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 태그의 글 목록 :: 록키의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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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7일

한국을 떠난지 만 삼년째 되는 날이다.

그립다,그곳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그립다.

그리고 내 어머니,아버지가 너무도 보고 싶다.

하지만 들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내 조국.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목이 메이게 운다.

 

2006년 4월8일

 미국의 남북전쟁을 전후하여 하와이의 사탕수수 산업은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이에 하와이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주들은 이 산업을 확대하기 위해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처음에 유럽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려 했으나

별로 여의치 않자 아시아에서 노동자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제일 먼저 중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고

1880년대부터는 일본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당시 대기근으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선 노동자들에게

1902년 11월 고종이 노동 이민을 허락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한 이곳.

 

하지만 어디 이곳이 예나 지금이나 그리 호락호락한 섬이였던가.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연분홍빛 희망보다는 척박하고 힘든 고생의 나날들이었다.

 

1905년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이민을 온 최용운 할머니가 읊었던 시에는 그들의 답답함과 슬픔이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남에 노든 속에
봄바람 소식 실은 배 만리나 떨어져 있으니
친척들과 이별하고 조상님의 묘 버린
슬픔을 뉘 알리요.
새 울어 눈물 보지 못하고
꽃 웃어도 소리 듣지 못하니
좋은 것 뉘가 알고
슬픔인들 뉘가 알리.
 
 

2006년 4월9일

AM 4시.

내일 첫 촬영을 위해 새벽 교대를 마치고 그 피곤한 눈을 껌뻑이며 수정 대본을 받으러 와준 Mike.

난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최선을 다할께,Mike.

 

내일의 스케쥴을 정리해 보자.

오후에 저스틴에게 다시 한번 장소 확인 및 하와이안 친구들 섭외 확인.

저녁 여섯시 펠레에서 Mike을 만나 대본 연습. 

일곱시 반까지 모든 준비 완료.

여덟시 대망의 첫 촬영.

 

2006년 4월10일

일어나자마자 뛰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날카로워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잠깐 비추어진 태양을 만날수 있었다.

그나마 내가 아는 가장 오래 사는 놈이라 아직까진 저놈을 뭍히는게 가장 고맙고 감사하다.

촬영 1시간전.

너무너무 고요했다.

담담히 스케쥴 체크를 위해 Mike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전화하려던 참이였단다.

조금전 갑자기 세살 된 딸아이가 열이 치솟아 지금 병원이란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단다.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근방에 산다는 민기가 떠올랐다.

 오늘 다행히 일이 없어 집에서 쉬고 있다는 그를 극적으로 섭외했다.

뭐..느낌은 더 적절하다.

 

그제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며 베란다로 나갔다.

무지개가 떠 있었다.

이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가장 크고 웅장하고 빈틈없이 꽉 차있는 선명한 놈이였다.

맹세한다.

 

기도를 했다.

두손을 모으고 고개도 숙였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서는 길에 곧바로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마음이 들뜬다.

희안하다.

운명의 섬 하와이.

마음이 들떴다.

 

유신이와 진평이를 짐칸에 태우고 저스틴의 트럭을 타고 펠레로 향했다.

든든하다.

 

약속대로 민기와 사카모토씨가 미리 와있었다.

너무 기뻤다.

이윽고 저스틴의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Silva,Hashim,Junior.

기분 최고다!

 

촬영 10분전  L.A에 있는 Gio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 희안하다.

반가운 사람들이 오랫만에 오늘 모두 전화를 해준다.

 

촬영은 즐거웠다.

아주아주 행복했다.

 

기획단계부터 거의 두달여만에 이루어진 첫촬영.

진이 다 빠진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술을 마셨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니 갑자기 도현이가 그립다.

 너무 보고싶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통화.

날라갈 듯 기뻤고 다시 한번 깃털처럼 잠시 공중에 둥실둥실 떠 있었던 것도 같다.

 

술을 더 마셨다.

전화가 왔다.

너무도 오랫만의 태현이 형이다.

갑자기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참 뜬금없고 어색하고 희안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휑하니 스치고 지나 간다.

갑자기 알겠다.

전구가 켜졌다.

 

둘다 쳐 죽이고 싶다.

곧 심장이 터져 버릴 것같이 요동쳤다.

하지만 이미 사악한 나는 술을 더 마셔 버리고 쓰러져 버렸다.

 

그래,오늘도 참 멋진 SCENE이다.

 

2006년 4월24

얼마전 바 촬영때 도와 준 저스틴의 친구 Silva의생일이다.

공교롭게 내 생일과 똑같다.

-오늘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마침 참 잘되었다.-

몇번의 부탁끝에  드디어 그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

촬영허가같은 초대라서 더욱 기쁘다.

HAWAIIAN GARAGE PARTY 

한 삼십명은 족히 모인 것 같았다.

유신은 쉴새 없이 카메라를 돌렸고 나는 쉴 새없이 웃어 댔다.

집으로 돌아 와 진평이의 스틸 사진을 점검했다.

훌륭했다.

 

아주 멋진 놈이 탄생할 것 같다.

 

나는 오늘 서른 한살이 되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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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7일

주희에게서 메일이 왔다.
나를 보러 다음달 초에 하와이에 오겠단다.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내 행방을 수소문했나 보다.

난감했다.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 주 저 주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숨죽여 살아 가는 나.
밤이면 온갖 여자들에게 술을 따르며 내 영혼과 젊음을 팔고 있는 나.
그리고 나는 지금 세상에서 버려진 한 여자와 동거중이다.
나는 더이상 예전에 그녀가 기억하던 그 남자가 아니다.
내 육체도 내 영혼도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반면 그녀는 모든 것이 나와 정반대의 입장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아무 걱정없이 살아 온 그녀.

