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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21일
두꺼운 안경은 예전에 벗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후 한달동안 매일매일 달린 결과로 오늘까지 총 6kg감량에 성공했다.
나는 꼭 달라 질테다.
나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2003년 9월22일
금방 전화를 주겠다던 하와이에서 오늘에서야 전화가 왔다.
비행기 티켓팅은 해주나 전도금은 좀 곤란하다는 것이다.
가슴이 일순간 서늘해 졌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티켓팅만 조속히 부탁드린다고 거듭 이야기를 했다.
 

2003년 9월23일
그래,결심했다.
나도 안다,이 얼마나 치졸하고 야비한 인간 쓰레기의 행동인지 말이다.
몇천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이번에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로 했다.
딱 한번만 눈 감자.
나중에 다 갚으마,나중에 내가 벌어서 꼭 다 갚으마.

오늘밤이다.
제프리와 나는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당겨 쓴 전도금과 이곳에서 늘어난 빚,총 5000불을 남겨 두고,야반도주를 결심했다.

들키면 어쩌나,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잡히면 아마 사장형은 나를 총으로 쏴 죽일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나는 이곳에 넘어 온 기록도 없는 점프자이다.
이 큰 땅덩어리에서 나하나쯤 죽이는 것은 예삿일도 아닐 게다.

별의 별 상상에 벌써부터 심장이 멎는 듯 해서 우황청심환 생각이 자꾸 났다.

돈이 없을땐 별게 다 먹고 싶다.

 

 

2003년 9월24일
오늘 우리 둘은 휴무를 잡았다.

다들 출근한 새벽 한시.

얼마되지 않는 옷가지를 재빨리 꾸려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자꾸만 들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누구도 다시 돌아 올 일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그랬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맨하탄까지 택시를 타고 나왔다.

가게 근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밑에서 잠시 서성이다 급히 다른 택시를 갈아 타고 Newwark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사장형 눈치가 빨라 혹시 모를 미행을 대비해 일부러 맨하탄까지 가게 가는 척 나온 것이다.
공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만 이제부터가 또 걱정이다.
나는 내 여권에 비자가 없다.
그런데 신분증도 패스포트밖에 없다.
고로 비행기를 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더이상의 선택권이 없다.
잡히면 그냥 눈 딱 감고 수감소 살다 조속히 강제추방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정말 도박이다.
하지만 내겐 더이상 그 어떤 선택권도 없다.

 

 

2003년 9월25일
기적처럼 나는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검색원은 그저 내 여권 제일 첫장의 사진만을 내 실물과 대조할 뿐 비자가 붙어 있어야 할 뒷장은 넘기지도 않았다.
천운이다,이번 하와이행은 정말 예감이 좋다.

완벽한 New Guy가 되는 거다.

절대 그 무엇에도 기죽지 말자.

주문을 외고 또 외웠다.

 

그리고 13시간의 비행시간동안 제프리와 나는 그동안 못나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1977년 11월19일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태어 난 그는 저날 이후 곽홍식란 이름을 얻고 이년이 채 안되어 미국 텍사스의 달라스란 곳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갑자기 제프리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기억은 아예 없다.
그가 생각하는 그의 모국어는 영어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생활하는 그의 부모님의 영어는 형편없었다.

이상하고 이상했다.
그런 부모님에게서 한국어라는 것을 배웠다.
밖을 나가면 누구도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그래서 점점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짜증나고 싫어 졌다 했다.
초등학교를 들어 가며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알게 되며 처음 혼란이 찾아 왔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한국인?미국인?
둘다 아닌것 같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 호스트라는 직업을 시작하기 전 살아가며 만난 그의 친구 대부분은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이곳에서 태어난 하얗고 혹은 까만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제프리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순수히 그들의 친구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수없는 괴리감을 느꼈고 은근한 차별도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중학생이 되며 점점 더욱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럴때면 그는 그가 속하고 싶었던 소위 주류 그룹에게는 극한의 슬픔의 용기로 무장한 커다란 허세로 그의 존재를 부풀렸다.

그가 인정하기 싫었던 곰보엄마같은 한국이란 존재에게는 시간이 지날 수록 메달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차마 보일 수 없는 나즈막한 신음을 되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인하는 모습으로만 일괄 대변하며 여태껏 감추고 살았었다 했다.

제프리는 어려서부터 동생과,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 이민 후 지금껏 평생 해오신 페인트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런데 열여덟살이 되던 해 무더운 여름 어느날.

 그 페인트 냄새가 갑자기 너무 역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도 역시 아버지가 엉터리 액센트로 바락바락 백인들과 싸우는 모습이 너무도 진절머리가 났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두살 어린 친 남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주변에 신세가 비슷한 또래 한국친구들과 함께 갱단을 조직했다고 했다.
형님들을 만나며 규모가 커져 갔다.
그는 거의 매일매일을 다른 외국 갱단과 싸움을 하였다고 했다.

그런 류의 싸움은 거의 인종적 자존심때문에 벌어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각종 누구를 막론하고 원하는 모든 이에게 마약을 팔았다 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어떻게 해서든 늘 아버지를 무시하던 그 하얀인간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 가고 싶었다.
아니,그들을 끝까지 인정해 주지 않는 그 인간들을 어떻해서든 뛰어 넘어 보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어느 정도 그 바닥에서 자리도 잡았다.
그런데 어느날 클럽에서 약에 쩔은 백인 꼬마 녀석들과 거래를 하던 중 사건은 일어 났다.
약을 받고 뒤돌아 서며 그를 원숭이같이 생겼다며 빈정거리던 그 꼬마 녀석들을 그 자리에서 죽을 만큼 때리고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제프리가 박진영을 많이 닮았다.-
경찰 사이렌 소리를 뒤로 하며,그렇게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도망쳐 왔다고 했다.
예전부터 약 수급문제로 잘 아는 한국 갱단 형님에게 연락을 취하자,친구가 운영하는 한국 호스트 클럽이라는 곳에 잠시 숨어 지내라 했다고.
그렇게 완벽한 한국 커뮤니티에 속해 보기는 태어나 처음이였다라고 했다.
한국말도 잘 못해 매분매초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와중 멕시코에서 넘어온 나와 룸메이트가 된 것이다.

매일매일 싸워가며 한방을 쓴 몇달동안 한국말이 부쩍 늘었다면서 내게 고맙다고 어깨를 툭 친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 보니 귀신에 홀린 것처럼 L.A에서 뉴욕으로 대륙횡단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 뉴욕을 야반도주하여 하와이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를 모두 해주는 제프리가 지금 내 곁에 있는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이 친구도 가슴에 한이 참 많은 인간이구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동변상련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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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3일
나는 점프로 들어 온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다.
그래서 비행기는 탈 수가 없다고 한다.
혹시 내 여권에 비자가 없다는 게 발각이 되면 나는 한국으로 강제추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까지의 대륙횡단을 결정했다.
어쨋거나 이곳을 벗어 나야 한다.
제프리가 렌트카를 알아 보고 왔다.
헌데 돈이 없다.
이곳에 값을 돈도 아직까지 얼마가 남아 있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2003년 8월5일
뉴욕 가게에서 부탁했던 전도금이 도착했다.

