다.

"남쪽에는 광양 옥룡면이 있다고 울 어머니가 말씀 하시던데요."

"옥룡면이면 룡이 옥색갈이라는 말이군요?"

숨가빠하면서 열이가 묻는다.

"네,"

6월의 백운산은 푸른 나라다.

나무군들도 백운산 정상까지는 잘 올라오지 못하여서 더욱 나무가 무성하다.

고로수 수액 체취꾼들도 백운산 정상에 있는 나무들만은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

"백운산 신령님에게 혼난다."는 생각때문이다.

나무를 신성시함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함이였을거다.

진달래와 열이가 부지런히 백운산 정상을 향하면서도 남쪽으로 돌아가면서 적당한 바위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감자를 삶고 소금을 친 주먹 밥이지만 꿀맛이였다.

"쌀이나 반찬은 어디서 사오나요?"

감자를 먹으면서 열이 묻는다.

"고사라나 도라지와 약초를 사러 한달에 한번꼴로 저희 집으로 찾아오는 아주머니가 계셔요.

그 아주머니에게 돈 대신 쌀과 반찬과 제가 입을만한 옷을 가지고 오셔요."라고 대답한다.

열이의 궁굼증이 해결되었다.

"아- 잘되었네요. 물물교환이네요."

"이제는 우리가 직접 구례장이나 옥룡 장으로 가지고 가바요."

"네, 그러죠"

점심을 다 먹고나서 두 사람은 절벽 아래로 가보았다.

"아- 저기 저- 하얀 뼈가 무엇이죠?" 열이의 외침이다.

사람의 뼈였다.

다행히 그 뼈 옆에 사냥군의 것으로 보이는 옆총과 가죽 허리띠가 있었다.

절벽위의 좁은 길을 달리다가 추락사 한것이다.

열이와 진달래 여인은 그 사냥군의 뼈를 잘 수습하여 양지 바른곳 명당터를 잡아서 흙을 파고 묻어주었다.

진달래 여인은 백운산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고 열이는 예수님에게 기도를 드렸다.

10. 꿈 속 아빠

사냥군의 시신을 찾아서 백운산 명당터에 묻어주고 산을 내려온 진달래와 열이는 마음이 개운하고 슬프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움이 산을 덮었다.

열이는 호롱불을 켜서 집앞에 매달고 방안에 등잔불도 켰다.

진달래는 부억에서 부지런히 밥을 짓는다.

저녁을 먹은후 두 사람은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눕기전에 서로 마주보며 눈을 맞춘다.

아직은 서로가 손만 잡은 사이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부부란 어떻게 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멀직히 떨어져서 잠을 자던 어제와는 달리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잔다.

열이의 몸이 뜨거워지면서 부드러운 심볼이 부풀어 오른다.

왜? 그러는지도 모른다.

진달래도 마찬가지다.

온 몸이 뜨거워지는데 왜? 그러는지는 모른다.

두 사람은 슬며시 손을 잡아보았다.

손에서 전기가 온다.

그냥 그대로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밖에서는 짐승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손을 잡은채로 두 사람은 잠에 빠진다.

이성의 경험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이다.

깊은 잠에 떨어진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보듬기도 하고 열이의 발이 진달래의 허박지 위로 올라가기도 하며 잠을 잔다.

체온 38도의 따스함은 포근함이다.

서로가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면서 무의식중에 행복감에 꾸는 꿈도 행복한 꿈을 꾸었다.

진달래는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서 구례장을 가던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진달래 손을 꼬옥 잡고 이리 저리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자세히 보며 걸었다.

진달래 아빠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장면이 바뀌면서 아빠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한 미남자였다.

진달래는 "아빠-"

"아빠- 아빠 "

진달래는 아빠를 목놓아 불렀다.

마치 생시와 같았다.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아빠도 만난것이다.

단 한번 마음주고 정을 준것뿐인데도 평생을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진달래 어머니였다.

아빠는 꿈속에서 처음으로 본것이다.

아빠가 살아 계신다는 뜻일가?

진달래는 아빠가 보고싶었다.

아빠가 돌아오실지 모른다면서 여기 백운산 깊고 깊은 산속 오두막집에서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유언을 언제까지 지키고 기다려야만 하나?

장래를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지도 계획이 서지를 않았다.

갑자기 산속으로 들어온 열이가 언제까지 자기와 함께 있어줄려는지도 알수가 없었다.

자신은 백운산 생활에 적응이 되어서 산 생활이 가능하지만, 과연 열이도 자신과 같이 산 생활이 가능할까?

열이만 마음 먹으면 백운산을 무대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되었다.

봄, 여름 가을까지 약초를 뜯고 겨울이면 꿩과 토끼 사냥도 하면서 살아가고 밭도 얼마든지 개간하여서 고구마도 심어먹을 수가 있고 곡식도 심어 먹을 수가 있었다.

닭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소도 키울 수가 있다.

문제는 열이의 마음이였다.

진달래는 구례장이나 옥룡 장으로 고사리와 약초를 캐어서 직접 가지고 가보자는 생각을 하며 집 근처에 널려있는 고사리와 약초를 캐어 말릴 생각을 해보았다.

돈을 만들어서 열이 옷도 사고 진달래 자신의 옷도 열이가 좋아할만한 옷으로 사고 필요한 생필품도 사가지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백운산에는 송이 버섯도 얼마든지 많았다.

송이 버섯도 따서 가지고 가면 돈을 많이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문제는 열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11. 냉수

다음날이다.

열이는 새벽부터 부지런하다.

폭포수 냇가로 가서 냉수마찰을 하고 물을 길러와 물독에 가득 채운후에 마당을 쓸고나서 부억으로 들어와 진달래를 도와 불을 때려는 나무를 도끼로 쪼개어 준다.

진달래는 이제야 비로서 사람이 사는것 같은 기분이다.

나이는 17세이라지만 하는 모습은 20세 넘은 장정과도 같아 보인다.

"오늘은 백운산에 있는 송이 버섯을 따러 가요. 우리 "

진달래가 밝게 말한다.

"그럽시다요. 우리"

이들은 "우리"라는 말을 강조 한다.

혼자는 외롭기 때문이다.

"우리"만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고 고독을 메워준다.

태초에는 아담을 혼자 지으신후에 창조주께서 가만히 지켜 보았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는 짝을 만들어 주겠다."

창조주는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손으로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다.

창조주는 아담에게로 그 모든 동물들과 새들을 이끌고 오셔서 이름을 짓게 하였다.

아담은 그 동물들과 새들을 형상과 장기에 따라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창조주는 그 기발한 착상을 하는 아담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

아담은 원래부터 기발한 감성과 이성의 천재였다.

천부적으로 재능을 주신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아이들은 뱃속으로부터 타고 난 것이다.

교육이란 그 재능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창조주는 아담을 게속 지켜 보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셨다.

아담이 즐거워하면 조물주도 즐겁고 아담이 외로우면 조물주도 외로웠다.

그 많은 각종 짐승들과 새들을 만들어서 아담이 마음대로 그들과 놀도록 해주었어도 여전히 외로워하는 아담이다.

그 까닭을 조물주는 알으셨다.

남자를 돕는 사람 즉 짝이 없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조물주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아담이 잠든 사이에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를 취하였다.

그 자리에 살로 매우셨다.

창조주는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아담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부터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

백운산의 아담과 이브였다.

"우리"였다.

두 사람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망태에 담고 열이가 그 망태를 지고 산으로 올랐다.

여기 저기에 송이 버섯에 자라고 있었다.

바위위에 올라서 아름다운 백운산을 구경한후에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어디서나 산세 소리는 노래로 들렸고, 어디서나 짐승들의 사랑 놀음도 있었다.

바로 5미터 전방에서 토끼 한쌍이 사랑을 하고 있었다.

토끼의 사랑은 순식간이다.

점심을 먹던 진달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열이는 " 토끼는 순식간이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는 오래 합니다. 사람이 쫒아도 안 도망가요. "

라고 말하면서 진달래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진달래 를 보며 웃는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무더운 햇볕이다.

바위 아래로 시원한 냇물이 졸졸 흐른다.

백운산은 물이 좋다.

어디든지 산높고 골 깊은 곳에서는 물이 흔다.

두 사람은 본능대로 움직이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 냇가로 가서 목욕 좀 하고 해요."라고 말한후 열이는

앞장 서서 냇가로 간다.

진달래도 열이 뒤를 따라서 내려간다.

냇가는 어디서든지 폭포수가 있다.

바위를 다 드러내고 흐른다.

물은 정결하다.

바로 먹어도 된다.

열은 물을 손으로 훔쳐서 마신후 자신의 손 으로 물을 훔쳐서 진달래에게 먹여준다.

열은 옷을 훌훌 벗어놓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팬티도 벗었다.

물속으로 들어간 열이는 "어서 와요. 이리 와요."한다.

진달래도 옷을 벗고 치마만 입고 속옷은 벗은채로 열이가 있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진달래의 피부는 우유 빛갈이다.

산 속에 살아도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우유 빛갈이다.

세게 흘러내리는 물살에 의하여 진달래의 치마는 물위로 들어올려져서 진달래의 하얀 허벅지살이 그대로 노출된다.

열이는 진달래에게 물장구를 친다.

진달래도 함께 열이에게 물장구를 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다.

두 남녀는 그대로 품에 품고 넘어진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다.

이심전심이다.

음양의 이치다.

서로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빨아댄다.

본능이다.

본능은 배우지 않아도 다 안다.

몸과 마음이 이끈대로만 따르면 된다.

그 정도만으로 그치고 물에서 나와 옷을 입은후 또 다시 송이 버섯을 딴다.

서로가 서로를 붙 잡아주면서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송이 버섯을 한 망태씩 땄다.