유학까지 온단다.

그녀와 나사이에는 이제 건널 수 없는 너무도 큰 강이 하나 생겨 버렸다.

예전부터 사실 난 그녀에게 알 수 없이 많은 자격지심이 있었다.

가끔씩 너무도 판이한 환경에 일말의 가당치 않은 분노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들이 마치 낡은 영화필름처럼 주루루룩 내 우뇌를 거쳐 좌뇌까지 흘러가자 많은 감정들이 일순간 교차했다.

본심중의 본심은 보고싶다,만나고 싶다,그녀를 다시 한번 안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도현이는?

그렇게 사랑한다고 울부 짖었던 도현이와 보냈던 그 세월은 정녕 다 거짓이였나?
나는 정말 악마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평생 이런 문제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업을 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이런 말도 안되는 갈등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주희에게 또 원망이 생겼다.
왜 날 다시 이런 지경으로 몰아 넣는 건지.
그동안 그만큼 힘들게 했으면 됐지,지금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왜 또 이런 힘든 시간을 던져 주는 거야.

 

2004년 6월10일
불면의 나날들이다.
어제는 아버님 생신이셨는데 전화도 드리질 않았다.
오는 전화도 하나도 받질 않았다.
그저 숨고 또 숨어 있고 싶다.
내 모든 상황들이 그리고 너무도 추악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구역질이 난다,나라는 인간.

모두에게 거짓말이다.

어머니께 드리는 거짓말,도현이에게 하는 거짓말,주희에게 하는 거짓말,모든 손님들에게 하는 거짓말.

나는 십중 인격자인가?

자아분열이 너무도 심하다.


2004년 6월11일
도현이가 거의 한달만에 집엘 들어 왔다.
지난 삼월에 가게를 오픈한 이후 계속 이런 사이클이다.
그런데 꼭 생리기간에만 집엘 온다.

 

미쳐 버리겠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자꾸만 자꾸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진실을 호도하려 눈을 감아 버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 버리는 나란 인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썩어 문들어져 버린 건가.

 

왜 나는 도현이와 함께 사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이게 같이 사는 것인가?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녀 얼굴을 보는데 자꾸만 주희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2004년 6월12일
오랫만에 그녀가 차려 준 밥을 함께 먹다가 도현이에게 물었다.
날 사랑하느냐고.
그녀는 그저 나를 바라 보며 한번 빙긋 웃어 주었을 뿐이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물었다.
정말 나를 사랑하긴 사랑하는 거냐고.
또 대답이 없이 수저를 놓고 의아한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는 그녀.
나는 그순간 상을 엎어 버리고 온 집안 물건들을 다 때려 부셔 버렸다.

 

2004년 6월13일
또 혼자가 되었다.
견딜 수가 없이 외롭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근원도 행방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자꾸만 자꾸만 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홧김에 주희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고 싶다고,언제 오냐고,내가 마중을 나가 겠다고 말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 모르겠다.
뭔가 큰 나쁜 짓을 한건 아닌지 자꾸만 심장박동이 빨라 진다.
눈을 감아 버리면 더 잘 외면할 수 있을까.
난 그 자리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2004년 6월14일

그게 잘사는 거라고 배웠다.

내 양손에는 최대한 많이 움켜 쥐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니 내 마음은 꽁꽁 닫아 두어야 한다.

겉으로는 넉넉히 웃어 주고,속으로는 언제나 철저히 계산을 하여 한방울도 손해보지 않아야 된다고 배웠다.

늘 남의 것을 탐하면서도 표시내지 말고 성인군자인척 하라고 배웠다.

그리고 대열을 넘어 가면 이단아이니 철저히 비난하라고 배웠다.

우리와 다르게 생겼으면 철저히 무시하고 침을 뱉으라고 배웠단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태어나서 자란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곳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이렇다. 

 

2004년 6월19일
제프리가 드디어 돌아 왔다.

너무너무 반가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뭔가 모르게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

이 녀석도 큰 강 하나를 건너 온 것 같다.

 

2004년 6월22일

도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2주일 정도 샌프란시스코 언니네 집에 다녀 온다고 한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주희는 7월2일경에 온다고 했다.

 

2004년 6월30일

이 집에서 모든 도현이의 흔적을 지웠다.

그녀의 모든 물건을 박스에다 차곡차곡 정리해 옷장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완벽하다!

 

2004년 7월2일

공항에서 난 주희를 한 삼십분동안 꼭 끌어 안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그녀도 나도 자꾸만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려 서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나를 떠나간 이유를 울먹이며 계속 설명하려 했고,나는 괜찮다며 괜찮다며 내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어 버렸다. 

 

금방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찝찝한 재회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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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2일

모두들 나를 보면 오늘밤 같이 있을 수 없냐라고 한다.

꼬마 기집애들부터 할머니들까지 다 똑같다.

여자는 그냥 여자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 그 자체이다.

모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호스트는 이 마지막 상품을 제일 나중에 팔기 위해 끊임없이 끼를 부린다.

그리고 손님들은 어쨋거나 최단시간에 승부를 보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즐거이 이 모든 유혹들을 찬찬히 음미해주신다.

이 메인 게임이 끝나면 드디어 라스트 카드가 나온다.

메인 게임에서 없었던 것, 바로 섹스이다.

이것을 둘러싼 남과 여의 복잡한 흥정은 끝이 없다.

호스트들은 미래의 '한탕'의 가능성과 오늘의 '현찰'의 달콤함, 후일을 위한 '서비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손님들은 자신의 '지갑'과 상대의 '상품가치'와 장래의 '우환' 가능성이 연계된 복잡한 다원 방정식의 해법에 고민한다.