제프리의 힘이 컸다.
서둘러 가게 빚을 정리하고 가장 싼 VAN을 렌트 했다.
갑자기 '신밧드의 모험'이 떠 올랐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또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2003년 8월10일
43시간동안의 대이동.
우리는 그렇게 대륙횡단의 신기록을 그 좁은 밴안에서 세웠다.
CALIFORNIA→ARIZONA→NEWMEXICO→TEXAS→OKLAHOMA→MISSOURI→ILLINOIS→INDIANA→OHIO→PENNSYLVANIA→NEWJERSEY→NEWYORK
총 2956마일.
거의 3000마일의 거리,열두개의 주를 무박3일동안 돌파.
주유하고 식사하는 시간만 빼고 운전을 했다.
다음에 다음에 찬찬히 모두 다시 내 두 눈에 고이 담아 주마 다짐하고 다짐했다.
쉬지도 않고 번갈아가며 열몇시간씩 운전하느라 너무도 고생한 제프리에게 가슴으로 따뜻한 우정을 건낸다.

 

그리고 소감 한자락. 

미국.

참 넓다.

이렇게 큰 땅이 있으리라고는 이런 감흥은 예전에 상상도 못해 보았다.

달리는 내내 하늘끝과 땅끝을 볼 수가 없었다.

실로 가슴 벅찬 엄청난 경험이였다.

 

2003년 8월14일
집착이였고 욕심이였다.
그렇게 며칠밤을 끙끙 앓고서야 내린 결론이다.
그래,미련없이 털자.
쓴 웃음만이 공허하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도 나는 L.A에서 많은 것들을 깨우치고 떠나왔다.
타국에서 바라본 내 조국의 알몸.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척박한 현실.
앞으로 새롭게 각색해 나가야 할 나의 인생.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많은 젊은 몽상가들에게로의 충고.
처음 미국땅을 밟고는 가게 일은 힘이 들어도,철없는 아이처럼 마냥 신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베버리힐스,할리우드,선셋.
그 밤거리를 걸으며 한국에서 부터 워낙 말로 많이 듣고 영상으로도 자주 본 장소에 나의 `실물'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허나 나는 이곳에서도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저 화려한 거리속 어디에도 나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융화되고 흡수되기는 커녕 점점 더 동떨어져 가는 낮선 이질감만이 얼룩졌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개월남짓한 시간을 보내면서 난 무언가 가슴속에 해소되지 못하고,소화되지 못한 큰 덩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우리의 사회,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고,내 삶이라는 것이다.

 참 난제다.

 

2003년 8월15일

꿈의 도시 뉴욕.
맨하탄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난 전쟁을 예감했다.
쉴새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
거리거리마다 넘쳐나는 사람들.
확실히 L.A의 그것과는 확연히 틀렸다.
날씨의 변화가 무딘 L.A에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느슨해지기만 했는데,이곳은 전장(戰場)이다.
어둡고 컴컴하고 냄새나는 맨하탄의 지하철역을 사랑한다.
나는 이곳 맨하탄에서 또다시 비상을 준비한다.

 

 

2003년 8월16일
흔히들 "뉴욕"이라고 부르는 곳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뉴욕시"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뉴욕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뉴욕스테이트를 얘기하는지 뉴욕시에 대해 얘기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뉴욕시는 다시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진다.
Bronx, Brooklyn, Queens, Manhattan, Staten Island.
그리고 바로 뉴욕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이 실리거나 보여지는 곳이 이 5개 구역중에서 맨하탄(Manhattan)이라는 곳이다.
이 5개 구역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그렇게 불리어 지는 곳이다.
흔히들 County 라고도 하는 곳인 것이다.

 

 

2003년 8월17일
눈을 뜨니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시덥잖게 눈물이 흐른다.
비오는 뉴욕의 거리와 건물들이 갑자기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비오는 편의점에서 분위기 있게 차 한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밖으로 나가 창이 큰 세븐일레븐에서 빗소리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잔잔한 스팅의 음악.
그의 중저음의 나직한 톤을 좋아하기로 했다.
편의점 한구석에 아주 오래된 포스터가 한장 걸려 있었다.
제임스 딘이 외투 깃을 세운채 담배를 비스듬히 물고 비오는 뉴욕 타임 스퀘어를 걸어오는 모습.
이 오래된 사진 한장처럼 우리의 기억은 아이콘들로 가득 차 있고 그 배후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가끔 음악보다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람의 마음보다 살갗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집에 돌아와 비가 왔던 하늘을 보니 어둡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믿고 싶지 않다.
뒤돌아 보고 싶지도 않고 더이상 젠장할 눈물을 흘리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오늘 뉴욕에서 처음 비를 맞았다.

 

 

2003년8월22일
뉴욕에 도착한 이후로 돈을 하나도 벌지 못했다.
일주일동안 첫날만 단 한 테이블의 손님이 있었다.

우리 가게는 맨하탄에 있는 유일한 한인 호스트바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판이였다.
대부분의 룸싸롱은 플러싱에 있고 그들은 그 지역 호스트바를 찾지 굳이 40~50분을 달려 맨하탄까지 잘난(?) 우리들을 보러 오지 않는 것이다.
끝임없는 고난이다.

 

 

2003년8월23일
사장한테 외모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받았다.
하루종일 거울을 보았다.
안경을 벗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조금 느꼈다.

난 불평불만뿐인 돼지 안경잽이,최악의 호스트였다.

그래,그랬었다. 

이제 알겠다.

사장말대로 나는 백돼지다.

 

2003년8월27일
어머니 생신이다.
다른건 아무 것도 해드릴 수가 없었기에,어제 그저 축하 메일 한통을 보냈을 뿐이다.
어머니에게서 답신이 왔다.

 

보낸날짜 2003년 08월 27 10시 31분 53초 +0900 (JST)
철종아
네 메일을 보았다
이제 정말 뉴욕에서는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열심히 하여서
너도 이렇게 건실한 일에 정상적으로 열심히 살수있다는 것을 보여다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니 더더욱 좋구나

엄마는 다음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않다
굳이 태어나야 한다면 바람이고 싶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바람이고 싶다
내가 죽어도 화장을 해서 바람에
훨훨 날려 보내 주었으면 한다
어디에도 다시는 메이고 싶지 않다
이런 참담한 삶을 절대로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

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엄마의 말을 명심하여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여 실력을 기르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몸도 만들고
마음도 새롭게 다시 태어나 진실되게 살아라
엄마를 진실로 생각한다면 엄마의 이 말들을
네 평생의 지침으로 간직하고 살아라

그래도 네가 이제 새롭게 새길을 잘 걸어가는것 같아
엄마도 마음이 좋구나
엄마의 지금까지의 이 어려움을 갚아주는 것은
네가 건실한 삶을 안정된 삶을 살아주는 것이다
몸조심하고 마음 흐트려트리지말고
단단하게 잘지내거라

 

몇십번이고 되 읽었다.
나는 어머니께 뉴욕에서 델리가게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영어학원도 다니고 있다고  또 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 메일을 연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통한의 눈물은 몇시간이고 그칠 줄을 몰랐다.

