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미국에는 언젠가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인전을 열어 보겠다는 아주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2년전 유학을 왔단다.
하지만 도미 이개월만에 한국에서 아버지가 명퇴를 당하셨고,설상가상 일년전에는 어머니께선 오랜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지금껏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라고 했다.
처음엔 자신의 생활을 위해 델리가게,비디오 가게등을 전전하며 닥치는 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매달 얼마간의 작은 돈을 한국 부모님께 송금할 수 있게 되었고,이런 기쁨들에 갑자기 돈욕심(?)이 생겨 버렸다고 했다.
적절(?)한 시기에 학교 친구의 거창한 꼬심으로 처음 입문한 화류계.
입문 한달만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이유는 그가 그렇게 몇몇년 동안 가지고 싶었던 고가의 카메라를 호스트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처음으로 돈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그 일주일동안 가장 많은 돈을 만져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단시간에 에이스가 되었으나 그 최정상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고 했다.
만취가 되어 홀로 퇴근하던 진평이.
플러싱 집앞에서 택시를 내렸는데,비틀거리는 그를 미쳐 발견하지 못한 오토바이가 그를 5m밖으로 날려 버렸다고 했다.
얼굴에 약간의 찰과상과 함께 그는 왼쪽 다리에 철심을 박아야 했을 만큼 심각한 골절을 감당해야만 했다고.
그동안 번 돈은 고사하고 이제는 빚까지 생겨 다시 열심히 시작해보려 하는데 녹녹치가 않아 참 많이 힘겨운 나날이란다.
갑자기 내 신세가 그의 서푼짜리 넋두리 위로 오버랩되길래 나는 나도 모르게 깊고 깊은 한숨을 뱉어 냈나 보다.
갑자기 진평이가 화제를 바꾼다.
하와이는 요즘도 따뜻하냐고?
거기는 일년내내 여름이냐고 말이다.
한참을 침을 튀기며 하와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갑자기 한기가 느껴져 벗어 두었던 오리털 파카를 얼른 껴입었다.
그립다,내 사랑 하와이.
2005년 11월9일
유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시냐고,녀석은 이제 좀 자리를 잡아 간다며 수줍게 제 근황도 아울러 이야기 한다.
그리고 숙소를 조만간 나올 거라고 한다.
글은 잘 쓰고 계시냐고 녀석이 묻길래 곧 완성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2005년 11월17일
집구석에서 산송장이 되어 가는 기분에,지하철을 타고 혼자 맨하탄엘 나갔다 왔다.
겹겹이 껴 입었건만 적어도 나에겐 견딜 수가 없이 추운 날씨다.
콧물을 훔치며 소호를 걷고 또 걸었다.
갑자기 멀쩡한 하늘에 천둥이 친다.
"그르렁,그르렁~"
뭔 놈의 한이 저리도 많은지.
순식간에 이 도시를 장악한 천상의 포효.
온 몸에 전율이 인다.
태양의 시선이 희미해 진다.
이제 곧 이 도시를 지배할 천둥의 눈물.
그 어디에도 피난처는 없다.
2005년 11월30일
이 모든 고통은 모두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안다. 영겁의 세월을 거쳐온 이 고통의 축제를 거쳐 오면서 불현듯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빛 하늘과 비,바람에 일그러진 내 고향,부산의 바다가 너무도 그립다. 깨달음의 방향을 향해 목표를 잃지 않고 나아 간다는 것. 깨달음의 자리에서 사물을 보고 산다는 것. 나는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의 창밖을 보고 있다.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일게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볼수 있는 만큼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의 도피였다. 이제는 좀더 멀리 떠나고 싶다.
2005년 12월24일
진평이와 함께 대목 가게를 쉬며 찾은 맨하탄의 한 클럽.
평소 동양인을 잘 출입시키지 않는 다는 이 클럽.
진평이가 거기 클럽 데스크의 한국인 여자 매니저를 잘 안다면서 멋지게 차려 입고 나오란다.
녀석이 어디서 빌려 온 메르세데스를 타고 플러싱에서 맨하탄까지 2시간을 넘겨 도착하니 가는 곳마다 주차장이 모두 만차다.
다시 한시간여를 돌고 돌다 어렵게 어렵게 스트리트 파킹을 했다.