 

2004년 5월15일

오늘 제프리가 달라스로 떠났다.

변호사도 만나고 법정에도 출두해야 하고 부모님 얼굴도 오랫만에 보고 싶단다.

한달일정이라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지 거의 일년만에 처음 떨어 지는 거다.

갑자기 제프리가 돌아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온 몸이 얼어 버리며 심장 한켠이 극심히 시려 왔다.

  

2004년 5월17일

작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지금껏 섹스없이 좋은 관계로 잘 지내는 섹시한 누나 한명이 있다.

항상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의 이 누나,오늘 이혼을 했다며 예전 없던 시무룩한 표정으로 가게를 찾았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 하나와 연년생 초등학생 아들 둘을 가진 다복하고 유복한 집안이다.

바깥양반은 정말 성실한 분으로 하와이 교민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유통회사 사장님이셨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누이의 대답은 이랬다.

 

"그 사람은 너무도 성실했어.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들어 오고,어디 딴데 한눈 파는 일도 절대 없었지."

 

"그럼 왜?누나를 사랑하지 않았어?남자구실을 못해?"

 

"아니,나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15년동안 결혼 기념일 한번 안 챙긴적 없어.

그리고 밤일도 나쁘지 않았어."

 

"그럼,애들에게 못된 아빠였어?

 

"아니,그 사람처럼 완벽한 아빠도 없을 거야.정말 자상한 사람이거든."

 

"그럼 도대체 왜,이유가 뭐야?"

 

"15년째 그런 똑같은 틀에 박혀 행복한 척 살고 있는 내 위선이 너무 싫었어.

난 자유롭고 싶어.

이제부터는 여행도 내 마음대로 다니고 예전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해볼거야.

그리고 내가 더이상 그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그 사람의 성실함이 지긋지긋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솔직히 살고 싶어.

난 더이상은 내 자신에게 거짓말하며 살지 않을거야."

 

나는 황급히 비워진 누나의 글라스에 다시금 가득히 술을 채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오늘은 그 어느날보다 몇배로 더 어지럽고 머리가 띵하다.

뭔가 예전에 쌓아 왔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였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2004년 5월23일

酌婦의 恨 (작부의 한)..`술집년 팔자`
상당한 멸시의 말이다.
그럼..酌夫의 恨은 술집놈,호스트들의 한쯤으로 해석될려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카피올라니 테라스. 
한인 마켓인 팔라마 수퍼  뒷편으로 작은 코리안 타운 안에 위치한 곳이다. 
이  아파트의 우리층의 열다섯 가구 중 열 가구 정도가 한국인 가정인데 민기네가 바로 우리집 옆집에 살고 있다.

낯가림이 많은 나지만 옆집에 살며 세탁실을 같이 쓰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민기네.
민기는 내 또래의 건장한 청년으로 아버님과 두살짜리 아이와 함께 사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가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매일밤 싸움(?)소리가 들리는 게다.
`이 개새끼, X새끼!`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의자 내던지는 소리가 쿵쿵하고 나고 그릇이 깨어지는 소리.