 

 

2003년 9월3일
미국 오기 직전 헤어진 주희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Creep
-Radio head

When you here before
네가 이곳에 있었을때

couldn't look you in the eye
난 널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어.

You're just like an angel
넌 정말이지 천사같은 존재야.

your skin makes me cry
네 모습만 봐도 난 울게 돼.

you float like a feather in a beautiful world
넌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속에서 깃털처럼 떠다니는데 말야.

i wish i was special
나도 특별한 놈이었으면 좋겠어.


you're so fucking special
넌 정말이지 끝내주게 특별해.

but i'm a creep
하지만 난 흉물스러운 놈이야.

i'm a wierdo
미친놈이라구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빌어먹을,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i don't belong here
난 이런덴 어울리지도 않는 놈인데 말야.

i don't care if it hurts
상처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i wanna have control
자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i wanna perfect body
멋진 놈이 되고 싶어.

i wanna perfect soul
속알맹이까지 완벽한 놈이 되고 싶다구.

i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내가 없을때 네가 그걸 눈치챌 수 있다면 좋겠어.

you're so fucking special
넌 정말이지 환장하게 특별한 존재야.

i wish i was special
나도 그래봤으면 좋겠어.

but im a creep
하지만 난 변태같은 놈이야.

im a wierdo
미친놈이라구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하는걸까.

i don't belong here
난 이런 곳엔 어울리지도 않는 놈인데.

she
she's running out again
she's running out
she run run run
그녀가.. 그녀가 또 달려나가고 있군. 달려나가고 있어.
그녀가 달리고 있어.. 달려..

whatever makes you happy
너를 기쁘게할 그 무엇이라도 있다면

whatever you want
너가 원하는 모든 것을..

you're so fucking special
넌 그렇게 특별한 존재니까.

i wish i was special
나도 그렇게 특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여기서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냐구.

i don't belong here
i don't belong here
난 이런데 있을만한 놈이 아니야.
여긴 나와 맞지 않는 곳인데...

 

 

2003년 9월6일
나쁜 소식은 여전히 손님은 없고 빚은 점점 늘어만 간다.
좋은 소식은 2kg감량에 성공했다.
내일도 죽어라 뛰어야 겠다.

그리고 동네 개들이 그만 좀 짖어 줬으면 좋겠다.

 

 

2003년 9월9일
이겨내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길고 험난한 길을 달려 왔던가.
견뎌내야 한다.
"직장상사가 마음에 안든다고 언제나 도망칠래?"
누군가의 따뜻한 충고 한마디에 기억의 촉수를 더듬어 본다.
상대방의 흠집찾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지난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추악함을 반성한다.
나를 포기하고 쓰러지고 싶었던 나약함.
그런 몇번의 강렬한 유혹에 흔들렸던 날.
눈물로 반성한다.

언제나 허황된 계획들을  입버릇처럼 주절거려보지만 언제나 나의 각오는 그 끝이 휘어져버린 한여름날의 사탕수수같은 것이였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졌던 긴장국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정말 날카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짜 각오가 필요하다. 

내가 무너지면 내 가족 모두가 무너지는 것이다.

어금니가 바스라지도록 이를 꽉 물었다.
 

2003년 9월11일
내 눈에 비친 요즈음의 뉴욕의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만 가득차 있는듯 하다.

언제나 내가 잊고 있었던 평범함.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들을 존중한다.
이제는 그들의 끈끈한 사람냄새를 맡고 싶다.

 

 

2003년 9월13일
'그래,날자, 날자,제발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가게 옥상에서 담배를 피다 하마트면 뛰어 내릴 뻔 했다.

그래봤자,5층이였지만 말이다. 

 

2003년 9월16일
한달동안 한 방도 보질 못했다.
내가 못난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오픈 가게가 한달동안 총 테이블 다섯개도 받지 못한 것은 더 큰 문제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제프리와 함께 있는 돈 없는 돈을 털어 32가 감미옥에서 설렁탕을 한그릇 먹고 나오는데 한인 정보지 '교차로'가 벤치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생각없이 이리저리 뒤적이는데 재미있는(?)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하와이 여성전용 클럽 아프리카
선수모집 00명
808-688-6550

 

그순간 제프리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그곳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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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1일

 유수의 한국 언론들에게 이런 우리의 사정을 메일로 띄워 도움을 요청했다.

녀석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다.

 

초이스는 여전히 안되고 있고 그나마 깍두기(Helper)로 하루 평균 50불씩은 벌고 있다.

매일 매일 치욕의 나날들이다.

그래도 오늘 그동안 꼬깃꼬깃 모은 300불을 통역관을 통해 두 동생들에게 넣어 주었다.
 

2003년 6월9일
 오늘 드디어 한곳에서 답신이 왔다.
MBS `시사수첩 SOS'팀이였다.

 

2003년 06월09일 저녁 8시 44분 30초 +0900
죄송합니다.
저 나름대로 그리고 데스크진과 상의하느라 답변이 늦었습니다.
출발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단 다음주 일요일 방송에 다른 아이템을 하기로 하고,
오늘부터 부랴부랴 착수에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섭외가 잘 안됐을 경우 현지에 가서 자칫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입장에서는 해외 출장비가 부담되는게 현실입니다.
몸조심하시구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갑자기 내가 누구인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

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내가 속해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는 어디엔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길래,우리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 모두가 우리를 외면 하는 것일까?
나는..우리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쓰레기인가?!

 

 

2003년 6월30일
남성접대부.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이른바 우리같은 선수를 비교적 점잖게 풀이 해 놓았다는 우리말이다.
아주 상스럽다.

퇴폐적이다.

이런 우리 남성접대부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그네들이 만든 저 이름처럼 상당히 곱지 못하다. 
 

하다못해 몸 파는 여자에게도 싸구려 동정은 있다.
그러나 우리 남성접대부는 막말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을 뿐이다.

남성접대부가 과도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남성중심 사회의 집단적 질투심 때문이다.
남성 자신들은 유흥과 매춘문화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애인, 누군가의 부인 하다못해 술집여자라 해도 나아닌 다른 남성과 놀아나는 꼴은 보기 싫은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접대부는 같은 남성이지만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이유는 돈도 벌고 재미도 볼 수 있다는 순진한 선입견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호스트의 현실은 어떨까.
영혼이 아닌 젊음을 담보로 삶을 갉아먹는 가장 밑바닥 직업에 불과할 뿐이다.
그나마도 한번 발을 딛는다면 빠져 나오기 힘든 세계다.