해가 지기전에 오두막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저녁 밥을 지어서 먹고 냇가로 가서 몸을 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흙과 돌로 지은 집을 토담집이라고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진달래와 열이만의 좁은 공간에서의 밤을 지세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직 순수한 두 사람은 무슨 일을 할려는 계획이란 없다.

구체적으로 성교육을 받은바도 없다.

본능이 이끈대로만 하면 된다.

낮에 냇가에서 목욕하면서 키스까지는 나누었다.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지냇을까?를 열은 생각해 보았다.

분명 조물주는 두 사람이 하나로 되어서 부모를 떠나서 살아라고 하셨다.

부모보다도 아내와 남편이 더 가깝다는 말이다.

한몸이 된다.

아담의 갈비뼈가 다시금 아담의 갈비뼈도 되돌아가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싶었다.

남자는 여자를 가슴으로 사랑한다.

갈비뼈처럼 사랑한다.

사랑은 심장에서 나온다.

머리에서 나오는 사랑은 계산이 된다.

사랑에 계산을 하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사랑은 마음이 하고 결혼은 머리와 몸이 하기에 불행하게 된다.

"마음이란 심장에서 나온단다. 뇌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란다." 열이 부친 정규가 해준 말이다.

과학자들은 마음도 뇌에서 나오는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말이 맞을려는지 조물주만 아실 것이다.

피끓는 당사자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결혼까지 가려고 하지만,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은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

계산을 해보아서 경제적인 장래 문제까지 생각하고 가문까지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건강 진단서까지도 큰 종합 병원에서 떼어오라고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는 어른들의 생각이다.

틀린말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의 성공이란 어려운 것이다.

지금 진달래와 열이는 부모도 없고 열이는 부모에게서 가출한 몸이다.

가출을 서울로 가는데 열이는 산속으로 들어 온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열이는 진달래와 한방에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아직은 특별한 계획이 있을 수가 없다.

바람 부는대로 날려가는 꼴이다.

"내일은 송이 버섯을 가지고 옥룡장으로 가봅시다. 내일이 옥룍 장 날이 맞지요.?"열이가 말한다.

"네, 그러죠, 내일이 옥룡장이 맞아요."

"내일 옥룍장에 가면 먹고 싶은것이 무엇이에요?"열이가 진달래에게 묻는다.

"곱창과 순대를 먹고 싶어요? 열씨는요?"

"네, 저도 곱창과 순대를 먹고 싶네요."

벌써부터 군침이 넘어가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이불을 펴고 옷을 벗고 나란히 누어서 손을 잡고 잠을 청한다.

진달래의 가슴은 퐁당 퐁당 뛰면서도 행복하다.

열이도 심장이 벌렁 벌렁 하면서 행복하다.

사랑이란 섹스 그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해주며 위해주며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준다.

밖에서는 부엉이가 부엉 부엉 울며 잘자세요. 잘 자세요.라고 말해주는것 처럼 들린다.

자연과 함께 검소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길 부엉이도 빌어주는듯 하다.

"사단은 도시를 만들기 좋아하고

하나님은 자연(시골)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열이가 주일학교 다닐때 김창렬 전도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12. 결혼

오늘은 옥룡 장을 가는 날이다.

백운산을 타고 넘어야 한다.

진달래는 어머니를 따라서 딱 한번 가보았다.

오늘은 열 이와 둘이서 가야한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송이버섯을 상품 가치가 나가도록 손을 보고 걸망에 열 이가 지고 진달래도 머리에 이고 가기로 했다.

"열씨 오늘 좀 고생을 하게 생겼어요."하며 웃는다.

"원래 저는 산을 타기를 좋아하고, 진달래님과 함께 가는 것이니 행복하기만 합니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후 길을 떠났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길이 불편하였으나 옥룡 장을 향하여 걸어갔다.

산속은 조용하다.

간혹 새들의 소리와 짐승들의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토끼와 노루를 종종 볼 수도 있다.

열 이는 길을 가면서 옥룡 장에 가서 사 올 책을 생각해 본다.

한 봉 치는 책을 사오고 싶었다.

송이버섯 키우는 책도 사오고 싶었다.

고사리 키우는 책도 사오고 싶었다.

백운산 풍부한 자연을 이용하면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에는 자연산 고사리와 송이버섯만 체 취 하여 옥룡장이나 구레장이나 황전 장에 내다 팔아도 진달래와 함께 쓸 돈을 얼마든지 마련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도 도시보다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양지바른 터에 송이 버섯 키우는 집과 넓은 집을 짓고 밭과 논도 많이 만들고 싶었다.

말 그대로 에덴동산을 만들고 싶었다.

진달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옥룡장을 향하여 산길이여서 조심스러우면서도 부지런히 걸어간다.

2시간쯤 걸어왔다고 싶은때에 "열씨 우리 좀 여기서 쉬었다 갈까요?"한다.

열이도 "네 그러죠."

진달래의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손수건을 꺼내어 진달래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

진달래의 눈이 너무나 초롱초롱하다.

진달래의 입술도 붉으스럼하며 뽀뽀를 하고 싶다.

열은 손수건으로 자신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은 후 곧 바로 진달래의 어깨를 잡고 뽀뽀를 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다.

이미 뽀뽀를 해본 사이이기에 거침이 없다.

진달래도 저항하지 않는다.

진달래의 입술은 쫀득쫀득하며 따스하다.

한 봉 끌 맛이다.

진달래도 열 이의 입술은 달콤하고도 화끈한 맛이다 고 느낀다.

장에 가는 길에 휴식 시간에 나누는 뽀뽀는 어떤 간식보다도 달콤하고 피로를 싸악 가시게 해준다.

열 이와 진달래의 온 몸이 뜨거워지고 숨이 가빠졌으나 여기서 절제하고 다시금 송이버섯을 이고 지고 옥룡 장으로 걸어간다.

걸음이 가뿐하다.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열씨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가요."

"진달래씨도 조심해서 따라 오세요"]

옥룡 마을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옥룡 마을길을 따라서 이윽고 옥룡 장으로 들어섰다.

한복을 차려입은 아저씨 아주머니와 아이들까지 시장은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소고기 국 끌이 는 냄새와 음식 냄새가 구수하다.

"열씨 이리 따라오세요. 어머님이 거래하던 집으로 가요. 우리"

송이버섯을 도매로 장사하는 집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아- 진달래 아닌가? 아유- 이렇게 처녀가 되어서야 우리 집을 오는군. 어서 이리로, 내가 받아 줄께"라고 수선을 떨면서 진달래의 머리에 있는 송이버섯을 내려 논다.

열이도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하면서 짐을 내려놓는다.

50대의 주인아주머니는 "누구야? 진달래의 신랑이야?"라고 묻는다.

진달래는 미소만 흘리면서 고개를 그 덕 끄덕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아유- 참 총명하고 미남자로 생겼네"하며 열 이에게 아부를 한다.

가격은 거래를 해보지 않아서 얼마인지는 잘 모르나 주는 대로 받아서 먼저 국밥집으로 함께 간다.

송이버섯 가격은 큰돈이다.

서울에서 성인 남자의 한 달 치 월급만큼 되었다.

국밥집 의자에 앉은 후 진달래는 돈을 뚝 반으로 갈라서 열이에게 내밀면서 "이 돈은 열 씨 거 에요.

열 이 씨도 살 것이 많을 거 에요. 그 돈으로 사세요. 만일 쓰다가 돈이 부족하면 저에게 말하세요. 제가 또 드릴게요."라고 웃음을 띠고서 부드럽게 말한다.

열 이는 "아- 살 것은 많으나 이렇게 많은 돈은... 그래요."라며 진달래에게는 고개를 꾸벅하고는 받는다.

진달래도 열 이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 "송이버섯 따고 여기까지 지고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라고 말한다.

"여기 소고기 곱창하고 순대 3인분으로 주세요."진달래의 고운 목소리다.

"서점에 가서 한 봉 꿀 치는 법에 대한 책을 사고 파요."

열 이의 말이다.

"그러세요." 진달래의 경쾌한 대답이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서점으로 간다.

서점은 옥룡 장에는 없고 광양 농고를 지나서 광양읍으로 가야 한다.

그리 멀지는 않다.

10분쯤 걸어가니 서점이 나온다.

서점으로 열 이와 진달래는 들어가서 한 봉 치는 법이란 책을 사고 송이버섯 재배법이란 책도 사서 나온다.

열 이는 진달래의 손을 잡고 놓치 않는다.

광양 읍 거리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열 이는 진달래 손을 잡고 의상실로 향한다.

꽃님 의상실이란 간판이 예쁘다.

열 이와 진달래가 손을 잡고 의상실로 들어가자 30대의 여인이 정답게 맞아준다.

"어서 오셔요."

"진달래씨 제가 진달래씨에게 흰색 바탕에 익은 포도 색 갈 물방울 브라우스와 곤 색 주름치마를 사주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어머, 저도 열씨에게 옷을 사주려고 마음 먹었는데요."

진달래가 좋아하며 하는 말이다.

마끔 꽃님 의상실에는 곤 색 주름치마와 익은 포도 색 갈 브라우스가 많이 있었다.

주인 여인은 "여기 아가씨 체형과 비슷한 옷들이 많은데 한번 입어보실래요?"라고 상냥하게 묻는다.

"어서 입어보아요."열 이의 재촉에 못 이겨 하듯이 탈의실로 가서 옷을 입고 나온다.

"우와-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님이다!" 열 이의 외침이다.

"진달래 씨 이대로 그 옷으로 입고 다녀요. 넘 예쁘네요."라고 말하여 진달래는 열 이가 원 하는 대로 한다.

열 이가 돈을 계산하고 의상실을 진달래 손을 잡고 나온다.

진달래는 "저도 열씨 옷을 사주고 싶어요."라고 말하고는 열이 손을 이끌고 남성 의류점으로 간다.

광양 젤 큰 의류점이라는 간판이 붙었다.

청색 봄 남방 두개와 바지 두개를 골라서 사주었다.