창그렁~!
`아버지, 또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개새끼야 무슨 말!`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지 `철썩`소리가 나고 또 다시 뭔가를 집어던지는 소리.
드디어 잠에서 깨서 우는 애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
이런 것의 연속이 거의 한달이 되어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잠잠해 졌다.
그제야 비로서 같은 아파트의 사람들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저 `민기 아버지가 철들었나보다` 하곤 넘어가 버렸다.
그리곤 다시 몇 주가 지났나 보다.
어느 날 옆집의 민기가 우리집엘 불쑥 찾아온 것이다.
손에는 작은 김치통을 하나 들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말았다.
몇 번인가 복도나 아파트 차고에서 마주 칠 때 보아온 건장한 그 민기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이 거의 딴사람인줄 알았다.
실테안경에 곱살한 얼굴.
통통한 몸매에 전형적인 부잣집 맏아들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은 없어지고 얼굴이 까맣게 반쪽이 되어 하마트면 못 알아 볼뻔 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으려니 민기가 나를 보고하는 말.
`저기요, 우리 김치 하나 팔아주세요`
`김치요?`
`이것 잡숴 보시고 맛이 있으면 주문해 주세요.제가 배달도 해드려요.저 좀 도와주세요.`
수줍음과 창피함으로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민기를 나도 힘겹게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오렌지쥬스도 한잔씩 마셔가며 내가 어색히 말문을 열었다.
`어디 김치 한번 맛을 볼까요?`
김치는 그냥 보통 김치였다.
우리가 흔히 팔라마 마켓에서 사다 먹는 그런 김치였다.
`이게 얼마예요?`하자
작은 것은 십불이고 큰 것은 십오불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김치값보다 약간씩 더 비싼 것 같았으나 배달을 해준다니 그렇겠구나 생각했고, 그렇게 말문을 열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민기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고 소문이 난 그 민기의 아버지는 사실은 호놀룰루 일원의 Liquor 스토아에 음란잡지를 공급하는 공급책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약에 까지 손을 대었는데,몇 주전 무슨 죄인지 급히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는 지금은 Kalihi의 모처에 있는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민기는 눈물이 흐르는지 두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는데 그 손등을 보고 난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손이 사람의 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욱이 20대 청년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헐고 부르터 있었던 게다. 
그 손이 그간의 그의 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그 손을 보니 내 가슴이 찡~
살며시 하늘을 보며 코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랬더니 민기가 눈물을 흘리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양념에 손이 부르터서 장갑을 껴도 위생상 예전부터 다니던 김치공장을 더 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할수없이 김치를 몇 동이씩 들고 다니며 아는 집마다 팔고 있는데 이것 먹어보고 맛이 있다면 우리 가게에 김치는 자기가 대겠단다.
답답했다.
내가 어떻게 연결을 시켜준대도 우리 가게 김치사용량이 많아야 일주일에 두통.
이걸 팔아주더라도 민기와 애기에게 무슨 도움이 될것인가?
그리고 우리 가게 식구들에게 떠 맡긴다 해도 제 밥도 안해 먹는 놈들이 김치는?
그것보다는 민기를 우리가게 웨이타 자리에 취직시켜 주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마침 지금 웨이타 중 한명이 한국에 돌아 간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는 중이였다. 
`그러지 말구 민기씨 저희 가게 웨이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처음부터 보수는 많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손님이 항상 있으니 민기씨가 뛰는 만큼 벌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이 손으로는 김치 같은 거 만지지 마세요 네?`
`예, 고마워요` 하고 나간지가 일주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샘플이라고 놓고간 김치 값조차도 받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김치값 10불을 들고 옆집을 찾아가니 마침 민기가 집에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 방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글쎄.....!
그 방은 사람사는데라고 할 수가 없었다.
부서져버린 탁자가 을씨년스럽게 한쪽 벽에 쌓여있고 쿠션은 어디로 가버리고 대신 이불보따리를 주섬주섬 올려놓은 소파하며 그 중에서도 정말 나를 울게 만든 것은 부셔져버린 애들 플라스틱 장난감 몇 개하고 그 옆에 그냥 쓰러져 자고 있는 사내아이의 모습이였다.
잠들어있는 두 살짜리 사내애.
그 잠든 얼굴에서 부챗살처럼 펴져 나오는 `삶의 피곤`이 내 가슴을 정말 아프게 찌르더구만.
확! 하고 숨이 끊어지는 것도 같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느 가정 같으면 지금 이 시간, 일요일 오후.
챙달린 운동모자를 거꾸로 쓴 채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하다 못해 허접한 호놀룰루 동물원에서라도
`저게 코끼리다, 이게 호랑이다` 하면서 신나게 뛰어 놀아야만 하는 이 아기.
어째서 이 골방에서 세상피곤에 지친 채, 잠으로 잊어야 하는가?
흔히 보는 예쁜 아기 침대.
그 위에는 오색무늬의 딸랑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머리맡에는 예쁜 동화책이 한두권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그냥 더러워진 카펫에 얼굴을 묻고 억지로 잠을 자며 세상번뇌를 잊어야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이 애기.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아기를 일으켜 내품에 앉았더니 그제야 새록새록 편안히 잠들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
민기에 대해서 말로서 할 수 없는 어떤 분노 같은 것이 끓어 올랐다.
`어째 사람이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민기의 기나긴 과거사를 듣고 있노라니 나의 분노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였다.
민기가 여섯 살이던 82년.
당시 전대통령의 새마을운동실패로 피폐되기 시작하던 우리의 농촌.
충북 어디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
그런 대로 농촌에서 양돈을 하며 중류생활은 이어갔지만 그해 속칭 `돼지파동`을 겪으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가고 빚더미에 놓이게 되자 어머니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여섯 살난 민기의 손을 잡고 멕시코 이민 길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 농부로 일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였지만 그 지긋지긋한 농사를 포기하고 교포가 운영하는 쉐타공장이나 박스공장을 전전했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셨단다.
술로 세월만 죽이시며..그리고 민기가 열둘이던 시절.
그러니까 팔팔 올림픽으로 들떠 있을 때,서울의 무슨 브로커를 통해 미국,L.A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그나마 몇푼있던 돈도 미국 오는데 다 써버리고 무일푼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재기를 노리고 D-싸우나에 욕탕청소부로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하셨다 한다.
그때 민기 역시 이곳에서 하이스쿨에 다니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그렇다고 남미 서반아어나 제대로 하나?
영어는 더욱 그렇지.
그러니 학교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다시금 마지막이다 건너 온 이곳 하와이.

이곳에서도 외로움의 나날은 바뀌질 않았다고.
학교근처의 야산을 오르 내리며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엎친 데 겹친다고,하나뿐인 아버지마저 마약에 쩔어 매일밤 지긋지긋한 구타의 연속.
그나마 그런 아버지마저 구속이 되셨으니 그야말로 이제는 혈혈단신이 되어 버린 게다.
얼굴이 갸름한 미남형에다가 성격도 서글했던 민기에겐 여자들이 상당히 많이 따라다녔는데 지금의 애기 엄마는 결혼한지 일년이 채 안되어 애기와 민기만 덩그라니 남겨두고 도망을 쳤다 했다.
민기의 그 긴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난 차츰 민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취직하려 애써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민기.
마지막 자존심을 애기를 생각하며 싸그리 짓밟은채 여자들이나 일하는 김치공장에 취직한 민기.
이젠 손까지 부르터 그 어느 것도 할수없는 민기.
민기의 무능함이란 민기만의 것이 아니였다.
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로 향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슴은 분노로 요동치고 있었다.

요즘 민기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탬버린을 흔든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춤을 추고 크게 웃는다.
이교대로 돌아가는 베이비시터의 만만찮은 임금을 감당해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민기에게 누가 무슨 권리로 술집 작부(酌夫)란 소릴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누가 호스트질을 하며 부끄럽지도 않냐고 돌을 던질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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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1일

만우절이다.

내가 아는 모든 손님에게 모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한다라고 이야기 해줬다.

 

2004년 4월7일

한국에서 떠난지 딱 일년째 되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미국 오기 전 헤어진 주희에게서 오늘 처음으로 메일이 왔다.