 

나는 우여곡절끝에라도 어쨋거나 미국땅을 밟았다.
물론 힘겹고 고통스러운 불법 체류자 최악의 호스트의 현실이다.
하지만 수감된 내 동생들은 MMC의 생활이 교도소보다 더 열악하고 하루하루가 악몽 같다고 한다.
수감자가 50여명인데 모두 멕시코인이고 동양인은 동석,정대 단 두 명.
매일 엄청난 구타가 가해지고 있단다. 
동석이는 팔, 다리 골절상을 입기도 했고 결핵 바이러스에 감염돼 병원 입퇴원을 반복할 정도라고 한다.

나는 내 동생들을 돕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국내 여러 언론사와 미국 영사관 등에 간절히 도움도 요청했었다.
하지만 밀입국자 그것도 소위 남성접대부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솔직히 허황된(?) 꿈에 부풀어 우리들 스스로 벌인 일이다.
게다가 남성접대부를 하러 미국까지 오다 그랬으니 당신네들은 고생 좀 해도 된다고 생각해도 그만이다.

-개개인의 피비린내 나는 절절한 사연들은 냉정히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인생에서 한번쯤 타인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호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단지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 더이상은 냉혹하게 이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았으면 한다.

 

 

2003년 7월4일
결국 나의 힘으로는 그들을 구해 줄 수가 없었다.

예상된 결과였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이 상황에 내가 과연 누구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무너지고 무너졌다.

괴로움에 발버둥을 쳤다.
그때 룸메이트 제프리가 조그마한 분홍색 알약 한알을 슬며시 내게 건낸다.
아무말없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 보았다.
엑스타시라고 했다.
나는 더이상 아무런 질문없이 물도 없이 그 분홍색 마법의 알약을 단숨에 꿀꺽 삼켰다.

 

 

2003년 7월7일

죽다가 살아 났다.

정말 심각히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다.

그동안 몇알이나 털어 넣었을까?

십수알은 되는 것 같다.

다들 나보고 미친놈이란다.

Over Drug Monster.

Bad Trip을 경험했다.

다른 차원이 시작되었다.

온 벽이 피로 물들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차원의 형광 괴물로 보였다.

숨이 끊어 지려고 하기를 몇번.

나는 꼼짝할 수 없이 열 몇시간을 침대에 한자세로 누워 있었다.

 계속 어린시절이 리와인드되었다.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가 없는데 뜨거운 눈물은 하염없이 베개를 적셨다.

 

2003년 7월8일
잔인한 운명은 이렇게 인간을 조롱하곤 한다.
내가 평소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움켜쥐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

 그 따위는 어느 한 순간 전혀 무용지물이란 것이 여지없이 드러 나고 말았다.

전혀 예상 불가했던 나의 삶의 순간들.

지금 눈 깜짝할 새에 나를 후려 갈기고 지나가는 그 진실이 미래의 어느날에는 또 남김없이 인과율의 법칙으로 나의 눈 앞에 촤르르 펼쳐질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두었던 사람들에게는 목전에 자신의 삶 전체가 한 순간에 다시 보인다는 그런 얘기도 있던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끔찍한 생각도 든다.

시대를 잘못 꿈꾼 者의 강박일까?
철저한 개인주의 자본주의 시대의 암울한 삶.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이 질퍽한 냄새를 피할 수 없다.
나의 이야기가,우리의 이야기가  同세기를 사는 다른 모든 이들에겐 이런 냄새는 아예 인연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냄새를 모르고 평생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일 뿐이다.

 

 

2003년 7월19일
몇날 몇일을 약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죽어 버리자라고.
몇날 몇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샜는지 모르겠다.

어떤 것이 현실인지 내가 도대체 어떤 공간에 속해 있는 것인지.

나를 완전히 놓아 버렸다.

약값이 떨어진 오늘.
배가 너무 고파 집 바로 옆 맥도날드 주변을 한참을 서성거렸지만 주머니 속엔 단 돈 일불짜리 하나 없다.
그동안 꼬깃꼬깃 모아둔 쌈짓돈까지 약값으로 다 써버린 게다.
길거리에 널부러진 거지들이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 왔다.
이러다 저렇게도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러니하게 또 약생각이 났다.
현실속에서는 외로워 괴로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이제는 더이상 이 매트릭스를 맨정신으로 견딜 여력이 없단 말이다. 

 

 

2003년 7월20일
BAD TRIP
보지말아야할 세상을 본 아이들.
일그러진 열차의 맨 뒷자석에 앉아 여행을 떠난다.
두렵고 무서운 세상,맺지 말았어야 할 인연들.
지금 내가 보고있는 세상은 환상이 아니다.
내 기억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이 처절한 현실속의 또렷히 투영되는 핏빛 미래.
짓밟으며 뒤돌아 보지 말아야 올라서는 정상.
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텐데,지독하게도 얽혀있는 잔상.

 

 

2003년 7월23일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나랑 함께 늘 대기실 신세를 지던 제프리가 넌지시 내게 뉴욕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맨하탄에 같은 갱단 출신의 자기 고향 선배가 호스트바를 하나 오픈하는데 거기로 갈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재고의 여지도 없다.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법의 알약을 받던 그 날처럼 아무말없이 난 그저 고개만 몇번이고 끄덕여 나의 대답을 전했다.
망가질데로 망가진 나의 자아와 부폐할데로 부폐한 나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어서 떠나고 싶다.

예전에는 천사가 살았다던 이 도시.

이제는 온갖 악마들이 점령해버린 이 도시,로스엔젤레스를 간절히 떠나고 싶다.

 

 

2003년 7월31일
초분자상태의 우주는 그렇게 나와 하나였다.
원자분해로 내가 흩어지고 또다시 뭉쳐지며 난 그렇게 그들의 의지속에서 질서를 지켜왔다.
모든건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는 끝없는 팽창과 소멸.
난 항상 그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기억이라는 영혼의 찌꺼기를 무슨 신의 커다란 선물인양 착각하며 그들에 대한 의구심을 또다시 어설픈 경외심으로 애써 지워 버린다.

지금 내가 속한 이 시공간.

이제껏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흩어져 버려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를 지경이다.

 

애써 자위 한자락.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라고,거대한 우주의 섭리 속에 아직 내 차례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즈막히 되뇌여 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다.
이렇게 착각과 비겁함 속에 누적되는 업보.

더이상의 비상은 없다.
풀어야 할 실타래도 더이상은 없다.

평상심이라.
색즉시공 공즉시색.
난 그저 되돌아 가고 싶다.
그저 간절히 원래 그 자리로 되돌아 가고 싶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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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1일

지난 밤 한 삼백번은 가위에 눌린 것 같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다. 

아,이렇게 사람이 미치는 거구나.