열 이도 새 옷으로 입고 그대로 나왔다.

이제는 광양읍에서 제일가는 선남선녀로 보였다.

이때 열 이가" 진달래 씨! 날씨도 화창하고 꽃도 만발한데 우리 기차를 타고 어디든지 돌아다녀 보아요."라고 말한다.

진달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열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열 이는 진달래의 손을 잡고 광양역으로 간다.

광양역으로 가는 길가에는 아직도 벗 꽃이 만개하다.

일제 36년 식민지 기간에 일본 사람들이 심어둔 벗꽃이다.

두 사람은 표를 끊어서 기차를 탔다.

진해로 가는 기차표인데 마산에서 진해가는 차로 갈아타야 한다.

진달래와 열 이는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자리에 앉아서 호호 하하 하며 행복해 한다.

기차에 탄 많은 손님들도 열 이와 진달래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행복한 듯 웃는다.

"우리 가위 바위 보를 해요. 진 사람은 팔뚝 맞기를 해요?"

열이가 제안한다.

진달래는"좋아요. 살살 때리세요 네?"라고 애교를 부린다.

두 사람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팔뚝을 때리고 맞으며 즐거워한다.

지나가는 판매원 아저씨로부터 사이다와 김밥을 사고 계란도 사서 나누어 먹는다.

천국이란 따로 없다.

*사후에 가는 천국이 없다는 의미가 아님, 지금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야한다는 의미임*

현재가 천국이다.

지금이 천국이다.

순간이 천국이다.

순간만이 나의 것이며 우리의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차는 오던 길을 또 다시 올 수가 있으나 우리들의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열이는 진달래에게 김밥을 먹여주고 달걀도 까서 먹여준다.

진달래도 마찬가지다.

열어둔 창문에서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기차 여행은 창 밖 구경이 일미이다.

스쳐 지나가는 자연 경관들이 한 폭의 그림들이다.

마산역에서 내려 진해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진해 벗 꽃 구경 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두 사람은 어디든지 손을 놓치지 않았다.

진해 벗 꽃은 하얀 나비들이 하늘을 뒤 덮은 듯하였다.

꽃구경도 좋으나 사람 구경도 좋았다.

울 그 불긋한 오 색 찬란한 옷들을 입은 남녀노소의 모습은 보고 보아도 실증이 나지 않았다.

얼마 구경하지 않아서 해가 어두워지고 밤 벗 꽃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진달래와 열 이는 저녁 식사를 인근 식당에서 마치고 밤 벗 꽃 축제에 참여하였다.

전깃불을 환하게 대낮처럼 밝히고 호수에는 분 수 물이 하늘을 치솟고 이미자의 노래가 들려오는 환상의 밤이다.

일본인들도 많이 왔다.

쌍쌍이 많았다.

20대 30대 40대 끼리 끼리 손에 손을 잡고 벗 꽃 축제에 참여 하였다.

13. 초야

진해 벗꽃 축제는 야간이 더 화려하다.

밤 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지상에서 쏘아올리는 축포도 빛나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도 빛난다

진달래와 열이의 가슴속에도 행복이 빛난다

마음껏 노래 부르고 마음껏 춤추며 즐거워한다

진달래가 좋아하는 노래는 이미자가 부른 동백꽃이다.

"헤일수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 잎은 빨갛게 멍이 들엇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찾아오려나 ..."

조용한 별장같은 분위기의 진해 바닷가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 왔다.

두 사람은 샤워를 하고 온돌방에 비단 이블을 깔고 옷을 벗고 누워서 진달래가 부르는 동백꽃 노래를 듣고 있다.

진달래는 라디오를 통해서 배웟다고 한다.

이미자 만큼 고운 목소리였다.

열이도 한 곡조 뽑았다.

역시 이미자가 부른 혜룡사라는 노래다.

진달래와 열이는 그 밤을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보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면서

서로가 서로를 품에 품고서

따스한 체온을 느끼면서

따스한 온돌방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에 진달래와 열이는 일어나 여관에서 주는 아침 식사를 한후에 열이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부산으로 한번 가봅시다."라고 말한다.

진달래는 "그래요, 열씨와 함께 부산이라는곳을 가보아요."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진해 역전으로 향한다.

진해 역전에서 차표 두장을 끊은 열이는 시간을 기다려 진달래 손을 이끌고 기차를 타고 "야호-야호-"를 외친다.

진달래도 "호호-호호-"하며 좋아한다.

사랑이 최고로 예민한 시절은 사춘기이다

사춘기에는 꽃잎이 하나 떨어져도 눈물이 흐른다

사춘기에 마음속으로 찾아든 소년 소녀는 평생토록 잊지못해 한다

진달래와 열이는 사실적으로 말하면 아직 사춘기이다.

서로가 서로를 흡족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흠모한다.

그러나 가볍게 처신하지도 않는다.

아직도 그들은 순결한 소녀요 소년이다.

키스까지는 허락하였으나 그 이상은 서로가 스스로 절제하면서 지내온다.

몸의 합궁이란 결혼을 전제로가 아니면 행해서는 안된다는 유교적인 교육이 그들의 가슴 밑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유교 나라 5백년 이조시대의 뿌리가 일제 36년을 지내고 해방후 20년을 지냈으나 이들의 가슴속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섹스란 이름은 사랑의 모독이다.

즐긴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섹스란 말은 결혼이란 전제가 없이는 가까이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섹스를 통해서 거룩한 생명이 잉태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생명의 잉태를 책임질만한 관계가 아니면 섹스란 허용되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진달래와 열이다.

"나 하나의 행복을 위해서 너희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열이 어머니의 갑예의 말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한번 정을 주었던 진달래 아버지를 잊지못해하며 기다리다가 죽어간 그 정이다.

이 끈질긴 정이 한국 여인들의 정조관념이다.

"오히려 교육이 사람을 버려, 교육 받은 사람이 아비 어미를 버리고 정조관념이 없어," 열이 아버지 정규의 말이다.

열이 아버지 정규는 사랑하는 여인이 과부로 되어서 가까운 면소재지에서 가게를 하면서 살아도

간혹 보고프면 찾아가기는 해도 손목 한번도 잡지는 않았다.

일단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한 아내 자식들을 낞아준 아내와만 섹스를 했다.

흔한 오입도 하지를 않았다.

다만 그리움과 고독감에 술을 즐겨하셨다.

양심대로 살자. 정직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가 정규의 삶의 지침이였다.

그러한 정규의 아들 열이도 마찬가지이다.

진달래가 첫사랑이다.

진달래도 열이가 첫사랑이다.

진달래를 14살때 엄마가 돌아가신후 사냥군과 잠시 한달 정도 살았으나 그와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

한달쯤 되어서 그 사냥군은 사냥을 나가서 죽고 말았던 것이다.

3년후 열이가 찾아와서 지금 꿈과도 같은 행복한 순간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순간이 천국과도 같았다.

부산을 향해가는 기차로 마산에서 갈아타고 이 두사람은 더욱 느긋하게 행복감을 누린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내가는 많은 산과 들판과 강들이 손짓하며 "진달래야 열아 -"하고 불러준다.

들판에서는 한참 모내기하는 농부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기차를 타고가는 진달래와 열이를 향하여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진달래와 열이도 함께 창문 박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어준다.

완행 열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완행 열차를 타야 한다.

진달래와 열이는 손을 마주 잡고 쎄쎄를 하고 손꿉 장난도 치면서 웃고 손뼉도 치며 기차안에서 행복을 만들어간다.

배가 고프면 지나가는 홍익회 점원에게 계란도 사고 김밥도 사고 사이다도 사서 사이좋게 나누어 마신다.

보기에 좋다.

보는 승객들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기차 여행을 하라

내 평생 소원 딱 한가지를 말하라면

사랑하는 그 사람과의 기차 여행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하였다

단, 하루만이라도 좋사오니

사랑하는 그 사람과의 기차 여행을 하고프다고,

호호 하하 웃어보고 싶다고

둘이 손 정겹게 마주 잡고서

눈을 맞추고 싶다고,

진달래와 열이는 해보고 싶은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보기로 하였다.

"진달래씨! 저는 진달래씨를 사랑해요. 우리 결혼해요."

부산 가는 기차안에서 열이는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하였다.

진달래는 "네, 좋아요. 저도 열씨를 사랑해요."

이로서 결혼 약속은 성립 되었다.

약혼이 된 것이다.

이제 결혼식만 치루면 된다.

"진달래씨 우리 결혼식은 범어사로 가서 주지 스님 앞에서 할가요?"

"열씨는 기독교인인데 그래도 되겟어요? 그냥 우리끼리 사진관으로 가서 결혼 사진을 찍은것으로 대신 하지요."

"그래요."

부산역에서 내려서 근처의 사진관을 찾아들어간 두 사람은 사진관 주인에게 "우리 두 사람 결혼 사진을 찍어주세요."라고 열이가 말한다.

사진관 주인은 어리둥절 하면서도 "네, 그러죠. 이리 오세요"라고 말하고 그들을 이끈다.

사진관 안에는 신부 드레스와 신랑 예복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구식으로 예복을 입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것으로서 결혼식은 대신하고 이제부터는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을 치루면서 돈을 많이 허버히는것은 낭비입니다.

그 돈을 아껴서 좋은 일에 써야 합니다."

열이의 말이다.

진달래도 "그럼요. 옳으신 말씀이에요."라고 맞장구 친다.

"이제 오늘밤 우리는 초야를 치루어야 하네요."라고 말하면서 진달래를 바라본다.

진달래는 수줍어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이미 어두움이 찾아오고 전깃불이 가게마다 집집마다 환하게 비추어준다.

객지에서 밤은 외롭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면 그 객지도 외롭지 않다.

두 사람은 부산으로 신혼 여행을 온 셈이다.