어림잡아 500m 걸어가 도착한 클럽, 뱀의 또아리같은 줄이 한 300m는 되는 것 같았다.
진평은 그 긴 줄에 벌써 주눅이 든 나를 이끌고,그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며 입구 데스크로 다가 갔다.
험상궂은 거구의 경호원들이 우리를 보고 인상을 한껏 지푸려 주신다.
다행히 그녀는 금방 나와 주었고 우리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어깨를 우쭐거리며 그 300m의 줄을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있었다.
낡은 고성당을 개조해서 만든 이 클럽은 외관도 훌륭했지만 클럽 내부는 정말 Amazing이였다.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 시스템이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길 한층 고조 시켰고,곳곳에에 배치된 엄청난 크기의 스피커들은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안내하기에 충분했다.
무대에는 반라의 무희들이 쉬지 않고 우리의 혼을 빼 놓는다.
2층 구석 바에서 연거푸 맥주를 홀짝이던 우리는 취기가 오르자 용기를 내어 그 엄청난 인파를 뚫고 1층 무대 중앙으로 나가 보았다.
오늘따라 동양인이 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음악이 최고조를 향해 가며 조명들이 미쳐 간다.
그때 하늘에서 비누방울이 쏟아 진다.
이젠 광란의 도가니다.
나도 흥분에 겨워 폴짝 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때 누가 뒤에서 툭하고 치는 느낌이 든다.
비좁은 공간이라 실수려니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방향에서 조금 더 센 강도로 누가 툭하고 내 옆구리를 친다.
그제서야 나는 양옆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번에 또 내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가 내 허벅지를 걷어 찬다.
그제서야 느낌이 왔다.
나는 순간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 왔다.
서둘러 진평이를 찾았다.
조금 떨어진 곳의 진평이를 보니 그 역시 완전 울상으로 나를 쳐다 보고 있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서히 무대를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어 나오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툭툭 치는 무수한 손과 발들.
이제는 대놓고 손가락 질을 하며 낄낄 거리는 무리까지.
공포가 극에 달했다.
다리가 풀려 주저 앉을 것 같고 어떻게 숨이 멎을 것 같은데도 꾹꾹 참으며 클럽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무수한 까만 아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대놓고 우리에게 욕을 하는 그들.
뛰기 시작했다.
병을 던진다.
그 어디에도 우리편은 없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 주차한 곳에 도착하니 차는 온데 간데 없고 쓸쓸히 토잉 티켓 한장이 우리를 반겼다.
Thank you for Gotham City.
God bless America.
Merry Merry Christmas.
2005년 12월27일
눈이 부시게 화려하고 목이 아프게 거대한 전광판들과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엄청난 인파들로 언제나 주눅 들던 타임 스퀘어.
오늘 그 별천지 안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 들고서 나는 철저히 혼자를 즐겼다.
그리고 고고히 번쩍이는 저 높은 곳의 삼성과 LG전광판에게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나도 한국인이야, 나도 한국사람이라고!"
2005년 12월31일
심하게 몇일을 앓아 누웠다.
가게 출근은 고사하고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겨우 몸을 추스리고 추스려 이곳저곳 오늘 문을 연 병원을 물색하다 한 동네 한의원을 발견했다.
택시를 타고 어렵게 그곳에 도착.
기다림없이 진료실에 들어 가니 허준 전광렬같이 아주 진지하게 생긴 할아버지 의사가 나를 반긴다.
2005년 5월5일 오늘 초초형이 한국으로 돌아 갔다. 이곳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어져 더이상은 버틸 여력이 없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사람이 너무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2세가 가지고 싶다고 했다.
힘없이 웃고 있었지만 그동안의 그의 마음 고생이 엿보였다.
처음 한국에서 올 때와 달리 확연히 야위어 버린 초초형. 가슴이 짠하다.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미국이란 사회는 언제나 많은 그물을 자유로이 방치해 둔다.
모든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다.
그물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던지 아니면 스스로 그물 치는 자가 되던지.
네 자신을 믿어라.
사자는 결코 울지 않는다.
다만 포효할 뿐이다.'
세번쯤 읽고 나서 결심했다. 떨을 끊기로 그리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말이다.
끝까지 많은 것을 남기네,초초형. 건강히 잘 지내세요. 늘 감사했습니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더니 그가 없는 거실이 너무도 쾡하니 비어 보였다.