자꾸만 다른 세상으로 달아 나려는 내가 느껴 지니 섬뜩했다.

 

2003년 5월2일
말똥이 널부러진 비치를 걷고 있는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두 미국 청년이 내게 다가와 길을 물어 본다.
덥수룩하게 자라버린 수염탓일까?
어이가 없어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2003년 5월4일
드디어 브로커가 내려 왔다.
나는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그를 보자마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몇일만 더 참아 보란다.

주먹을 날릴 뻔 했다.
여권은 지금 작업중이고,2~3일 내로 아리조나쪽으로 출발할거라 한다.

이제 샌디에고 국경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단다.

얼마전에도 멕시칸들이 스무명정도 적발이 되어 경계가 살벌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내민 담배종이에 굵게 말린 마리화나 한개피.
나는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스스럼없이 받아 들어 거리낌없이 입에 물었고,그가 돌아 간뒤 난 꼬박 하루를 침대에서 뒹굴어야 했다.
도깨비는 보이질 않았지만 호된 첫경험이였다.

 

 

2003년 5월9일
태어나서 이런 차는 처음 타 보았다.

캐딜락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캐딜락을 타는게 어떤 의미인지 아냐며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브로커.

잘 모른다.

부끄럽다.
그리고 움직임이 자꾸만 조심스러워 졌다.
그렇게 브로커와 함께 단 둘이서 아리조나 빨간 바위산 속을 열몇시간인가를 달리고 달렸다.
나는 인상이 좋아 미국에서 잘 먹힐 것 같단다.
그 지푸라기같은 칭찬 한마디에도 감동이 밀려 왔다.
이제 어서 그 꿈의 미국이라는 땅덩어리를 제발 한번 간절히 간절히 밟아 보고 싶다.

 

 

2003년 5월10일
드디어 드디어 한국을 떠난지 한달여만에 천사들의 도시 Los Angeles 입성.
너무 기다렸던 탓인지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질 않는다.
고생했다며 브로커와 나눈 그 진한 포옹.
나는 어색해 하는 그를 아주아주 꼭 안아 주었다.
한인타운에서 오랫만에 따뜻한 밥 두공기를 허겁지겁 비우고 나니 그동안의 긴장이 모두 풀린다.
계산서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오늘부터 일할 호스트바의 조폭처럼 생긴 사장이 대순형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 섰다.
그렇게 나는 브로커에게서 그들에게로 인수인계가 되었고 숙소가 있다는 Newhampsher로 이동을 하였다.
도로변에 쭉 늘어선 Palmtree도 그렇고 태양의 채도와 명도까지 모든 것이 새롭다.
심장이 뛴다.
무언가 좋은 일들만 생길 것 같다.

나는 드디어 기회의 땅 미국에 도착했다!

 

 

2003년 5월17일
일주일째 초이스를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
가게는 오픈가게라 손님이 미어 진다.

하루에도 세네번의 초이스.

항상 마지막에 남겨지는 나.

그 모든 초이스에서 단 한번도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자신이 있었는데 점점 초라해지는 내자신이 너무도 징그럽다.
창피해서 미쳐 버릴 것 같다.

숨마저 가빠 온다.

마지막의 마지막 희망.

그 남은 불씨마저 사그려 들려 한다.

 

거울을 본다.

꽤 괜찮다.

아닌가..조금 뚱뚱한가?
아니,아직까지는 괜찮아.

머리가 많이 짧은가?

레옹 스타일이니까 이렇게 짧지 뭐.

평생 쓰고 있는 분신같은 안경을 벗어야 하나?

아니야,지적인 이미지라 괜찮아.

 

나는..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내가 나에게 내리는 평가는 오직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두려움이 명치 끝까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런데 혹시 진실은 이미 나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뭔가 큰 폭풍을 만난 느낌이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내 속의 그 놈이 느껴졌다.


갑자기 멕시코에서 처음 접한 그 마리화나라는 것이 피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저 끝임없는 이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 나고 싶다라는 생각과 함께.

 

 

2003년 5월19일
제프리라는 새로운 식구가 달라스에서 오늘 왔다.
사장형의 동생이라는데 잘 나가던 갱출신이라고 한다.

힙합하는 뮤지션같은 차림에 한국 조폭하고는 완전 느낌 자체가 틀렸다.

-뭐 표정은 비장미가 철철이였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이 친구와 나는 숙소에서 같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첫날부터 삐걱삐걱 작은 기싸움들.

힘들다 힘들어!

 

2003년 5월20일

뉴 햄프셔.

이 동네 정말 끝내 준다.

우리 숙소는 랄프라는 마켓뒤 멕시칸 밀집지역 아파트 지구인데 매일밤 헬기가 뜬다.

그리고 끊임없는 싸이렌 소리.

최고의 환경이다.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다.

 

2003년 5월24일

매일 밤 온 집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는 대순형의 엄청난 주사를 견뎌 내야 한다.

괴로워 미칠 것만 같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술취한 모습이 그렇게 싫어 울며 불며 도망만 다녔는데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현실이다.

 제대로 딱 걸렸다.

악몽같은 나날들이다.

 

2003년 5월25일
그동안 전혀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두 동생에게서 `도와주세요 (대필-황사주)'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형 보세요. 우리 (정대, 동석)는 지금 여기 샌디에고 MMC라는 이민국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랑 같이 있던 사람 (Sam Lee)의 증인을 서야 한다는 군요.
여기서 말하기를 우리 둘은 밀입국 죄도 아니고, 아무런 죄도 없답니다.

그 사람 재판때까지는 3~4개월,그때까지 이곳에 있던가,아니면 보석금을 내어야 L.A로 갈 수 있답니다.
단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보증인을 구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출소할 수 있답니다.

형 이글을 보시는 데로 변호사와 같이 통역하러 오신 황사주씨(858-486-0258)에게 빨리 연락 주세요.
그리고 형 연락처도 이분에게 가르쳐 주세요.
그래서 바로 우리가 연락할 수 있도록요.

형 여기 생활 하루 하루가 악몽입니다.
여긴 감옥보다 더 합니다.
아래 주소가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리로 답장 보내 주세요.

제 패스포트도 챙겨놔 주세요 꼭!

87766-198. Jeong Dae Seo
D-Unit, 4th Floor Rang 5
Metropolitan Correctional Center
808 Union Street
San Diego, CA 92101

 

지금 동석이와 정대가 샌디에고 MMC라는 곳에 수감이 되어 있다고 한다.
조속한 석방과 귀국을 위해선 USD1,5000의 보석금이나 영주권자 이상의 보증인을 서둘러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저 이 놈들의 지금 신변을 확인한 것만으로 일단 꽉 막혀 있던 가슴 한켠이 뻥 뚤린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많은 걱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 온다.
돈도 돈이다.