"생활 능력만 된다면 결혼을 일찍하는것이 생리적으로 맞다고 봅니다." 열이의 말이다.

진달래는 수줍어만 한다.

열이는 진달래 손을 잡고 부산 역 근처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마치고 멋진 호텔로 찾아갔다.

부산 국제 호텔이다.

"이 호텔에서 제일 큰 특실로 주세요."

키를 받아든 열과 진달래는 특실로 가서 먼저 함께 샤워부터 한다.

"이제 부부로 되었으니 부담감도 없고 편하네요."라고 말하면서 진달래를 바라본다.

진달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뜨거운 물을 적당히 찬물과 섞어서 탕에 받아 채우고 열이가 먼저 들어가며 "이리 들어오세요. 우리"라고 말한다.

14. 궁합

첫날 밤

부산 국제 호텔 특실에서의 첫날밤

샤워실에서의 진달래와 열이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웁다.

팔등신 진달래의 나신이다.

긴 머리

몸매가 환희 비추이는 실크 하얀색 홈 드레스를 입은 진달래의 나신이 물에 젖어서 더 황홀하다.

"이리로 들어오세요"

열이의 말에 진달래는 조심스럽게 열이가 들어가 있는 커다란 탕으로 들어간다.

부부탕이다.

신혼부부가 함께 사용하기에 좋은 탕이다.

탕으로 들어오는 진달래의 몸을 열이가 안아서 자신의 무릎 위로 앉힌다.

스치는 감촉이 넘 황홀하고 따스하다.

이 느낌은 서로가 비슷하다.

"이젠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열이의 말이다.

"네, 우리는 이제 부부에요." 진달래의 부드러운 속삭임이다.

열이의 손은 진달래의 몸 부푼 가슴을 만진다.

진달래는 고개를 돌려 열이에게 키스를 한다.

산골에서의 키스와는 다른 맛이 있다.

길고 긴 키스다.

입 맞춤이다.

입 맞춤은 사랑하는 연인끼리만 한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인들도 돈을 받고 몸은 팔아도 입술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은 매우 어렵다.

특히 첫사랑끼리의 결혼은 매우 어렵다.

그 어려운 사랑의 성공을 진달래와 열이는 이룬 것이다.

국제 호텔 특실 샤워실 탕에서의 길고 긴 입 맞춤과 물 장난과 사랑의 몸과 몸의 접촉은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결과이기에 막힘이 없었다.

한시간을 탕속에서 즐거움을 누린후에 탕에서 나와 샤워를 하며 서로가 서로의 몸에 비누칠을 하고 닦아주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천국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고 지옥은 자기만을 위한다.

이 세상도 상대방을 배려하여주는 곳은 천국이 되지만,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인간들끼리 만나서 함께 하는 집단이나 가정은 지옥이 된다.

탕에서 나온 진달래와 열은 커다란 침대로 올라간다.

침대와 마주 바라보이는 벽면 전체가 거울이다.

거울속에 진달래와 열이의 모든 모습이 다 보인다.

서두들 필요는 없었다.

밤은 길고 길기에,

부부관계는 상대방을 배려하는데 즐거움이 있다.

커다란 침대에 누운 진달래와 열이의 모습은 그림으로 치면 행복 그 자체다.

열은 꿈을 꾸고 있나?한다.

진달래 역시 마찬가지다.

꿈인가? 생시인가?한다.

침대 앞에 있는 대형 거울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커다란 비디오처럼 보여준다.

짧은 실크 미니스커트를 입은 진달래를 열은 오른쪽 팔베게를 해준다.

남녀란 참 미묘하다.

음과 양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힘이 강하다.

특히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이에는 더욱이다.

서로의 모습만 바라만 보아도 좋다.

서로가 서로의 살결을 스치기만 해도 좋다.

함께 커다란 침대에 누워서 몸과 몸을 마주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서 전류가 흐르고 뜨겁다.

두 사람은 옆으로 몸을 틀어서 마주 바라보며 눈을 맞춘다.

서두르지 않는다.

다음은 입을 맞춘다.

입술과 입술의 가벼운 터치에서 시작한다.

서서히 더 깊은 키스로 들어간다.

"부부끼리의 키스와 남녀 관계는 바위속에서 나오는 생수만큼 신성하다." 열이 아버지가 해준 말이다.

키스가 즐거운 부부는 전회가 따로 필요가 없다.

키스만 오래 오래 하면 된다.

진달래와 열은 키스를 매우 좋아하고 즐긴다.

"성궁합만큼 키스 궁합이 좋아야 행복하게 산다." 어느 시인의 말이다.

창조주는 인간들이 외롭지않도록 남녀관계를 다양하게 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꼭 좋은것을 변질 시켜버린다.

법도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데, 탐욕과 미움으로 사용하기에 변질되는 것이다.

원래 사단은 천사였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때에 성가대의 인도자였다.

루시퍼이다.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던 천사가 루시퍼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재능도 많았다.

조물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에서 만족하지를 못하였다.

루시퍼도 조물주의 자리에 앉고 싶어졌다.

이것이 욕심이며 탐욕이다.

이 마음을 물리쳐야하는데 루시퍼는 그렇지 못하였다.

천사 3분의 1을 거짓과 허영으로 미혹하였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늘나라에서 전쟁이 일어 난것이다.

하늘나라의 쿠테타가 일어난 것이다.

결국 루시퍼는 천사 3분의 1과 함께 하늘 나라에서 추방 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루시퍼의 모습은 지금의 사탄이 된 것이다.

시기와 질투와 폭력, 거짓이 루시퍼의 성질이다.

조물주가 사랑하는 존재 인간들의 행복을 시기하고 증오하며 미워하고 훼방한다.

아담과 하와도 조물주로부터의 사랑을 받음에 시기와 질투로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함으로 조물주로부터 사랑과 영원한 행복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실수가 이러한 루시퍼의 질투와 시기심이 원인임을 잘 아시기에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두신 것이다.

인간 세상이나 하늘나라나 모두가 사랑이 원인이다.

사랑과 미움이 원인이다.

아무리 좋은것도 지나치면 나쁜것으로 된다.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사단도 원래는 루시퍼 천사였다.

탐욕이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마다 분수대로 살아가야 한다.

진한 입맞춤을 끝낸 열이는 "자기와 나는 자연속에서 욕심없이 조용히 살아갑시다."라고 말한다.

진달래는 "네, 그래요. 자연속에서 작은 자연이 되어 살아가요. 우리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다시금 진한 입 맞춤으로 들어간다.

15. 새 소망

부산은 해운대 해수욕장이 유명하였다.

"우리 해운대 해수욕장을 한번 가볼가요?" 열이의 말이다.

"그래요. 해운대 해수욕장에 들려보아요." 진달래의 화답이다.

어젯 밤에는 부산 국제 호텔 특실에서 신혼 첫날밤을 행복하게 보내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두 사람은 빌었다.

세상은 악한 사람도 살고 착한 사람도 살아간다.

"악한 사람은 욕심대로 절제하려고 하지않고 이익 추구만을 지상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람들의 약점만 찾아서 공격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고, 착한 사람은 그 반대다." 열이 아버지가 밥상을 마주 대한 아들 열이에게 해준 말이다.

부산 사람이나 광주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어디나 착한 사람도 살고 악한 사람도 산다.

백프로 나쁜 사람만 사는 전라도도 아니고 백프로 착한 사람만 사는 경상도도 아니다.

"사람을 다 믿지 말아라.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단다."

역시 열이 부친 정규의 말이다.

"아버지 어떻게 그것을 분별하나요?"

"글쎄, 그게 어려운 것이란다."

"세상에 뭐가 무섭네 호랑이가 무섭네, 귀신이 무섭네 하는데, 사람이 젤 무섭단다."

열이 아버지는 아들 열이에게는 만날때마다 무언가를 가르켜주고 싶어하셨다.

열이는 부산 사람들을 바라보며 누가 착한 사람일가? 누가 악한 사람일가?를 분별하려고 해보았다.

"겉으로 보아서는 모른단다. 겪어 보아야만 안단다."

"어서 백운산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겠구나!" 열이는 해운대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생각을 한다.

진달래도 백운산 산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해운대에 다 도착하였다.

해운대 해수욕장은 바로 시와 붙어 있었다.

벌써 아이들이 해수욕을 하고 있었다.

고무 주부를 타고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실고서 물위에 둥둥 떠서 다니는 모습이 시원하게 만들었다.

" 우리도 한번 바다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열이의 제안이다.

"그래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물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아요."

두 사람은 준비해 온 해수욕 복으로 갈아 입고 아이들을 멀리 떨어져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해수욕장이 개장이 안되어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모래가 좋았다.

깊이 들어가지 않고 바닷가에서 놀았다.

물장난도 치고

입도 맞추고

서로 껴안고 모래위로 딩굴기도 하고

모래 찜질도 해보고

여름은 바닷가가 좋고 산속이 좋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끼리는 행복도 훨씬 예민하게 다가온다.

몇 시간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근처 횟집으로 가서 참돔 회를 먹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갈가요?" 열이의 질문이다.

"이제는 그만 놀고 백운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진달래의 대답이다.

열이도 마찬가지 마음이였다.

"그래요. 다음에 또 여행하고 싶은때에 어디든지 함께 다녀요. 우리"

"네. 여보"

진달래의 상냥한 대답이다.

호칭이 참 어렵다.

신혼부부는 처음 호칭 부르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진달래 입에서 먼저 "여보"가 쉽게 나온 것이다.

열이는 "자기"리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라고 즐겨 부른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광양으로 와서 백운산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백운산 오두막 집으로 돌아왔다.

"백운산 오두막집이 세상에서 젤 편안하고 좋아요. 여보 !"

진달래의 환호성이다.

열이도 " 저도요. 자기가 좋으면 나는 무엇이든지 좋아요. 우리 여기서 더 열심히 삽시다."