그녀는 오는 겨울에 콜로라도 덴버로 유학을 온다는 말을 전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던 Make-up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이곳에 Shop을 차리고 싶다는 꿈도 한자락 비쳤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씩 내가 사뭇치게 보고프다며 일년동안 묻어 두었던 내 묵은 그리움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녀와 지낸 한국에서의 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갔다.

갑자기 못 견디게 아주 많이 그녀가 그리워진다.

그 모든 사랑스웠던 추억들이 너무도 절절히 그리워 져서 한참동안을 침대 한켠에 웅크리고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 묻고 있어야 했다.

 

'그래 주희야,너도 정말 힘든 강을 건너고 있구나.
네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테고 그저 나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말밖엔.
슬픔을 서둘러 추스릴 필요는 없다.
눈물이 흐른다면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도 좋을 거다.
그리고 추억은 간직할 수 있을 만큼 그대로 남겨 두어도 좋을 거다.

잘 지내렴,내 소중했던 사람아.'

 

나는 결국 그녀에게 이 답신을 하지 못했다.

 

2004년 4월11일

요즘같은 행복한 나날은 내가 태어 나서 처음인것 같다.

매일 평균 두세방은 꼭 보는 것 같다.

술에 쩔어 매일 일어나 헛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돈을 만질 수 있지 않은가?

빚을 갚고 있지 않냔 말이다!

 

이곳 하와이는 여느 호스트바와는 달리 시스템이 독특하다.

물론 팁을 주는 손님도 있지만 규정상 여기는 팁이 없다.

손님이 사주는 술이 곧 돈이다.

기본 샷 한잔에 20불,그리고 샴폐인은 200불부터 기천불까지.

그리고 내가 50%,가게가 50%의 비율로 매일 커미션이 정산된다.

-하지만 매니저 팁을 10%정도 지불해야 하니 실수익은 판매액의 40%이다.-

 

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혐오스럽다.

그리고 그 견딜 수 없이 비참했던 패배자의 나날은 더더욱 소름끼친다.

그래서 오늘밤도 한잔의 샴폐인에 내 영혼을 아낌없이 팔 예정이다.

 

2004년 4월12일

오늘 이 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게이 파트너가 되었다.

겁도 나고 궁금하기도 하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 이 사람만 게이였는데,이곳에서 클럽도 가지고 있고 산꼭대기 집에 헬리콥터까지 가지고 있는 엄청 유명한 부자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감에 내가 생각했던 게이들의 이미지에는 전혀 위배되는 아주 박식하고 점잖은 사람임이 느껴 졌다.

무난한 테이블은 두시간여만에 파장이 났다.

제프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형 저 게이가 100,000불 주면 한번 할거야?"

나는 곧바로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너냐?"

그리고 집에 돌아와,나조차 꽁꽁 숨겨둔 내 깊고 깊은 새하얀 진실을 보았다.

나는 양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창남,몸을 파는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제프리가 말하는 저 돈,누가 저 돈에 나를 사주지도 않겠지만 나는 저 돈이 참 만지고 싶다.

아니 저 금액의 반,반의 반이라도 누가 좀 날 도와 줬으면 좋겠다.

 

이건 마치 불가의 선문답같기도 하다.

이렇듯 나는 겉으로는 교만하고 내 속은 늘 이렇게 추악하다.

 

2004년 4월24일

미국에서 처음 맞이 하는 내 생일이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깨니 그동안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Channel J12 텐포인트가 내 오른쪽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여진 그녀의 생일 카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늘 자기옆에 있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는 그녀의 예쁜 마음들이 그 작은 카드 한장에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너무너무 행복해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순간 작년 멕시코,그 감옥같던 모텔방에서 홀로 보낸 내 스물여덟번째 생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89센트짜리 마루찬 컵라면 두개가 내게 주어진 최대의 호사였던 일년전 오늘.

그렇게 나는 보석 박힌 샤넬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감회에 젖어 있었다.

 

가게에선 내 목에 겹겹의 레이가 걸려 졌다.

그리고 오늘 우리 가게의 모든 손님들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무슨 꿈을 꾸는 것 같은 만화같은 하루였다.

이곳 운명의 섬 하와이에서 나는 이렇게 스물 아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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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2일

텔레 마켓터처럼 눈만 뜨면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태능인처럼 2~3시간씩의 조깅 역시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 곳,아프리카의 폭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언제나 운명에 우선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자신의 강철같은 의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것이다.
나비의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이 사바세계의 소음을 사랑한다.

 

2004년 2월4일

하와이,정말 눈물겹게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이 호스트란 직업.

끊임없이 나를 조련시키고 단련시키며 되돌아 보게 하는 참 감사한 직업이다.

 
2004년 2월6일

드디어 도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하와이로 돌아 온다고 했다.

시리도록 그녀가 그립다.

그런데 이 감정 자체가 참 혼란스럽다.

'나에게 와라,도현아.'

 

2004년 2월7일

그녀는 내게 세상을 움직이는 열쇠,'꿈'이다.
꿈에 지탱하고,꿈에 의지하고,꿈에 고뇌하고,꿈으로 살아가고,꿈때문에 죽어 가고.
도현아,내가 널 위해 몸을 내던지는 건 하나하나 이유가 필요한건 아니지.

넌 그저 내게 꿈같은 여자다.

많이 보고 싶다.

 

2004년 2월8일

그녀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 일을 그만 두길 바래.

내가 무슨 일을 해서든 널 먹여 살릴께."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 너무도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 왔다.

순식간에 내가 구역질나도록 가증스러워 졌다.

역겨워서 몸이 바르르 떨려 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런 내 마음이 들킬까봐 더 크게 소리내어 울어 버렸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도대체 이렇게 살아 가는 것이 맞는 건가?

 

커다란 질문이 하나 생겼다.