2005년 5월8일 지오는 거의 지난 육개월동안 초상위권 선수였다. 그런데 요즘 많이 힘이 빠져 가는 모습이다. 가게 결근도 잦고 운동도 거의 하질 않는다. 가게나 손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아 무슨 일이냐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우물쭈물 하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몇년전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시고 지금 어머니께선 한국에 계시는데 이번에 재혼을 하신다는 것이다. 좋은 일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이제까지는 그저 엄마였는데 이제부터는 다른 여자가 되는 것 같아 많이 많이 쓸쓸한 기분이라고 했다. 이해할 것도 같았지만 참 알쏭달쏭한 시제임엔 틀임없는 것 같다.
2005년 5월14일
가게에서 손님 머리채를 잡아 흔들던 우빈형.
현장에서 사장에게 들킨 그를 끝까지 우리가 꼭꼭 감쌌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임을.
2005년 5월15일 스승의 날이다. 나는 이곳에서 참 많은 스승을 만났다.
따뜻함과 어우러진 진짜 강인함을 가르쳐 준 레오형.
괴짜 도인같았던 초초형.
잃어 버렸던 순수함이란 느낌을 다시 되짚게 해 준 지오.
그리고 나에게 빚갚기 이외의 목표를 심어 준 우빈형.
그래,우빈형은 내 심장을 뛰게 해준 엄청난 스승이다.
그런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그도 이런 일을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의 하이드 역시 나처럼 아주 흉물스럽고 혼란스럽다.
내 본명도 철종,그의 본 이름도 철종.
나도 그가 될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순간 갑자기 그를 뛰어 넘고 싶다는 생각이 아슬아슬하게 내 전신을 휘감아 왔다.
청출어람이란 사자성어도 있지 않던가!
2005년 5월17일
열흘이 넘게 계속 떨을 피지 않고 있다.
눈뜨고 있는 시간은 거의 운동뿐이다.
점점 강해지는 나를 느낀다.
2005년 5월20일
이번달도 우빈형이 에이스.
그럴만한 사람이다.
나도 더욱 기합을 넣어야 겠다.
2005년 5월21일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에이스였다.
오늘 총 세 테이블 중 내가 메인으로 들어간 방이 두개.
게다가 우빈형의 스코어는 제로였다.
2005년 5월23일
난 초이스로만 두방.
우빈형 지명 하나.
2005년 5월25일 나를 찾는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 가며 우빈형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곳곳에서 느껴 진다.
여긴 아프리카.
정말 정글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기분이라면 우빈형의 본격 추격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실패할까 두려워 지기도 하고,성공하는게 옳을까 하기도 한다. 요즘은 온통 그러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질주하는 것에 미치는 이유는 그것이 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 않을까.
2005년 5월28일
매일매일 유신이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부터 아련한 꿈같았던 일들.
유신이에게 영화를 만들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잠깐만 기다리라며 아직 정리를 다하지 못한 그의 트렁크를 이리저리 뒤적인다.
그러더니 나에게 불쑥 내민 한편의 DVD.
City of God란 처음 보는 영화였다.
자기는 스무번이 넘게 봤다며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뭔가 새로운 에너지들에 온 몸이 꿈틀거림을 느겼다.
2005년 5월29일
도현이가 아주 오랫만에 가게를 찾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혼자였다.
그리고 쓸쓸해 보였다.
지오가 가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찾았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우리는 지난 모든 이야기들을 살갑게 풀어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나의 못난 오해들과 걱정들은 어느새 형체없이 분해되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낮선 자리에서 낮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 준다면? 다정하게 얘기라도 몇 마디 걸어준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진다.
2005년 4월24일
오늘은 내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삶을 허락받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내 삶은 바로 삼십년전 오늘에서 시작되었다. 생이란 눈부신 선물을 받았기에 사람살이가 빚어내는 수많은 기쁨과 행복,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서른살이 되었다.
삼십년 전 오늘.
하루종일 가슴 졸이고 애 태우셨을 아버지. 두려움과 기대로 출산의 고통을 이겨 내셨을 어머니. 정말 고생하셨을 두 분께 나즈막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05년 4월25일
눈을 뜰 때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겠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내가 맡은 일에 온갖 사랑을 쏟아서 작품을 완성 시키듯 의미를 창조해내고,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늘 아이 같은 호기심을 갖고 흥미롭게 대하며,새로운 도전을 즐기며 살아가야 겠다.