두 사람은 좁은 방안에서 긴 입 맞춤과 포옹을 한후에 저녁 밥을 짓는다.

열이는 폭포수로 가서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패며 진달래는 쌀을 씻고 솥에 밥을 한다.

라디오에서는 이미자가 동백 아가씨를 부르고 있다.

저녁을 먹고 열은 "이제 우리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장차 아이들이 생길텐데, 그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 할 것이에요."

진달래는 " 마저요. "

열: 제 생각에는 우리 집 주변에 자연적으로 무성하게 나 있는 고사리들을 고사리 밭으로 만들면 합니다.

진달래: 고사리밭으로 만들려면 잡목과 잡초만 제거해주면 되겠네요.

열: 맞습니다. 고사리는 쌀 보다도 세배 이상의 높은 소득을 올려줍니다.

그리고 우리 집 뒤의 언덕을 개간하여서 밭으로 만들어 고구마도 심고 감자도 심고 과수원도 만드는 것입니다.

진달래: 그리고 송이 버섯도 따고요.

열: 맞어요. 농촌에 살아도 잘 살 수 있음을 도시 사람들에게 보여줍시다.

그리고 수시로 틈 나는대로 송이 버섯 재배법과 고사리 재배법을 공부하고 새농민지도 읽고 공부도 하렵니다.

진달래: 맞습니다. 저도 함께 공부 하겠습니다.

열: 그럽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이 백운산을 에덴동산으로 만들어갑시다.

진달래: 마저요.

열: 장차 이 백운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도록 만듭시다.

진달래: 우리 아이들이 자랄때면 초등학교도 세우도록요?

열: 네, 그럴 것입니다.

안그러면, 우리 아이들을 저 아래 마을 초등학교로 보내야 하니까요?

진달래: 우리 아름다웁고 살기 좋은 백운산 마을을 만들어요.

열: 네, 그래야죠.

그리고 가나안 농군학교도 우리 함께 다녀오면 합니다.

진달래: 가나안 농군학교가 어디에 있나요?

열: 경기도에 있습니다.

진달래; 그래요. 커다란 꿈을 이루려면 먼저 그 꿈을 이루신분들에게 배워야지요.

두 사람은 부창부수였다.

남편이 무슨 말이든지 하면 아내는 맞장구를 쳤다.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백운산을 자연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자연과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앞으로 계속 찾아보기로 하였다.

열: 장래를 자기와 이야기하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후련하네요.

진달래: 마저요. 우리 도시 사람들보다도 더 잘 살도록 만들어요. 우리

열: 그럽시다. 하면 됩니다. 부지런히 책도 읽고 라디오도 들으면서 잘 살 연구를 해갑시다.

어린 부부는 이불속에서도 장래 설계를 나눈다.

살과 살을 부대끼면서 호호 하하 하며 한 솥 밥을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백운산을 낙원으로 만들어가기로 단단히 약조하였다.

많은 관광객들도 찾아올 수가 있도록 만들기로 하면서 그 밤을 보냈다.

신혼 부부들에게 있는 길고 긴 입 맞춤과 사랑도 나누었다.

16.. 낙원
.

1969년도

진달래와 열은 19세이다.

백운산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진달래와 열을 품고 사랑하고 사랑 받았다.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진달래와 열은 황제가 되고 여왕이 되어서 자연과 산천 초목을 백성 삼으며 들짐승들을 병사 삼아서 살아가고 있었다.

소득은 풍성 하였다.

돈이 꼭 도회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사랑을 쏟고 정성을 쏟고 노력을 쏟은만큼 은혜를 갚아주었다.

송이 버섯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오고 고사리 밭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 왔다.

일손이 부족하면 백운산 아래 마을 4-H 회원들의 노동력을 빌렸다.

일한만큼 대우를 받도록 해주었다.

마음대로 송이 버섯을 체취하되 4대6으로 하였다.

4는 진달래와 열에게 주고 6은 노동자가 가져가도록 해주었다.

고사리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산 고사리로 유명하여 유명 백화점과의 계약 재배이기에 돈은 저절로 들어오고 있었다.

백운산 고사리는 유명 하였고 잘 팔렸다.

이제는 수십만평을 고사리 밭으로 만들었다.

자연적으로 야생하는 고사리를 그대로 두고 주변 잡목과 잡풀만 제거해주면 되었다.

쌀 농사보다도 세배의 소득을 올려주었다.

4-H 회원들을 얼마든지 동원할 수가 있었다.

충분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해주기에 너도 나도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노동하면서 열과 진달래를 통하여 고사리 밭 만드는 비법을 터득하였다.

배고픈 시절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이여서 보리가 익기전에 두달전부터 배가 고팠다.

농촌에는 먹을것이 없었다.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김용기 장로님이 일본에서 고무마를 수입하여 전국 농촌으로 퍼뜨려주어 춘궁기의 양식으로 한국 농촌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었다.

"애국이란 큰 것만이 아닙니다. 아주 소소한 것도 애국이 됩니다. 마을 회관 마당만 쓸어주어도 애국하는 마음을 먹고 하면 그것이 애국입니다. " 김용기 장로님의 말씀이시다.

김용기 장로님은 고구마 씨를 구하려고 일본으로 가셨다.

일제 시대에 벼 농사를 지어두면 공출로 모두 빼앗아 갔다.

장로님은 " 벼 농사를 하는 논에 밭으로 만들어 고구마를 심어야 합니다."라고 가나안 공동체를 설득하여서 고구마를 심었다.

그리하여 일제 시대에도 공동체를 배부르게 먹고 살도록 해주고 소득을 높이도록 도와주도록 이끌어주었다.

"지도자란 머리와 같습니다. 지도자란 지혜가 있어야 하고 위기에도 강한 슬기로움도 지녀야 합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농촌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강하였다.

6.25 사변때 공산군들이 가나안 공동체로 쳐들어왔다.

인민군 장교는 "선생님 동무 선생님 동무는 우리 공산당과 비슷한데 경기도 인민위원장으로 되어주십시요."

장로님은 " 저의 가나안 공동체는 공산당과는 다른것이 하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며 효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헌법처럼 여기며 성경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저에게 꼭 경기도 인민워원장으로 하라고 하시면 저의 방법대로 하도록 해주셔야 가능합니다."

기독인을 간첩이라면서 처단하는 시국이지만, 워낙 청렴결백하며 이타주의로 살아가는 김용기 장로님만은 공산군들도 해칠 수가 없었다.

조용히 물러 갔다.

열은 사춘기때에 김용기 장로님이 쓴 가나안으로 가는 길과 이렇게 살때가 아닌가?를 통하여 철저히 영향을 받고 여러차례 가나안 농군학교로 가서 훈련을 받았다.

진달래와 열은 백운산 1백만평을 제 2의 제 3의 가나안 농군학교를 만들 꿈을 꾸었다.

우선적으로 4-H 활동을 통해서 가나안 정신을 전파 하였다.

광양군 농촌 지도소에서는 열과 진달래를 초대하여 수백명의 군 연합회 4-H 회원들에게 강연을 하도록 해주었다.

승주군 농촌 지도소와 여수. 여천 농촌 지도소에서도 초대하여 주었다.

백운산 1백만평 국유지를 불하 받아서 고사리 농장과 송이 버섯을 통한 부를 이룬 체험담을 통하여 농촌에서도 잘 살수 있음을 친히 증명해 보였다.

배고픈 시절이;여서 춘궁기를 맞이하여 4-H회원들을 모아 식사도 대접해주고 훈련도 시켜주었다.

하얀 쌀밥과 고기국을 주는 군 농촌 지도소의 청소년 훈련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대한민국 각 농촌 마을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비록 춘궁기에는 보리 고개를 넘어가면서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살만한 농촌이였다.

처녀와 총각이 농촌에 수없이 많았고 초등학교에는 보통 수백명에서부터 수 천명에 이르는 초등학교도 많았다.

오히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였다.

쌀 값이 비싸기에 도시 친척들에게로 가면 밥을 얻어 먹고 오기가 어려워서 "서울 깍쟁이"라는 말이 유행 하였다.

그러나 농촌 친척집에 오면 춘궁기일지라도 손님만큼은 닭을 잡고 쌀밥을 지어서 대접해주었다.

지나가는 나그네와 보따리 장사군들과 엿장사와 거지들에게도 인심이 후했다.

이러한 농촌으로 서울 아가씨가 시집을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김용기 장로님은 "공업보다는 농업으로 농촌부터 살려야 합니다."를 강조한 것이다.

17. 유명 인사

열과 진달래는 여기 저기에서 초청을 해주었다.

4-H 클럽이 조직되어 이 마을 저 마을 마다 농촌부흥을 위하여 일어섰다.

박정희 혁명정부에서는 대대적으로 농촌 부흥을 위하여 떨치고 일어선 것이다.

진달래와 열이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교육 받을때였다.

김용기 장로님은 흰고무신을 신고 한복 바지 저고리와 하연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연단위에 서서 강연을 하였다.

"여러분 제가 협업농장을 만들어서 먼저 이웃간의 담장을 헐고 그 담장에는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웃과 이웃이 함께 일하고 함께 식사하며 함께 교육을 시키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주일이면 교회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가족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주변 마을보다도 소득이 10배가 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댓가를 더 주었습니다.

일한만큼 보상을 받게해주는 공동체였습니다.

양심대로 성심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스스로가 공동 일기장에 자신이 일한만큼의 시간을 기입하면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손에 굳은 살이 박히면 박힐수록 대접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가 우리 공동체의 정신이였습니다.

병이 나거나 연약한 사람은 우리 공동체에서 무조건 치료를 해주고 생활을 부담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나안 공동체의 소문에 국가재건회의 박정희 의장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공동체로 오신것이 아닙니까?