 

2004년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

나는 도현이에게 장미꽃 한다발을 안겨 주었고,그녀는 나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 다이아몬드 선물이다.

뛸 듯이 기뻤다.

그녀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져 밤새 몇번이고 그녀를 안아 주었다.

 

2004년 2월16일

어렸을적부터 피해의식이 남달리 컸던 것 같다.

친구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처절히 외로웠기에 더더욱 나는 삐뚤어져 갔다.

사람들을 만날때면 항상 눈치를 보며 내 온 몸을 웅크리고 웅크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지막 진짜 속내는 고질적인 나쁜 습관처럼 늘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두고 살았다.

그게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와버렸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이젠 내 진짜 마음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이란 말이다.

 

2004년 2월18일

나는 과연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내 못난 컴플렉스가 깨 부셔야 할 이 세상의 마지막 타부?

아니면 그녀가 몸을 팔아서 힘겹게 벌어 오는 돈?

나는 과연 그녀를 사랑하긴 사랑하는 걸까?

 

아,솔직히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진짜 나를 발견해버리면 그간 쌓아온 거짓의 성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 버릴 것만 같다.

지금은 그렇게  발가 벗겨 질 수가 없다.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남겨 놓고 도망친 내 엄청난 빚잔치 때문에 노모께서 한달에 한번 쉬지를 못하신다.

24시간 뜬 눈으로 병원에서 환자들 똥오줌을 받아 내는 간병인 일을 하고 계신다 말이다.

정작 당신의 병든 몸은 눕히시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비참히 사신다 이 말이다.

 

그래,이곳은 빚을 갚으러 온 곳이다.
이 곳은 돈을 벌러 온 곳이다!
좀더 마음 독하게 먹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한다.
나한텐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

저따윈 지금 내겐 극심한 사치요 허영이다.
 

2004년 3월4일

도현이가 VIP라는 맛사지 팔러의 사장이 되었다.

그래 여러모로 지금 현실에 딱 맞는 수정노선이다.

서로의 마지막 양심을 서로 존중하고 지킬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수정안이다.

 

2004년 3월7일

드디어 멕시코에서 잃어 버린 내동생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지난 달 초에 한국에 돌아 왔다고 지금은 아주 건강해 졌다고,나는 아무 걱정 마시라고,형님은 잘 지내시냐고,한국에는 언제 돌아 오시냐고..사랑하는 내동생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동석이는 자기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 갔는데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봐도 지금껏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했다. 

 

정대의 메일을 읽으며 요 몇일 잠잠했던 내 눈물샘에서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흘러 내렸다.

 

한국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이곳, Hawaii.

형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정대야.

 

2004년 3월9일

정대랑 드디어 통화를 했다.

계속 힘차게 웃어 주는 녀석에게 극심히 미안해져 나는 꺽꺽 목이 메여 왔다.

여전히 동석이 소식은 알 수가 없었고 정대는 곧 발리로 떠날 거라고 했다.

아는 선배가 그곳에서 여행사를 하는데 요즘 한국 관광객이 많아져 가이드가 더 필요하다고 했단다.

잘되었다고 잘되었다고 나는 그의 새로운 출발에 내가 기억하는 모든 축하의 말을 동원해 내 기쁨을 표현해 주었다.

그렇게 그와 1시간여의 긴 통화를 마쳤다.

목이 컬컬해 담배를 물자 뭔가 가슴 한켠이 횅해져 오길래 냉장고에서 전에 먹다 남은 소주를 꺼냈다.

오늘은 가게를 쉬어야 겠다.

 

2004년 3월21일

오늘 도현이가 어디서 술이 잔뜩 취해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우리 가게에 놀러 왔다.

연신 이곳저곳 웃음을 흘리며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뭔가 변해가는 듯한 그녀의 모습.

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 저런 여자였나?

저런 여자에게 내가 이때껏 눈물,콧물을 쏟아 부었었나?

가게에서 그녀와 싸울순 없었기에 북받쳐 오르는 화를 가라 앉히려 한참을 나자신과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이런게 진짜 호스트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진짜 호스트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생각이 깊어지자 너무도 혼란스러워 나도 얼른 그녀만큼 취해 버렸다.

 

Good bye to 치기(稚氣)어린 내 지난날의 눈물들이여,내 지난날의 아집(我執)들이여.

 

2004년 3월22일

세상에 힘들지 않은 업(業)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 일(호스트)이야말로 정말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다.

우선 어디 나가 떳떳이 '나 고생했소' 하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 직업이다.

그렇다고 한껏 부풀려 전해지는 것만큼 그런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이 직업으로 돈을 버는 부류는 딱 두 가지이다.

이 악물고 남들 잘 때 안 자고, 입고 싶은 옷 안 사고,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하는 노력파이든가,

아니면 진짜 조각 같은 외모로 앉아만 있어도 여자들이 줄줄 따르는 그런 혜택받은 자.

그러나 이것은 어떤 직업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운이 좋아 술술 잘 풀려 일사천리,만사형통은 누구나의 요원한 꿈이다.

하지만 박복히 태어난 나같은 부류는 언제나 이를 악물고 벌거숭이로 가시덤불을 뚫고 맨발로 자갈밭을 달려야만 한다.

지쳐 쓰러 질 수도 없고 힘들다고 주저 앉을 수도 없다.

철저히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참 눈물겨운 나날이다.

 

2004년 3월24일

정대에게서 메일이 왔다.

발리에 잘 도착했고 요즘은 스킨스쿠바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가 너무 씩씩해 살짝 부러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나는 전세계인이 그렇게 와보고 싶어 하는 이곳 꿈의 섬 하와이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요즘의 나의 일상이란 밤새 술 쳐먹고 그 퍼부은 술이 깨기 까지 그 다음 날 밤이 될때 까지 자고.