2005년 4월27일
맙소사!
우빈형이 자다가 벌떡 일어 나더니 냉장고 문을 열고 오줌을 쌌다.
요즘 상태가 점점 안좋아 진다.
2005년 4월29일
꿈을 꾸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몽상가의 고집스런 억측도 아니고,패배자의 마지막 미련도 아니다. 희망이란 놈이 가져다 주는 쓰디 쓴 고배를 이미 수차례 경험한 나이지만 그래도 꿈을 꾸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꿈을 꾼다. HIT AND RUN
그래도 나는 아직 젊지 않은가.
끊임없이 나를 연마한다. 그 어떤 순간이 와도 난 흔들리지 않고 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믿지 않기로 했다. 이제 인간에게 그 어떤 댓가를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의 롤모델이였던 우빈형이 점점 변해 간다.
점점 눈빛이 틀려 진다.
날이 갈수록 우리들에게 손님들에게 난폭하게 변하고 있다.
내가 존경하던 그 사람은 저런 모습이 아니였다.
그가 내게 가르 친 것은 이런 모습들이 아니다.
나무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지나가는 바람결에 내 볼을 부비며 기도했다. 오늘 아침,찬란한 저 햇살에 온몸을 맡기며 되뇌였다.
"그 어떤 시련에도 난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난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라고."
동행없이 가는 끝이 없는 이 가시밭 여행길.
다시 한번 낡은 신발 끈을 꽉 조여 본다.
2005년 5월3일 유신이란 79년생 동생이 오늘 새로이 우리 숙소로 들어 왔다. 올해 초 멕시코에서 점프해 L.A에 잠시 한두달 있다 뉴욕으로 갔는데 생활이 너무 힘들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와이로 왔다는 것이다. 옛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키가 멀대같이 크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길래 너 한국에서 뭐 했니 라고 물어 보니 영화를 했단다. 당연 배우였겠거니 생각했는데 감독이였단다. 서울 유명대학 영상학부에 다니던 친군데 작년에는 서울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경력의 실력자였다. 너 그럼 계속 영화하지 여기 왜 왔어 라고 물었더니 친형이 집에 있는 돈 모두 끌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주 심각히 망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물론이고 학교까지 그만 다녀야 될 형편이 찾아왔다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우유 배달,신문 배달 모두 다해 보았지만 도저히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인터넷 서핑중 미국에 L.A지역에 있는 호스트 광고를 보고 미국여행이라도 하자 싶어 이 업을 택했다고 했다. 너도 앞으로 긴 여행을 앞두고 있구나 생각하니 -갑갑한 지금 내 사정은 생각치도 못하고- 녀석에게 살짝 측은한 마음이 들길래 멋적었다.
몸도 아팠고,마음도 아팠고,그동안 많이 힘들었었다. 이제 힘을 내야겠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지난 과거를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지 못한다고 해도,그 기억으로 인해서 내가 남몰래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해도,적어도 이제부터 내게 닥치는 매 순간만큼은 진짜 가슴으로 살고 싶다.
2005년 3월9일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참으로 좋아한다. 필시 소리는 귀로 듣게 되는데 마음이 씻기기도 하는 걸 보면 머리와 마음과 가슴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이리라.
갑자기 유끼짱의 '달콤의 비의 냄새'가 떠올랐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 전혀 뜻밖의 뭔가가 마음으로 휑하니 들어올 때가 있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겨우 비스듬히 웃고 있었는데 배 아래에서 똑똑 쳐주는 웃음이 나오길래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2005년 3월10일
오피스라는 여자바에서 단체 손님이 왔다.
나는 제시라는 샤넬걸 옆자리를 차지했는데 그곳의 에이스라고 했다.
저마다의 머리속에 저 멀리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대개 가까이 갈 수 없다고 짐작하는 像이 있다.
나는 너무도 당당한 제시옆에서 자꾸만 주눅이 들었으나 '할수있다,괜찮다.'는 주문을 천번쯤 되뇌이고서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는 절벽끝임을 자꾸만 주입시키니 거만한 그녀에게 오기가 생겼다.
세상엔 참으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듯 하지만 결국엔 몇 십가지 정도의 유형밖에 없기도 하다. 아주 오랜 애초에 지금의 이렇게 많은 색깔을 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빚어낸 색깔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빨강색,파랑색,노랑색..