우리 공동체를 자세히 구경하신후에 저에게 `장로님 우리나라를 장로님의 가나안 공동체러럼 잘 사는 농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가셨는데, 그후 곧바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김용기 장로님은 "저는 박정희 이장에게 말슴 드렸습니다. 이 나라를 잘사는 나라로 만들려면 공업국가보다는 먼저 농촌국가로 먼저 만드셔야 합니다."

열은 이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공업 국가를 먼저 만들면 농촌 청년과 처녀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감으로 농촌을 살리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리고 공해 국가가 되고 농촌은 피폐해진다고도 하셨던 것이다.

스위스나 네델란드도 농업으로 국가의 경제를 살리신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스위스나 네델란드는 꽃을 재배하여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여서 엄청난 부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편으로는 새마을 운동을 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고 빠른 공업 국가로의 부흥을 꾀하였던 것이다.

일거 양득을 노린 것이다.

농촌도 살리고 공업으로 도시도 살리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서서히 공업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렇지만 68년도 당시에는 농촌에 사는 청소년들은 새마을지를 보면서 농촌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꿈을 꾸며 자랐다.

마을마다 야산을 개발하여 밭을 만들과 과수원을 만들며 목장을 만들었다.

매주일 어느 날 밤을 골라서 농촌 청소년들은 어느 집 방에 모여 4-H 회의를 열었다.

회장의 지휘 아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른후 새마을 노래도 합창하고 토론을 열었다.

열과 진달래는 백운산 1백만평을 관광 농원으로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서 개발해가는 업적으로 동네마다 초대를 받아가서 강연을 해주는 유명 연사로 되었다.

특히 열이와 진달래가 사는 백운산 아래 마을 4-H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18. 도시는 악마 농촌은 은 하나님

벼 농사를 지을때 농약을 치지 않았다.

농약이 아예 없었다.

비료도 없었다.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개똥 망태를 메고 새벽 일찍 개똥을 주으러 다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먹는다."라는 말과 같았다.

소변이나 대변을 보고 싶으면 꾹 참앗다가 자기 집 화장실로 와서 보았다.

거름이 곧 양식이기 때문이였다.

농부들은 똥장군을 지고 밭으로 논으로 져날랐다.

바가치에 조금씩 받아서 골고루 흩어 뿌려주었다.

퇴비증산을 위해서 들판과 산의 풀을 부지런히 베어와 소와 돼지 우리안으로 넎어서 발로 밟게 만들었다.

밥을 하고 그릇을 씻은 물을 구정물이라고 하며 소와 돼지에게 먹여서 물배를 채워주고 오줌을 쌓아 거름을 더욱 거름으로 만들었다.

생명의 순환 법칙처럼 자연의 순환 법칙을 이용 하였다.

화학 비료가 없어도 소득을 높일 수가 있었다.

친 환경 농업을 한 것이다.

부지런하면 살 길이 열리는 농촌이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깔 망태를 메고 풀을 베러 산으로 논둑으로 밭둑으로 다녔다.

학교를 갔다오면 누구나 부모님의 일을 거들었다.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마을 스피커에서 힘차게 울려 나왔다.

벼 농사에는 멸구가 극성이였다.

이 멸구는 석유를 물에 조금 뿌려서 바가치로 물을 떠서 벼를 향하여 퍼부어주었다.

그러면 멸구는 물위에 허역게 떠서 죽었다.

벼가 익으면 메뚜기가 많았다.

누나와 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소주 대병을 들고 메뚜기를 잡아와 가마솥에 넎고 볶아서 먹었다.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하여주었다.

메뚜기가 끝나면 익은 벼에게 물을 빼주려고 도구를 쳐주면 미꾸라지들이 수없이 나왔다.

그물과 철사로 미꾸라지 그물을 만들어 도구친 물고랑에 대고 발로 뻘을 자근 자근 밟으면 그물속으로 미꾸리지가 한 그릇씩 들어가 잡혔다.

미꾸라지를 잡아서 호박 잎과 소금으로 씼어서 배추 무우 잎파리를 삶은 씨레기 된장국물을 충분히 가마솥에 붓고 미꾸라지를 도구통에 갈아서 넎고 국을 끌여서 마을 잔치를 열었다.

열은 백운산에서 성공하여 큰 돈을 버는 입장이면서도 어린 시절의 고향 농촌 마을의 삶이 생각났다.

열은 가출 청소년들을 몇가지 질문을 하고 농촌에서 뼈를 묻을 각오가 있는 사람만 받아주었다.

백운산 골짝 골짝마다 사각형 흙돌담 짓도록 하고 방과 부억과 축사를 만들어서 염소와 산양과 소를 방목하도록 해주었다.

한 골짝마다 5만평정도씩 되었는데 10 골짝이면 50만평이었다.

한 골짝마다 대장을 뽑아주었다.

그 골자기 대장 아래에 10명씩을 배정해 주었다.

모든 물자와 가축을 지원해주고 6대 4로 나누었다.

그러면 그 골짝에 대장과 대원들은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나누어 가진 수익을 재투자하여 가축을 사서 투자하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도록 해주었다.

10 골짝에 10명씩 모두 100명이나 되었다.

대부분이 소년들이였다.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30분간 예배를 드린후에 "개척정신 정신 개척"을 외치면서 백운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백운산 정상에는 각 10 골짝에서 올라온 100명의 대원들에게 열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필요한 정신 교육을 10분간 시켜주었다.

그후 각자가 "개척정신 정신 개척"을 외치고 하산하여 일과를 시작 하였다.

6시간 노동 남은 시간은 검정고시 공부를 하기 위하여 백운산 정상으로 모여들었다.

백운산 정상에는 커다란 마당을 닦아두고 큰 교실을 만들어 두었다.

그 교실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검정고시 강의를 목사님으로부터 받았다.

목사님은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제자로서 장로님이 보내주었다.

목사님은 "여러분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은 농촌과 산촌을 살리는 길뿐입니다. 여러분은 노동도 하면서 공부도 해야만 합니다. 공부하여 지식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간만큼만 여러분의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진만큼 사람다웁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농부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길은 지식 축적입니다."

"여러분은 장차 대한민국 산천을 낙원으로 개발해야할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여기 백운산 골짝에서 단원으로 있지만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각 산마다 가서 제 2의 백운산 관광 농원을 만들어가야만 할 것입니다."

"에덴동산도 산골이였습니다."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백운산 관광 농장 방문은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한것만큼이나 커다란 행운이였다.

광양군 군수와 승주군 군수도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농촌 지도소 소장들도 달려와서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해주었다.

김용기 장로님은 그들에게 겸손하게 악수를 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다.

" 백운산 1백만평을 열이와 진달래에게 불하해주신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나라는 산지를 개발해야만 합니다. 전국토의 70프로가 산인 우리 나라는 열이와 진달래같은 농촌을 살리려는 청년들이 많이 일어나아먄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협조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군수들과 지도소 소장들은 김용기 장로님에게 앞다투어 약속을 해주었다.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절을 해주었다.

"권력은 더 큰 권력자에게 약하다." 열이 아버지 정규의 말이다.

새마을 운동의 모델이며 조언자인 김용기 장로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그들로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스승 격인 김용기 장로님앞에서 감히 얼굴을 똑바로 들지를 못하였다.

군수와 소장들은 "장로님 저희가 식사를 좀 대접하렵니다. 광양 영빈관으로 모시렵니다."라고 말하였다.

장로님은 " 아닙니다. 저는 열이와 진달래의 흙돌집에서 만든 산채 나물로 보리밥을 먹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정중한 접대에 감사드립니다. 대접 받으신것으로 여길터이니 돌아들 가셔서 군민들을 위하여 행정을 잘 하여주십시요."

군수들과 소장들과 기타 관리들이 돌아간후 김용기 장로님과 진달래와 100명의 백운산 소년들은 백운산 대강당에 모여서 강의를 들었다.

"도시는 악마가 만들고 농촌은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택한 롯이 되지말고 광야를 선택한 아브라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열과 진달래와 함께 도시를 선택하지않고 농촌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나라에는 산이 많습니다.

특히 국유지가 많습니다.

얼마든지 국유지를 불하 받아서 과목을 심고 목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백운산 대장과 부대장인 열과 진달래 부부는 우리 가나안 농군학교 수료생입니다.

몇 차레나 가나안농군학교를 다녀 갔습니다.

많은 훈련생중에서 가장 우수한 수료생으로서 이번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새농민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열 대장과 진달래 대장으로부터 훈련 받은 여러분은 앞으로 이 나라 전국 산으로 흩어져서 제 2의 제 3의 백운산 관광 농장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백운산에서는 도라지를 성공적인 방법으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연적으로 자생하는 고사리를 그대로 두고 주변의 잡목과 잡초만 파내주면 순식간에 고사리 밭으로 된다는 사실은 단순한것 같으나 시도하기는 쉽지않습니다.

고사리는 사람의 몸에 매우 좋습니다.

또한 한약초를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을 그대로 살리면서 주변의 잡목과 잡초만을 제거해주면서 야생 한약초를 개발하면 더 큰 소득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유지를 불하 받는 것이 시급합니다."

"소년들이여 대망을 품으십시요. 여러분은 한국의 야산을 모두 개발하시고 더 나아가서 저 만주로 몽고로 러시아와 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십시요. 공업으로 부흥하는 나라는 공해로 인하여 결국 국토를 황페화 시키지만 농업으로 북구을 이루면 영원한 낙원으로 될 것입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조용하고 우렁찬 웅변은 백운산 소년들의 가슴속에 커다란 웅지를 품도록 해주었다.

김용기 장로님은 경기도 가난안 농군학교로 올라가셧다.

열과 진달래는 백운 산 골짜기마다 전국 소년 들을 모아서 농장과 목장을 만들어주었다.

그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켜나갔다.

생산물은 도시에 있는 교회들과 직거래를 텃다.

또한 관광 체험 농원으로 만들었다.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학생들이 단체 견학을 왔다.