그리고 처음 밟은 이 미국땅에서 도대체 어떻게 보증인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시민권자라는 제프리에게 안되는 영어로 손짓/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라고 했다.
이유는 녀석도 달라스에서 무슨 사고를 치고 지금 도피중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쉽고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명치 끝이 꽉 막혀 왔다.

 

 

2003년 5월28일
오늘 오후 도착한 그들의 두번째 메일.

2003/05/28 14:27
형보세요.
우리(정대,동석)는 여기 센디에고 MMC에 지금 수감중입니다.
지난번 같이 잡힌 브로커(SAM Lee)의 증인이 되어야 한답니다.
밀입국 죄도 아니고 우린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네요.
다만 증인으로서 여기에 있어야만 한답니다.
재판까지는 3~4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여긴 감옥입니다!
형 도와주세요.
우리가 여기서 나갈려면 보증인이 와야 합니다.
시민권자,영주권자,비자만 있어도 여기 와서 싸인만 하고 우릴 데리고 나갈 수 있답니다.
형!!!
이 메일을 보는데로 우선 답장 주세요,빨리요.
우리 통역관이랑도 바로 통화해야 합니다.

SEO JEONG DAE-87766-198
(alisha han .한상희. 619-252-4650)
KOO DONG Suk -87866-198
chan i .charles . hwang 619-977-2246

우리들 통역관이랍니다.
이사람들과 먼저 통화하고 오세요.

METROPOLITAN CORRECTIONAL CENTER 808 UNION STREET SAN DIEGO. CA 92101 D-UNIT 87766-198 SEO JEONG DAE

 

오후내내 계속해서 통역사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단 한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저녁 늦게서야 겨우 통화에 성공했는데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다.

 

2003년 5월29일

사방팔방 도움을 청하고 수소문을 하여 브로커의 행방을 찾았으나 그들은 너무도 꼭꼭 잠수중이라 도저히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내 동생들의 패스포드와 돈과 짐을 모두 들고 잠수를 탄것이다.
온 몸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2003년 5월30일
영사관 변호사에게서 메일이 왔다.

2003/05/30 03:05
저는 서정대씨의 연락을 받은 영사관의 최재형 변호사 입니다.
서정대씨가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하는데 전화 연락처를 남겨 주십시오.
제 전화번호는 213-38*-9300 내선 64번이니 음성녹음으로 전화 번호를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영사관 고문 변호사라고 한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되지가 않는다.
그렇게 수없는 구원의 음성녹음만을 남겨야 했다.

 

 

2003년 5월31일
보증인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이곳저곳 알아보지 않은 곳이 없다.
고개를 숙이며 제발 한번만 도와 달라고 빌어 보았지만 한결같이 모두 다 곤란하다라는 대답뿐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영사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도움을 청했었는데 그 회신은 이랬다.

 

2003년 05월 31일 낮 2시 41분 50초 -0700 (PDT)
영사관은 미국의 주민이 아니라 한국정부를 대표하기때문에 이 상황에서 보증인으로나 보증인을 찾는 일을 도와드릴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나성 총 영사관 법률고문
최재형 올림

 

 

to be continue..

 

 

 

출처 : CLUB OSHALE LION
글쓴이 : OSHALE LI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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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27일

고등학교 후배 동석과 정대를 끌여 들여 시작한 의류 무역회사.

보기좋게 딱 구개월만에 오늘 사무실 정리에 들어 갔다.

이게 벌써 내 생의 몇번째 실패인지 이번엔 눈물조차 나질 않았다.

동석과 정대가 끝끝내 나타나질 않아 종휘가 사무실 정리를 도와 주었다.

녀석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더욱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2003년 3월1일

설상가상,사면초가.

삼월의 첫날부터 합의를 봐야 했다.

어젯 밤 만취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내가 미친놈이다.

다행히 그 할아버지가 경미한 찰과상이였기에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파란불의 횡단보도,그것도 경찰서 바로 앞.

그냥 면허취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래.그러자.

이제 더이상 무슨 나쁜 일이 남아 있으랴?!

 

2003년 3월3일

어머님이 우셨다.

전화기 너머로 내 어머님이 우셨다.

당신도 이제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더이상은 어머니께서도 지쳤다고.

 

2003년 3월9일

이제 더이상은 보지 말자고 한다.

볼 수 없다라고 했지만 그게 그거다.

지랄같지만..그래 이해한다.

그래,씨발 이해한다.

이제 떠나가라.

5년동안 고생많았다.

꿈도 미래도 아무런 희망 한조각 남아 있지 않은 나란 놈.

그래,그래.

이제는 너를 놓아 주마.

보내주마.

 

3평남짓한 여관방,늘어진 소주병들에 빈 공간이 없다.

 

사랑하고 사랑했다,주희아!

 

2003년 3월13일

이렇게 끝이 없고 치욕스런 빚잔치는 정말 처음이다.

차도 팔고 시계도 팔고 입고 있던 옷까지 다 팔았다.

그래도 끝임없는 청구서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 가랑이 찢어 졌다.

그래도 원망은 없다.

사랑했다고,한주희!

 

슬며시 '자살'이란 두 글자가 떠오른다.

 

그렇게 다시 점점 소주병이 쌓여 간다.

얼만큼을 마셔야 도대체 내일 눈을 뜨지 않을 수 있는 건가?

도대체 몇병이나 더 마셔야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건가.

 

죽을 용기도 없는 못나고 못난 놈.

눈물,콧물이 범벅이다.

 

2003년 3월20일

첫조카가 생겼다.

볼 용기가 없다.

누나야 미안...!

 

2003년 3월21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형,대순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호스트하러 간단다.

생각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란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미국이라.

미국이라..!

너무 멀어 아련한 느낌이다.

마치 어렸을 적 꿈 한자락같다.

 

2003년 3월26일

그래,결심했다.

몇날 밤을 끙끙 앓았다.

가자 미국!

그래,해보자 호스트! 

 

2003년 3월27일
매분매초가 참 바쁘다.
대순형 말만 듣고 황급히 결정한 미국행.
마음을 결정하니 오히려 불안함이 더 커졌다.
오늘은 브로커가 준비하라는 서류일체를 띄러 다녔다.
수천마일을 날라 가서 또 한번의 새로운 인생이다.
훗..이것도 소위 American dream이려나?

 

 

2003년 4월1일
인터뷰에서 보기 좋게 떨어 졌다.
정말 되는 일 없다.
철썩같이 자기만 믿으라던 브로커를 앞에 앉혀 놓고 낮술을 마셨다.
나랑 같이 들어 가기 위해 내 인터뷰 결과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정대,동석.
두동생에게 또 무어라 이야기 해야 할까?
브로커는 사정이 급하면 차라리 점프가 낮다며 멕시코행을 부추긴다.
몇일 뒤 바로 출발 가능하다고 한다.

대순형은 이미 마음을 결정한 표정이다.

그리고 이건 100% 확실한 상륙작전이라며 술취한 나에게 또다시 헛된 희망을 쑤셔 넣고 있다.