이렇게 흡혈귀처럼 살고 있기에,요즘도 하와이에 태양이 뜨는지 모르겠다.

아,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저 전설의 와이키키를 20분 거리,지척에 두고 말이다.

 

내 청춘은 이렇게 매일 밤 술에 찌들어 썩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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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3일
L.A에서 새로운 선수 세명이 왔다.

잘 생겼다.
멋있다.

게다가 어리고 싱싱하다.

모든 테이블에 인사를 들어 갔다.

반응도 죽인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결코 질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ALAMOANA를 지나 부둣가까지 미친듯이 뛰었다.

 

2003년 12월6일
그녀는 집에 들어 오질 않는 날이 더 많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 오면 요즘은 늘 혼자다.

 

2003년 12월8일
L.A에서 새로운 온 식구들 모두 대순이 형을 잘 안다고 한다.
요즘은 L.A에서도 아주 알아 주는 약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에 있던 가게에 마담으로 그대로 남아 있긴 한데 누구도 형을 마담으로 인정하질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약에 젖어 헛소리를 하며 돈을 빌리러 다니는 형을 다들 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옛생각도 나고 기분이 묘했다.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그냥 계속 기분이 묘했다.

 

2003년 12월14일

나는 도현이를 사랑하는 것일까?

 

예전부터 그들은 내게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약간은 두려움의 존재들이였다.

언제나 무섭고 두렵웠지만 항상 궁금하고 정복하고 싶었던 그 마지막 영역.

 

겪어 보니 똑같은 사람이다.

겪어 왔던 그 어떤 부류보다 훨씬 순수한 사람들이다.

그냥 나랑 너랑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라는 범주에서 난 이미 탈락된 건가?

도대체 나의 뇌는 언제부터 '우리'를 구분짓게 세뇌당해 왔던 것인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참 복잡하게도 얽혀 있는 이해관계의 집합들이다.

부분집합,교집합,합집합.

도대체 어느 그룹이 진짜인가?

 

나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되기를 원했을까?

 

머리가 깨어질 것 같다.

 

2003년 12월19일

이주일이 좀 넘었는데 L.A에서 온 선수들이 모두 떠났다.

Size가 안 나온다는 이유였다.

솔직히 이곳은 내게 참 과분한 곳이다.

그들은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걸까?

 

 

2003년 12월25일

어제도 오늘도 그녀는 집엘 들어 오질 않았다.

제프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질 않았다.

가게나 나가 봐야 겠다.

 

 2003년 12월26일

어제는 정말 가게 나가길 잘했다.

하와이에 사는 외로운 여자들은 모두 다 모인것 같다.

Africa라는 이 가게는 여느 일반 호스트바가 카라오케식 룸으로 되어 있는 것과 달리 넓은 홀에 띄엄띄엄 테이블이 있고 중앙에 작은 무대가 있는 극장식 구조이다.

예전에 무슨 나이트 클럽이였다는데 어느 순간 호스트바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이곳은 손님이 선수들의 노출된 동선을 자연스럽게 관찰한다.

그래서 누가누가 잘 나가고 누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아 버리게 되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게다가 자기가 지명한 선수를 좀더 자기 테이블에 앉혀 놓기 위해 손님들간의 경쟁도 빈번하게 일어 난다.

일본의 호스트바가 이와 똑같은 풍경이라고 한다.

 

어제는 정말 나의 날이였다.

만석 13개의 테이블중 5개가 나를 보러 온 손님들이였다.

그들이 나를 앉혀 놓기 위해 터트린 샴페인 병수가 도합 50병은 족히 넘지 싶다.

한쪽에서 두병을 터트리면 다른쪽에서 또 세병을 더 주문하는 그런 재미있는 장면의 연속이 어젯밤이였다.

가게와 내가 반반씩 먹는 시스템.

병당 기본 200불로만 계산하여도 5000불을 훌쩍 넘긴 스코어가 예상된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이런 큰 돈은 처음 만져 본다.

내일은 꼭 한국에 송금을 하여야 겠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서어서 빚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2003년 12월31일

도현이에게 미친듯이 욕을 퍼부었다.

해서는 안 될 말들까지 모두 동원해 가며 그녀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미친놈같았다.

그만 해도 될텐데 좀더 좀더 악을 쓰고 있는 내자신을 느꼈을때 갑자기 내 중학시절 한장면이 떠올랐다.

중3때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 들면 들수록 그 조그마한 아이를 더욱 심하게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까지 구경꾼에 합세하자 나는 급기야 의자를 들어 그 조그마한 아이의 등을 찍고 또 찍었다.

그저 나 이런 악랄한 놈이라고 나 미친놈이라고 나 가까이 오지 말라고,나 무서운 놈이니까 나 그냥 내버려 두라고.

흡사 덩치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작은 고슴도치가 가시를 돋우고 또 돋우고 있는 그런 모습이였다고 할까.

도현이에게 점점 악랄하게 기를 쓰며 욕을 퍼붓는 내 모습이 중3때 그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

나는 그녀에게도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음을 자인한 날이다.

하지만 그 실체를 모르겠다.

형체가 너무 일그러 져서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이렇게 결국은 또 후회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더티한 2003년의 마지막 날.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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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22일
심장이 뛰는 여자를 만났다.
도현.

나보다 두살많은 소띠다.


항상 시간에 쫒기는 그녀.
-오늘까지 난 그녀가 말한것 처럼 유부녀이어서 시간이 많이 없는줄 알았다.-

그렇게 늘 아쉬운 이별속에 점점 그녀에게 길들여져 갔다.

 
오늘 알게 된 사실.