나라에서도 인정하여 새마을 상을 열과 진달래 부부에게 시상하였다.

백운산 정상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웠다.

백운산 골자기에 사는 소년들이 자라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낞기 시작하기 때문이였다.

열과 진달래의 삶의 모습을 전국에서 배우러 왔다.

그리하여 전국 산들마다 제 2 제 3 백운산 관광 농장이 생겨 나갔다.

생산물을 이제는 외국으로 수출을 하게 되었고 외국에서까지 견학을 왔다.

"공업으로 나라를 일으키면 빨리 일어서기는 하지만 공해가 심하게 되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좀 더디더라도 농촌 부흥을 통하여서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만 합니다."는 김용기 장로님의 말슴을 열이와 진달래는 묵묵히 실천하여나갔다.

 

 


 

출처 : 유머나라
글쓴이 : 태산 작가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출처 : n 고운산악회
글쓴이 : 록키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서리산 철쭉제 산행 사진방 1*

 

휴양림 입구~외방2리 임도~질마재~화채봉~서리산 정상~철쭉동산~비금리~비금리 종점

 

 

*서리산 철쭉.. 그 꼬리를 겨우 붙잡았다*

 

 

매번 산행을 약속한 날이면 꼭 선잠 때문에 늦어 설치고 만다,

아침 회오리님 전화에 잠을 깨니 오전 9시반..

오늘 서리산 산행에 동참할 사람들은 9시 50분 까지 상봉역으로 모이라 했는데..

서둘러 옷을 입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가깝다는것 이래서 좋은 점이다,

 

환승통로를 올라 광장에 도착하니 9시 45분..

배봉산악회 산님들이 많이 보이고 우리측은 용대형님과 태규형님이 보인다,

시기가 그렇하다 보니 배봉산악회 임시산행을 오늘 같이 잡아버린 것이다,

모두들 아는 얼굴들 인사를 나누고 10시 04분발 춘천행 전철을 탓다,

 

사실 오늘 산행은 울 영춘지맥 산행팀들과 얼마전에 이미 약속한 산행 이기에..

그간 계속 서리산 꽃소식을 점검하고 있었고..

사실 산행 코스도 가평 행현리 코스를 타고 축령산으로 올라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배봉팀이 다수인 울 지맥팀..

그렇다고 서리산 철쭉제 산행을 정한 배봉팀을 무시 할수는 없어 일단 산행길은 같이 나서기로 한것이다,

 

퇴계원역에서 회오리님이 탑승하고 그렇게 우리는 마석역으로 향했다,

오늘 전철에서 부터 대충 보아도 서리산 산행에 나선 산님들이 적지않다,

 

마석역에 내려 축령산행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사이에 편의점에서 요기꺼리와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서둘러 오느라 배낭에 아무것도 담아오지 몿했기 때문이다,

10시 40분을 좀지나 도착한 군내버스는 출발부터 발딛을 틈없이 만차로 출발한다,

올 봄 늦기만 하던 서리산 철쭉꽃소식이 전해지고..

평일 이지만 서리산으로 향하는 산님들이 많이들 몰려 드는것 같다,

 

오전 11시 30분경 축령산입구 종점에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종점이 휴양림 앞까지 좀더 길어젔다,

버스에 내려 산행준비를 하는사이 박세욱씨 부부가 차로 도착하고..

이곳에서 서로 산행코스를 달리 하기로 했다,

 

인원이 많은 배봉팀은 휴양림에서 서리산으로 곧바로 오르기로 하고..

우리 네사람은 번잡한 휴양림 코스를 피해서

원불교 수련원 뒤로 계곡을 타고 질매재로 오르는 코스를 따라 산행 하기로 결정했다,

 

아침.. 안개가 아직도 걷히지 않은..

그렇지만 햇볕은 한여름 처럼 눈부시게 따가운 날씨다,

 

모처럼 걸음하는 서리산..

오덕수련원 뒤로 질매재로 오르는 들머리 산자락은 팬션인지 별장인지 혹 주택인지가

크게 늘어있고.. 또 계속 공사중이다,

 

누구나 안락한 동화같은 전원생활을 동경 하지만..

그것이 실제는 쉽지 않은게 현실..

부딪쳐 보아야 꿈과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것을..

 

마을을 지나는 길은 물론 산으로 오르는 임도까지도 포장이 이루워 젔다,

대체 누구를 위한 세금으로 이런 포장을 해 주었는지 모르겠다,

별장을 지었으면 그사람들이 포장을 하고 관리 하는것은 몰라도..

 

마을 길을 벗어나 산으로 오른는 임도가 굽이도는 지점에서 계곡 옆으로 지능선능 따라 오른다,

예전엔 족적이 분명하던 이길도 그간 사람들 걸음이 적어 젔는지..

희미하게 변해 버렸다,

 

지능선을 올라 임도와 맞나는 지점에서 잠시 쉼을 한후 우측으로 임도를 따른다,

임도가 산 중턱까지 이어지다 보니 차를 몰고 나물 체취를 나선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임도의 문제점중 하나가 이런 점이다,

무분별한 체집꾼들이 차로 온산들을 누비며 귀중한 임산 자원들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요즘 산에서 두릅나무와 옻나무 엄나무 허깨나무등을 이렇게 차로 밑둥부터 배어가니..

모습 보기가 귀하디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필요해서 만든 임도겠지만..

차량 출입은 철저히 통제 되어야 할것 같다,

 

 

휴양림 입구 종점에서 4~50분 질마재로 향하는 임도에 오르니 오후 12시 28분..

아직 까지는 내려쬐는 햇볕이 걷기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임도에서 본 서리산 화채봉..

 

사실 지도상 진짜 화채봉은 뒤 비금리쪽 축령지맥 쪽에 있지만..

서리산 철쭉이 각광을 받으면서 서리산 철쭉동산 부근으로 이름을 옮겨 버렸다,

 

휴양림에서 서리산 화채봉으로 오르는 지능선..

아마 배봉님들은 지금 열심히 저능선을 오르고 있을것 같다,

축령산방면 이지만..

오늘 겆히지 않는 옅은 안개로 시야는 거의 꽉 막힌 상태다,

 

 

 

햇볕이 따가운 임도를 따라서 두어번을 굽이 돌아..

임도가 U자로 크게 희도는 지점에서 좌측 지계곡으로 들어서서 계곡옆 지능선을 오르면 질매재에 오르게 된다,

 

 

질마재로 오르는 지계곡 입구에서 임도를 버리고 계곡옆 지능선을 따라 오르며..

주변의 꽃들을 대충 담아본다,

 

 

 

아직은..

 

 

 

 

질매재로 오르는 지계곡옆 산자락도 등로는 희미해 젔지만..

벌써 샅샅이 그성 체집꾼들이 이미 흩고간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이제 질마재를 지나고

산행을 시작하고 2시간 정도.. 오후 1시 42분 화채봉밑 절벽아래 도착하고..

 

 

 

오름중 전망바위에서 답답한 눈길속에 축령산을 보고..

 

 

 

 

 

 

 

 

예전.. 이능선을 오르면 곳곳에 멋찐 소나무들을 자주 볼수 있었는데..

태풍의 영향인가..?

그 소나무들이 많이 없어지거나 넘어진체 말라 죽어 버려..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오후 1시 57분 화채봉 철쭉동산에 도착하니 연분홍 철쭉이 반겨 주지만..

아차~ 다소 아쉽게도 이제 낙화를 한창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21일 서리산을 혼자올까 하다가 감악산으로 걸음하고 말았다,

24일 오늘 이곳 산행을 약속 하였기에 2~3일 사이..

그 정도는 철쭉꽃이 기다려 주겠지 싶었는데..

 

서리산 철쭉..

수도권 최고의 철쭉단지로 교통 여건이 좋아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음 하는곳..

하지만 그 산님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가장 절정기의 철쭉과 마주 대할수 있을까?

 

내가 서리산 철죽을 보기위해 걸음 한지도 십 수년..

보통은 한해 시기를 맞추기 위해 이 시기에 두어번 이상도 걸음 한적이 있지만..

사실 최 절정의 철쭉과 마주 대한것은 두어번 정도..

 

보통 서리산 철쭉의 절정기는 해마다 일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5월 5일경 부터 15일 사이에 형성되고..

대체적으론 10일 전후가 제일 무난했다,

 

하지만 올 봄..

온난화로 꽃들의 개화 시기가 빨라질 것이란 예보를 무시하고..

4월 내내 몰아닥친 꽃샘 추위로 전반적 봄꽃 개화 시기가 늦어진 상황..

하지만 일단 계절의 진행이 속도를 붙게되면 갑짜기 가속이 붙는것..

지난 15일 경에도 언제 꽃을 피울까 싶던 서리산 철쭉이..

꽃소식을 접하자 그 속도는 이렇게 빨라진 것이다,

 

원래 같은 서리산 주릉이라도 화채봉쪽과 정상쪽은 개화 시기가 조금 다르다,

화채봉이 조금 일찍 개화되고.. 이어 정상쪽으로 이동한다,

정상 부근 철쭉꽃을 기대하며 정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정상쪽으로 향할수록 낙화는 조금 줄어들고..

우리가 지고있는 서리산 철쭉제의 그 꼬리를 붙잡고 있슴을 느끼며 다소 안도할수 있었다,

 

화채봉을 지나며 휴양림 등산코스 갈림길에 이르니 무리지은 산님들과 맞나게 된다,

평일 임에도 서리산 철쭉을 찾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조금만 일찍...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연분홍의 철쭉 색조는 능선을 덮고있다,

 

 

 

 

 

 

화사한 분홍의 꽃무리속..

그래서 오늘 울님들 인증샷 요청이 잦다..

나도...

 

오늘 비금리로 내려설 삼거리 갈림길도 지나며..

 

 

무엇인가 열심히 담으시는 용대형님도 당겨보고..