 

2003년 4월5일

처음으로 조카를 안아 보았다.

여자 아이인데,이름은 은결이라고 했다.

이렇게 작은 갓 태어난 인간은 처음 안아 보는 것이라 너무도 두려웠다.

잘 커다오,사랑하는 내 조카 은결아!

삼촌 돈 많이 벌어 올께.

눈물이 아이 얼굴로 떨어 질까 두려워 얼른 누나에게로 되안겨 주었다.

 

2003년 4월6일
무능력에 기인한 그 숱한 실수들.
그렇게 내 지긋지긋한 불행과 연계 되어진 많은 이들에게 얼룩을 남기고 떠난다.
어떻게 이렇게도 몇몇년동안 힘겹고 힘겨운 사투인지.
이젠 이런 가시밭길쯤에는 이력이 날만도 한데 아직 익숙해지지 않음은 내가 아직도 긴 여정을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일까?
치가 떨리도록 재수없는 내 인생에 그 누구도 끌어 들이고 싶지 않았다만 어쩔 수 없이 연을 맺게 되는 사람들.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들.
말로 내 뱉어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일말의 진심은 날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이였다면 느낄테지.
이것도 아직 교만한 바램이려나?

아아..오늘의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다.

 

2003년 4월7일
대순형네 식구 총 열명 그리고 내 동생 두명과 나를 포함,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13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국가대표 선수단 단체 출국이다.
다들 말은 한마디 없어도 서로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앞으로 우리 모두는 L.A의 오픈 가게 KOBOS라는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된다.

코리안 보이즈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팀의 마담이 될거라는 대순이 형의 인솔로 모두들 이리저리 출국수속에 정신이 없다.

각자 얼마씩 가져 왔는지 다 기입하란다.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100원짜리 동전이 달랑 하나다.

그래서 그냥 0이라고 기입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이쁜 승무원들의 안내로 다들 무사히 제자리에 작은 둥지를 틀었다.

드디어 출발이다,미지의 세계로.

 

꿈조차도 안 꿔봤던 멕시코.

정말 너무 멀고 막막한 느낌뿐이다.

이제 언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갑자기 전신이 찌릿찌릿해지고 극렬한 공포심에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가자 갑자기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렇게 겨우 참고 있는데,어머니 얼굴 위로 -제기랄- 5년을 만나다 헤어진 주희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곧 사방이 어둑해졌다.

그 기회를 틈타 서러운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흘러 내리길래 그냥 모른척 흐르도록 놔두었다.

  

2003년 4월8일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때쯤 우리는 드디어 멕시코란 낯선 땅에 도착했다.

너무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극심한 환경변화.

나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말도 제대로 안나온다.

놀러 온 곳이 아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미국을 들어 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국경에서 잡히면 죽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공황상태가 올 지경이였다.

 

그리고 14시간의 어마어마한 비행시간은 실로 나를 엄청난 곳에 데려다 놓았다.

멕시코 시티 공항.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층층이 알록달록한 큰 챙의 모자를 쓴 붉은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공항내 여기저기서 비둘기들이 날라 다닌다.

게다가 너무 덥다,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가슴팍과 겨드랑이가 흠뻑 젖은 경찰들이 이곳 저곳에 개머리판이 나무인 구식 총을 메고 돌아 다닌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질 않았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공항내 모든 사람들이 땅거미가 지는 시각 도착한 패셔너블한 새하얀 동양인 남자 13명에게서 노골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너무도 난감했다.
기내에서 단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아랫배가 요동을 치며 알려 준다.

순간 나는 과감히 모든 시선들을 뿌리치고 부랴부랴 화장실을 찾아 뛰어 갔다.

들어 서며 깜짝 놀랬다.

서로 초면인듯한 사람들이 서로의 볼일 보는 모습을 보며 대화중이다.

화장실에는 문이 없다.

이곳만 그런건지 오늘만 그런건지 하여간 문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 접해 보는 너무도 충격적인 생소한 환경.

 난 그냥 아픈 배를 조금 더 세게 움켜 잡을 수 밖에 없었다.
30분정도 늦게 나온 현지 브로커의 안내로 MANANA라는  이름을 가진 한 허름한 모텔에 도착했다.

멕시코 시티가 수도가 아니였던가?

오는 길에 차로 달려 들어 돈을 달라는 거지 꼬마들을 정말 한 50~60명은 만난 것 같다. 

내가 무슨 영화의 한 장면으로 쑥 들어 온 느낌이였다.

화장실을 들락이고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자 우리 모두는 겨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한국에서 준비해 온 소중한 소주팩을 딸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의 첫날밤.

이렇게 내 조국의 모든 것들이 절실히 그리웠던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어릴적 TV만화,'이상한 나라의 폴'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어머니,어머니..!

 

2003년 4월9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샌디에고와 국경 접점 지역인 티와나로 또다시 이동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국내에서 사전 공수된 비자가 있는 여권에 우리의 사진을 오려 붙여 위조된 여권으로 국경을 통과하게 된다고 했다.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모든건 복걸복이라고 한다.
매분매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극도의 불안감에 입술이 타들어 간다.
도대체 내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걸까?
또한번 적셔진 눈시울을 아무도 몰래 연신 훔쳐 냈다.

 

 

2003년 4월10일
티와나에 도착하니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hummer가 길가에 선인장 가득한 일반 도로를 돌아 다닌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몇일 전 국경을 넘다 멕시칸 몇명이 죽었고,한국 여자 두명이 현지 브로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된 사건도 얼마전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참 인생막장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한국이란 그 나라..왜 나는 그곳에서 살 수가 없었을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003년 4월11일

동석이와 정대가 운전을 했던 브로커와 함께 국경에서 붙잡혔다.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동생 둘이다.

참 끝내준다,끝내줘.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윽고 넘어간 후발주자 중 제일 나이가 많았던 한 형의 검거소식이 연달아 우리의 뒷통수를 후려 갈긴다.
그래도 꾸역꾸역 8명을 넘겨 보낸 우리의 장한(?) 브로커.
해가 어둑해질 무렵,마지막까지 남은 대순형과 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오늘 붙잡힌 세명때문에 샌디에고 국경이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자,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독한 두려움에 입안이 빠짝 말라 버렸다.

 

 

2003년 4월17일
모텔을 세번이나 옮기며 첩보작전을 펼친 지난 일주일.
오늘에서야 얼굴을 비친 브로커는 나는 비슷한 사진이 없다며,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대순형까지 넘어 가고,나는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남은 돈도 없다,실낱같은 희망은 점점 옅어 진다.
국제미아가 되어서 이곳에서 까맣게 죽어 가는 내 자신을 화장실에 하나 있는 금이 간 작은 거울을 통해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자꾸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짐을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사실 L.A가게에서 놓아 버리면 난 그냥 여기서 끝나는 거다.

저 브로커가 내려와서 최소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난 그냥 여기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거다. 