제시.그녀의 색깔은 확실한 빨강이였다.
가게가 마친후 그녀의 집으로 같이 가자며 스스럼없이 나를 이끄는 제시의 손.
나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2005년 3월11일
오늘 제시가 홀로 가게를 찾았다.
물론 지명은 나였다.
한달동안 줄곧 가게에 와주겠다고 했다.
신나게 술을 퍼부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가게 영업이 끝난 뒤 그녀의 집으로 자연스레 동행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뒤에서 여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솔직히 욕도 해보았다.
속이 후련해 왔다.
뭔가 아직은 몸에 딱 맞지 않는 어색한 옷이였지만 새로운 고지 하나를 점령한 것 같다.
2005년 3월15일
제시와 요즘 흠뻑 빠진 역할놀이.
처음엔 내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걸까?
내가 변태가 되어 가는 것일까?
솔직히 꿈꿔 왔던 일이나 두렵고 살짝 겁도 났었다.
헌데 이건 무슨 테라피같다.
영혼의 테라피.
내 진실의 테라피.
이렇게 솔직한 시간은 처음이다.
단지 말을 하는 것 뿐인데,참 종이 한장 차이였다.
조만간 카타르시스란 것을 경험해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2005년 3월21일
“더러운 물을 퍼내려면, 더러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손에 더러운 물을 묻혀야 한다는 것” 많은것에 도전해 보고 싶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어느 여배우의 자살에 잠시 죽음이란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음이란, 세상과의 이별이 슬프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아닐까. 어느 시점에 있던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겠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드니 미래를 만들어 가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내 마음에도 여유로운 봄이 온다면 좀 더 열정적으로 살아봐야 겠다.
2005년 3월29일
제시는 이제 그만 만나야 겠다.
과도한 음주와 섹스에 자꾸만 몸이 축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만남이 거듭될 수록 주체 할 수 없이 공허해진다.
2005년 3월30일
인연이란 내 숨소리와 함께 호흡한다는 것과 내 심장 박동에 어울리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내 심장을 당기기도 하고 어떤 것은 숨을 죽이게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한번은 내 숨소리, 박동과 닮아야 하는데 간혹 이러하지 않은 것들로 인한 새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더라.
그렇게 배가 아플만큼 가슴이 싸~ 해지고 나면 상처입은 그것은 그 깊이만큼이나 두꺼워 진다. 단단해지고 또 풀어져 허물허물해지기도 하겠지만 어쩌다 그러지 못하게 되고 나면 살아가면서 이젠 이 감정을 느끼지 못할만큼 썩어 굳어 질지도 모른다.
감정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불쌍한 일이 되었다.
2005년 4월1일
거짓말처럼 몇개월만에 처음으로 도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오늘이 만우절이라 누군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너무너무 기뻐서 숨이 가빠왔다.
집에 와서 지오 얼굴을 보니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난 오늘 역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고,그 어떤 것도 물어 볼 수가 없었다.
2005년 4월4일
오늘 나이 지긋한 할머니 손님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떻게 서브를 해야 할 것인가 참 많이 고민했다.
이런 말들은 너무도 뻔한 멘트이니 삼가하자,이런 말들은 너무 가벼우니 어울리지 않아.
이 말은 진심이 아니니까 하지 말자..등등
나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옭아맨다. 다른 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대개 너무 멀리 그 쪽으로 가는 버릇이 있다. 해서 가운데 서 있기도 어렵거니와 가운데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호스트는 무엇일까?
아주 원론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말았다.
심히 복잡한 심경이다.
2005년 4월9일
불신의 상처는 아주 지독하다.
"도현아 넌 여전히 나의 말을 믿지 않는구나." 오늘 통화끝에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이였다.
그 사람을 믿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기술'은 어떻게 해서 배우게 되는 것일까?
여전히 불안해 한다.
이제 할 말을 다 했다고 하고 아예 잊어 버린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가까이 지낸 오래 된 거. 때묻고 거칠었던 기억.
오늘처럼 또 이런 저런 말들로 싸우거나 헛되이 되풀이 하지 않더라도,굳이 나만의 비밀을 내뱉지 않더라도, 저 먼 별빛을 올려다 보고 있자면 필시 늦은 밤 저들이 나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