 

철죽동산 표석 부근에서 낮읽은 분들을 몇 맞나고..

이어 솔내음님과 한가족 번개 산행팀과도 맞났다,

 

 

 

때가 때인가..?

오늘 아는분들 맞남이 잦다,

오늘 한가족 산님들과 함께 철죽 산행길에 나선 솔내음님도 이곳에서 맞나고..

 

서리산 정상으로 이어진 철쭉 무리도 담고..

 

 

 

오후 2시 12분.. 열심히 사진을 담으시는 모습이 너무 낮읽어 일단 담아두고..

역시.. 네이버 불친 은송이님 이었네..

이곳에서 철쭉산행을 나온 은송이님을 맞날쭐은..

반가웠습니다..ㅎ~

 

우리 한반도 모습과 비슷하긴 한것인지..?

인증샷은 남기고..

나도...

 

 

 

 

 

 

 

 

 

 

정상이 가까웠지만 정상 부근에서 다시 맞날수 있으려니 한 배봉님들은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오른 코스가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한것 같다,

 

 

 

 

 

 

 

 

 

 

 

*2013년 5월 24일 서리산 철쭉제 산행 사진방 1*

출처 : 우리 산을 걷는 나그네
글쓴이 : 캡틴 허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출처 : n 고운산악회
글쓴이 : 왕벌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터진다/ 김현숙

 

 

개나리 꽃망울

터진다

감나무에 새잎

터진다

개구리 입

터진다

놀이동산에 팝콘

터진다

아이들 웃음

터진다

 

남에서

북으로

봄, 봄, 봄

터진다

 

- 제8회 <푸른문학상>‘새로운 시인상’ 수상작

..............................................

 

 머리터럭 나고 수십 년 이 땅의 계절변화를 지켜본 바로는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덧 봄이고,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낮과 밤의 일교차가 벌어져 두꺼운 옷을 과감하게 훌러덩 내벗어던지진 못해도 낮 기온이 20도를 넘겨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보름 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코끝에서 느껴지는 봄의 풍미도 물씬합니다.

 

 봄을 마중하다보면 가장 먼저 복수초가 삐죽 올라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쁨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귀를 땅바닥에 붙이고 봄 오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지 않는 한, 복수초가 땅위로 올라오는 조짐을 눈치 채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복수초의 개화를 ‘터진다’라고 표현하기엔 왠지 어색하지요. 다음으로 이른 봄꽃인 동백꽃도 이미 2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해 이즈음 따스한 봄 햇살에 붉은 꽃망울을 활짝 다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동백을 봄의 전령이라 하기엔 좀 뭣합니다. 아무래도 봄의 전령이라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봄꽃들이 올해는 평년보다 조금 늦게 꽃망울을 터뜨릴 전망이라는군요. 개나리는 남쪽에서부터 곧 개화할 것이란 화신이 접수되었고 진달래도 하순이면 톡 터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은 그보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성미 급한 놈은 포근한 햇살을 머금고 이미 상큼한 봄을 내밀었습니다.

 

 감나무에 새잎이 터지기 시작할 때 일괄적으로 조망되는 나무의 풍경도, 나무를 품고 있는 흙빛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작은 생명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뚜렷한 변화입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이미 폴짝폴짝 활동을 개시했고요. 벌 나비 곤충들도 제 일로 분주하고 기타 등등 꽃들과 식물들도 저마다의 색을 드러낼 준비를 이미 마쳤습니다.

 

 지난 주말 나들이에서 보니 목련도 꽃망울을 한껏 머금었더군요. 머지않아 분홍빛 벚꽃도 팝콘처럼 터지겠지요. 동시에 아이들 웃음이 터지고 탄성이 터지고 환호성이 터질 것입니다. 이 동시처럼 리듬감과 생동감 있게 세상의 모든 봄이 차례로 톡톡 터질 것입니다. 하지만 ‘과다노출’로 벌금을 물리는 따위의 분통터지는 경우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없으면 합니다. 또한 그럴 리 없겠지만 대포가 터지고 전쟁이 터지는 일만큼은 절대사절입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4월의 어느날....^^**

 

봄은 만물을 소생시키고

비는 내려 신록을 예찬하도록 합니다.

 

4월의 어느날~~

우리집 식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취미생활로 하나 둘 늘어난 화분들이

제법 많이 모여서

작은 소인국을 이루고

서로간에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습니다.

 

 

 

2층집에 살고 있기에

테라스 공간(1층의 옥상공간)이 약간(?) 있어

나의 취미생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기와장과 화분,석부작 등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각각입니다.

 

 

 

홍옥,연화바위솔,돌단풍,와송 등등......

다양한 품종이 모여서 소인국을 형성하고......

 

 

 

누가 보면

잡초라고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ㅎㅎ

 

 

 

허접스러운 화분도 일부 있고

스티로풀 박스에 번식중인 녀석들도 있습니다.

 

 

 

스티로풀 딸기 박스는 번식을 위한 삽목상으로 활용을 하고......

 

 

 

삽목상에서 이식을 기다리는 송엽국&연화바위솔

 

 

 

황금조팝나무

 

 

 

돌단풍

 

 

블루베리도 화분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멋스러움은 석부작이 최고인 듯.....^^**

 

 

 

와송&연화바위솔&송엽국

 

와송은 겨울동안 납작 업드렸다가 봄을 맞아 잎새에 살이 오르고......

 

 

 

 

돌채송화&부추

 

 

 

 베란다에 아이들이 비를 맞은 후

 

 

 홍옥

 

 

 

 연화바위솔

 

 

 황금조팝나무

 

 

 애기비비추

 

 

홍옥

 

4월의 어느날

잠시 카메라에 우리집 아이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아

블러그에 간직해 봅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맑음입니다.

 

출처 : 산내들 사랑 이야기
글쓴이 : 산내들(山川野)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
728x90

 

  

    인생사 새옹지마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요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 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발 밑에 흙이 쌓이게 되고,
당나귀는 그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느날
그 곤경의 우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게 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속 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지요.
어떤 상황에서건 낙심치 마시고
불행을 행으로 바꾸시는
승리하는 당신에게로 가는슬기로운님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퐁당퐁당 하늘여울

 

반응형
LIST
728x90

 

전전날부터 날씨가 안좋아 고민하시던 어머님이

밤 11시경 친구분이신 민들래님께 전화를 하신다.

 

"나 진달랜데요 내일 나하고 같이 산에 안갈래요"

'아~~! 내일은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서 쉬고 싶었는데...'

 

아침 새벽 5시반 어머님은 벌써 도시락을 싸고

맛있는 반찬들을 이것저것 담고 계신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배낭과 등산화를

챙기고 식수와 함께 매실차 물을 만들어 담는다.

 

성북역 아침 7시 10분전 - 벌써 회장님과 부회장님

그리고 고문님 대장님들이 줄 서서 맞이해주신다.

 

"청년회장 미리미리 나와서 줄서야지..."

버스에 올라 회원님들께 인사드리고 나서

 

나도 한줄로 같이 줄서서 뒤이어 오시는

회원님들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충주 제천에 있는 월악산과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서 문경시 소백산과도 줄기를 잇는다.

 

산행전 5분동안 하는 몸풀기 준비운동은 간단히 생략하고...^^

 

도락산(道樂山) - '길이 즐거운 산' 안내돌이 우리를 반겨준다.

 

도락산 상선암 주차장에서 본 건너편 산봉우리

 

스틱을 매만지고 배낭끈을 당기고 등산화 신발끈을 조여맨 뒤 출발~~!!

 

'한총무님 배낭은 꼭 닫고 가야제...'

 

상선암까지는 승용차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타고 올라와서

우리 회원니들을 스치듯 지나가는데...예의없어 보여 괜시리 눈살이 찌푸려진다.

 

Mile Stone - 안내판 이정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꼬마들도 많이 있었다.

 

상선암 꽃밭에서 어머님도 한 컷 .... ㅎㅎㅎ

 

 

특이하게도 용이 그려져 있는 부처님을 모시는 용선암 암자

 

한 컷 찍으시는 김정주 고문님, 오늘은 나와 같이 맨뒤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사진도 많이 찍히셨다...ㅎㅎ

 

아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나무를 부여잡고 하소연 하신다...ㅋㅋ

 

이복주 꼬마이모님이 "나도 왔다 갔다고 인증샷 찍어줘~!" 하신다...^^

 

 

새로이 참석하신 회원님도 힘든 표정이 역력하시고...

 

히~~야 저 많은 계단을 언제 다 올라가누....ㅠㅠ

 

땀을 두~세 바가지는 흘리신 회원님도 계시고

 

지난번 명지산 용봉산 산행때 밑에서

찌게 끓이시느라 산행을 못하셨던

김정주고문님이 제일 힘들어

하셔서 안쓰러워 보였다.

 

"휴~ 여기서 한숨 돌리고 또 올라 가야지..."

 

 

철계단과 로프 그리고 난간은 왜이리도 많은지....^^

 

 

그래도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띄워 보내 주신다....^^

 

박성자 누님의 여유로운 포즈

 

막걸리 한잔으로 다시 한번 기운을 복돋워 보신다.

 

"안주는 여기 있응께 많이 먹어..." 하시는 마음씨 넓으신 강광숙 회원님

 

힘든 표정이 역력하신 우리 고문님....ㅠㅠ

 

그래도 바위를 넘고 또 넘고

 

계단과 구릉을 통과 하여 앞으로 전진 또 전진

"여기서 인증샷 찍고 우리는 내려갈게요~!"

그래도 20년만에 처음 오신 산행에서 절반이면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다음엔 꼭 정상까지 오르시길...^^

 

점점 더 많아지는 희한한 바위들과 나무들.....한 컷 찍어 주시는 센스 !!!

 

멋진 포즈도 취해주시고...하하하

 

 

 

저도 한 컷 찍어 주셨다....^^

 

To be Continue

(다음에 계속)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