 

 

2003년 4월24일
생일이다.
스물하고도 여덟번째 생일이다.
생일을 기념해 89cent짜리 마루찬 컵라면을 두개나 샀다.
마지막 호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목구멍에서 라면이 도통 넘어 가질 않았다.

 

 

2003년 4월30일

새벽 세네시부터 짖어 대는 미친 멕시코 새들때문에 억지로 눈을 떠 TV를 켰다.

전 채널이 스패니쉬다.

 

"우노,도스,뜨레스,꽈뜨로~

무이 보니타,세뇨리타~

아스피란도 아미고~"

 

이젠 정말 골이 깨지는 것같다.

울퉁불퉁 높은 회벽 끝에 달린 작은 창.

그나마 굵은 창살에 덮여 또 반은 가렸다.

 -저 창은 무슨 형무소나 정신병원을 연상시킨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 정말 안간힘을 쓴다.

 

 

 

to be continue..

 

 

 

 

출처 : CLUB OSHALE LION
글쓴이 : OSHALE LI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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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Fiction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22.3%가 모두 진실도 아닙니다.

 구성은 이렇습니다.

5%는 실명을 전환하였고,정확한 시점이 아닙니다.

5%는 상황을 극대화 한 부분도 있고 상황을 최소화한 부분도 있습니다.

5%는 인터넷 관련 글 및 기사를 발췌 각색하였습니다.

5% 제 자신을 멋있게 착하게 미화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딘가엔 나머지 2.3%쯤의 완벽한 진실도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내용이야,한국에서 이런저런 것들에 염증을 느낀 한남자가 우연히 하와이를 찾아 떠나 오지.

그런데 와이키키고 어디고 이 남자가 찾는 진짜 자유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고민하며 이리저리 호놀루루 밤거리를 배회하던 중 펠레라는 한 허름한 바로 흘러 들어 가게 되는 거야.그리고.."

 

음향도 엉망이고 자막도 너무 작아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제이슨에게 나는 다시 이렇게 찬찬히 설명을 해주었다.

 

제이슨이 좀더 고개를 심하게 갸우뚱거리며 내게 묻는다.

 

그럼 사람들이 이렇게 되서 저렇게 됐다는 형 이야기를 못들었는데 어떻게 지금 저처럼 이해해요?

 

굳이 이유를 대자면 여유가 없었다.

정말 너무도 빠듯한 예산과 시간이였기에 느낌만 전달하고 싶었다라는 변명 한자락이다.

 

하지만 앞으로 여유가 많이 생긴대도 이런 스타일의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저 화면만으로 같이 공감하고,

구구절절 모두 설명하지 않고 조금 여백이 있어도 보는 이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상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사실 서두에 거창한 변명을 하였다.

이 책이 그렇다.

군데군데 빈틈이 많고 허술하다.

거칠고 다듬어 지지 않은 성장소설같다.

하지만 굳이 일기 형식을 빌린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그때 그때의 감정을 77.7% 충실히 끌어 내려 애썼다.

풍부할땐 풍성히,메말라 있을땐 최대한 건조히.

어렸을땐 부풀리고 세월이 묻었을땐 수염도 뽐내 보았다.

나는 공자도 아니고 맹자도 아닌 그저 짐승 LION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카페와 블로그에 지난 내 7년간의 일기가 메모가 여러 종류의 형태로 잘 보존이 되어 있었고,

난 무수한 담배개피를 작살내며 추억핥기에 흠뻑 젖어 지난 몇달간을 달라스에서 하와이를 왔다갔다 하며 

꿈꾸는 행복한 피터팬이 되어 보냈다.

 

잃어 버린 것들,잊어 버린 것들.

이 작업을 해 나가면서,이 놈들을 하나하나 다시 싹 틔우기에 거의 모두 성공한 것 같아

지금은 아주 풍요롭고 자유로운 기분이다.

 

데카메론을 꿈꾸지 않아 행복했다.

이제 '선데이 서울'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심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여러분께 이런 부탁 한자락이다.

어쩌면 Non-fiction 77.7%일지도 모르는 이 글을 그저 여러분 화장실에 '선데이 서울'처럼 읽어 주시길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아무 비평없이 물을 내려 주시길 부탁드린다.

 

하긴 우리의 뇌는 실재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009년 8월

달라스에서 OSHALE LION

 

 

 

 

출처 : CLUB OSHALE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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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그리고 인연..(11월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12월 맞으세요~)

우연 그리고 인연
나와는 전혀 무관한 그냥 지나쳐 갈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된 인연에 끈은 한올 한올 엮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은 아닐는지,
우연과 인연은
어느 날 어느 시에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이 영상처럼 스쳐가야 할 사람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마주치는 것은 아마도 인연이였기 때문이겠지요.
인연이 되려면 외면할 사람도 자꾸 보면 새롭게 보인다고 합니다. "하루"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면 이런저런 마주침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인연이 시작되기까지 어디엔가 흔적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연에도 여러 갈래가 있나 봅니다 결코 만나서는 안 될 악연이 있는가 하면 이웃과 나눔의 선한 인연도 있겠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만남의 인연도 있겠지요.
오늘 내가 마주침에 인연은 어떤 인연에 바램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그 바램을 말 하고는 싶은데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키듯 참아 살아야 겠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으며 그 끈을 붙잡고 갈망하며 존재하게 되는게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우연이고, 인연인가 봅니다 인연에도 지푸라기 같은 끈이 있는가 하면 질긴 끈도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도 나는 이 두 가지의 끈을 모두 꼭 붙잡고 존재하고 싶습니다. -옮 긴 글- ***클래식 기타 연주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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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그리고 인연..(11월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12월 맞으세요~)

우연 그리고 인연
나와는 전혀 무관한 그냥 지나쳐 갈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된 인연에 끈은 한올 한올 엮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은 아닐는지,
우연과 인연은
어느 날 어느 시에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이 영상처럼 스쳐가야 할 사람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마주치는 것은 아마도 인연이였기 때문이겠지요.
인연이 되려면 외면할 사람도 자꾸 보면 새롭게 보인다고 합니다. "하루"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면 이런저런 마주침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인연이 시작되기까지 어디엔가 흔적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연에도 여러 갈래가 있나 봅니다 결코 만나서는 안 될 악연이 있는가 하면 이웃과 나눔의 선한 인연도 있겠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만남의 인연도 있겠지요.
오늘 내가 마주침에 인연은 어떤 인연에 바램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그 바램을 말 하고는 싶은데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키듯 참아 살아야 겠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으며 그 끈을 붙잡고 갈망하며 존재하게 되는게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우연이고, 인연인가 봅니다 인연에도 지푸라기 같은 끈이 있는가 하면 질긴 끈도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도 나는 이 두 가지의 끈을 모두 꼭 붙잡고 존재하고 싶습니다. -옮 긴 글- ***클래식 기타 연주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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