그녀는 이곳 하와이 Massage parlor에서 몸을 파는 소위 '창녀'였다.

난 순진한 놈인가?
아니면 덜 떨어진 멍청한 놈인가?
내가 과연 호스트 맞나?

 

혼란스러웠다.

창녀와 사랑에 빠지다.

 

망각을 위해 이곳을 찾는 다던 그녀.
그녀는 내게 한떨기 수선화였다.
뛰어난 미인도 아니였고,완벽한 몸매도 아니였다.
그리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차라리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처지의 여자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할 것도 같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그저 수선화였다.


2003년 11월2일
언제나 다소곳한 나의 수선화.
오늘도 옆에 앉아 말이 없길래 나에게 관심이 없냐고 다그쳐도 수줍은 미소만 건네던 그녀.

새벽 4시가 훌쩍 넘은 시간.
가게는 파장을 했고 만취가 된 나는 작정을 하고 도현의 집으로 쳐들어 갔다.
그렇게 또 와인을 마셨다.

 

2003년 11월3일
하루종일 실없는 웃음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간밤에 기억 나는 단 두가지.
첫번째는 밤새도록 리플레이 되었던 santana의 smooth.
그리고 그녀의 촉촉했던 입술.

우린 어젯밤 진짜 사랑을 나눴다.


2003년 11월18일
숙소를 나왔다.
내나이 스물여덟에 첫동거를 시작한다.
다른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좀더 가까이 그녀 곁에 있고 싶다.
그저 좀더 많이 그녀를 느끼고 싶다.
설레임 반,두려움 반.
하지만 망설임은 없다.
어서 그녀를 내 눈에만 하루 온종일 넣어 두고 싶다.

 

2003년 11월21일
침대가 들어 왔다.
이제 정말 신혼방같다.
옷장에 그녀의 옷가지와 나의 옷들이 반반 사이좋게 걸려 있다.
보고 또 봐도 행복하다.

 

2003년 11월23일
요즘 잠시 주춤했다.

일어서야 한다.
나를 위해서 그녀를 위해서라도 난 꼭 다시 우뚝 일어 서야 한다.


2003년 11월29일
한순간도 숨돌릴 틈없는 숨막히는 MIND GAME.
이곳은 정말이지 정글이다.
AFRICA라는 이름,누가 지었는지 정말 이곳에 딱 어울리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벅차고 힘들다.
하지만 잃어 버렸던 그리고 잊어 버렸던 그 옛날 감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기쁘다,그리고 행복하다.
온 몸의 세포가 전율함을 느낀다.
지금 나는 펄떡거리는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중.
욕심이 생겼다.
난 지금 이 자리를 끝까지 지킬게다.
다시는 내려가고 싶지 않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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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26일

본명인 철종을 버렸다.

꽃 화 이야기 담을 써서 화담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썩 마음에 든다.

나는 꼭 새로이 태어 난다.

 

2003년 9월27일
대박이다.
첫날부터 인기 대폭발!
이 업을 시작하고 이런 적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인사만 하면 앉으란다.

몰래 카메라인줄 알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억누른다.
드디어 삼재는 끝났다.
끝없는 도전.
나는 반드시 정상에 우뚝 서리라.
한시도 흐트러지지 않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게다.
내 육체와 영혼을 모두 받쳐서 나는 결코 비상하고 만다.

 

 

2003년 10월1일

 갑자기 곽경택 감독의 '친구'라는 영화의 장동건의 대사가 기억났다.

"니가 가라,하와이!"

 

왜?하와이였을까?

왜?굳이 이곳 하와이였을까?

 

그냥 별 의미없이..

그당시 전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꿈의 섬/최고의 휴양지'란 

이 섬의 이미지때문이였을까?

 

그래서 그냥 푹 잘 쉬다 오란 뜻이였을까?

 
또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지로도 잘 알려져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것이다.
그분은 왜 이곳을 선택 하셨을까?
왜 다시 돌아 오셨을까?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들을 새기셨을까?

 

2003년 10월3일
연일 계속되는 이 믿기지 않는 행운에 너무 감사드린다.

모두들 나를 찾는다.
누구나 나에게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저 밑바닥 끝까지 떨어져 봤던 나이기에,사실은 내게 주어진 이런 꿈만 같은 행운이 너무도 두렵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런 기분.

그런데 자꾸 거만해짐을 느낀다.

미친거 아닐까?!

 

2003년 10월4일

간절히 기도 드린다.
계속 저를 지켜주십사 하고 말이다.
그리고 더욱 더 진실로 겸손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2003년 10월5일
오늘도 조깅을 거르지 않고 나를 추스린다.
모두들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2003년 10월7일
들뜬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술에 취하면 자꾸만 행동이 거칠어 진다.

표정도 말투도 자꾸만 거칠게 과장을 한다.


2003년 10월10일 

제프리와 나는 이곳 아프리카에서 별동팀 분위기다.

제프리도 두세방씩 매일매일 선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선수들의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2003년 10월12일
처음 만나본 나의 행운의 나날들.

욕심이 과했던 걸까?
나는 양손에 떡을 쥐고도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고 탐했다.

어제도 테이블에서 다른 선수들의 파트너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길래 난 술에 취해 흥에 겨워 덥석 덥석 그녀들을 안아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더욱 많은 적들이 생겨 버렸다.

오늘 나에게 지명들을 빼앗겨 버린 어제의 선수들.

노골적으로 불만을 여기저기서 터트린다.

내가 잘 모르지만 원래 이 바닥이 그런거 아닌가?


저 밑바닥이 얼만큼 춥고 배고프고 비참한지는 내가 가장 잘안다.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래서 지금 이렇게 무의식중에 더 발버둥치는 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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